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207화 이렇게 해보자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옙, 사장님. 시키는 대로 밥이나 더 먹겠습니다.”
강정우가 그렇게 말하며 찌개 냄비를 끌어당겼다. 이미 강인우랑 사인을 맞췄는지 남은 김치찌개에 밥을 넣고 비비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걸 보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인정둥이 둘이서 밥만 다섯 공기를 비웠으니까.
식사가 끝나고 다같이 정리를 마치고, 강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였다.
이제 이모들이 식사하고 쉴 시간이었으니, 2호점으로 넘어가야 했다.
강형우와 공지혜는 어제 매상과 현금을 챙겼고, 필요한 물품들을 확인했다.
화장실용 휴지가 다 떨어져 간다더라.
이건 사무실 창고에서 가져오면 되니, 차인철한테 부탁하면 될 것 같았다.
또, 와이파이 공유기가 말썽인지 자주 끊긴다고 했다.
인터넷 기사를 부르고, 안 되면 새 거 하나를 살 생각이었다.
거의 4년을 썼으니 고장 날 때도 됐겠지. 그래서 폰으로 검색해 보니 요즘에는 안테나 3개짜리가 제일 잘나간다고 나와 있었다.
강형우는 그렇게 메모를 한 뒤, 인정둥이를 불렀다.
“이건 앞으로 너희 둘이서 해야 할 일이야.”
“예? 왜요?”
“집이 가깝잖아.”
“헐.”
인정둥이가 어이없어하는데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공지혜가 맡은 게 너무 많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회사로 같이 출근하지. 또 이모들 식당 와서 챙기고 2호점으로 움직인다. 여기서도 전반적으로 확인할 걸 다 한 다음에야 3호점으로 가는 것이다.
이후 밤 10시까지 김밥 만지다가 퇴근.
아무리 사장 마누라(?)라지만 이건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묵묵히 몇 년 동안 하고 있으니, 너무 미안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능하면 인정둥이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으면 해서였다. 또, 순이 이모랑 오래 일했기에 친하기도 했었고 이 일을 맡기기에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내려와서 확인할 거 한 다음에, 10시까지 3호점으로 출근해.”
“형, 너무 빡신데요?”
강인우가 한숨을 내쉬자 다른 조건을 내세웠다.
“아니면, 7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아, 아닙니다. 형님. 여기는 저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목숨 걸고 할 테니, 꼭 맡겨주십시오.”
역시나 눈치 빠른 강정우가 잽싸게 대답했다.
결국 강인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까도 겪었으니 이게 훨씬 편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럼 내일부터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려운 거 있으면 전화하면 될 거야.”
강형우는 씨익 웃으며 일거리 하나를 넘겼다.
사실 그냥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이 두 녀석은 새벽까지 게임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그게 곧 지각으로 이어지겠지.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지성분식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이모들 식당과 인성식품까지 치면 거의 40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사장 동생이라고 특혜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절대 안 된다.
오히려 너무 고생한다고 느끼게 해야 돈이든 뭐든 더 챙겨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작은 불만이, 불화를 만든다고 했다. 쌓이고 쌓이면 끝내 터지게 되고 곧 장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이미 몇 가지 기준을 새웠다.
***
“끄응.”
인정둥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걸 본 홍성구가 피식 웃어니 소매를 걷었다.
“음식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 둘은 쉬고 있어.”
“감사합니다.”
“형님.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 아욱.”
인정둥이가 뒤통수를 만지며 돌아보니, 강형우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감사는 개뿔! 성구가 주방장이거든?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주제에 고참을 부려먹으려고 해?”
“아뇨. 그게 아니라… 저희는 하늘 같으신 선배님께서 쉬라고 해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강인우가 변명하자 강정우도 덧붙였다.
“형, 솔직히 조금 쉴 때도 됐잖아요. 새벽부터 얼마나 힘들었는데.”
