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214화 조건이 좋아
“진짜 이렇게 되라고 글을 올린 게 아닌데…….”
강형우는 진심으로 난감함을 느꼈다.
사실, 영재분식 이야기가 언젠가는 나올 거라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게 그냥 평가로만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아무래도 지성분식과 이어질 것 같았다. 영재분식의 맛과 서비스로 내 가게까지 여파가 미칠 게 분명했던 것이다.
해서 미리 딱 잘라 버렸다.
엄연히 다른 가게라고.
분명히 그런 목적으로 글을 올렸는데, 맘카페의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댓글만 거의 300개가 넘어갔다. 중간에 누가 경쟁을 붙이면서 싸우듯이 글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강형우가 봤을 때 맘카페는 온전한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각자의 요구가 강해서 싸우기도 많이 했고, 맛의 경우는 개인차가 있기에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어려웠던 거다.
하지만 음식 장사하려면 최소한 눈치 정도는 봐야 했다. 여기 게시판은 동네 민심의 척도였고, 최소한 어떤 흐름으로 가는지 참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편의점 사장님의 글이 큰 파장을 불러왔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계산하라고 카드를 던졌다니.
만약 내 눈앞에 그랬다면 가만히 안 놔뒀을 거다.
사실 누누이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에는 기본적인 예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평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결코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잠깐 속이는 건 가능하지만 평생은 불가능하다.
이게 강형우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항상 밖에서 사람 만나도 가게 손님들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고.
그랬는데, 이영제가 저런 짓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휴우, 진짜 사람이 변한 건가?”
처음의 소심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이영제가 가게 알아보러 다닌다고 몰래 알려준 사람도 편의점 사장님이었다.
그런 기억들이 있었으니 결코 좋게 보지 않았을 테지.
“에구, 모르겠다. 신경 끄자.”
어차피 더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건 이대로 가슴에 묻는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으로 뭔가 하기에는 방법도 없었으니까.
강형우는, 이참에 다시 한번 가게들을 점검하기로 마음먹었다.
***
“사장님, 죄송합니다.”
강형우가 먼저 고개를 숙이자, 편의점 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강 사장이 사과할 일이 아니지.”
“아닙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 시켰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이영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편의점 사장님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며칠 뒤 사장님 댓글에 누가 글을 달았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면서, 변호사와 상담 중이라고 올렸던 것이다.
그 밑에 편의점 사장님이 글을 달기를, CCTV 다 있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건지 명백한 사실 적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된단다. 게다가 욕설까지 잔뜩 달렸으니 빼도 박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걸 다른 변호사라는 분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줬고, 결국 편의점 사장은 댓글을 지우고 말았다.
그 직후, 영재분식은 또다시 몰매(?)를 맞았다. 많은 맘카페 회원들이 저런 가게는 못 가겠다고 댓글들을 주렁주렁 달았던 거다.
어쨌든 강형우는 그 일이 미안해서 이렇게 찾아왔다.
“나보다 강 사장이 마음고생 심하겠지.”
“괜찮습니다.”
“아냐. 딱 보면 뻔한 거 아냐? 강 사장네 가게 장사 잘되니까 나가서 차린 거.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바로 길 건너 코앞에 차리는 건 너 죽어봐라는 건데…….”
“그게… 좀 그렇기는 하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아? 아무래도 타격이 좀 있을 텐데?”
“저야 가게가 셋이나 되는데요. 그리고 다시 단골손님들이 찾아주셔서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숙이자 편의점 사장님은 손을 저었다.
“쯔, 강 사장 같은 사람들이 장사를 오래해야 동네가 편한 건데,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잠시 편의점 사장님의 푸념이 이어졌다.
IMF 때 명예퇴직하고, 이 일, 저 일 하다가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쳤단다. 오래 걷거나 무리하게 뛰지만 않으면 괜찮아서, 결국 편의점을 차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게 10년도 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동네가 변하는 광경을 빠짐없이 봤다고 했다.
월세가 싸다고 젊은 놈들이 들어와 음식점을 차렸는데, 정말 장사 열심히 하는 애들은 열에 하나도 안 된다고 했다. 겉멋이 들어서 장사 잘되면 돈 쓰기 바빴고, 손님들 없어도 태평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봐왔으니 망할 가게는 딱 보인다고 했다.
“솔직히 자네 보고 놀란 게 그거야. 여기 하면서 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가장 마지막에 퇴근하고… 그걸 정말 꾸준히 하더라고.”
편의점 사장님이 가끔 새벽 타임을 뛸 때, 내가 출근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장사 잘되는 가게인데도 사장이 제일 부지런하단다.
“내 장담하는데, 저 앞에 분식집 반년 가면 오래가.”
편의점 사장이 단언하자, 강형우는 괜히 기분이 미묘해졌다.
역시나 사람 마음은 간사한 모양이었다.
“강 사장도 나 신경 쓰지 말고, 저 집한테 밀리지 않게 열심히 하라고.”
“예.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역시 강 사장이 사람이 됐어. 이렇게 나 같은 사람 보러 올 줄도 알고.”
편의점 사장님이 오히려 웃으면서 좋은 말을 해주니 더 오래 있기가 괜히 민망해졌다.
결국 강형우가 인사하고 나가는데, 편의점 사장님이 음료수 한 병을 쥐여 줬다.
바카스 마시고 파이팅하란다.
***
“와, 진짜 많이 변했네.”
정말 이모들 식당 근처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자,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펜스 너머로 거의 대부분의 집이 철거되어 있었고 일부 구간은 건설 장비들로 채워졌던 것이다.
동시에, 근처도 조금 바뀌었다.
