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236화 음식이 장난이야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몇 번 본다.
그렇게 맛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최근에 돌아다니면서 마셨던 국물 맛을 떠올렸다.
확실히 유명한 프랜차이즈 순댓국과 비슷한 맛이었다. 갈아서 잔뜩 뿌려진 견과류 때문에 국물이 걸쭉했고 그게 녹아서 기름이 나와서였다.
그 결과 느끼함이 많이 올라왔다.
사실 강형우는 거짓말을 했다.
사골탕면은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실제로 만들어본 건 얼마 안 됐지만, 꽤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사골탕면은 강형우가 좋아하는 두 가게의 육수를 참고로 했다.
서면에 ‘언양 꼬리곰탕’이라는 30년 넘은 집이 있었다. 메인은 소 사골을 우려서 만든 곰탕, 설렁탕이었다.
덕천에 ‘덕천고가’라는 20년 된 식당이 있었다. 메인은 돼지 사골로 우려낸 진땡이라는 돼지국밥이었다.
황당하게도 두 가게는 같은 특징이 있었는데, 바로 갓 나온 뚝배기에 날계란을 풀어서 먹는 거였다.
그럼에도 전혀 비리지 않았고, 오히려 고소하고 든든했다.
더 놀라운 건, 국물이었다.
한쪽은 소, 한쪽은 돼지로 육수를 냈는데, 느낌이 거의 비슷했다. 육수의 향이나 점도에서 차이는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거의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소 사골과 돼지육수를 섞어서 흡사한 맛을 만들었다.
여기에 홍합 육수로 감칠맛을 더했고, 미리 소금 간을 했다.
그 염도는 돈코츠 라멘과 돼지국밥의 중간 정도였다. 약간 짭쪼롬했고, 그래서 밥 말아 먹기가 정말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인우가 뿌린 견과류는 그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원래 일부 견과류는 과한 열을 가하면 안 된다. 가지고 있던 기름이 나와서 맛이 변하기에, 마지막에 토핑 수준으로만 뿌리는 것이다.
차라리 강인우가 인터넷으로 본 것처럼 잣만 갈아서 넣었다면 또 모른다. 생각한 대로 고소한 잣콩국수 맛이 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뒤죽박죽으로 하는 바람에 더욱 이상해진 거다.
“어차피 순수한 버전으로는 안 되겠네.”
사골탕면 식으로 만들기에는 견과류가 너무 강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오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강형우는 일단 끓는 물에 면부터 넣었다.
그다음 육수를 올리고 냉동만두를 넣었다. 그게 끓는 사이 살짝 풀어진 면을 건져서 찬물에 씻고 채반에 올렸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인우야, 이쪽으로 와 봐.”
“예, 형님.”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가오자 일부러 숟가락으로 육수 냄비를 두드렸다.
“자, 여기까지는 같지?”
“예.”
강인우는 육수가 좀 많다 싶었지만 면이 세 개나 들어가니 그런가 했다.
“여기서 견과류가 얼마나 들어가?”
“거의 두 큰술요.”
강형우는 숟가락으로 견과류 가루를 두 번 크게 넣었다. 그런 뒤 파를 잔뜩 넣고 마무리 지었다.
“제 거랑 차이가 없는데요?”
강인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대단한 거라도 보여주는가 했더니,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여기서부터 마법.”
바로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쌈장을 만들었다. 여기에 바로 빻은 마늘 한 숟가락을 넣고, 옆의 접시에 매운 고추를 다져서 올렸다.
“자, 가져가자.”
강인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냄비를 들었다.
그 뒤로 강형우가 쌈장과 다진 고추 그릇을 들고 강대용한테 갔다.
“자! 대용 삼촌, 국물 맛 한 번 보세요.”
“어? 그게…….”
아까의 기름 맛 충격 때문인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강형우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믿는다는 표정으로 한 숟가락을 떴다.
강대용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어때요?”
“그게… 같은데?”
“역시 그렇죠?”
강형우는 예상했다는 듯 직원들에게 맛보라고 했다.
