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221화 사장이 누구냐
“형님, 오셨습니까?”
이방철이 묻는데 마침 음식이 나왔다. 금일우가 하와이안 돈가스와 라면 두 개를 들고 그 앞에 섰던 것이다.
“주문하신 거 맞으시죠?”
“어. 라면 하나는 이쪽에 놓고, 나머지는 여기.”
금일우가 음식을 놓는데, 마지막에 들어온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새끼들, 그거 먹고 되냐?”
“아! 여기 주문하면 겁나 오래 걸립니다. 그냥 후딱 먹고 일어나겠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내오라면 내오는 거지.”
사내는 피식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다가, 순간 움찔했다.
지금 시간 11시 38분.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이 손님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혼밥하는 자리까지 빈 곳이 없어서 이방철의 말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에이, 씨~ 시간 잘못 잡았네. 빨리 먹고 나가자.”
결국 사내는 막내 앞에 앉았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고 후루룹 소리가 울렸다.
딱 한 젓가락을 먹은 막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번에는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확인했다.
“와! 형님. 라면 겁나 맛있습니다.”
“분식집 라면이 뭐, 거기서 거기지.”
“아닙니다. 형님이 해준 라면만큼 진짜 맛있습니다.”
막내의 말에 사내는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먹던 이방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맛있네요. 이건 인정할 만합니다.”
“정말? 나도 한 젓가락만.”
돈가스 썰던 박종길이 호기심에 젓가락을 들다가 이방철의 눈치를 받았다.
“새끼, 형님도 계신데. 후딱 먹고 나가자니까.”
“아! 쏘리.”
결국 박종길은 눈치를 보며 돈가스만 입에 넣었다.
“와, 달다. 그런데 돈가스도 맛있네?”
“진짜?”
두 녀석이 티격태격하는데,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막내가 눈치도 보지 않고 라면을 한 그릇을 순식간에 흡입해 버린 것이다.
후루룹, 후루루루룹.
“후아하, 속 풀린다.”
후룹. 후루루룹.
“허어, 좋네.”
그러더니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게 아닌가?
“와. 형님! 죽입니다.”
“새끼, 눈치도 없이 더럽게 처먹네.”
사내는 그렇게 내뱉고 일부러 시선을 돌렸다. 코를 간지럽히는 라면의 냄새, 거기에 막내가 정신없이 먹는 모습을 보니 군침이 마구 돌았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방철에게 물었다.
“야. 정말 맛있냐? 내가 끓여준 것보다 더?”
“형님이 해주신 쌈장라면도 기가 막히는데, 이거 진짜 해장에 직빵인데요?”
“그래? 가져와 봐.”
“예?”
“맛만 보자고.”
사내가 체통도 없이 입맛을 다시자 결국 이방철은 반도 안 남은 라면 그릇을 옆으로 넘겼다. 그러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강형우와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어유, 죄송합니다.”
“아니요. 됐습…….”
강형우와 사내는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너, 성만이?”
“형우, 맞냐?”
사내는 그렇게 물은 뒤, 피식 웃었다.
“야! 새끼야. 이게 얼마 만이냐?”
“그러게. 근데…….”
강형우는 바로 상황을 확인했다.
덩치 넷이서 돈가스 하나에 라면 두 개였다. 옆으로 옮겨간 게 반도 안 남았으니 나눠 먹는 거라 보기 충분했던 것이다.
“너, 아직 식사 전이냐?”
“어. 그, 그런데…….”
“일단 내가 바쁘니까, 잠시만 기다려라.”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손짓을 몇 번 하자 인정둥이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음식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와이안 돈가스 하나와 라면 두 개, 김밥 네 줄이 추가된 거다.
“일단 이거 먹고 있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지금이 제일 바쁠 시간이거든.”
“언제 시간 나는데?”
“점심 넘어야 돼.”