건너편에 함바 식당이 두 개나 영업 중이었고, 반대로 옷가게와 애견카페가 사라졌다. 정육점이 삼겹살집으로 바뀌었고, 철물점이 하나 더 생겼으며 인력 사무소도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공사 현장과 관련된 쪽으로 많이 바뀌고 말았다.
“그나저나 여기는 아직도 끄떡이 없네.”
제대로 한 끼, 그리고 화끈 오뎅은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완전히 큰길가이기도 했지만, 재개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야, 말 마라. 저녁에 공사장 인부들이 술 마시러 오는데 이틀에 한 건씩 사고다.”
창주 형이 한숨을 내쉬는데 심각하게 고민 중이란다. 저녁 술장사 매출이 너무 쏠쏠해서 계속하기는 해야겠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경찰들이 순찰 코스를 이쪽으로 바꿀 정도라고 했다.
“진짜 그렇게 사고 많아요?”
“어휴, 진상도 진상도. 그런 진상들이 없어요. 그저께는 오함마 들고 와서 싸우니 마니 하는데, 죽겠다. 죽겠어!”
창주 형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 입구를 가리켰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공구 들고, 절대 출입 불가.’
그걸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 웃을 일 아니야. 저녁 술 매출이 이거라고.”
창주 형이 손가락 다섯 개를 드는데, 뭔가 싶었다.
“하루 오십만 원 올라온다. 여기 테이블 전부 술손님이야.”
“헐, 대박인데요?”
단순 계산해도 한 달 매출이 천만 원이었다. 그 정도라면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골손님들은 여기서 포장 안 하고 옆에서 해간다. 여긴 이제 술집 다 됐지.”
“그런데 옆에는요? 술장사 안 해요?”
강형우가 힐끗 쳐다본 건, 제대로 한 끼 간판이었다. 그러자 창주 형은 오히려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사 방침으로 안 된대. 술도 하도 손님들이 졸라서 일인 1병만 판다더라. 그러니 사고 날 이유도 없고, 거의 8시 전에 다 팔고 문 닫아버리더라고.”
“형은요?”
“나야, 열 시까지는 해야지. 그때까지 손님들이 있으니까.”
역시 한 집안의 가장은 위대했다.
요식업에서 이야기하길, 제일 많이 남는 건 술장사였다.
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소주 한 병 가격은 1,100원에서 1,300원 사이였다. 이걸 3,000원 받으면 세 병만 팔아도 5,000원 이상이 남는다.
게다가 이게 순이익이다.
하지만, 그만큼 힘든 것도 술장사였다. 많이 팔면 팔수록 그만큼 취한 손님을 상대해야 되는 것이다.
그냥 곱게 마시고 가면 좋으련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더라.”
지금이야 온 동네에서 어중이떠중이 다 몰려드는 판이라 시비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세력(?)화가 되고 있다고 했다. 전날 술 마시고 싸웠다가, 다음 날 화해하고 같이 술 마시러 온다는 것이다.
“솔직히 조금씩 바뀌는 거 없으면, 진작 때려치웠다. 오바이트 치우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창주 형은 한참을 푸념하다가 갑자기 표정을 확 바꿨다. 막 손님들이 배를 문지르면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슬쩍 보니, 방금 욕하던 그 손님들 같은데?
“저희 가게 해장 라면이 기가 막힙니다. 매콤한 어묵 국물에 끓인 라면 한 그릇 드시면 속이 싸악…….”
역시 30년 전통은 무시할 수 없겠더라.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이모들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외출은 이게 진짜 이유였으니까.
“그러니까 여기란 말이죠?”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성분식, 아니, 이모들 식당 바로 옆에 상가가 비었다.
강형우가 2호점으로 건너간 이후에 생긴 가게였는데, 반찬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부들이 외식을 하고 있는 상황.
근처 집들이 헐리면서 단골들도 사라져서 아예 가게를 내놨다는 것이다.
“근데, 정말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럼. 어차피 다음 달이면, 여기 너머서부터 부순다고 하더라고.”
순이 이모가 그렇게 말하는데, 슬쩍 마음이 기울었다.
최근 이모들 식당은, 미어터지고 있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그리고 인성식품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제육볶음이 입소문이 나버렸다. 그것도 인부들 사이에서 말이다.
덕분에 점심때 줄은 서는 건 기본에, 추가 주문도 폭발이었다.
남자 넷이서 김치찌개 둘에 된장찌개 둘을 시킨다. 여기에 제육볶음 2인분 추가였다. 거의 이게 기본이라고 할 만큼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매운 돈가스를 시켜서 반찬으로 먹는 경우도 많단다.
어쨌든 지성분식 본점은, 이제 거의 식당에 가까웠다.
그게 참 기분이 미묘하더라.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이 이모가 재촉을 했다.
“보증금 천에 월세 40만 원이면 아주 조건이 좋아.”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데 공사비가 얼마나 들려나?”
강형우가 망설이는 이유는 그거였다.
어차피 할 만큼 하고 접을 가게였다. 그래서 순이 이모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바뀌면서 매출이 많이 올랐다.
문제는 확장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옆집이 빈 김에 터버리잖다. 벽을 뚫고 통로만 만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크기를 보니 테이블 수는 여섯 개 정도였다.
“확실히 월세는 부담이 안 되는데, 이모는 괜찮겠어요? 손님 더 받으면 힘들어질 텐데?”
“그게… 사람 좀 더 쓰면 돼.”
“그러니까 사람이…….”
강형우가 고민하는데, 순이 이모는 웃고 있었다. 저 표정을 보니 이미 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형우야,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진짜요?”
“어. 형우한테 미안한 것도 많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그런 거지.”
그러면서 차분히 설명을 이어가는데, 확실히 홀랑 넘어갈 만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물려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