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222화 가불 좀 해주세요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너 어떻게 할 거냐? 딱 봐도 그냥 물러갈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글쎄? 좀 생각해 봐야겠는걸.”
솔직히 강형우도 짜증이 나긴 했다.
썩은 계란은 아직 범인도 못 잡고 있었다.
중간에 박 경위한테 연락이 왔는데, 용의자가 정학 중인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문제는 가출 중이라서 소재 파악이 되질 않고 있단다.
여기에 맞은 가게들의 가격 할인 문제가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한 피해는 거의 복구되고 있었다. 손님들이 싸다고 갔다가 혓바닥만 싸구려가 됐다나?
하지만 몇몇 가게가 더 동참을 하자 손님들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특히 김밥집이 문제였다.
하나 팔아봐야 오백 원 정도 남는데, 아예 마진 없이 판매하고 있었다. 김밥 한 줄 천이백 원인데, 라면 시키면 천 원에 해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스트레스받을 만했다.
거기에 흥신소까지 동원해서 사람을 괴롭히려 하다니.
물론 이런 우연이 아니었어도, 그 일은 실패할 게 분명했다.
요즘은 옛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곳곳에 CCTV가 있었고 특이한 진상 손님의 경우, 다른 손님들이 호기심에 폰으로 동영상을 찍는다.
물론 당사자 동의 없는 녹음이나 촬영은 불법이다.
하지만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 인생 하나 종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모 프랜차이즈 대표의 갑질 동영상이 뜨자마자 주가 수십억이 단숨에 증발되는 시대였으니까.
문제는 저기 상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거다.
지성분식 3호점이 한 달에 벌어봐야 얼마나 가져간다고 그러는지.
현재 월 매출이 평균 일억 오천이었다.
그만큼을 맞은편 가게 여섯 군데에서 뺏어왔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저쪽 식당들은 애초에 장사가 잘되는 곳들이 아니었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이랬다.
사장이 혼자 장사하는 경우 평균 매출 천만 원 이하에 월 백에서 이백 정도를 벌어간다.
둘이서 장사하는 경우 매출 이천 잡으면 수익은 삼사백 수준.
네 사람 이상이 풀타임으로 일하는 가게의 경우 월 매출 삼사천 수준이었다. 이것저것 다 떼면 사장이 오백 정도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건 대략적인 평균이었다.
물론 서울과 지방의 기준도 다르고 잘되는 집과 안 되는 집도 달랐다.
그렇게 봤을 때, 저 가게들이 벌어가는 건 한 달에 사오백 정도.
지성분식이 생겨서 매출에 영향을 받는 건 맞지만 그래 봐야 10~15%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손해라면 손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요금까지 내려가면서 출혈 경쟁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니까.
그때 최성만이 말했다.
“내가 이쪽 일하면서 사람 많이 만나봤는데, 그 양반 보통 쫌생이가 아닌 것 같더라.”
“뭐?”
“원래 우리 쪽은 선불이 70%야. 이 바닥 상식이지.”
일이 잘못(?)되면 나머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했다. 경비가 절반 가까이 들어가니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절반만 주겠대. 나머지는 되는 거 봐서 준다고 하는데… 소개시켜 준 사람 아니었으면 바로 거절이거든.”
최성만은 심호흡을 한 뒤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이 바닥 일하면서 명심하는 게 있다. 별의별 놈을 다 봤는데…….”
나 그런 사람 아니다, 라고 말하면 그런 사람이 맞단다.
내가 사기 칠 사람으로 보이냐? 하면, 사기꾼이 맞다.
나 못 믿냐? 하면, 진짜 못 믿을 새끼란다.
중요한 건 저걸 자기 입으로 당당하게 말한다는 거다.
해서 그런 사람은 무조건 기피하란다. 의외로 정상적인 사람들은 절대 저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복합적인데, 자기 절대 돈 떼먹을 사람 아니래. 믿어도 된다는 거야.”
“그럼 돈 떼먹을 놈이고, 못 믿을 놈이라는 거네.”
“그렇지. 그리고 너한테 그랬다면서? 서로 상부상조하자고?”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최성만의 말대로라면 절대 서로 도울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다른 가게들이 할인에 동참하는 이유는 뭘까?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복잡해졌다.
