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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7화 (7/306)

7화. 결제는 뭐로 하시겠어요

졸지에 보리 1만 석을 마등에게 빼앗기게 된 팽가는 속으로 오만 가지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팽가는 유력한 군벌의 목숨을 노렸다가 실패한 터였다. 재물을 뜯기는 정도면 싸게 막은 것이다.

“정서장군, 다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장사에서는 신용을 생명으로 여깁니다. 한중태수가 보낸 곡식을 장군께서 인수하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제가 한중태수에게 지불하기로 한 대금은 꼭 틀림없이 한중태수의 상단에 전달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물론, 이 마등 또한 신의를 지키는 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소. 대금이 무엇이오?”

“비단 500필, 그리고 가노입니다.”

“가노라면……?”

“지금 마 공자가 만나고 있는 두부 만드는 가노입니다. 그자가 신기한 음식을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한중태수가 꼭 그 가노를 끼워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마 진귀한 음식을 즐기는 자인 것 같습니다.”

비단 500필이라면 물론 큰돈이지만, 지금 같은 지독한 흉년에 1만 석이나 되는 곡식의 대금으로는 결코 비싼 값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중태수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가노가 틀림없었다.

“물론, 틀림없이 전달되게 하겠소.”

* * *

그리고 열흘 뒤.

“그래서 아버지는 너를 한중태수의 상단에게 넘겨야 한다고 하시더군.”

마초가 나관중을 보면서 말했다. 나관중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공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한중태수로 있는 소고라는 자는…….”

“유명한 탐관오리지. 한중에 그를 때려죽이고 싶어 하는 자가 수천 명은 될 거야.”

“그보다도 한중태수 소고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올해에 천사도(天使道)를 믿는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한중태수 소고를 주살하고, 천사도의 우두머리 장로가 한중태수를 자처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제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거 참, 기껏 구해 주니까 되게 시끄럽네.”

“아니, 그 구해 준 게 헛수고가 되게 생겼단 말입니다! 그리고 제 목숨이 달린 일인데 시끄럽지 않게 생겼습니까? 공자께서는 저를 팽가장에서 빼내 주겠다고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바로 말을 바꾸실 셈입니까?”

마초가 나관중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는 나보고 서량의 패륜아라며? 패륜아가 패륜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

나관중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황은 이렇게 되었다.

팽가장에서 그렇게 난리를 쳤으니 풍익군에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을 게 없는 일이다. 마등은 풍익군의 둔영을 수습해서 근거지인 천수로 먼저 돌아갔다. 한중태수의 상단에게서 군량을 인수해서 천수로 돌아가는 일은 마초와 방덕이 맡게 되었다. 그래서 마초는 방덕, 나관중과 함께 포야도 입구에서 한중태수 소고의 상단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리고 상단이 도착하기로 한 열흘 뒤, 그제야 거래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나관중이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패륜아라고 말실수한 게 마음에 남아서 저를 그 탐관오리한테 넘기겠다는 건가요?”

“말실수 아니라니까? 패륜아를 패륜아라고 했는데 그게 뭐?”

“아니, 그러니까……!”

“으하하하하!”

마초가 별안간 하늘을 보고 크게 웃었다.

“한중태수 소고가 곧 반란군에게 주살되는 건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한중이라면 아주 이가 갈리는 사람이야. 아무려면 내 수하가 되겠다고 맹세한 너를 한중으로 보내겠느냐?”

마초는 웃으면서 나관중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생각한 게 있지. 지난 생에서는 나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았어. 어린 나이에 서량 군웅들을 통솔하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었으니까. 가족들을 잃은 다음부터는 죄책감 때문에 더욱 그랬지. 패륜을 저지른 죄인이 어찌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겠나?”

잠시 아련한 눈으로 먼 산을 보던 마초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 죄가 사라졌네?”

“네?”

“패륜을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왔으니 죄도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이제 좀 유쾌하게 살아 보려고. 장익덕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싸움터를 많이 떠돌아다녔는데도 항상 유쾌하더라고.”

나관중은 그런다고 과거가 세탁이 되는 건지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건 알겠는데 제 목숨을 가지고 농담하는 게 재밌습니까?”

“재미있지. 그리고 나에게 패륜아라고 했으니 좀 놀림감이 되는 정도는 감수하라고.”

마초는 뭐가 재미있는지 혼자서 껄껄 웃었다.

그때 먼발치에서 상단의 선두가 포야도를 지나오는 것이 보였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군량을 실은 수레들이 도착했다. 한중에서 보내온 1만 석에 달하는 보리였다. 곡식을 가득 실은 수레가 300량이 넘는 긴 행렬이었다.

