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206화 견학 맞아요?
♪~ ♪♪
박차고 태어나서, 겁날 게 뭐가 있냐? 깨지고 박살 나도, 제대로 한판 붙어봐.
딱 한 번 인생인데 기죽고 살지 마라.
가슴을 활짝 펴고, 멋지게 사~ 는 거야~~
“흐음.”
강형우는 습관처럼 폰 알람을 껐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50분이었다.
본능적으로 일어나려다 잠시 멈칫했다. 뭔가 환경이 달라져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강형우는 공지혜가 깨지 않게 슬그머니 안방을 벗어났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낸 뒤, 시원하게 한 잔을 들이켰다.
그런 뒤에야 천천히 집을 돌아봤다.
작은 방을 보고, 서재 문을 슬쩍 열었다. 그러자 인정둥이가 구석에서 포개 자고 있었다.
강형우는 문을 닫은 뒤 마당으로 나갔다.
그 뒤, 찬찬히 돌아보고 옥상으로 올라가 심호흡을 했다.
“호오~ 흐으읍.”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머리가 깨이는 것 같았다.
확실히 옆에 강을 끼고 있고, 뒤에 산이 있어서 그런지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진짜 이사하긴 한 거네.”
비록 반전세지만,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나 할까?
사실, 어머니 살던 집에서 제법 오래 지냈다.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는데, 인정둥이와 같이 방을 썼던 것이다.
그때는 작은 줄 몰랐는데 제대하고 자취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집이 중요하긴 중요하구나.
일종의 삶의 수준이랄까? 그걸 평가받는 기분을 여러 번 받았던 것이다.
물론 몇 번이나 이사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입장이고 또 바쁘고, 번거롭고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굳이 집을 옮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간,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얼떨떨하게 됐지만 결론은 다 잘 해결되었다.
좋은 집도 구했고 이사도 했다.
인정둥이도 제대하자마자 제 집을 찾았으니 뭐가 딱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3호점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건 그렇고. 이놈들은 왜 안 일어나는 거야?”
시간은 벌써 5시 15분.
이 정도면 알람이 울려도 울렸을 텐데?
강형우가 집으로 들어가니 안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니, 공지혜가 어느새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좀 더 쉬어.”
“아뇨. 오빠도 곧 나갈 텐데 준비해야죠.”
“아냐. 인정둥이 데리고 사무실 갔다가 갈 거니까, 나중에 이모 식당에서 봐.”
강형우가 몇 번이나 만류하자 그제야 공지혜가 침대에 누웠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직접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왔는데, 괜히 미안하더라.
강형우는 바로 서재로 향했다.
인정둥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데, 여전히 꿈나라 속에서 군 복무를 하는 모양이었다.
“소대장, 개쉐끼. 짬을 똥꾸멍으로 쳐 먹었나.”
“행보관님. 아오~ 작업은 좀 그만 주십시오.”
그러다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진짜 우리 형처럼 일시키네. 너무한 거 아닙니까?”
“맞아. 좀 쉬어가면서 일을 시키든가 해야지.”
아무래도 잠꼬대가 아닌 것 같았다.
어제 비싼 탕수육 세트에 고량주 한 병, 여기에 소주 세 병이나 해치운 후유증이리라.
강형우는 그 감정을 담아 강인우의 어깨를 툭 찼다.
“에이씨, 깨우지 말라니까.”
격한 투정과 함께 강인우가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강정우 차례였다.
조금 세게 어깨를 찼는데,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더라.
그러면서.
“이병 강정우!”
관등성명을 대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꾼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 정신.”
강형우가 등을 토닥이는데, 그제야 강정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와~ 죽는 줄 알았어요.”
“왜?”
“그게, 이등병 때 햄버거 나왔거든요. 동기 하나가 빵 하나 더 받은 거 몰래 숨겼다가 잘 때 침낭 뒤집어쓰고 먹는데, 딱 소대장한테 걸린 거예요.”
“그래서?”
