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173화 설마가 아니야
“헐, 제가 경비원?”
“어. 네 덩치에, 그 근육에, 얼굴까지 치면… 누가 훔치러 오겠냐?”
웃으면서 말하는데, 크흐~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주혁 형이 진심이라는 거였다.
이어진 이야기가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나, 솔직히 여기 오래 있을 생각 없다.”
“그게 무슨…….”
“방금 그랬잖아. 새로운 그림을 그릴 거라고. 화폭도 준비해 놨다니까.”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전에 술김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대한민국은 썩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 썩은 재벌들이 대다수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로도, 법으로도 제재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무력을 동원한 사적인 복수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지켰으니까.
그런 상황이 유지되고 정권까지 길들인 순간, 그들은 본색을 드러내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시장을 바꾸고, 구조를 흔들어서 시스템을 틀어버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영원한 지배자였다.
신자유시대의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절대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려고 많은 국민들을 쥐어짜고 구렁텅이로 밀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뜬구름 같은 말이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이해하기 힘들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술을 마셨음에도 주혁 형은 눈빛 한번 흔들리지 않았다.
일단,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겠다.
그다음 부산 시장이 목표고, 중앙 정계로 나가서 정권을 바꾸겠다고 했다.
기왕이면 공정거래위원 같은 거 해서, 부당한 일을 벌이는 놈들과 친일파 일본 재벌 놈들을 다 때려죽이겠단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면 대통령도 해보겠다고 했다.
그게 안 되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 킹메이커가 돼서라도, 평생 번 돈을 다 쓰더라도, 기필코 이 나라를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살 수 있는 그런 나라!
자신이 이룩한 것을 부당하게 뺏기지 않는 그런 사회!
마지막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단다.
정말이지, 사업 하면서 얼마나 한이 맺혔기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술김에 한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런데 지금 표정을 보니 그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없어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까 하는 거지. 덩치가 커져도 너무 커졌어.”
주혁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보니 두루 컴퍼니는 달리는 수레가 됐다고 했다. 너무도 많은 짐을 싣고 내달리다 보니 가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붙었다는 것이다.
이제 제동을 하려 해도 되지가 않을 정도란다.
“솔직히 두루 컴퍼니는 회사 규모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 아는 사람만 아는 기업이라고 할까? 사실 그런 면에서 불만들이 쌓이고 있거든.”
수많은 먹거리 중에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었다.
분식집에 납품되는 돈가스라든가, PC방에서 먹는 햄버거류, 또 술집에서 나오는 손이 많이 가는 안주류 같은 것들 상당수가 제품화되어서 납품된다는 것이다.
또 휴게소 전용 제품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뚝배기 불고기, 즉석 갈비탕 같은 것도 있었고 심지어 된장찌개도 팩으로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 그 많은 제품들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두루 컴퍼니 같은 회사들이 만들어서 제공한다.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기술 개발로 맛을 유지하고, 아낀 광고비로 영업을 해서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잘 풀리면 대기업을 통해 일반 시장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정확히 집계는 안 되지만 대략 2, 30조 시장이라고 보거든. 우리가 파는 건 일부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특히 PC방, 노래방, 만화카페 같은 경우,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했다고 했다.
특성화에 맞게 독보적인 제품들을 개발했기에 남들이 따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까지도 있단다.
“사실 우리 회사 규모 정도면 슬슬 양지로 나가도 이상하지가 않지. 그런데, 그러기에는 상대들이 만만치 않더라고.”
이미 몇 번이나 메이저 진출을 시도했는데, 기존의 시장 선점 기업들이 담합을 했다. 원재료 수급도 어렵게 했고, 공무원까지 포섭해 견제했다는 것이다.
“분식으로 눈을 돌린 게 그래서야. 아무래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단가가 낮아서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달려들 것 같지는 않거든. 실제로 회사도 많이 없고.”
“그건 그렇죠.”
따지면 구멍가게 취급을 받는 게, 떡볶이 튀김집이었다. 중소 규모급의 회사는 있는데 아직 대기업들이 대거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주혁 형은 그런 이야기를 한 뒤 피식 웃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해보자고 치고 받아버리면, 치킨 업종 같은 경우 프랜차이즈 한두 개는 그냥 발라 버릴 수 있거든.”
“헐.”
“왜? 못할 것 같아? 작정하고 이삼 년 준비해서 한 이천억 정도 때려 박으면, 업계 1위도 똥줄 탈 건데?”
정말이지 자신감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였다.
어쨌든 아주 그냥 같이 죽자고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단다. 본사가 운영비 제외하고 수익만 포기하면, 치킨 값을 35% 가까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순간 섬뜩했다.
또라이 기질이 넘치는 주혁 형이라면, 진짜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하면 당연히 된다는 식이니, 그게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메이저 안 해도 충분히 많이 벌 수 있어. 하지만 직원들이 원하는 걸 언제까지 눌러둘 수만은 없다는 거지.”
“그래서 화끈 오뎅을 하나의 분출구로 잡은 거군요. 분식 프랜차이즈를 일종의 테스트로…….”
주혁 형은 곧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부분이 이상하게 걸리더라.
벌써 직원들이 준비를 다 해놨단다.
아무리 평범하지 않은 회사라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혁 형이 말하는 걸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다들 의욕 폭발 직전이었다.
두루 컴퍼니 시스템상 지원금도 빵빵해 사내 벤처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사업이 성공했을 때 보상금이 어마어마하단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기회만 보고 있는 게 그래서라나?
