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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53화 (53/314)

53화.

“천진을 떠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흑…룡당이 이렇게 강했던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백룡당주 모유환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흑룡당은 강했다.

특히 조장을 중심으로 한 합공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손발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삐거덕거릴 수도 있었다.

흑룡당의 조원들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이 잘 맞아갔다.

이현성이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없으니 집단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보였다.

백호(百戶) 출신인 묵장진이 그 점을 잊고 있었으니, 이현성에게 호되게 혼난 것이다.

스물이 넘는 사람이 흑룡당을 나가면서 묵장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흑룡당 내에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 직후 묵장진은 정신교육을 시작으로,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시작이 반이었다.

구웅방의 정예인 백웅대를 상대로 선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한 셈이었다.

“지켜만 보지 말고, 흑룡당을 도와라!”

“아, 알겠습니다!”

모유환의 호통에 백룡당원들 역시 움직였다.

행정을 담당하는 백룡당이었지만, 모유환을 포함한 몇몇을 제외하면 그들 역시 다른 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미력하지만 백룡당이 합세하자, 백웅대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장인 구완이 빨리 적의 수장을 꺾고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항복해라! 너희 수장은 붙잡혔다!”

“마, 말도 안 돼!”

백웅대는 절망하고 말았다.

쓰러져 있는 구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오히려 발광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곧 흑룡당에 의해 제압당하고 말았다.

피해가 적지 않았으나 값진 승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들은 구웅방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우드득.

“뭐라고?!”

구웅방의 대방주인 현휘군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흑룡방주의 사자(使者)에게 백웅대는 물론 방주인 구완, 육승이 제압된 사실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육승의 패배소식은 현휘군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본방의 방주님께서 귀방의 대방주께 한 가지를 제안하셨소. 더 이상 일을 키우지 말고, 일대일로 붙자고 말이오.”

“나, 현휘군과 붙어보겠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현휘군은 섬뜩한 살기를 드러냈다.

이에 흑룡방주의 사자인 흑룡당의 조장은 움찔 떨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말라는 방주의 지시가 있었기에, 조장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내 살기를 견뎌? 역시 가볍게 볼 자들은 아니군.’

비록 전력을 다한 살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고수인 현휘군의 살기였다.

배짱이 없는 자라면 주저앉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흑룡당 조장은 버텨냈다.

비록 식은땀을 줄줄 흘릴지라도.

이에 현휘군은 살기를 거두었다.

백웅대가 하찮은 자들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흑룡방주에게 전해라.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그, 그렇게 전하겠소.”

땀을 뻘뻘 흘리던 흑룡당 조장은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급히 돌아갔다.

더 있다가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너무 쉬워서 재미없었는데 잘되었지 뭐.”

현휘군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구완은 몰라도 육승까지 제압되었다는 상황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강함을 모두에게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한 시진 후, 양측은 드디어 결전의 장소에 모였다.

* * *

“네가 흑룡방주인가? 그 복면을 치우지?”

“내 얼굴을 보고 싶다면 나부터 이겨.”

현휘군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흑룡방주의 목소리가 젊었기 때문이다.

나이와 실력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흑도인이지만 큰 방파를 이끌 정도라면 당연히 무공을 익히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은 떨어지지만, 그 이상의 내공이 깊어진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북경 흑도를 평정했다는 흑룡방주의 목소리가 젊다는 것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새끼… 비싸게 구는군. 하지만 곧 볼 수 있겠어.”

“그럴 실력이 된다면…….”

이현성의 도발에도 현휘군은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흑도인이고, 일천이 넘는 방도를 이끄는 대방주다.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이현성 역시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아쉬운 기색도 없었다.

“싸구려 도발은 그만하고, 덤벼라.”

“바라는 바다.”

이현성이 현휘군에게 암천을 겨누었다.

반면 현휘군은 무기를 쥐지 않았다.

그의 특기는 연환수(連環手)로, 연환지옥에 빠지면 시체조차 온전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만큼 간격을 조절할 생각이었다.

“일점홍…….”

“빠르군. 허나…….”

이현성이 일점홍을 펼쳤다.

이제는 그의 상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손에 익었다.

허나 그 정도로는 현휘군을 벨 수 없었다.

내공이 실린 그의 손이 이현성의 검을 잡으려고 했다.

맨손으로 검을 잡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내공으로써 손을 보호하면 말이 다르다.

특히 수공(手功)의 달인인 현휘군이라면 더욱 그랬다.

물론 이현성 역시 충분히 예상했던 터라 잡히기 전에 검을 거두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사에 불과했다.

“인사를 잘 받았으니… 내 차례인가?”

현휘군의 손이 빠르게 허공을 베었다.

챙! 채챙! 챙챙!!

그의 손은 빨랐다. 하지만 빠른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일수(一手)를 막아내는 순간 이수(二手), 삼수(三手)가 쏟아졌다.

현휘군이 연환수의 대가라는 것을 몰랐다면 손해를 봤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오히려 자신의 연환수를 막아내자 현휘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군.”

“나 역시…….”