동시에 인정둥이는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게 연기라는 건 강형우도 잘 알았다.
사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인성식품으로 출근, 나름 열심히 일했다.
이모들 식당에서 밥 먹고, 2호점 점심 장사까지 도왔다. 그리고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마자 3호점으로 넘어와 내일 오픈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쉬고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때였다.
이때까지 강형우가 재촉해서 잠시도 쉬지 못했으니, 저런 투정이 당연할 터.
하지만 엄살을 봐줘선 안 된다.
“너희 둘만 힘드냐? 나랑 지혜는? 그리고 성구도 놀았어?”
홍성구는 혼자 점심부터 나와서 하나하나 해치우는 중이었다.
성실함의 대명사답게 바닥 청소도 끝냈고, 손님들한테 나가는 그릇까지 한 번 더 닦았으며, 가게 안팎으로 쓰레기까지 전부 내놨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뻐하지 않겠는가?
“내가 쉬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니야. 힘들면 좀 쉬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성구가 음식 한다고 하면, 말이라도 저희가 돕겠습니다 해야지. 쉬란다고 넙죽 쉬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냐?”
“아!”
“아무리 친해도, 성구가 착해서 쉬라고 해도, 눈치 정도는 봐야 될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인정둥이가 순순히 사과를 하니, 강형우도 더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성구야, 니가 애들 좀 잘 챙겨줘라. 말년 병장 생활하다가 다시 사회 이등병이 됐으니까 잘 몰라.”
“하하, 저도 처음에 많이 그랬잖아요. 어리버리했고요.”
“뭐, 그래도 눈치 없이 대놓고 쉬겠습니다 하진 않았지.”
“에이. 뭐…….”
홍성구가 멋쩍게 웃었다.
강형우는 인정둥이를 보면서 말했다.
“잘 들어. 여기 성구가 주방장이야. 내가 없으면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
“옙.”
“알겠습니다.”
인정둥이는 부대 중대장한테 그러는 것처럼 홍성구한테 경례를 했다.
이제 22살. 아직 철없는 나이었으니,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몰랐다.
물론 내 성격을 알기에, 사장 동생이라고 거들먹거리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위계질서는 잡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강형우가 뭐라 말하려는데, 가게 문이 열렸다.
금씨 삼남매와 이기섭, 그리고 충성 맹세를 한 정문창과 김진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이다.
강형우는 먼저 인정둥이를 소개시켰다.
설비를 제외하고 우리 가게 막내라면서, 주방 일을 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동시에 단단히 일러두었다.
“일할 때만큼은 내 동생이라 생각하지 마! 그냥 가게 선배라고 생각하고 서로 존칭을 쓰도록.”
이래놔도 금새 친해지면 서로 말놓고 지내겠지.
그걸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는 필요했다.
강형우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일단 우리 식사부터 하자. 너희들 뭐 먹고 싶냐?”
“그러니까, 동선 정리가 필요하다 이거지?”
“예. 이상하게 자꾸 부딪히는 게 있더라고요.”
“오케이.”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금 내용을 메모했다.
안 그래도 미리 생각해 본 바가 있었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강형우는 노트북을 켜서 두루캅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이게 우리 가게 방범 시스템이거든. 여기 보면 녹화가 다 되어 있어. 보자, 저번 주 금요일이었으니까.”
녹화 동영상을 빠른 속도로 실행시켰는데, 강형우도 화들짝 놀랐다.
가게 안에 사람들이 버글버글거렸다. 거의 빈틈이 없었고 직원들도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두세 테이블이 동시에 나가고, 테이블 치우자마자 손님들로 채워졌다.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봤음에도 거의 풀타임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우와! 사장님 대박.”
“어?”
당황해하는데 설비가 모니터 한쪽을 가리켰다.
바로 주방 메인, 강형우가 있는 자리였다.
“빨리 돌리기 하는데, 사장님만 모습이 안 보여요. 진짜 무협 영화 같은데요?”
