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220화 장사 힘들 텐데
“그러니까, 영업을 저녁 8시까지만 해라?”
강형우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그래야 같이 먹고살 거 아닌가? 이거 나 혼자 좋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렇습니까?”
강형우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장님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무슨 해괴한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니까, 점심 장사하고 초저녁만 해도 충분히 벌어먹고 살 것 같은데 말이야. 아주 손님이 끊기질 않더라고.”
“그래. 그렇게 벌면 야간 장사는 좀 쉬어도 안 되느냐는 말이지.”
“굳이 밤 10시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때는 돈 안 되는 애들밖에 없잖아.”
“맞아요.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좋잖아요.”
이 사람들이 단체로 농약이라도 먹고 왔나 싶었다.
요즘은 먹어도 사람이 안 죽게 나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뇌만 녹은 모양이었다.
그때 떡볶이집 사장이 다시금 말했다.
“자네는 좀 일찍 들어가서 편하게 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야간 장사해서 입에 풀칠 좀 하고.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지.”
아마 올해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미친 개소리였다. 정말 이걸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던 것이다.
“이봐요, 사장님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뭐가?”
“아니, 제가 왜 장사를 일찍 마쳐야 하냐고요?”
최대한 화를 참으면서 말했지만, 이 사람들은 눈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자네가 장사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그게 왜 그렇게 됩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지! 자네가 김밥 파는 만큼 저 김밥집 사장님 수익이 주는 거고, 돈가스 파니까, 옆에 경양식집 사장님도 장사가 안 되는 거잖아.”
“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지만 떡볶이집 사장은 말을 끝내지 않았다.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벌어가는 게 뻔하잖아. 그런데 젊은 사람이 말이야. 혼자 다 해먹으려고 하고, 그러면 안 돼. 못 쓰지.”
강형우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사장님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농담이라니. 장난하나?”
표정을 보니 다들 진심이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자신들의 생각대로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그게 왜 하필 내 앞에 있냐고!
“아니, 멀쩡히 장사 잘하고 있는 가게에 와서 그게 말이 됩니까? 사장님들이 뭔데 일찍 마치라 마라 하는 겁니까?”
“서로 돕고 살자는 거잖아.”
“이게 뭐가 서로 돕는 겁니까?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행패 부리는 거지.”
짜증이 나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떡볶이집 사장은 웃었다.
“허허, 참 젊은 사장이 잘 모르네. 요즘 장사 잘 안 되지 않나?”
“예?”
“손님 많이 빠지는 거 봤거든. 이전에는 줄도 있던데 요즘은 안 보이더라고.”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했다.
맞은편 상가들이 일제히 가격 할인에 나섰다.
적게는 500원부터, 많게는 2,000원까지.
특히 2인 이상 세트 메뉴를 할인 많이 하더라.
그 덕에 직장인 손님 상당수가 그쪽으로 빠지기는 했다.
하루 500만 원은 가뿐히 찍던 매출이 줄어들더니, 거의 그 정도 선에서 안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대충 10% 전후로 빠진 셈이었다.
이걸 심각하게 보면 심각한 거였다. 저 10%란 금액은 온전히 강형우의 수익에서 빠지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익이 줄었지만, 장사는 잘되고 있었다. 직원들이 여유가 생기면서 더욱 안정적으로 일하게 됐던 것이다.
또, 그만큼 손님들에게 신경 쓸 수 있어 더 좋았다.
한마디로 버는 게 줄어들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성분식의 수명이 훨씬 늘어난 거였다.
“생각해 보게. 이 정도 크기에… 직원도 거의 열 명이나 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유지하려면 힘들지 않겠느냐는 거지.”
“그래서요?”
“허허, 내가 이래 봬도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장사한 사람이야. 여기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고.”
강형우는 팔짱을 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싶어서 들어나 보자는 거였다.
“한탕 하고 권리금 받고 팔려는 거면 모르겠는데, 이 정도 크기면 매출이 조금만 줄어도 유지하기 힘들어. 만약 우리가 계속 행사 이어서 하면… 누가 손해일까?”
“제가 손해란 겁니까?”
