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218화 환불해 달라고
“일단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좀 잊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
“그게 참 죄송한 일인데, 저도 여기 말뚝이라 아들 대학 보낼 때까지는 버텨야 합니다. 아시잖습니까? 경찰도 공무원이라는 거.”
박 경위가 겨우 웃으면서 말하는데, 삶의 애환이 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뜻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실, 그 병식이 그 새끼가 좀 꼴통이라서… 머리 좀 식히라고 데려다 놓은 겁니다. 원래 현장 뛰는 애들이 좀 또라이 기질이 필요하긴 한데, 애가 너무 어려서요.”
“그렇게 어려 보이지는 않던데요?”
딱 봐도 나보다는 대여섯 살 많았는데, 그걸 어찌 어리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박 경위의 말은 달랐다.
“노안입니다, 노안. 걔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원래 형사계 애들은, 칼침 한 방 맞든가 못해도 마흔 넘어야 어른으로 쳐줍니다. 제 기준에는 아직 애죠. 허허허.”
“그, 그런가요?”
“예. 원래 경찰이 나쁜 놈만 쌔리 잡는 게 일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서민들 민생 치안도 중요한데, 애가 아직 철이 없어서 한쪽으로 좀 많이 기웁니다. 그래서 아차 한 모양인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박 경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 된다고 하려니 참 난감했다.
“대신, 그놈은 제가 꼭 잡아드리겠습니다. 비록 현역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함 봐주세요.”
그러면서 불쑥 손을 잡는데, 흐아~ 이 아저씨 경찰 짬밥이 보통이 아니네 싶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경험상인데, 이런 거 걱정하지 마시고 장사에만 전념하시는 게 최고입니다.”
말투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 경위도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쉬더라.
곧 프린트가 건네지고, 박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거 참 어렵네요. 대가리 아주 꽁꽁 싸맨 거 보니 작정하고 한 거 같은데… 시간 좀 걸릴 겁니다. 그리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잡아봐야 벌금 10만 원도 안 나옵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을라 카는 거 보면, 민사 거실 거죠?”
“예.”
강형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 물었더니, 민사 소송을 걸려면 상대의 인적사항을 파악해야 한단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분식집 사장이 직접 범인을 잡으러 나설 수는 없는 노릇.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건 경찰이 해야 합니다.”
이후 박 경위가 간단히 설명했다.
경범죄 공소시효는 무려 5년이었다.
하지만 범칙금을 납부하면 끝이고, 범죄 기록도 남지 않는단다.
물론 이 판결이 확정되면 민사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괴롭힐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게 강형우의 목적 중에 하나였다.
박 경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알겠십니다.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잡으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 경위가 웃으면서 다시 지구대 안쪽을 가리킨 것이다.
“근데, 큰 사장님. 신고 접수는 하고 가셔야 합니다.”
역시나 경찰, 공무원이었다.
***
“이거 환불해 달라고.”
“예?”
공지혜가 난감해하며 강형우를 쳐다봤다.
한참 손님 상대 중이어서 몰랐는데, 김진설이 다가와서 알려주었다.
가보니 한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총각이 사장이야?”
일단 대뜸 반말부터 하는 걸 보니, 한숨이 나왔다.
“예. 제가 사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내가 방금 포장을 해갔는데, 글쎄 툭 부딪혔더니 엉망이 됐더라고.”
그러면서 비닐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김밥이 뭉개져 있었고 제육덮밥 뚜껑도 심하게 우그러져서 소스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누가 밟은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먹어? 아니, 포장을 어떻게 했길래 이러냐고?”
“죄송합니다.”
“됐고, 가져가도 이거 못 먹으니까 환불해 줘!”
순간 목청이 컸는지 다들 카운터를 쳐다봤다.
강형우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건 누가 봐도 가게 실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슬쩍 부딪힌 정도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가게 밖에서의 일을 책임지라는 게 어이가 없었다.