이를 시작으로 수십 합이 오고 갔다.

당사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놀람을 넘어서 경악하고 말았다.

“방주…님께서 강하신 줄은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도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지?”

백룡당의 연락을 받은 삼당의 당주 및 정예들이 흑룡방 본방에 합류했다.

그들은 이를 갈며 이곳으로 왔다.

구웅방에게 당해 무척이나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감정은 잊고 말았다.

그만큼 두 고수의 무위는 대단했다.

이런 마음은 구웅방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방주님의 연환수를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있을 줄이야.”

“허나 그뿐이야.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어?”

‘설마 대방주가 지는 건 아니겠지?’

‘젠장…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현휘군의 어마어마한 무위를 보며 환호와 동시에 불안감을 보였다.

특히 이현성에게 쫓겨나 구웅방에 들어간 부방주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쉽게 꺾을 줄 알았던 현휘군이, 기대와 달리 흑룡방주와 팽팽한 접전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현휘군은 아직 전력은커녕 독문무공도 펼치지 않았다는 것을.

물론 그것은 이현성도 다르지 않았다.

“어이없군. 흑도 바닥에 너와 같은 자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신 같은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없을 이유가 없지 않나.”

현휘군은 이현성의 실력을 인정했다. 아니, 너무 아까웠다. 그렇기에 한 가지를 제안했다.

“죽이긴 아깝군. 본방으로 들어와라. 방주의 자리를 주마.”

“불가능한 소리를 하는군. 그 정도 실력으로는 날 죽일 수 없어.”

현휘군은 아쉬웠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탐나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꺾어서 곁에 두고 싶었다.

그 순간 현휘군의 기세가 변했다.

“오랜만에 실력을 조금 더 보일 필요가 있겠어.”

이현성은 현휘군의 기세가 변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천잔마공(天殘魔功)이군.’

전대 천웅방주(天雄幇主)인 천잔마왕의 독문마공이었다.

사파 사대세력 중 하나인 천웅방은 구파일방도 한 수 접어준다는 거대방파였다.

특히 현 천웅방주는 사파 칠대고수인 칠사(七邪)의 한 명이었다.

천잔마왕 역시 칠사였으나 현 천웅방주에게 죽임당하면서 방주의 자리와 칠사의 자리는 새 주인에게 넘어갔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천잔마공을 폄하할 수는 없었다.

패배한 것은 천잔마왕이지, 천잔마공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천잔마공으로 펼치는 천잔마수는 죽음의 무학으로 유명할 정도로 강력하다.

현휘군은 흑룡방주가 자신의 기세를 느꼈다면 생각을 바꿨을 것이라고 여겼는지, 마지막으로 권고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사지 멀쩡히 살고 싶다면 나에게 굴복해라.”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라서 말이야.”

“어리석군.”

한번 펼치면 피를 봐야 멈추는 무공이 천잔마수(天殘魔手)였다.

그렇기에 현휘군은 이현성의 어리석은 선택에 혀를 찼다.

이현성이 숨은 힘을 알면서도 거절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잔마수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일점혈이라면…….’

암천살무(暗天殺舞) 중 유일하게 익힌 일점혈.

천잔마왕 수준까지 올랐다면 몰라도, 현휘군이라면 일점혈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암천을 쥔 이현성의 기세 역시 변했다.

섬뜩하고 강렬한 현휘군과 달리, 이현성의 기세는 너무도 고요했다.

흡사 폭풍전야처럼.

허나 천잔마공의 기운에 흠뻑 취한 현휘군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벽을 넘지 못한 현휘군은 아직 천잔마공의 기운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현성이 일점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였다.

퍽! 퍼퍽!!

이현성은 쇄도하는 현휘군의 손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그로 인해 현휘군은 허공에 헛손질하고 말았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이현성을 섬뜩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 잘도 피하는구나! 이번에도 피할 수 있나 보자! 천잔폭멸수(天殘暴滅手)!”

천잔마수의 절초인 천잔폭멸수가 작렬했다.

적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너무도 잔혹한 절초였다.

가질 수 없다면 철저하게 망가트리겠다는 생각이었는지, 현휘군이 그간 봉인했던 절초를 펼친 것이다.

수십, 수백으로 늘어난 현휘군의 손은 허공을 찢어버릴 듯한 환영을 보여주었다.

허나 봉인했던 절초를 꺼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둠을 가르는 일검(一劍).

일점혈은 결코 천잔폭멸수의 아래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검을 움직였다.

“…일점혈(一點血).”

천잔폭멸수가 허공을 찢어버렸다면 일점혈은 그 허공을 베었다.

콰앙!!

무림에서도 정상급에 해당되는 신공절학의 격돌이었다.

비록 그만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그 위력은 가공하다고 할 만했다.

천잔폭멸수와 일점혈은 두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젠장… 설마 패하신 것은 아니겠지?”

“살아는 있는 건가…….”

둘 중 누구 하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그러니 불길한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크…윽! 빌어먹을…….”

“쿨럭.”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무사했다. 아니,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 무시무시한 격전 속에 있었던 만큼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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