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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219화 (219/251)

# 219

219화 그래서요

“축하한다, 애 아빠!”

창주 형이 웃으면서 말하자, 형들이 놀리듯 박수를 쳤다.

강형우는 당황해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직 불안해서.”

“괜찮아. 13주 됐으면 조금은 안심해도 돼.”

“그래. 그 정도면 괜찮다고.”

다들 위로해 주는데 조금 뻘쭘했다.

역시나 제일 빨랐던 건, 혁기 형이었다. 올해 초에 애가 태어난 뒤로 창주 형하고 덕수 형도 아버지가 됐던 것이다.

재작년하고 작년에 연달아 결혼하면서 그렇게 됐다.

현재 은주 형수가 거의 막달이었고, 민석이 이놈은 벌써 둘째가 들어섰단다.

휴우, 정말이지 시간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 형들하고 가게 망하니 뭐니 하면서, 악착같이 발버둥 치던 게 벌써 4년 전이라니.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성분식이 망하기 직전에 몰렸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밤잠 줄여가며 일했었다. 그러다 잘 풀려서 2호점, 3호점 오픈까지 했고, 그사이 인성식품까지 차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 같겠지.

하지만 내 밥상에서 일했을 때부터 계산하면 강형우 인생의 4분의 1이나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힘든 기간을 옆에서 지켜준 사람이 바로 공지혜였다. 지금도 가장 믿을 수 있고 든든한 인생의 반려자인 것이다.

그랬는데, 일이 생겼다.

항상 잘 먹고 다니던 씩씩한 애가 갑자기 입맛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 병원을 가보겠다고 했는데, 임신이라더라.

그것도 8주 차라 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름 조심스러워하고 있어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공지혜도 많이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냥 생리가 늦어지나 싶었단다.

한창 다이어트할 때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봤다. 게다가 하도 바쁘다 보니 임신 테스터기를 사볼 생각조차 못 해봤다는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시간을 거슬러 봤다.

대충 계산하니까 딱 그날이었다.

이영제 때문에 속이 상해서 집에 들어간 날, 처음으로 공지혜가 술상을 차렸었다.

김치전골에 갈비찜, 그리고 소주 두 병.

그걸로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게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조금 조급하긴 했었다.

어쨌든, 우리 1호(?)는 그렇게 생겼다.

“그런데 병원은 다녀왔어?”

“예. 초음파 검사도 받았고요. 아주 튼튼하다던데요. 벌써 7㎝라고.”

강형우가 웃으면서 말하니, 덕수 형이 손가락으로 길이를 쟀다.

“그게 큰 건가?”

“조금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부터 임신 중기에 들어간다고 무조건 조심조심하래요.”

“입덧은?”

“한 삼 주 정도 했을걸요? 그래도 평소에 워낙 잘 먹어서 이젠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강형우는 지갑을 꺼내며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대신 카드 하나 뺏겼어요. 외식용으로 쓴다고.”

“이 자식아! 그 정도는 행복한 거야.”

갑자기 혁기 형이 버럭 했다.

자신은 애지중지 키우던 만렙 캐릭터 ‘중화반점’이 빈털터리가 됐단다. 장비와 아이템을 처분하니 무려 삼백만 원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거의 십 년 가까이 공들인 보답이었다.

“난 이제 카드 하나 남았다. 나머지는 없어.”

“헐.”

“그리고 형우야, 이건 꼭 명심해라. 임신무쌍이다. 임신부는 적이 없다는 거지. 그 기간 동안 울 와이프가 무적이었어. 우리 아버지도 찍소리 못했거든.”

“에이~ 설마요?”

“와이프가 술 냄새 난다고 못 오게 하니까, 그 좋아하시던 막걸리도 끊더라. 하아~”

진짜 유부남의 비애가 절절히 느껴졌다.

그때 덕수형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출근은 어떻게 하는데? 이제 몸 무거워지면 일 못 할텐데?”