“이 병신 같은 소대장이 갑자기 상병들을 소집시킨 거예요. 애들 밥도 안 주냐면서 굴리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안 들어도 뻔했다.
갈굼 당한 상병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당연히 일병 소집해서 굴리고, 일병이 이등병 소집해서 굴렸겠지.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애들 배고프다는 소리 안 나오게 한다고. 매일 PX에서 초코파이 네 개씩 먹이더라고요.”
“좋은 건가?”
“갈구는 거죠. 워낙 미친놈들이 많잖아요. 하여간 초코파이 먹고 목이 막히는 꿈을 꿨는데… 그런데, 형이 왜 여기 있어요?”
“헐, 여기 내 집이거든?”
“아! 부대 아니구나.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정말 진심이 느껴졌다.
에구, 군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신 차리고, 인우 깨워. 나갈 시간 됐으니까 씻고 옷 갈아입고.”
강형우는 강정우의 뺨을 두드린 뒤, 먼저 씻겠다고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왔더니 인정둥이는 멍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잠이 안 깬 모양이었다.
근데 정말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더라.
“형, 여기 뜨거운 물 나와요?”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군대 물 빠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후우~ 하~ 공기 좋다.”
수영강변을 걷다 보니 정신이 드는지 인정둥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특히 강정우가 질문을 던지는데, 아무래도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걸어서 30분이면 가깝네요.”
빠르게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몸도 깨울 겸 일부러 강변 산책로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쪽에서 온천천 산책로로 들어가면 바로 사무실이 있었으니까.
“근데 맞은 편에 건물 겁나 들어섰네요.”
“센텀시티라고 한참 공사 중이지.”
백화점 두 개가 경쟁하듯 지어지고 있었고, 영화의 전당과 복합문화센터가 보였다.
그 이후 줄줄이 아파트 단지였다.
“저런 데는 진짜 비싸겠다.”
“와! 건물 높은 거 봐!”
잠시 대화의 주제가 집으로 갔다가, 다시 원초적으로 돌아왔다.
“오, 겁나 이쁘다.”
“진짜네.”
추운 겨울인데도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는 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지나갈 때마다 인정둥이 고개가 휙휙 움직이는데 진짜 와이퍼처럼 보이더라.
하긴, 한창 그럴 때지.
그렇게 산책하듯 뛰고 걷다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지?”
“예.”
“일단 사무실 올라가서 커피 한잔하자.”
강형우의 말에 인정둥이가 환하게 웃었다.
사실 이 두 녀석을 데려온 건 이유가 있었다.
어제 술 마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를 이야기하는데, 아직 사회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다. 군대에서 제한된 정보만 받다 보니 생각의 폭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좀 쉬면서 일자리 알아보다가, 적당한 공장에 취직하려 했단다. 야근까지 뛰면 한 달에 이백은 벌지 않겠냐면서 그거 모아서 주식을 할 거라는 것이다.
대박 게임을 내는 회사 위주로 안전하게 투자할 거라나?
하도 기가 차서 머리통을 한 대씩 후려갈겼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일확천금이나 꿈꾸다니.
듣기로 주식시장에 이런 말이 있다고 했다.
개미는 개미라고.
거대 자본이라는 개미핥기가 지나가면 싸그리 털리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차라리 큰돈을 벌려면, 그 돈으로 로또 사는 게 더 확률이 높단다.
어쨌든 녀석들에게는 내가 일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일해서, 이렇게나 벌어간다고.
새벽부터 녀석들을 깨워서 나온 게 그래서였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김민석이 출근했다.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가장 성실한 경리님(?)께서 오셨다.
“정성희라고, 세 살 누나다. 깍듯이 모셔라.”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이유가 있었다.
확실히 평석이 형 말대로 일 하나는 딱 부러지게 하더라. 회사 사람들이 약한 돈 계산부터, 납품 수량 확인에 주문받는 것, 그리고 그 외의 기타 업무까지 거의 1인 3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슬쩍 월급 올려주겠다고 미리 약을 뿌려놨다.
