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235화 그게 아니라고
실제로 돼지국밥은 부산 사람들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장기간 타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머물렀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 1순위라는 것이다.
부산, 울산, 창원, 마산… 통칭 부울경 지역의 돼지국밥은 확실히 다른 지방과 차별이 있었다.
일단 진한 돼지 사골육수를 기반으로 살코기를 넣어 말아먹는 게 기본이었다. 타 지역이 머릿고기나 순대, 내장이 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게다가 분류하는 방법도 개인에 따라 달랐다.
강형우가 판단하기로 국물의 맑음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교통부-신창-수영본가-덕천고가-쌍둥이-그 외 기타 프랜차이즈 국밥집 식이었다.
반대로 진하기로 봤을 때 프랜차이즈-목촌-밀양-늘해랑-수영-수복-일품-합천-진명가-서면 국밥골목-조방 순으로 봤다.
물론 개인 입맛을 기준으로 한 거라 정확하진 않지만, 경험상 그랬던 것이다.
실제로 국물이 맑아도 진한 감칠맛이 있는 곳도 있었고, 진하고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나는 곳도 많았다.
어떤 곳은 국물이 진한데도 잡내가 없었고, 반대로 맑은 국물인데도 돼지 누린내가 심한 곳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전설적인 노포들도 많았고, 프랜차이즈임에도 손님이 버글버글한 국밥집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부산에서는 그만큼 돼지국밥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거다.
한 가지 지역 음식이 이토록 다양하게 발전하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또, 부산 사람 중에 돼지국밥 싫다는 사람이 천 명 중에 고작 한 명 정도 수준이란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대중화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부산에는 설렁탕이나 곰탕집이 많지 않았다. 돼지국밥이 훨씬 저렴하고, 친근했기에 경쟁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건, 밀면 때문에 상당수의 냉면집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돈코츠 라멘하고 돼지국밥이라… 확실히 같은 계열이기는 하네요.”
홍성구는 그렇게 말한 뒤,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정둥이 역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깜빡거렸다.
가볍게 웃은 강형우는 손가락을 하나 더 들었다.
“제주도 고기국수도 있어. 지금 부산에는 가게가 얼마 없지만, 동래시장 쪽에서 먹었던 집이 제일 입에 맞더라고.”
실제로 세 음식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돼지 사골을 우려서 육수 베이스를 만드는 방식이니까.
“그런데 웃긴 게… 제일 저렴한 게 돼지국밥이더라.”
라멘이 7,000원대고 고기국수도 비슷했다.
하지만 돼지국밥은 아직도 3,900원 하는 곳이 있었고, 평균 4,500원에서 6,000원 사이였다. 지금 시기에 7,000원 받으면 욕먹고 망하기 딱 좋은 것이다.
그때 강정우가 황당한 말을 꺼냈다.
“신기하기는 하네요. 물 건너온 음식이라 비싼 건가?”
“확실히 그럴 수도 있네.”
강인우가 생각 없이 내뱉자 홍성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희소성과 노하우 차이지. 부산 물가가 저렴한 것도 있고 돼지국밥집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어.”
역시 평소에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효과가 있었다.
어쨌든, 이 정도에서 멈추게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돼지국밥 가지고 밤새 이야기할지도 몰랐으니까.
강형우는 살짝 손을 들었다.
“사골탕면은 거기서 시작한 거야.”
돼지국밥과 돈코츠 라멘의 절충, 쉽게 설명하면 일종의 야매 라멘이라고 보면 된다.
제일 중요한 건 국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순수한 돼지국밥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성분식에서는 소고기 잡뼈를 오래 고아내서 사골육수를 만들었다. 여기에 어머니 국밥집에서 육수를 얻어와 섞었고, 마지막으로 다른 육수를 더했다.
바로 화끈오뎅에서 쓰는 홍합 육수였다.
10분의 1 정도가 들어가는데, 감칠맛이 확 살아나면서 조화가 잡혔던 것이다.
그다음은 면이었다.
돈코츠 라멘과 제주도 고기국수는 일자형이었다. 가게에 따라 굵기는 다르지만 거의 국수 면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물론 꼬불꼬불한 면을 쓰는 라멘집도 있었지만 부산에서는 닌자라면이 유일했다.
또, 설렁탕이나 곰탕, 돼지국밥에 들어가는 건 얇은 소면이었다.