문제는, 이 아줌마가 너무 당당하다는 거다.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황당했던 것이다.
“왜? 못 해줘?”
“그게…….”
“내가 여기서 팔아주는 게 얼만데? 손님 무시하는 거야?”
진짜 더 상대했다가는 없던 암도 생길 것 같았다.
강형우는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예. 죄송합니다.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새로 만들어줘.”
“예?”
“어차피 환불받아도 저녁 사야 되잖아? 그냥 같은 걸로 해줘.”
막장 드라마도 기피할 미친년 같으니라고.
진심으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때 최연경이 김밥을 말다 말고 나섰다.
“아니, 아줌마.”
“왜요?”
“나 다 봤어요.”
“뭐라고요?”
아줌마가 버럭 화를 내는데도 최연경은 태연했다.
역시 장사 경력 10년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저기 제가 김밥 써는 데서요. 다 보여요. 그냥 부끄러울까 봐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요.”
“뭐! 뭐! 말해봐!”
“아줌마가 넘어지면서 뭉갰잖아요.”
순간 아줌마가 당황해하더니, 이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게, 뭐! 어쩌라고. 포장만 똑바로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잖아!”
“하이고, 양철 도시락으로 포장해도 엉덩이로 뭉개면 찌그러지거든요.”
최연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아줌마 얼굴이 벌게졌다.
“그래서, 못 해주겠다는 거야?”
“생떼 좀 그만 쓰라는 거죠. 우리 사장님이 착해서 환불까지 해준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죠.”
최연경은 그렇게 말한 뒤, 공지혜를 쳐다봤다.
“바로 카드 결제 취소해 드릴게요. 지성 김밥 하나, 돈가스 김밥 하나, 제육덮밥 하나. 맞으시죠?”
“맞아.”
“그럼 결제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그때 가게 안에서 손님 한 명이 소리쳤다.
“거! 아줌씨. 너무 하네.”
다들 그쪽을 쳐다보는데, 강형우도 움찔할 정도로 인상 더러운 아저씨가 보였다.
“혼자 사요? 예? 가게 전세 냈소? 아놔~ 시끄럽어서 귀 평수 넓어지는 줄 알았네.”
“아저씨는 뭔데?”
“뭐기는? 손님이지. 됐고, 시끄럽게 하지 말고 고마 가이소. 결제 취소해 준다면 됐지.”
“그니까 아저씨가 뭐냐고? 왜 남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저 썅년이 돌았나? 어디 아가리 함부로 놀리노. 확, 디질라고.”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고, 아줌마는 버럭버럭이었다.
진짜 강형우는 짜증 나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말리기는 말려야 했다. 괜히 시비가 커지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였으니까.
결국 강형우가 아저씨 손님을 달랬고, 그사이 공지혜와 최연경이 아줌마를 내보냈다.
환불까지 줘가면서 말이다.
황당한 건, 그 아줌마가 포장 비닐을 그대로 가져갔다는 거다.
진짜 미친년 전성시대도 아니고, 이게 뭐람.
***
“푸하하, 그런 일 있었어?”
“예.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강형우가 한숨을 내쉬는데, 사총사 형들은 빵빵 터지더라.
그때 혁기 형이 말했다.
“요즘 살기가 팍팍해서 그런가? 우리 가게도 진상 천국이다. 어째 온전한 손님들이 드물어.”
갑자기 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짬뽕 한 그릇을 시켰다. 그 직후, 통화를 하더니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저씨까지 합류했다는 것이다.
뭐,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단다.
“뒤늦게 온 아저씨가 묻더라고. 혹시 가지고 온 술 마셔도 되냐고. 원래라면 당연히 안 되는 건데, 다른 손님도 없고 그래서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소주 두 병을 꺼내고 잔 좀 달래.”
“헐.”
다들 어이없어하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씨발! 안주로 먹는다고 짬뽕 국물만 세 번 리필시키더라.”
“그래서요?”
“우리 아버지가 한 성깔 하잖아?”