홍성구와 인정둥이가 제일 먼저였고, 금일우와 설비가 뒤를 이었다.
이기섭과 오병헌도 긴장하면서 맛을 봤다.
역시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미묘하네요. 이도 저도 아닌 느낌?”
“느끼… 합니다.”
“에이씨, 난 못 먹어.”
강대용이 숟가락을 놓자 그제야 강형우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인우가 들깨가루 대신 견과류를 뿌린 건 나쁘지 않은 발상이거든요. 하지만 간을 망쳐놔서 기름 맛이 더 강해진 거죠.”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가져온 쌈장과 다진 마늘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살살 휘젓자 뽀얀 국물이 걸쭉한 된장국 비슷하게 바뀌었다.
“이제 드셔보세요.”
먼저 맛을 본 강대용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맛있는데?”
“정말요?”
“어, 진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숟가락이 달려들었다.
다들 맛을 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의 그 국물이 맞느냐는 그런 의미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원래 국밥 같은 음식은 밸런스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사실 간만 잘 맞아도 맛있어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런 거예요. 무턱대고 아이디어 하나 있다고 뚝딱 추가한다고 무조건 맛이 좋아지진 않거든요. 그건… 그냥 실험일 뿐이죠.”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다들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강정우가, 강인우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만 좀 먹어.”
“야씨~ 맛있는데, 어떻게 해?”
짐작대로 제일 많이 먹은 건, 강인우였다. 직접 만들어봤기에 누구보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확인했던 것이다.
다행히 넉넉하게 만들었기에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원래 음식에 하나가 더해진다고 해도, 다른 재료들로 균형을 맞춰야 해요.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 간을 확인해야 하죠.”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다진 고추를 넣었다. 그리고 후추를 톡톡 넣은 다음 가볍게 섞었다.
또 한 번 마법이 펼쳐졌다.
맛을 본 이들의 표정이 확 달라진 것이다.
“어? 어라?”
“이…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허허, 신기하네. 그런데… 이게 딱 내 취향인데?”
강대용은 그러면서 공깃밥 좀 가져달라고 했다.
방금 사골탕면에 밥까지 말아 먹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닌데?
“음식이란 게 그래요. 겉으로 보기에는 뚝딱 만들어서 나오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계산해야 하거든요. 단맛과 짠맛, 신맛, 매운맛, 그리고 감칠맛까지… 진짜 손님들한테 내어가는 음식은 절대 가볍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강정우는, 강인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좀 들으라고!”
“아 씨,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개도 못 먹는 음식 만든 주제에, 제일 많이 먹으니까 하는 소리다.”
둘이 툭탁거리는데, 강대용이 나섰다.
“이것들이 밥상머리 예절을 어디다 팔아먹었어? 형우야, 삼촌이 얘들 교육 좀 시켜도 되겠냐? 아주 그냥 눈물 콧물 다 빼게 만들어줄 수 있는데.”
“저야 좋죠. 안 그래도 요즘 너무 기어올라서 골치 아팠는데…….”
용돈 가불이 습관이 됐다. 어머니를 통한 묘한 압력 행사도 잦아, 요즘 유행한다는 무슨 단풍나라 구스인가 뭔가도 사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이 따뜻한 부산에서 한 벌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파카를 입고 싶단다.
내가 무슨 갑부인 줄 아나?
물론 자기가 벌어서 사 입는 건 뭐라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도 능력이고, 대한민국은 그런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강대용이 엉뚱한 걸 물었다.
“얘들 쉬는 날 언제냐?”
“왜요?”
“내 후배가 지하철 근처에서 복싱 체육관을 하거든.”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딱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인정둥이가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입에 지퍼를 채운 듯 꽉 다물었던 것이다.
잠시, 시식 타임이 이어졌다.
세 개나 넣은 면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닥에 국물이 깔리기도 전에 공깃밥 두 개가 들어갔다.
그걸 슥삭슥삭 비비자 또 다시 숟가락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 이것도 진짜 맛있네. 거, 뭐냐. 잘하는 순댓국 집 맛이다.”