보관하거나 조리하기 편했고, 빨리 국물 맛을 흡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식집에서는 인스턴트 라면을 쓴다. 이걸 라멘집에서 먹는 맛처럼 약간 짭짤하게 하려면 약간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방법을 찾았다.
우선 끓는 물에 데쳐서 기름과 전분을 빼고, 찬물에 헹궈서 다시 육수에 넣는 식으로 했다. 그랬더니 면이 퍼지기 전에 국물을 빨아들이더라.
아직 시간 조절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건 수십 번 테스트해 보면 그만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데, 아직 부족함이 있었다.
바로 고명이었다.
강형우는 족발 삶는 방식으로 수육을 졸였고, 살짝이지만 불맛을 입혔다. 물론 나중에는 적당히 잘라서 오븐에 살짝 굽는 식으로 변경할 예정이었다.
한 그릇에 들어가는 차슈는, 삼겹살 네 점.
여기에 작은 만두 두 개를 넣었고, 설렁탕처럼 고급스럽게 느껴지게 탕파를 잔뜩 넣었다.
“와! 무슨 라면 하나가 그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요? 진짜 가게에서 만들어 팔 수 있어요?”
강정우가 혀를 내두르는데, 강형우는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차슈하고 육수는 회사에서 다 만들어 올 거야. 면도 20분 간격으로 미리 삶아서 찬물에 씻었다가 쓰면 되니까 라면 끓이는 거랑 큰 차이는 없어.”
즉, 처음에 만두를 미리 넣고, 육수가 끓어오르면 면을 넣으면 된다.
그다음 차슈 올리고, 파를 잔뜩 올리면 끝이었다.
물론 조리 과정을 더 줄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이상은 무리였다. 박리다매 방식이니 짧은 시간에 많은 음식이 나가야 했으니까.
“일단 더 추워지기 전에 메뉴로 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다들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이야기 해줘.”
긴 시간을 들여 돈코츠 라멘과 돼지국밥 이야기를 한 게 그래서였다. 음식의 기본이 되는 베이스를 알아야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가령…….
“형님, 동생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강인우가 손을 번쩍 들자, 다들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뭔데?”
“요즘 유행하는 게 견과류라는데 뿌려보면 어떨까요? 고소하기도 하고 식감도 살아날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그게 말이 되냐?”
“생각만 해도 이상할 것 같은데?”
“왜요? 인터넷 보니까 잣이나 견과류 갈아서 넣은 곰탕도 있던데, 내가 뭐, 없는 거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의 센스는 가끔 엉뚱한 부분에서 초월하기는 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포인트를 많이 벗어났던 것이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 번 만들어 와봐!”
***
“흐하! 죽이는데?”
강대용은 연신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골탕면 국물을 한 번 먹다가 면을 후루룹 마시듯이 빨아들이더니, 아예 그릇을 손으로 들어버렸다.
저러다 혀 데일 텐데?
하지만 기우였다. 단숨에 절반 가까이 마셔버리더니 이내 세 젓가락 만에 면까지 흡입한 것이다.
“후아~ 속 풀린다.”
강대용은 진짜 시원하게 소리쳤다. 그러다 국물 남은 그릇을 보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밥 추가!”
강형우가 잽싸게 공깃밥 반 공기를 가져다주자, 바로 뚝딱 말아버렸다.
그 역시 순식간에 비우더니 이내 배를 두드렸다.
“끄어어억.”
아주 트림 한 번 우렁차다.
“맛이 어때요?”
“굿!”
“정말요? 뭐, 다른 거 없어도 돼요?”
“글쎄, 내 기준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데? 아쉬운 건 깍두기가 없다는 거 정도?”
그건 강형우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분식집에서 설렁탕용 깍두기를 따로 담글 수는 없는 노릇.
“그거 말고요? 고명이 모자란다든가, 씹는 게 부족하다든가…….”
“원래 설렁탕은, 잡다하게 이것저것 들어가 봐야 의미가 없어. 물론 돼지국밥과 비교하면 고기가 아쉽긴 하지만 국물만 좋으면 끝이야!”
“정말요?”
“생각해 봐. 더 넣을 수 있는 게 있나?”