홀 전체 움직임을 본다고 놓치고 있었는데, 진짜 그랬다.
강형우는 온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주방에서 돈가스에만 매달렸다가, 공지혜가 부르면 카운터로 갔다.
그러다 김밥 주문이 밀리면 거기 가서 다급히 김밥을 말았으며, 김진설이 그릇을 깨뜨리자 재빨리 청소도구 챙겨와서 삽시간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직후 손님 자리 치우고, 설거지거리 잔뜩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또다시 돈가스를 튀겼다.
한마디로 전천후 만능 해결사였다.
다들 그걸 보면서 놀라고 있었던 것이다.
“험험, 원래 사장이 그런 거야. 제일 바빠야 하는 게 정상이지.”
“헐, 저 일하던 호프집은 안 그랬는데.”
“원래 사장은 카운터에만 있던데요? 딱 거기서 2미터를 안 벗어나더라고요.”
김진설과 정문창이 혀를 내두르는데, 강형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망하지. 남 가게도 아니고, 자기 가게인데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지.”
“아! 그래서 망했구나.”
김진설이 피식 웃는데, 정문창도 맞장구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딱 보니까 여기하고 여기서 동선이 겹치네. 그리고 이선이가 제일 정신 없이 돌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겹쳐지다 보니 김진설이 몇 번이나 그릇을 깨먹었다.
김진설은 그럴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 일하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 거고. 그릇 몇 개 깨먹었다고 안 망하거든.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잊어버려!”
“예.”
거의 모기 지나가는 소리처럼, 죽어가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김진설의 등을 두드렸다.
“아니면 생각을 바꿔봐. 그릇 깨지면 월급에서 까면 되지. 하고 당당하게 일하라고.”
“헐, 그건 그거대로 겁나는데요?”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겁내지 말라는 거다. 그릇 얼마나 한다고.”
태연히 말했지만 식기도 나름 좋은 거 쓰고 있었다.
주혁 형이 일러준 대로, 저가의 싸구려는 전자렌지 사용 시 파손의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멜라민 같은 게 나온다고 해서 싹 바꿔 치웠던 것이다.
물론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그럴 일은 없었다.
하지만 돈 아낀다고 손님들에게 불안을 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자! 이걸 정리하자. 입구는 일우가 맡고, 여기 위쪽은 진설이가, 아래쪽은 이선이가 하면 되겠다. 각자 테이블 여덟 개씩 잡고, 급할 때만 돕는 식으로 하면 괜찮겠네.”
‘ㄷ’ 자 형태의 구조이기에 그렇게 나누면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셋이서 합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이렇게, 요럴 때는 요렇게 하자는 식으로 서로 간의 구역을 정리했던 것이다.
한 건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때 금설비가 손을 들었다.
“사장님, 김밥요. 너무 바쁜데요. 그러니까…….”
결론은 사람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단다. 공지혜가 서포트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우면 너무 헛갈린다는 것이다.
지성 김밥, 참치 김밥, 김치 김밥, 야채 김밥, 돈가스 김밥.
그냥 이렇게만 주문받아도 머리가 빙빙 도는데, 어떤 건 네 줄, 어떤 건 여섯 줄 이렇게 들어오면 환장하겠단다.
역시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일에 익숙해지면 크게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설비는 알바 초보였다. 게다가 공지혜가 하루종일 붙어 있을 수도 없었다.
“일단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이렇게 하자. 바쁘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홍성구 주방장 아래 인정둥이가 제 몫만 해주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기섭이 라면을 전담하고 보조만 잘해준다면, 강형우가 굳이 주방에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일단 사람은 계속 구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버티자. 주말 알바도 두 명 더 구할 거고.”
강형우는 그외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 들었다.
그걸 하나하나 메모하고 정리했으며, 완벽한 오픈을 위해 많은 의견들을 나누기까지 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 회식이다!”
동시에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사기를 올리는 데는 회식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