“아. 일단은 카운터만 보기로 했어요.”

현재 지성분식 3호점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최연경 이모는 요즘 월화목금 4일을 출근하고 있었다. 거의 혼자서 김밥을 맡아줘서 여유가 있었고, 설비도 실력이 부쩍 늘어서 보조만 해줘도 충분했던 것이다.

주방 역시 홍성구와 인정둥이, 여기에 이기섭까지 합세하자 아주 원활하게 돌았다. 게다가 정문창이 단순 잡일에서 주방 보조 일까지 돕자 한층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일우, 금이선과 김진설도 호흡이 착착 맞았다.

일우의 경우 단순 서빙만 하는 게 아니었다. 종종 카운터도 맡았고, 김밥을 썰기도 했으며 가끔 한가하면 주방을 기웃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만큼 일에 익숙해졌다는 증거였다.

여기에 밥충이(?) 둘이 더 있었다.

공부 때문에 파트로 일하기로 한 두 녀석, 오경일과 박정산.

대체 일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우리 가게 음식이 제일 맛있다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다 먹고 갔던 것이다.

진짜 밥값으로 월급 두 배를 뽑아버릴 기세였다.

특히 오경일의 경우 아침에 제일 먼저 와서 브레이크 타임이 끝날 때까지 있다 가더라.

어쨌든 오픈 기준으로 석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강형우나 공지혜가 빠져도 무리 없이 돌아갈 수준까지 됐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오픈발이 끝난 지 한참인데도 매출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당분간은 카운터만 보는데, 대신 지혜는 점심만 하고 보내요.”

“바로 퇴근?”

“그건 아니고, 인성식품으로 출근하라고 했어요. 안 그래도 3호점 때문에 소홀한 것도 있고, 제가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시간이 안 나서요.”

이건 공지혜가 먼저 제안한 것이다.

솔직히 내가 정말 무식해졌다.

내 밥상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장부는 어느 정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거의 3년을 음식 장사에만 매달리다 보니 까막눈이 되어버렸다. 정성희가 천천히 설명을 해주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지성 분식집 회계가 이러니저러니 하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더라.

그때 덕수 형이 움찔하면서 물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냐?”

“뭐가요?”

“따지면 그게 우리 핵심이잖아.”

“그렇기는… 하죠.”

오늘도 그 핑계였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임직원(?) 회의, 그 이유로 이렇게 회식을 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결제도 회사 카드였다.

사실 사총사 형들은 인성식품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직접 만들던 걸 받아서 쓰면서, 생활에 한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들 애 낳을 엄두도 못 냈을 거다.

하루 종일 가게 매달려서 장사해야 하는데, 어찌 밤에 힘을 쓰겠는가?

“우리가 지혜는 믿는데, 우리 와이프를 못 믿어.”

“예?”

“너 몰랐냐? 우리 와이프들하고 지혜하고 단체 톡방 하나 하잖아. 우리가 뭐, 엄한 데 가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괜히 말실수해서 걸리면 피곤하다고.”

창주 형이 덜덜 떠는 이유가 있었다.

딱 한 번, 회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사우나를 간 적이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조는 바람에 연락이 안 되서 지우 형수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날 거짓말했다가 쫓겨날 뻔했단다.

형수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 버렸다나?

“그건 다 같이 조심해야지.”

“그래, 우리 일은 절대 비밀이다. 오늘도 딱 두 병만 먹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벌써 오버라고.”

덕수 형의 말에,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쥐여사는 설움이구나 싶더라.

하지만 강형우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지혜가 얼마나 착한데, 그런 걸로 그러겠어요. 괜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요. 그냥 회사 일 좀 더 파악한다는 건데… 그리고 제 말은 무조건 믿어주거든요.”

그때 혁기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말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새끼야, 살아봐라. 과연 그렇게 되는가!”

