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이제 그만 일어나십시오.”
“저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게 얼마 없습니다만…….”
“저희들의 교두가 되어주십시오.”
위표의 예상치 못한 청에 이현성은 당황했다.
물론 정식으로 금의위 교두가 되란 뜻은 아니었다.
이곳에 배치된 금의위와 금위군에게 가르침을 달라는 뜻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되실 때 부족한 부분만 지적해주시면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는 위표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의 부하인 금의위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위표에게 청했고, 그가 이렇게 이현성을 찾아온 것이다.
가르침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할 겸 해서였다.
무릎을 꿇은 위표는 고개를 숙인 채 들지 않았다.
승낙을 받기 전까지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현성은 한숨이 나왔다.
‘몸이 회복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가 문종학에게 접근한 것은 내각대학사의 식객이란 신분과 북경이라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았기에 금의위에게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더불어 시간적 여유는 아직 있었다.
‘금의위와 친해진다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좋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교두.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협! 아니, 교두님!”
“제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황실무공을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지요?”
“예! 교두님!!”
이현성의 말에 금의위사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황실무공만 아니라 타인의 무공을 훔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그게 무관이 아닌 무인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그만큼 무공의 외부유출은 위험한 일이었다.
금의위사들은 이현성보다 나이가 많았다.
많게는 숙부뻘이고, 적게는 큰형이 될 정도로 나이 차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의위사들은 이현성을 교두로 모시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상명하복의 위계가 확실한 금의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문종학을 황도로 호위할 때 함께 있었던 자들이고, 그들을 통해 이현성의 실력이 위표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불신하는 자들도 있구나.’
그들의 눈빛을 보니 내색하지 않을 뿐, 이 상황을 내켜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금의위는 황제의 친위군.
황제를 가까이서 지키는 군세였다.
실력은 물론 충성심까지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나도 출신성분이 불분명하다면 금의위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금의위는 대부분 무관가문 출신이거나 백호급 이상인 장수의 추천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그 외에는 금군으로서 5년 이상 복무한 자만 볼 수 있는 금의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현성은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불신을 하는 자가 없지 않았다.
“제가 본 금의위는 강합니다.”
“물론입니다. 교두님!”
이현성의 말에 금의위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다.
“허나 동시에 약합니다.”
“…….”
“제 말을 동의하지 못하는 듯하군요.”
금의위로서 자부감이 강한 그들로서는 약하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현성은 쓴웃음이 나왔다.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강해질 수 없었다.
명문 출신일수록 이러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금의위로서 존경의 시선만 받다 보니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기초가 탄탄하고, 익힌 무공 역시 뛰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합니다.”
“실례지만…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반예!”
“괜찮습니다. 위 대장님.”
반예라는 금의위사는 금의위 천호를 부친으로 둔 그야말로 전형적인 금의위 출신이었다.
게다가 이현성과 함께 실전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반발심이 더 강했다.
위표 역시 금의위로서 이현성의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교두로 청해 놓고 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허나 이현성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 위사이십니까? 좋습니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말입니다.”
“그 말씀은…….”
“비무. 아니, 생사결을 하지요. 절 베십시오.”
“위험합니다. 이 대협!!”
위표의 말에 이현성은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그 순간 위표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고, 그의 눈빛이 너무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지금 전 교두입니다. 제 지시에 반하는 행위는 금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상 중이니 진검은 허용하지만, 내공은 금하겠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반 위사님.”
“…좋습니다. 금의위의 자존심을 걸고…….”
반예는 동료들이 말한 이현성의 무위에 과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그가 상관인 위표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위표의 실력은 금의위 사이에서 제법 알려질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부상까지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싸우겠다니, 오만함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런 반예를 보며 이현성은 생각했다.
‘실전이 뭔지를 알려주지.’
금의위 교두
챙! 챙! 챙!
두 자루의 검이 충돌했다.
‘젠장.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니…….’
본신의 실력만 비교한다면 반예 정도 되는 위사는 수십 명이 와도 이현성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일류와 절정의 차이가 크지만, 실전경험이 풍부한 이현성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쉽지 않았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부상이 아직 낫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반예와 금의위사는 부상을 입은 몸으로 이 정도까지 싸울 수 있는 이현성의 실력에 놀랐다.
그와 동시에 금의위를 무시한 이현성의 언행을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제 슬슬 나락으로 떨어트려 볼까?’