어쨌든 그렇게 이쁜 편은 아니었는데, 인정둥이가 헬렐레했다.
하여간 여자라면 다 좋을 때지.
이후, 누님 직원들이 왔고 회사가 꿈틀임을 시작했다.
“와! 여기서 다 하는 거네요.”
“그럼.”
강형우는 가볍게 웃으며 작업 현장을 구경시켰다.
그러면서 청소도 시켰고, 박스도 나르게 했고, 육수통을 휘젓고, 돈가스 작업도 지시했다.
졸지에 젊은 일꾼 두 명이 추가된 상황.
그때 김민석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물었다.
“형님, 쟤들 여기 오는 겁니까?”
“아니, 오늘은 그냥 견학만 하는 거지. 쟤들 3호점 주방에 세울 거거든.”
갑자기 실망스러운 표정이 뒤따랐다.
그걸 본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사람 부족해?”
“그건 아닌데, 한 번씩 주문이 몰릴 때가 있어서요. 좀 여유가 없다고나 할까?”
“일단 직원 모집은 계속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아직은 버틸 만하잖아?”
“그야 이사님들이 도와주니까 그렇기는 한데요. 조금 간당간당한 느낌이 있거든요.”
실제로 창주 형은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육수 작업을 같이 했고, 맛과 위생까지 철저하게 확인하고 갔다.
또 현우 형은 적으면 세 번, 많으면 네 번씩 와서 염지 작업을 도와줬다.
혁기 형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렀고, 반대로 덕수 형은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주문량이 많기도 하지만 종류가 너무 다양했기 때문이다.
“일단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으면 데려와. 면접 보고 괜찮으면 고용할 거니까.”
“옙! 알겠습니다.”
그때 인정둥이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형, 이거 견학 맞아요?”
“그럼?”
“아니… 그냥 학대 같은데요? 꼭 군대에서 작업하는 느낌이 드는데…….”
강인우가 투덜대는데, 강형우가 피식 웃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고, 일하는 거 다 비슷하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닭 왔다. 닭 받아라.”
마침 차인철이 창고 문을 열었고, 그 너머로 거래처 탑차 기사가 보였다.
뒷문을 여는데, 플라스틱 박스가 한 차 가득이었다.
“헐.”
“뭘 헐이냐? 저거 한 박스가 열 마리니까, 사십 박스만 꺼내면 되겠네. 자, 인정둥이 출동!”
강형우는 웃으며 두 동생의 등짝을 후려쳤다.
확실히 몸이 힘들면 잔머리 굴릴 시간도 없었다.
***
“이모 꿀맛!”
“저 밥 한 공기 더 줘요.”
인정둥이가 정신없이 반찬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침도 못 먹고 거의 두 시간을 개고생했으니 지칠 만도 하겠지.
물론 강형우도 배고픈 건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차를 한 대 사긴 사야겠어.”
평소에 이모들 식당에 올 때, 차인철과 함께 나왔다. 냉동 탑차에 돈가스와 육수, 김치찌개를 실어 와야 했던 것이다.
해서 차에 자리가 없어 두 동생은 그냥 택시 타고 오라고 했다. 둘이 합쳐서 사천 원이니 비싼 건 아닌데, 계속 이럴 수는 없었으니까.
“근데 형. 매일이래요?”
“어. 거의.”
“우와~”
“우와는 무슨 우와냐? 아직 오늘 일정 4분의 1밖에 소화 못 했는데.”
강형우가 피식 웃는데, 인정둥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순이 이모가 밥 퍼주기까지 아예 멈춰 버린 것이다.
그때 강정우가 말했다.
“형은 사람도 아닌 듯.”
“그럼?”
“로봇이죠. 로봇. 일하는 기계. 저 먼 미래 2049년에서 온 밥하는 터미네이터.”
하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게다가 공지혜가 빵 하고 터지니, 따지지도 못하겠더라.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