최성만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줄 이야기는 다 해준 것 같고, 밥 잘 먹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전화 한 번 해라. 잘 나가는 사장 만큼은 못 벌지만 소주 한잔은 살 수 있으니까.”
씨익 웃으면서 말해주는데, 진심 같았다. 하긴, 학생 때도 거짓말 못하는 성격이었으니 당연하겠지.
강형우도 손을 들었다.
“그래. 시간 나면 꼭 연락하마.”
***
“우리 집안의 대들보이신 형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말이 긴 거 보니 수상쩍었다.
하지만 강정우는 의외로 진지해 보였다.
“뭔데?”
“저희는 그동안 진심으로 충성을 다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사 개월 동안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했고, 지성분식이 자리를 잡는 데 미력하나마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고? 왜 컴퓨터 뻗었냐? 수리비 필요해?”
“저희가 고작 그런 걸로 이렇게 간곡히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강정우의 말투가 평소와 달랐고, 놀랍게도 강인우도 깝쭉거리지 않았다.
“좋아. 용건만 간단히.”
“예. 용돈 가불 좀 해주십시오.”
“엉?”
그때 강인우가 울상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형님, 저희 넉 달 동안 월급 한 푼도 못 받았잖아요. 완전 거지라고요.”
“아니, 그게…….”
누군가 잘못 들으면 동생 착취하는 형이라고 욕할 가능성이 컸다.
실상은 이러했다.
일단 월세도 안 들고 식비도 안 든다. 폰 요금도, 인터넷 요금도 내가 내주고 있어서 돈 나갈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옷이라든가 기타 필요한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직접 고르게 하고 결제만 해줬다. 진짜 아니다 싶은 걸 제외하면 어지간한 건 다 갖출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건 어머니 박혜숙의 압력(?)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20만 원씩을 줬다.
한 달로 치면 무려 80만 원.
그 정도면 둘이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싶었는데, 용돈 가불이라니.
“사실을 이실직고하렸다!”
“저, 그게……”
강인우의 입을 막고 강정우가 나섰다.
“친구 휴가 나옵니다. 저희가 술 한잔 사기로 했습니다만, 둘이 합쳐서 통장 잔고가 5만 원이 안 됩니다.”
“뭐? 왜 그거밖에 안 돼?”
“얼마 전 자잘한 사고가 있어서, 컴퓨터 메모리를 늘리고 그래픽 카드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인터넷이 원인인지, 게임 최적화가 문제인지는 모르나 렉 걸려서 수십만 원 짜리 아이템 하나가 날아갔단다.
결국 인정둥이는 통장을 탈탈 털어버렸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친구 녀석이 휴가를 나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돈 가불?”
“옙. 더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딱 한 주만 땅겨주십시오.”
이 정도면 충분히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해주면 안 된다. 한 주가 두 주가 되고, 인정둥이들은 이걸 한 달로 만들고도 남을 놈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막 뭐라 하려는데, 강정우 이놈이 많이 컸다.
먼저 딜을 건 것이다.
“사실 이건 업무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앵?”
“최근 일이 좀 있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정보를 필요성을 명확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전 조사에 해당하는 일이란 말이죠.”
이번에 휴가 나온다는 친구 놈이, 놀랍게도 이 맞은 편에서 알바한 경력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동네 토박이이기도 하단다.
“정확히 무슨 사이냐?”
“한때 부길마였습니다. 그 자리를 저에게 양보하고 입대를 했죠.”
대체 그 관계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강정우의 눈빛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강형우는 기분이다 싶어 30만 원을 꺼냈다.
“십만 원은 군자금이다. 보태 쓰도록.”
“흐어어어, 누나아아~~”
거의 다 죽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희 왔습니다. 형수니이임.”
인정둥이의 발음 상태만으로도 어제 마신 알코올 수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팅.
문이 열리고, 인정둥이가 흐느적대며 좀비처럼 신혼집을 습격했다.
“누님 마마. 해장을, 해장을 해주시옵서소.”
강인우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엎어지듯이 쓰러졌다. 강정우도 바로 드러눕더니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니들, 뭐 하는 거냐?”