최성만이 가게를 둘러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봐도, 사람 숫자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직원들 모두 바쁘게 다니고 있었고 주방도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먹고 있어.”
강형우가 자리를 떠나자, 최성만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이방철이 물었다.
“형님, 아시는 분입니까?”
“내 고딩 동창. 그리고 나한테 라면 가르쳐 준 놈이 저놈이다.”
“오, 그래요?”
“일단 먹자.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최성만은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테이블의 음식들이 전부 파탄 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과식을 해버린 것이다.
그건 옆 테이블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라면 국물까지 말끔하게 마신 터라 정말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최성만은 가게를 둘러봤다.
강형우가 주방 안쪽까지 들어가 있어서 부르기가 참 애매하다 싶었다.
결국 최성만은 동생들을 데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
“와!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강형우가 피식 웃는다.
최성만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일부러 브레이크 타임까지 기다린 게 아깝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근데, 담배 하냐?”
“어. 가끔.”
안 그래도 공지혜가 임신한 이후 금연 중이었다. 진짜 답답할 때 말고는 거의 피우질 않아, 보름 전에 산 담배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거절하기가 애매해서 담배를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 불을 붙이고 곧, 짙은 연기를 내뱉었다.
“얼마 만이냐?”
“그게, 한 십 년 됐지?”
그 대답에 강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사이가 어색해졌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연락이 뜸해졌던 것이다.
아마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버지 장례식 때일 거다.
그 직후 도망치듯 군대를 가버렸으니까.
이후 강형우는 공장 생활을 전전하다가 내 밥상에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살았냐?”
“뭐, 그냥저냥 살았지.”
지난 4년간의 일을 어찌 한두 마디로 표현하겠는가?
그건 최성만도 마찬가지인 듯 별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점심 잘 먹었다. 네가 계산했다면서?”
“간만에 친구 보는데 밥값 받으면 안 되지.”
강형우가 씨익 웃는데, 최성만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너… 의외다?”
“뭐가?”
“인상이 많이 바뀌었네. 옛날하고 다르게, 분위기도 좀… 뭐랄까?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홍태구가 3호점 사진을 찍으면서 그러더라.
처음 지성분식 사진 찍을 때보다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때는 얼굴에 찌든 흔적이 보였는데, 지금은 신수가 훤해졌다고 할 정도로 빛이 난다고 했던 것이다.
게다가 손님들 보면서 하도 웃다 보니 눈가에 웃는 주름까지 생겼단다.
그때 최성만이 뜬금없이 말했다.
“그런데, 너. 회사 취직했다고 하지 않았냐?”
“어? 어, 그랬지.”
“근데 왜 서빙하고 있어?”
“엉?”
강형우가 잠시 당황하는데, 최성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끼, 이런 데서 알바 해봐야 얼마 못 벌 텐데. 생각 있으면 우리 회사 와라. 너 같은 인재면 내가 바로 부장으로 올려줄 테니까.”
그러면서 명함을 하나 꺼내주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흥 서비스. 부장 최성만.
-각종 민원 해결해 드립니다.
왕따, 학교 폭력 문제 전문!
“뭐냐?”
“그냥, 민생 사업이야. 크게 힘쓰거나 하는 일은 없고,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서 생기는 일이다.”
최성만이 말하는데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일명 삼촌 패키지라고, 왕따당하는 학생의 삼촌으로 등장해서 일진들을 교육시키는 게 주 업무란다. 다시는 우리 애 건들지 말라고 타이르고 온다는 것이다.
“그냥 적당히 말만 해주고 서로 평화롭게 살자는 거지. 우린 폭력 별로 안 좋아하거든.”
“난 잘 모르겠고, 좋은 일이냐?”
“야! 나름 보람찬 일이다. 학생들도 좋고, 부모도 좋고, 나도 좋으면 됐지. 일이 졸라게 많다는 게 짜증 나지만… 어째 이놈의 나라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어요.”