“덕분에 조금 위태위태하긴 해. 그래서 내가 떠난 뒤가 걱정이 되더라고.”
“그냥 계속 대표로 남으면 되잖아요.”
“안 돼. 새 그림은 전혀 다른 거라서,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없어. 전부를 던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너무 단호하게 말하니 설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주혁 형이 피식 웃었다.
“전에 내가 그랬지? 나는 공격형이고, 넌 철저한 방어형이라고.”
“그러긴 했죠.”
“그리고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렵다는 말도 있잖아.”
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 말을 꺼내는 거지?
그런 의문이 머리를 스치는데, 뜬금없는 말이 들렸다.
“나도 이제 제대로 된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거지.”
“예?”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시야를 가진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자, 잠깐. 형… 설마~”
“어, 설마가 아니고 맞아. 너도 내가 점찍은 후보자들 중에 하나라는 거야.”
누가 진짜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 같았다. 원래 상식을 벗어난 스타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황당한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아니, 제가 뭘 안다고 그래요? 이제 겨우 장사 삼 년 차에 겨우 가게 두 개 있는데…….”
“야이, 병신아~ 너무 나갔어. 그리고, 오해하지 말고 들어. 누가 이 회사를 물려준대? 그리고 네가 덜렁 나 대신 대표한다고 하면, 누가 따르기나 하겠냐?”
“그야 당연하죠.”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빨리 좀 쑥쑥 크라고. 나 남은 시간 2년밖에 없어. 그 안에 회사 키우고, 우리 자회사가 돼서 실적 올려서 전문 경영인으로 들어오라는 거라고.”
주혁 형이 감정적으로 말하니, 나도 버럭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요! 아니,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왜 나냐고요!”
순간, 주혁 형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회의실 바깥을 한 번 쳐다봤다.
“솔직히 인재는 많아. 대부분 창업공신들이고, 아직 파벌 싸움도 없지.”
“그런데요?”
“그건 내가 있어서 그런 거고, 떠난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변질!
그걸 염려하는 것이다.
이건 이미 수십 차례 들었던 이야기였다.
자신의 기업 가치관은 독특하다.
일단 사람이 우선이었다.
때문에 월급도 보너스도 엄청나게 주고, 세뇌를 시킨다. 다른 어떤 회사를 가도 이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실제로도 회사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돈을 마구 퍼주고 있었다. 보유금을 늘리는 것보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두루 컴퍼니는 이례 없는 성장을 거듭했다.
직원들 스스로 일을 만들고, 시키지도 않은 개발을 했으며, 가만히 있어도 온 사방에서 정보까지 물어온단다.
마치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분열을 거듭하는 세포들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게 암세포가 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제대로 된 시야를 가진 인재가 컨트롤하지 않으면, 오히려 회사를 죽여 버리게 된다나?
주혁 형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중요한 건, 이거야. 가치관이지. 능력은 최소한의 검증만 되면 돼.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라고. 괜히 비인부전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야.”
주혁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확인한 다음에, 결론을 내려주라. 단 올해가 가기 전에.”
“아!”
“정신 차려. 인마!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잖아. 너도 그냥 내가 생각하는 많은 후보 중에 하나야. 그리고, 괜히 들떠서 헛소리하고 다니면…….”
주혁 형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엄지로 자기 목을 스윽 하고 그어버렸다.
한마디로 죽여 버리겠다는 소리였다.
***
“으아. 흐아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진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차라리 말이라도 하질 말던가!
“이래서 회사 차린다는 게 어렵다고 한 거구나. 그리고 살아남는 게 더 힘들다고 한 거고.”
강형우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면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번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회사를 차린다. 애초의 목적은, 지성분식 3호점까지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원 때문이었다.
여기에 창주 형이 불을 질렀다.
할 거면 같이 하잖다. 어차피 자기들도 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
여기에 혁기 형과 덕수 형, 현우 형이 가세했다.
결국 회사는 네 종류의 음식점과 제휴해서 수익을 남기는 구조로 차리기로 했다.
일단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당한 사무실도 얻었고, 현재 공사 중에 있었으니까.
문제는 창주 형의 계약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적인 부분과 겹쳐서 법적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강형우는 다시 한번 이전 계약서를 살폈다.
화끈 오뎅은, 두루 컴퍼니와의 계약 주체로서 비밀을 준수할 의무를 가진다.
제일 중요한 건, 맛!
때문에 음식 레시피와 양념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해야 했다. 결국 오뎅 육수와 그 비율이 최상위에 위치한 기업 비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육수를 만들어 창주 형한테 납품을 한다?
그건 고소당하겠다는 소리였다. 두루 컴퍼니 법무팀에서 제대로 걸어버리면 바로 회사 망하는 것이다.
주혁이 형이 그랬다.
이중 계약에 기밀 유지 조건을 위반한 것이고, 신뢰 관계까지 저버린 행위라고.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그 이후, 주혁 형이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협박을 날렸다.
바로 손해보상 청구였다.
계약 해지야 위약금 받고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명한 순간 효력이 발생했으니, 그 이후 두루 컴퍼니에서 투자한 비용을 청구해도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파기로 인한 손해라나 뭐라나?
사실 법을 잘 몰라서 그게 맞는가 싶었는데, 주혁 형이 무조건 맞다고 하더라.
여차하면 진짜 그렇게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아니지만, 회사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나?
“하아~ 돌아버리겠네.”
주혁 형이 말하길,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조정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이거라고 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새로운 계약서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