사실 홍성구과 인정둥이, 그리고 금씨 남매와 이기섭, 오병헌까지 주방 식구들이 다 매달려 아이디어를 쥐어짰다.
날계란을 풀어도 봤고, 식감을 위해 버섯도 넣어봤다. 당면, 목이버섯, 오이를 비롯한 각종 야채들까지 실험했는데, 비린 맛만 강해졌던 것이다.
또, 라면의 건더기 스프도 풀어봤는데 오히려 국물 맛만 해치더라.
역시 국물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건 이대로 충분해. 밥 반 공기 해서 오천 원이면, 더 흠잡을 데가 없어.”
“그렇죠?”
“내 말이 맞다니까? 정 못 믿겠으면 내 친구들 부를까? 이건 형님들도 좋아할 맛이라고.”
강대용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충분하다 싶었다.
사실, 사골탕면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약간의 호불호가 있었다. 그래서 강형우는 유일한 40대인 강대용을 부른 것이다.
“이건 됐고. 다음 라면.”
“아! 잠시만요.”
강형우가 새우탕면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강인우가 앞을 막았다.
“왜?”
“제 신작, 견과류 곰탕면입니다. 한 번 만들어보라면서요?”
그거 그냥 해본 소린데, 진짜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저 뒤편에서 강정우가 두 팔로 엑스 자를 그리더라.
“나보고 먹어보라고?”
“당연히 아닙니다. 형님이 먹으면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리가 없잖아요.”
강인우는 그렇게 말한 뒤, 진짜 그걸 강대용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뭐?”
“제 자신작 견과류 곰탕면입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강대용은 곰탕면 그릇과 강인우, 그리고 강형우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잠시 망설이다가 한 젓가락을 먹더니 이내 한마디 하더라.
“에라이, 썅~”
그 격한 반응에 강인우가 당황해했다.
“삼촌 왜요?”
“네가 먹어봐라.”
“방금 맛봤는데… 괜찮던데요?”
강대용은 한숨을 내쉰 뒤, 강형우를 쳐다봤다. 정말 이게 맞냐는 의미였다.
강형우는 고개를 내저은 뒤, 젓가락을 들었다.
맛을 보고 금일우에게 권했고 잠시 진지(?)한 토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죠? 잣죽?”
“아니야. 기름 죽이야. 아주 냄새부터, 느끼한 게 올라오는데…….”
강대용은 욕만 안 했다 뿐이지, 욕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다.
이건 개도 안 먹을 거라나?
“아니, 삼촌. 이거 유명한 음식인데 모르세요?”
“유명하고 자시고 간에……”
“예. 잣이요. 잣하고 갈아서 국물 고소하게 만든 건데, 왜 우리 콩국수도 그렇게 먹잖아요.”
강인우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데, 아무도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결국 강형우가 중재에 나섰다.
“일단 발상이나 방식은 나쁘지 않은데, 조합이 그 조합이 아니야.”
“예?”
“너 순대국에 들깨 가루 생각했지?”
“헉!”
강인우는 움찔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제대로 포인트를 찍은 것이다.
“완전히 베이스가 달라. 사골탕면은 소사골과 돼지국밥 육수를 섞은 거라고.”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설명에 들어갔다.
곰탕에 견과류가 들어가는 집은 분명히 있었다. 기억하기로 가평에 잣이 유명해서, 그걸 응용한 잣곰탕이 있다고는 들었던 것이다.
평가가 들깻가루에 뭘 더 섞은 순댓국 맛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강인우가 그걸 본 게 틀림없었다.
문제는 각각의 성분이었다.
“맛을 보니까 잣만 넣은 게 아니네? 호두와 아몬드, 땅콩에 그리고…….”
“피스타치오요.”
“헐.”
하여간 요즘 유명하다는 종류를 다 때려 넣은 모양이었다.
“참고로 견과류도 기름이 많거든? 이게 돼지국밥 국물과 섞이면 어떻게 되겠어?”
“고소… 하지 않겠어요?”
그때 강대용이 끼어들었다.
“먹고 고소할 맛이다! 이게 느끼하고 기름지지 어떻게 고소하냐? 돼지비계하고 식용유 맛하고 구분이 안 가니?”
“아니, 아까 먹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강인우가 울상을 지었다.
결국 강형우는, 그릇을 들며 말했다.
“이건, 이렇게 만드는 게 아니야. 내가 보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