“당연하지. 듣기로 자네는 한두 명 빼고 전부 직원이라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렇게 장사하면 안 돼. 우리처럼 직원은 한 명만 두고 계속 알바 돌려야 남는다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쯔, 젊은 사람이 잘 모르는군. 돈 제일 많이 나가는 게 인건비야. 알바만 돌려도 절반이 남아.”
“대신 음식 맛이 없어지겠죠.”
강형우가 노려보듯이 쳐다보자 떡볶이집 사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허허, 요즘 누가 맛으로 먹나? 어차피 공장에서 떼 오는 거 파는 건데. 양념도 잘 나와서 돈 조금 더 들이면 된다고. 그게 인건비보다 훨씬 남아.”
출근 일찍 시키고 퇴근 늦게 시키면 그만큼 남는 것이고, 딱 손님 몰릴 시간에만 파트로 쓰면 된단다. 특히 세 시간, 네 시간씩 나눠서 쓰면 시급과 상관없이 월급으로 계약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헛소리가 이어졌다.
“자네도 공장에서 물건 받아 쓰는 것 같은데, 내가 좋은 데 소개시켜 주지. 거기 없는 게 없어. 말만 잘하면 지금 받는 데보다 싸게 해줄 수도 있고…….”
기껏 장사 노하우라고 하는 게 저딴 소리가 전부라니.
역시, 개는 개 짖는 소리밖에 내지 못 한다.
강형우는 더 들을 필요 없다 싶었다.
“됐습니다. 사장님들. 제 장사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사장님들은 사장님들 방식대로 하세요.”
“그래서, 계속 지금처럼 하겠다는 건가?”
“당연합니다.”
“허허, 나중에 후회할 텐데?”
어째 말투나 행동이 조폭 영화에서 나오는 양아치 같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끝은, 파멸이다.
강형우는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떡볶이집 사장을 필두로, 맞은편 식당 사장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강형우는 금설비한테 말했다.
“입구에 소금 확 뿌려 버려.”
금설비는 아주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신나게 소금을 뿌려버렸다. 오다가다 알바들 굴리는 이야기를 다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뿌려서, 나중에 직접 다 쓸어야 했다.
그러게 작작 좀 하지.
***
“아저씨, 뭐 하는 거예요!”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강형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가보니, 아가씨 손님 셋이랑 덩치 큰 남자 셋이서 시비가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 저 아저씨들이 새치기하려고 하잖아요.”
그 아가씨의 말에 뒤쪽에 줄 서 있던 손님들이 동시에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아까부터 줄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들이 방금 와서 앞에 서려고 하잖아요.”
“맞아요. 갑자기 끼어들어서…….”
손님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덩치 셋이서 위압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짧은 깍두기 머리에 검은 정장.
슬쩍 걷은 소매 사이로 드러나는 문신들.
딱 봐도 소속이 짐작되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강형우는 그들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손님들 예약하셨습니까?”
이렇게 묻는 건 이유가 있었다.
현재 자리 예약은 안 받는다. 하지만 김밥 포장 주문은 받기에 순서 상관없이 들어와서 가져가고 있었다.
그때 검은 정장 하나가 손을 저었다.
“아니요.”
“그럼 뒤쪽으로 가주시겠습니까?”
“그게, 야! 뭐 하냐?”
앞의 검은 정장이 괜히 분위기 잡으려는 듯 옆에 있던 덩치 뒤통수를 때렸다.
딱 소리가 크게 울리는 걸 보니 살살 친 것도 아니었다.
괜히 분위기 잡으려는 의도.
강형우는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살짝 움직였다. 그런 뒤에야 손을 내밀어 바깥을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뒤쪽으로 가주세요.”
“이… 에이, 야! 가자.”
덩치 셋이서 뒤로 물러나자 강형우는 또 다시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5분 뒤부터 주문받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손님들한테 양해를 구하면서 강형우는 덩치들이 중얼거리는 걸 엿들었다.
“형님, 쫄았습니까?”
“새꺄. 돌았냐?”
“근데 왜 물러나는 겁니까?”
“니가 몰라서 그래. 눈빛이… 좀 그래.”
“에이…….”
“죽을래?”
강형우는 그 툭탁거림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잠시 후, 강형우는 직접 주문받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와 손님들한테 고개를 숙였다.