아버님이 주방에서 국자 들고 튀어나왔단다. 그래놓고 야이, 거지 새끼들아! 했더니, 바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래도 신고는 하지 말라더라. 불쌍한 새끼들이라면서.”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야기였다.
그때 창주 형이 손을 들었다.
“우리 가게도 며칠 전에 하나 터졌다. 한 아저씨가 오뎅 국물 마시가다 갑자기 크게 기침을 하는데… 갑자기 틀니가 쑥 빠진 거야. 그런데, 그게 국물 통으로 들어간 거지.”
“헐.”
“문제는 그 이후다. 당황했는지 틀니 꺼낸다고 손을 불쑥 넣데? 그런데 오뎅 국물이 좀 뜨겁냐?”
적당히 따뜻한 정도가 되면 국물 소비량이 확 늘어난다.
때문에 호호 식혀가면서 먹게끔 국물 온도를 많이 올리는 게 당연했다.
“그 아저씨가, 아, 뜨거 씨발! 아, 뜨거 씨발! 하면서 손을 넣었다 뺏다 하는데, 순간 머리가 멍해지더라.”
그건 30년 전통의 가게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단다.
결국 창주형은 그 오뎅 국물과 어묵들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위생 문제도 문제지만, 그런 음식을 낼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이고, 아깝다. 돈이 얼만데?”
“이만 원도 넘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는 거지.”
이틀 뒤에 진단서 끊어서 왔다고 했다.
손가락 끝에 화상을 입었고, 틀니도 일부 녹아서 새로 해야 한다나 뭐라나?
“이야, 진짜 미친놈이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뭘, 어떻게 해? 경찰 불렀지. 우리 가게도 카메라 달아놨잖아. 그거 틀어주고, 오뎅값 물리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진단서 놔두고 도망가더라.”
창주 형이 어이없어하며 웃는데,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후 현우 형도 한마디를 했다.
닭뼈를 잘못 씹다가 이빨 때운 거 떨어졌다고 손님이 항의하더란다. 결국 통닭 값을 안 받겠다고 했는데, 술값까지 공짜로 해달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남자 넷이서 맥주 세 병에, 소주 다섯 병이나 마시고서 말이다.
“진짜 취객 상대하는 거. 피곤하다, 피곤해.”
“차라리 취하면 낫지. 안 취해서 그 지랄하는 게 문제지.”
“그게 뭐가 문제인데?”
“야! 맨 정신에 미친 짓 하는 놈은 평소에도 미친놈이라는 거잖아? 그게 더 위험하지!”
다들 잠시 멍해 있는데, 덕수 형이 피식 웃었다.
“됐고, 장사 힘든 거 하루 이틀이냐? 진짜 그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은 쓰겠다.”
“야! 그래도 너는 애들 상대라서 덜하잖아. 술 파는 것도 아니면서.”
“버거 무시하지 마라. 세트 시켜놓고, 몰래 가지고 온 술 마시는 아저씨들 많아! 나는 빈 물병 놔두고 간 줄 알았는데, 냄새 맡으니까 고량주더라.”
설마 밥버거 집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혁기 형이 말했다.
“다들 힘든 거지.”
“그러게. 경제 맡겨달라더니, 쥐새끼가 아주 나라 거덜 내지 않나. 닭대가리 년이 대통령 되니, 진짜 망조가 들었다. 망조가.”
“바꾸긴 바꿔야 하는데, 아직 2년이나 남았어. 휴우~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 감을 못 잡겠다.”
형들이 푸념을 하는데, 그건 강형우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진짜 나라가 어려워서 그런지 손님들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가볍게 넘길 실수를 시비로 만들었고, 별일도 아닌 걸로 고함까지 내질렀던 것이다.
거의 이틀이 멀다 하고 소란이 생기니, 정말 장사하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때 창주 형이 씨익 웃었다.
“우리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오늘 축하해 주러 온 거잖아.”
순간 사총사 형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강형우를 쳐다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