마등은 원래 팽가와의 약속대로 금과 비단, 가노 나관중을 상단에 넘기고 군량만 인수해서 돌아오고자 했다. 그러나 마초가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아버지, 저를 한 번 더 믿어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께서 왕승에게 습격당할 것을 예측해서 위기를 벗어나시지 않았습니까? 한중에는 곧 천사도 신도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한중태수 소고는 죽습니다. 속는 셈 치고 이번 한 번은 저에게 일을 맡겨 주십시오.”

마초에게는 군량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나관중을 넘기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나관중은 천 년 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자다. 앞으로 그의 지식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한중태수 소고에게 넘길 수 없었다.

마등은 마초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알아서 처결하도록 일을 맡겼다.

그리고 마초는 애초에 소고의 상단과 정당한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상단이 자리를 잡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소생은 한중의 소 태수의 명을 받고 군량을 거래하러 온 상단의 행수올시다. 장수께서는 풍익의 팽 대인이 보내신 분이십니까?”

마초가 대답했다.

“그러하오.”

“그러시면 지금 약속된 물품을 교환하시지요. 이쪽에서는 보리 1만 석입니다. 수레 채로 넘겨드리겠으니 지금 물품을 확인해 보십시오.”

“우리가 갈 길이 머니 번잡하게 물품을 확인할 것 없이 바로 인수해서 가도록 하겠소. 팽 대인께서 내어주신 비단은 여기 있으니 귀하께서 인수하여 가시오.”

상단의 행수는 비단이 실린 수레를 넘겨받은 후 마초에게 물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팽 대인께서 보내신다는 가노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초는 고개를 슬쩍 돌려서 나관중을 바라봤다. 나관중의 얼굴이 흙빛이 된 것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가노는 죽었소.”

“죽었다구요?”

“아아, 몸이 허약해서 긴 여정을 버티지를 못하더군. 다리에 힘이 풀려 말에서 떨어졌는데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혀 버릴 줄 누가 알았겠소? 어쩔 수 없이 근처 산골짜기에 묻어 주고 오는 길이오.”

행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공자, 장사는 본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법입니다. 약속된 물품이 준비되지 못했다면 소생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빈손으로 가지 못하면?”

“송구합니다만 보리 1만 석을 내어 드릴 수 없겠습니다. 다시 싣고 한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장사치의 법도입니다.”

마초가 씨익 웃었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지만, 눈으로는 상대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관중은 마초의 얼굴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참으로 악당 같은 표정을 짓는구나. 사람의 인격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야.’

“그렇다면 한중으로 목만 돌아갈 텐가? 차라리 빈손으로 사지 멀쩡하게 돌아가는 게 나을 듯싶소만.”

“장수께서 우리를 겁박한다고 장사의 법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상단이 거래하러 갔으면 무조건 약속된 대금을 받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수레 300량 규모의 상행을 나가서 대금을 떼이고 오는 행수는 어느 상단도 따르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여기서 싸우다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전란의 시대다. 양곡을 싣고 한중에서 관중까지 이동하는 대규모 상단을 노리는 도적떼가 없을 리 없다. 유사시에는 무사도 되고 도적도 되는 게 이 시기의 상단이었다.

게다가 상단의 수는 마초가 인솔하는 군사들의 수보다 많았다. 무장이나 훈련 상태로 봤을 때 마가군이 상단과 싸워서 질 리는 없겠지만 적지 않은 손실을 감내해야 할 터였다. 상단을 몰살했다가 마등에게 덧씌워질 악명도 문제였다.

‘적당히 겁을 주면 물러날 줄 알았는데 제법 배짱이 있군. 좋아,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 주지.’

마초는 짐짓 큰 소리로 웃었다.

“와핫핫핫, 행수께서 이렇게 기골이 있으시니 소 태수의 큰 복이시오. 내 어찌 아무 대책도 없이 곡식만 가지러 왔겠소? 잠시 농을 했을 뿐이니 행수께서는 너무 괘념치 마시오.”

나관중은 다시 한번 질린 표정으로 마초를 쳐다보았다.

‘목만 돌아가고 싶냐는 말이 농담이었다고? 짐작은 했지만, 정말이지 흉폭한 자로구나. 내가 저런 자를 연의에서 서량의 금마초라고 포장해 주었다니…….’

나관중이 연의 마초와 정사 마초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는 동안, 마초는 상단의 행수에게 비단 두루마리를 하나 내밀었다. 두루마리를 펼쳐 본 행수의 눈이 커졌다.

“이건…….”

“오늘 다 못 치른 대금을 3년 안에 치르겠다는 증서요. 촉금 1만 필이면 가노 한 명의 몸값으로는 너무 비싸지만, 우리가 어려울 때 소 태수께서 도와주시는 점을 고맙게 여겨서 최대한의 성의 표시를 하고자 하는 것이오.”