“예. 12번 테이블, 하와이안 돈가스 하나, 라면 김밥 세트 둘. 예.”
그런 식으로 주문을 받다가 딱 덩치들 앞에서 멈췄다.
강형우는 잠시 망설인 뒤, 먼저 말했다.
“손님들부터는 좀 더 기다리셔야 됩니다. 여기 앞까지 테이블 다 찼거든요.”
“뭐?”
“예.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문은 나중에 받을게요.”
강형우는 바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결국 덩치 셋은 또 다시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한 20분 기다렸을까?
다시 강형우가 나와서 주문을 받았다.
“2번 테이블에 앉으시면 됩니다. 주문 먼저 받을게요.”
“아니, 저기 우리 따로 앉을 건데요.”
“일행 아니신가요?”
“일행은 맞는데, 사람 한 명 더 오기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 우리가 체격이 좀 있어서…….”
자리가 좁다는 걸 돌려 말하고 있었다.
강형우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문부터 받겠습니다. 여기 메뉴판이요.”
“아니, 사람 다 오면 시킬게요. 그냥 기다렸다가 들어가도 되잖아요.”
“예. 그래도 상관없습니다만, 음식은 주문받는 순서대로 나갑니다. 오래 걸리실지도 몰라요.”
“괜찮습니다.”
다시 한 번 확답을 받은 강형우는 일단 덩치들 순서를 넘겼다.
“씨발, 겁나 오래 기다리네.”
“와, 이거 시작부터 더럽게 꼬이는데?”
이방철과 박종길은 짜증이 났다.
일(?) 때문에 지성분식을 찾은 거였다.
하지만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적당히 위협하고 먼저 들어가려 했다. 보통은 인상 한두 번 쓰면 됐는데, 일이 꼬이려는지 손님들이 너무 완강했던 것이다.
그때 사장이 나왔고, 간을 한 번 보려 했다.
소매 한 번 스윽 걷어서 문신 보여주고, 이 한번 빠드득 갈아준 다음에 노려보면 끝이었다.
그런데, 사장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개 숙일 땐 몰랐는데 어깨까지 펴니까 진짜 곰을 마주 대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꼬이는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하나, 둘 이렇게 따로 앉기는 앉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주문도 안 하고 앉아 있으니까 손님들이 계속 쳐다보는 게 아닌가?
심지어 워낙 바쁜지 직원들도 가까이 오질 않았다.
“야. 사람들 계속 쳐다본다. 일단 주문부터 하자.”
“그러다 큰형님 오면 어쩌려고?”
“새끼야, 눈치도 없냐?”
가게 분위기 한 번 잡으러 왔는데, 오히려 동물원 원숭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현재 홀은 만석!
대충 봐도 칠팔십은 되어 보였다. 여기에 그 사이로 알바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데, 딱 여기 두 자리면 음식 하나 없었던 것이다.
손님들은 그게 신기해서 계속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물론 아까의 소동(?)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참다못해 이방철이 손을 들었다.
“여기, 주문요.”
말 끝나기 무섭게 강형우가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그게… 저기 파인애플 올라간 돈가스 하나 하고, 라면 두 개요.”
“예, 하와이안 돈가스 하나하고, 라면 두 개 확인했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으시죠.”
“예.”
덩치 셋이서 소심하게 주문을 마쳤는데, 그 직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먼저 먹은 손님부터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고 그 빈자리가 새로운 손님들로 채워졌던 것이다.
“와, 장사 겁나게 잘되네.”
“그러게. 이런 거 하나 차리면 대박이겠는데.”
둘이서 그런 대화를 하는데, 또다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음식이 나온 것이다.
심지어 다른 테이블 다 나오고 나서도 여기만 음식이 나오질 않았다.
분위기는 또 반복이 되었다.
다른 손님들은 우르르 식사를 하는데 덩치 셋은 숟가락만 빨고 있었으니까.
“와, 씨발. 좆같네.”
박종길이 중얼거리는데, 크게 들렸나 보다. 다시 손님들이 일제히 덩치들을 쳐다봤던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 한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방철을 향해 웃은 뒤 성큼성큼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