***

조용하고,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고, 지혜 배 속의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해서 매주 병원도 가고, 태아보험도 적당한 거 하나 들어놨다. 게다가 또 하나의 일정이 생겼으니 어머니 가게 들리는 거였다.

공지혜는 일주일에 두 번, 브레이크 타임에 점심을 먹고 어머니가 하는 국밥집까지 걸어갔다. 도보 30분 거리라서 운동에 좋다고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이쁨(?)받고 집에 들어가면 저녁 7시.

강형우도 요즘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조금 늦은 식사이긴 하지만, 차려주는 밥을 먹으니 묘한 행복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초를 뿌리는 인간들이 있었으니…….

“사장님! 라면 국물이 싱거운데요.”

“오늘 왜 이러지? 돈가스에서 너무 냄새가 나서, 못 먹겠어요.”

“덮밥이 많이 짠데요?”

진짜 방송에나 나오는 미식가들처럼 구는데, 먹어봤더니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음식을 새로 해줬다. 어찌 되었건 불만이라도 이야기할 때가 좋다 싶었으니까.

물론 강형우도 그냥 다 넘기진 않았다.

“104동 아저씨는 좀 짜게 먹는 모양이네요.”

“관장님, 죄송합니다. 바로 새거로 드릴게요. 아니면 다른 걸로 곱빼기 드릴까요?”

“이발소 사장님, 덮밥이 짜면 다음에 밥 좀 더 달라고 하세요. 제가 챙겨 드릴게요.”

최대한 웃으면서 사근사근 이야기하니, 분위기는 나빠지지 않았다.

어쨌든 단골도 많이 생겼고, 얼굴도 익혔다. 그러다 보니 투정 부리는 진상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확실히 장사하는 맛이 났다.

3호점이 너무 수월해서 그런가, 2호점 때와 다르게 툭탁거리는 일이 많이 없었던 것이다.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렇게 하루하루 평온한 가운데 뜬금없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보소. 혼자만 장사합니까?”

“젊은 총각이 그러면 안 되지? 같이 좀 먹고 살아야 안 되나?”

“그리고 이사 왔으면 이웃에 인사도 하고 그래야지.”

“그러게. 뭐가 잘났다고 코빼기도 안 비치고.”

덩치 큰 아저씨 셋에, 아줌마 둘이었다.

그중 인상이 제일 더러운 사람은 한마디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바로, 맞은편 떡볶이집 사장이었다.

강형우는 되먹지도 않은 소리를 무려 10분간 참고 들었다.

성질 같아서는 테이블이라도 엎어버리고 싶었는데, 우리 가게 집기라 참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강형우가 불쑥 끼어들어서 말하자, 떡볶이집 사장도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우리도 상인회인데, 왜 이러겠냐?”

말투에서 사람을 깔보는 게 확 느껴졌다.

강형우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려봤다.

“왜 그러는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갑자기 장사하는 가게 우르르 몰려와서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는데요.”

“이상한 소리가 아니고, 같이 잘 먹고 살자는 거지.”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요? 대체 이 이야기만 몇 번을 하는 겁니까?”

“그게… 험험.”

잠시 헛기침을 하던, 자칭 상인회 회장 떡볶이 사장님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보니까 이쪽 가게 장사 잘되는 것 같은데, 우리가 피해자 아닌가?”

“예?”

“자네가 김밥 파는 바람에, 여기 이모네 장사가 안 돼.”

딱 보니 말라비틀어진 김밥 파는 가게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황당해하고 있는데, 떡볶이집 사장이 말을 이었다.

“보니까 라면도 팔고 덮밥도 팔고, 돈가스에… 어우, 메뉴가 많네?”

“그래서요?”

“아니, 적당히 조정하자는 거지.”

“그러니까 뭘요?”

강형우는 최대한 짜증을 참으면서 되물었다.

그때 떡볶이집 사장 입에서, 정말 병신같이 참신한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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