촉금 1만 필이면 한중태수 소고의 전 재산보다 더 많은 돈이다. 한중 같은 곡창지대에서 탐관오리 생활을 하는 소고인 만큼 재산이라면 누구 부럽지 않았지만, 그런 소고로서도 생각지도 못했을 거액이었다.

“촉금 1만 필의 증서라면 잔금으로는 차고 넘치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이 증서의 효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 내 서명이 있지 않은가? 내가 바로 정서장군의 아들 마초요. 알다시피 정서장군께서는 곡식이 필요하다고 민가를 약탈하거나 관부의 세곡을 빼앗은 적이 없소. 내가 증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부친의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 될 것이오.”

마초의 말처럼 마등은 순리를 어기면서 약탈을 한 적이 없었다. 탐관오리에 대한 처단과 강압적인 징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민심을 잃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쌓은 명성이야말로 일개 군관이었던 마등이 서량의 유력한 군벌이 되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상단의 행수가 그래도 망설이자 마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행수는 이 마초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것인가?”

‘사기꾼 맞잖아!’

나관중은 속으로만 외쳤다. 그 자신이 한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조용히 이 일이 마무리되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방덕이 군례를 취하며 앞으로 나섰다.

“소장은 정서장군부 기도위 방덕이라 합니다. 마 공자께서는 노기를 가라앉히시지요.”

방덕은 상단 행수를 바라보며 신뢰감 있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행수께서는 유념하지 마시오. 우리는 오늘 소 태수의 은혜에 힘입어 양식을 구하게 되었고, 마침 거래하기로 한 가노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서 사과와 감사의 표시로 촉금 1만 필을 약속드리는 것이오.”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1만 필이나 되는 촉금을 무슨 수로 구하실 작정입니까?”

“아시다시피 서량 땅은 촉의 비단이 서역으로 팔려나가는 관문인데, 최근 천하가 혼란하여 수년간 교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서량 땅에 묶여 있는 촉금이 많이 있소이다. 우리 마가군이 저 양식으로 올해 기근을 버틸 수 있으면 조만간 서량을 평정할 것이고, 그리 되면 어찌 촉금 수만 필이 대수겠소?”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방덕이 나서서 적당히 그럴싸한 핑계를 댔다. 방덕의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행수가 결단을 내렸다. 그로서는 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렇다면 소생은 이 증서를 가져가서 소 태수께 고하겠습니다. 마 공자께서 직접 약속하신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물론, 이 마초가 직접 약속하는 것이니 반드시 지킬 것이오.”

마초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서 행수를 돌려보냈다. 상단으로부터 넘겨받은 양곡 수레를 마가군 병사들이 몰고 천수로 향했다.

방덕이 마초의 옆에서 혀를 차면서 말했다.

“맹기, 거짓말 솜씨 한번 대단하군. 만약 한중에서 저 증서를 가지고 문제를 삼으면 어찌할 텐가?”

“그럴 일은 없어. 한중에서는 이제 곧 장로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태수 소고는 천사도(天使道)를 믿는 무리들에게 죽는다.”

이 시대에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민법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채권자가 갑자기 죽어 버리면 약속어음은 휴짓조각이 된다.

“그보다 영명, 내가 부탁한 일을 좀 진행해다오.”

“풍익군의 장 연사에게 비단을 전달하는 일 말인가? 지금 바로 출발할 참이다. 전달을 마치고 나흘 안에 합류하도록 하지.”

마초는 팽가에게 받은 비단의 일부를 떼어 편지와 함께 장기에게 보낼 참이었다.

[팽가를 지금 베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이각과 곽사가 살아 있는 한 다른 탐관오리가 부임할 것이고 수탈은 끊이지 않을 것이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서장군께서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팽가의 패악질이 이전보다는 덜할 것이오. 장덕용(덕용은 장기의 자字)은 이 재물을 가지고 조용히 협객들을 모으도록 하시오. 오래지 않아 풍익에서 짐승 같은 무리들을 몰아낼 날이 올 것이오. 그때 다시 만납시다.]

팽가는 마등을 제거하려다 실패했고 단단히 협박을 받았으니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마초는 그 틈을 타서 풍익군의 젊은 관리 장기에게 재물을 떼어 주고 사병을 모으도록 했다.

일이 잘된다면 풍익 일대로 세력을 확장했을 때 장기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만약 풍익까지 진출하지 못한다면 젊고 의기 있는 선비를 도와준 셈 치고 넘어갈 작정이었다.

‘장기… 원래는 조조 휘하에서 나를 방해했던 적수였지. 그러나 이제 다시 태어났으니 그런 과거의 일에는 얽매이지 않으련다.’

어느새 20세 시절로 회귀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같이 고민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가족을 잃지 않는 것이다. 패업도, 부귀도, 공명도, 복수도 그에 비하면 하찮은 일이었다.

마초는 고개를 들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가족들이 있는 천수군 농현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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