“음식물 보급이 필요합니다. 오장육부의 희생이 너무 컸어요.”
“에휴~ 그럼 그렇지.”
다행히 이럴 상황을 예상해 준비를 해놓기는 했다. 요즘 공지혜가 집에서 저녁을 하고 있어서 반찬거리도 부족하지 않았고.
“뭐 먹을래? 라면? 아니면 개발 중인 걸로 해줘?”
순간 인정둥이 눈빛이 달라졌다.
“전에 그… 랍스타요?”
“어? 어, 그거.”
강형우가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인정둥이가 동시에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형님.”
“됐으니까 서재 들어가서 쉬고 있어. 니들 형수, 피곤해서 지금 잔다.”
“오옷, 최신형. 최신형 PC를 쓰는구나.”
“아싸! 신난다.”
인정둥이가 잽싸게 사라지자마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곧, 음식 조리에 들어갔다.
사실 오래전부터 고민을 했던 게 있었다. 영재 분식의 일을 겪고 나서, 시그니처 메뉴가 필요하다 싶었던 것이다.
지성분식의 김밥류는 종류는 흔한 편이었다.
맛을 끌어올린 건 맞지만, 다른 가게들도 비슷하게 만드는 게 가능했으니까.
가장 잘나간다는 돈가스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먹어보고 연구하면, 어느 정도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외 덮밥이나 볶음밥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덮밥은 좋고 신선한 고기로 만들기는 한다. 인성식품에서 불맛에 숯 향까지 입혀서 가져오지만, 큰 틀을 넘어서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건 볶음밥도 비슷했다.
분식집마다 있는 흔하디흔한 메뉴의 하나라고나 할까?
게다가 음식 좀 한다는 중국집의 맛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강형우는 라면을 떠올렸다.
지성분식의 라면은, 그 자체가 특별했다.
때문에 종류는 따로 없었고, 원하는 토핑을 추가해서 끓여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냉라면은 달랐다.
지성분식만의 대체 불가 라면이었다. 고급 일본식 라멘과 일부 겹치는 포지션이 있었지만, 누구도 5,000원이라는 가격을 따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그걸 기준으로 잡고 틈틈이 조사를 했다.
마트에서 파는 봉지라면, 컵라면 중에서 인기는 있지만 분식집에서는 결코 팔지 않는 것!
고급스러워야 하지만 재료수급도 쉬워야 했고, 중요한 건 5,000원이라는 단가도 맞출 수 있어야 했다.
해서 고민 끝에 서너 가지를 추려냈다.
그 중 하나가 저번에 테스트 삼아 끓여준 해물… 아니, 새우탕면이었다.
평가는 실로 대박이었다.
해장에 직빵이란다.
해서 강형우는 뚝딱뚝딱 조리에 들어갔다.
잠시 후.
“인정둥이 나와라. 면 퍼진다.”
말 끝나기 무섭게 알코올에 찌든 좀비 두 마리가 거실로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강형우는 무려 라면 다섯 개를 끓였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 반주를 하기 위해 소주 한 병까지 꺼내놓았다.
“먹자!”
“감사합니다. 형님.”
인정둥이들이 조폭처럼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자칫하다가 상에 대가리를 박을 뻔했다.
강형우는 한 소리 하려다가 참았다.
아직 어제의 성과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탱글탱글한 칵테일 새우들이 잔뜩 보였다. 게다가 해물탕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향이 한 번에 후욱 하고 올라왔다.
“크흐, 좋다.”
인정둥이가 정신없이 면과 국물을 흡입하는 사이, 강형우는 소주를 따랐다.
“해장술이다. 원래는 안 되지만, 오늘 쉬는 날이기도 하니까.”
“에이, 형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 다 아는데.”
강인우가 정곡을 찌르자, 강정우가 그놈의 옆구리를 푹 찍었다.
“형수 다 듣는다. 눈치도 없어?”
두 녀석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새우탕면을 순식간에 거덜내 버렸다.
강형우는 소주잔을 비우고 자신의 그릇에 남은 국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뒤, 눈을 반짝였다.
“자. 이제 이야기해야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전에 담배 타임 어때요?”
순간 강형우는 밥상을 엎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