지금까지는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피하거나 방어만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높이 오를수록 떨어졌을 때 충격이 더 큰 법이었다.
이현성은 그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서 위계를 바로 잡을 생각이었다.
“귀령박(鬼靈搏).”
“헛!”
이현성은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기묘하게 움직이더니 반예의 검을 흘려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예는 당황하며 평정심을 잃었다.
그때 이현성의 검이 반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검면(劍面)으로 후려쳤기에 반예는 고통스러울지언정 부상은 없었다.
“큭!”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군요. …언제까지 기다려드려야 합니까?”
이현성의 조롱에 반예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다시 달려들었다.
흥분했기 때문인지 검을 휘두르는 반예의 동작이 커졌다.
그런 검에 당할 이현성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반예의 공격을 모두 무(無)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둘러서 반예의 허벅지를 후려친 후 어깨를 짓눌러서 넘어트렸다.
“동작이 커서 빈틈이 많군요. 그리고 감정조절 역시 미흡하고요. 무인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검을 쥔 자는 냉정할 줄…….”
우드득!
“닥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반예는 눈이 뒤집어져서 검을 휘둘렀다.
게다가 이성을 잃었기 때문인지 내공 사용을 금한다는 약조까지 잊어버렸다.
반예의 검에서 검기가 발현되자 이를 본 위표는 깜짝 놀라서 끼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오기 전에 반예의 검이 이현성을 벴다.
“안 돼!!”
“컥!!”
위표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순간,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또한 신음 소리와 구타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퍽!
“커억!”
“제어하지 못하는 검은.”
퍽!
“크윽!”
“적보다 위험한 법이다.”
퍽!
“사, 살려… 아악!”
“금의위는 그런 것도.”
퍽!
“안 가르치는가!”
구타를 당하며 신음 소리를 흘리는 자는 바로 반예였다.
검기가 실린 반예의 검은 분명 매우 위협적이었다.
허나 생사를 건 암행(暗行)을 수없이 치른 혈영살객의 기억을 가진 이현성이었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이현성에게 이런 반예의 행동은 모두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
쾌검인 일점홍을 펼쳐서 반예의 검을 떨어트린 후 검면으로 두들겨 팼다.
그 모습은 마치 야차와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금의위사들은 흡사 자신들이 맞는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반예는 얼마나 야무지게 맞았는지 의식도 잃지 않고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만 나왔다.
전문가(?)답게 이현성이 고통만 최대한 주었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반예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한 번만 더 항명한다면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밟아주겠다.”
“사, 살려… 컥! 컥!”
이현성의 목소리는 명부(冥府) 사자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곤 차가운 눈빛으로 금의위사들을 훑어봤다.
그의 시선에 금의위사들은 심장이 조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
“관용은 오늘까지다. 내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교관님!!”
그들은 태어나서 질러본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갓 입소한 훈련병보다 더 군기가 빠짝 든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이현성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자 이현성은 피를 토했다.
“우웩!! 젠장! 고작 이거했다고 상처가 벌어지다니…….”
그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무려 십대살수인 청살괴옹에게 당한 상처였다. 아직 완치까지는 시일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했으니 무사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신 금의위사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꺾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후… 그만 쉬어야겠다.”
안으로 들어가는 이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 * *
“반 위사. 정신 못 차리나.”
이현성이 금의위사들의 교두를 맡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그의 무서움을 직접 본 금의위사들은 거역 따위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혹독한 이현성의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반예는 그의 가르침에 토 하나 달지 않았다.
처음 열흘간은 이현성을 피했다.
두려움으로 인한 생존본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이현성의 가르침을 따르는 추종자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가르침을 받은 금의위사 중에서 가장 빠르게 실력이 늘고 있었다.
“아닙니다! 교두님!!”
“날 실망시키지 말게.”
움찔.
이현성의 말에 반예는 움찔했으나 누구보다 큰소리로 대답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 교두님!!”
“좋아. 모두 기본동작 삼백 번씩하고 돌아가라.”
기본동작이란 상하베기, 좌우베기, 사선베기 그리고 찌르기를 말한다.
총 아홉 동작으로, 삼백 번씩이면 이천칠백 번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허나 반발은 없었다. 그간 겪은 이현성에게 반박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수련의 양만 늘리는 멍청한 짓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시를 내린 이현성이 수련장을 벗어나자, 기다리는 자가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