“그러게요. 전 사골탕면보다 이게 더 좋은데요?”
다들 좋다고 하는데, 금설비가 불쑥 물었다.
“그럼 이것도 팔 거예요?”
“아니. 못 팔아.”
“예? 안 파는 게 아니라 못 팔아요?”
몇몇이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데, 강형우는 단호했다.
“일단 가게에서 팔기에는 손이 많이 가. 양념장도 미리 만들어서 숙성시켜야 하고, 정석대로 깻잎도 다져서 넣어야 하고…….”
손님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내어가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견과류 아이디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걸 보충하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성분식은 국밥 전문점이 아니었다.
“들어보니 그러네. 근데 좀 아쉽기는 하다.”
강대용이 숟가락을 빨면서 말하자, 동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인우가 불쑥 물었다.
“그럼 형은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걸 다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내가 그래서 해보라고 한 거야. 몇 번 맛보면 바로 포기할 거라 생각했거든? 아니면 나처럼 만들어서 나올 줄 알았지.”
“아니… 사람이 맛도 안 보고 어떻게 그걸 알아요?”
진짜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는데,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강형우는 손으로 메뉴판을 들었다.
“이놈들아! 우리 가게 메뉴 중에 내가 안 만든 게 어디 있냐? 그리고 그만큼 요리하고 만들어봤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야지.”
강정우가 바로 고개를 숙이자, 강인우도 눈치껏 어깨를 움츠렸다.
“솔직히 시도는 좋았어. 하지만 음식 만드는 게 장난이냐? 평가는 본인이 하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하는 거야. 그만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예. 형님.”
강형우는 작정한 듯 말했다.
“안 되겠다. 요즘 이모들 식당 안 가니까 시간 많이 남지? 이참에 요리 학원 새벽반 끊자.”
“예?”
“너희들은 기초가 부족해. 음식도 만드는 것만 할 줄 알지 다양한 경험이 없다고.”
“그건… 형도…….”
확실히 인정둥이는 모를 만했다. 그냥 내 밥상이란 식품회사를 다닌 걸로만 알고 있을 터.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성분식 차리기 전에, 제육덮밥만 십만 그릇 만든 사람이다.”
***
“아주 그냥, 손님들이 폭발하는구나!”
강대용은 어이가 없었다.
본인 몸으로, 혀로 느낀 것이니 사골탕면이 맛있기는 정말 맛있었다. 그 절묘한 짭짤함이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건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성분식에서 처음 사골탕면과 새우탕면을 내놨을 때, 신메뉴 할인을 했다.
가격은 한 달만 4,000원이었다.
덕분에 손님들은 호기심에 너도나도 시켜봤다.
라면이 3,500원 하니 한 번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맛집으로 소문난 지성분식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제 11월도 막바지에 이른 상황.
할인이 끝났는데도, 손님들은 사골탕면과 새우탕면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거의 여름철 냉라면의 인기 못지않게 히트 메뉴로 등극한 것이다.
물론 손님 층이 갈리기는 했다.
주로 어르신들이 사골탕면을 많이 찾았고, 새우탕면은 젊은 층에 인기였다.
중년층은 좀 애매했다.
전날 과음했을 때는 새우탕면으로 속풀이를 했고, 저녁에 술자리가 있을 때는 속을 든든하게 채우겠다고 사골탕면을 시켰으니까.
물론 그 반대인 사람들도 상당했다.
“후아~ 진짜, 장사는 타고났네, 타고났어.”
강대용은 몇 번이나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중간중간 여러 번 회의도 했다.
강형우는 직원들 의견을 경청했고, 사골탕면과 새우탕면을 보강했다. 물론 강인우가 호되게 당해서 헛짓거리하는 일은 없었지만, 의견 몇 개는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사골탕면에 고기를 늘렸다.
할인 끝나고 가격을 올리면서 삼겹살을 다섯 조각으로 늘린 거다.
새우탕면에 들어가는 칵테일 새우도 여섯 개나 됐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