강형우는 그 말에 담긴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성기가 왕따를 당할 때, 모두가 방관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최성만은 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부라 수업 시간이 많지 않았었다.
결국 강형우가 사고를 당할 때 돕지 못했고, 그게 미안했는지 뻔질나게 병문안을 와주면서 친해졌다. 게다가 아버지 장례식 때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랬던 녀석이,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그런 내심을 읽었던 것일까?
“별수 있나? 운동하던 놈이 어깨 작살났으니,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역시 이 녀석도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최성만은 답답한지 담배를 한 대 더 빼물었다.
“근데, 너네 사장 어떻냐?”
“엉?”
“그러니까, 저 분식집 사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아니, 그게… 난데?”
“왁! 씨발 뜨뜨뜨……”
라이터도 놀랐는지 불이 확 치솟았다. 담배만 붙인 게 아니라 앞 머리카락도 살짝 태워 버렸던 것이다.
최성만은 잽싸게 머리카락을 털더니 떨어진 담배를 주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형우야. 저 분식집 사장이 너라고?”
“어.”
“저 크고, 손님 더럽게 많고, 장사 잘되는 가게가?”
“어. 내가 차린 거야.”
최성만은 확인하려는 듯 다급히 물었다.
“야. 내가 너네 사정 다 아는데… 뭐, 동업이나 그런 거냐? 대출 끼고 그런 거 없어? 진짜 벌어서 네 돈으로 차린 거냐고?”
“동업은 다신 안 하고! 대출도 다 갚았지.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
대답하는데, 왠지 뿌듯했다.
지성분식은 온전히 강형우 만의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 직후 최성만이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감히 씨부랄 것들이…….”
“근데 왜?”
“아니 그게… 에이, 씨~”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 최성만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다 피우고 나서 꽁초까지 쓰레기통에 버린 뒤에야 본론이 나왔다.
“확인차 나온 건데… 일이 참 웃기네.”
“확인?”
“그게… 우리도 아무 일이나 받는 건 아니거든. 기왕이면 억울한 사람 돕자는 쪽이라서 말이야.”
간단히 말하면 이거였다.
사정상 의뢰인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단다. 그게 소문나면 사무실 문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누가 이백만 원을 준다면서, 지성분식 들어가서 분위기 좀 잡아달라고 했다. 그냥 식사시간 전후로 수시로 들려서 사장 불편하게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 그런데 그쪽에서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어차피 식사도 할 겸 식구들 데려가서 밥이나 먹으라는 거야.”
거기까지만 들어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아침의 실랑이 때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게다가 세 사람이 굳이 두 테이블 나눠 앉겠다고 했고, 주문도 나중에 한다고 했었다.
한마디로 영업 방해, 혹은 신경 건드리기였다.
평범한 음식점 사장이라면 덩치 네 명이 인상 쓰고 앉아만 있어도 스트레스 받을 게 분명했으니까.
“일단 일 받은 건 아닌데, 그쪽에서 너무 절박하게 이야기하더라고. 상가 상인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데, 새로 기어 들어온… 아차! 쏘리. 어쨌든 너네 가게가 너무 마음대로 한다고 하더라고.”
“마음대로는 무슨. 정당하게 장사하는 건데.”
“그래. 그런 거 같더라. 손님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야.”
어쨌든 사무실로 찾아와서 불평불만을 한 시간이나 늘어놓았단다. 특히 늦은 저녁, 학생들 손님을 싹 쓸어가서 여러 식당들이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이야기 들어보니, 네가 천하의 개썅놈이라더라고. 어른들한테도 바락바락 대든다고.”
최성만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데, 강형우도 기가 막혔다. 그래서 그때의 일을 먼저 이야기했다.
뜬금없이 찾아와서 일찍 마치라고 했다고, 안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고 갔다고.
“하! 양아치 새끼들. 아주 별짓을 다 하네.”
최성만은 잠시 담배갑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한참을 고민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