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74화 (174/251)

# 174

174화 너 해고

조건은 간단했다.

정확한 맛을 내는 레시피를 알려달라. 오뎅 육수부터, 떡볶이 양념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여기까지는 큰 문제는 없었다.

정말 중요한 건, 마지막 조건이었다.

강형우가 직접 두루 컴퍼니 직원에게 음식 하는 과정을 전수하란다. 김창주는 손대중으로 양념하고, 자신의 혀가 기억하는 맛으로 마무리하기에 제대로 된 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이게 두루 컴퍼니가 정확한 맛을 내지 못한 이유였다. 혀를 뽑아서 정밀분석을 할 수 없었기에 생긴 오차들이었던 거다.

어쨌든 강형우는 버럭 했다.

사고 친 사람은 창주 형인데… 내가 왜?

그렇게 따졌다가 주혁 형한테 욕만 바가지로 퍼먹었다.

결론은 대표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단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회사를 차렸냐는 것이다.

강형우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자!”

***

“사장님,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창주 형이 평소와 다르게 공손하게 말했다. 장난기가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느낌이 쎄~ 했다.

이상하게 속는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미묘하게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주혁 형과 창주 형이 짜고 일을 벌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들었다.

어쨌든 강형우는 계약 조건대로 하기로 했다. 사흘 동안 화끈 오뎅에서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으로 퉁 치기로 한 것이다.

그 컨설팅 의뢰 대금이 무려 사천만 원이었다.

딱 위약금과 같은 액수.

따지면 강형우의 인건비 플러스, 화끈 오뎅의 노하우 가격인 셈이었다.

그렇게 치면 확실히 부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액수가 너무 큰 것 같기도 했고, 해결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진짜 일이 희한하게 되네. 문제는… 아오! 머리야.”

주혁 형이 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너도 후계자 중에 한 명이란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지난 삼 년 동안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키운 회사를 어찌 아무에게나 물려주겠는가?

결론은, 뜻이 맞고 자신의 가치관을 이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사실 강형우는 그 말뜻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건 무림을 살다 간 장백호의 기억 때문이었다. 단순히 말의 뜻만이 아닌 경험들이 그 속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주혁 형한테 세뇌를 당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회사를 차리는 게 맞다고 느껴졌다.

시작은 아마 최저임금 때부터였을 거다.

이후 하나하나 배워 가면서 공부하다가, 두루 컴퍼니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또, 분석이 형이나 평석이 형이 알려준 것도 있었고 나름 인터넷 자료를 뒤지기도 했다.

특히 주혁 형은, 술 좀 먹이면 그런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원래 두루 컴퍼니는 다 같이 두루두루 잘살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이름 그대로, 직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후 알아갈수록 여기에 빠지고 말았고, 이런 식으로 회사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지성분식 식구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게 된 게 그래서였다.

거기에 사대보험 같은 걸 하려고 하니,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어려웠다. 결국 사업자 등록을 내고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그때 주혁 형과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 회사 이름이 뭐냐?”

“인성 식품인데요?”

“왜 그렇게 지었는데?”

“그게…….”

주혁 형이 묻는데, 바로 대답하기가 민망했다.

지성분식의 경우, ‘지성이면 감천이다’에서 따온 거였다.

그 이름 그대로 지성 식품으로 하려고 했는데, 사총사 형들이 딴지를 걸더라.

아무리 네가 사장이지만, 분식집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어디 있냐고 했다.

그러면서 화끈 식품은 어떠냐?

아니다, 태성 식품도 좋다.

글쎄, 형님 식품이 정감 있고 좋은데?

야, 우리 다 같이 하니까 우리 식품으로 하자.

이렇게 싸움의 원인(?)이 됐던 것이다.

해서 서로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는데, 문득 인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인성(人誠).

사람의 정성, 혹은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여기에 인성이 된 사람만 받겠다는 뜻도 있었다.

동시에 다들 김민석을 떠올렸다.

주변 사람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누구보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진짜 개과천선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모든 일에 열과 성의를 다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네 형들이 나 다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했다.

농담 삼아 덕수 형이 그러더라. 자기가 딸만 있었어도 사위 삼았을 거라고.

순간 덕수 형 닮은 여자가 떠올랐다. 너무도 끔찍한 얼굴이 상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 대가는 처절한 응징이었다. 전에 당한 게 있어서 창주 형이 제일 먼저 멱살을 잡았고, 현우 형과 혁기 형이 등짝을 두들겨 버린 것이다.

각설하고, 회사 이름은 인성식품으로 정해졌다.

그걸 말하니 주혁 형이 그러더라.

“봐! 너랑 나랑 통하는 게 있잖아.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거야, 우리 업계가 사람 구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잖아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가치관. 이념. 혹은 신념 같은 게 같다는 거지.”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이상하게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강형우는 애써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 회사?

솔직히 무섭고 두려웠다.

또, 그 당당한 주혁이 형이 회사 때문에 매달려서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마치 너무 무거운 족쇄가 비상하는 걸 막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제안이 온다고 해도 거절하겠다고 생각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

“예? 진짜요?”

김민석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걸 본 덕수 형은 연기에 들어갔다.

“그래. 미안하다, 민석아. 아무래도 너 해고할 수밖에 없겠더라. 밥버거가 생각만큼 마진도 좋지 않고, 투자도 과하게 들어가서 너 주는 거 감당하기가 애매해.”

3호점을 차리면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이자가 무시무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원래 가게를 민석이한테 맡겼고 수익을 나누고 있었으니 그 돈마저 아쉽단다.

순간, 발끈할 줄 알았는데 김민석의 반응은 의외였다.

“하하하. 형님! 그런 일 있었으면 진작 말씀하시죠. 전 그것도 모르고. 괜히 형님한테 부담만 줬네요.”

“엉?”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가게 맡으면서 좀 부담이 되긴 하더라고요. 따지면 형님 가게고, 제가 월급 받는 게 맞는데… 형님이 저 생각해서 수익 많이 떼준 거 압니다.”

많이 떼준 정도가 아니라,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의 대부분을 주고 있었다. 사정도 사정이지만, 애가 너무 열심히 하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괜찮습니다. 그냥 다른 직원들처럼 일한 만큼만 계산해서 받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준 것만 해도 어딘데요.”

김민석이 웃으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하니, 난감해진 건 덕수 형이었다.

그때 창주 형이 덕수 형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넌 인마! 나보다 멘트 더 구리네. 연기도 못하고.”

“야! 그게 아니라…….”

덕수 형이 당황해하는데, 그걸 본 김민석은 오히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서였다.

어쨌든 장난은 실패였다.

해서 강형우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너 해고 맞아.”

“예?”

“이번에 우리가 회사 차리기로 한 건 알고 있지?”

“예. 듣기는 들었죠.”

“자, 월급 이백에 사대보험 적용. 상여금 있고, 일하는 거 봐서 종신고용해 주마. 어떻게 할래?”

그제야 김민석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갑자기 실실 쪼개더니 태도가 확 달라진 것이다.

“에이~ 형님도 참! 저 방금 해고당했잖아요. 그럼 오라는데 있을 때 잽싸게 가야죠. 애 아빠가 일 가릴 처지가 됩니까?”

“그래서 오케이?”

“옙. 언제부터, 어떻게 하면 됩니까?”

김민석이 환한 표정을 짓자, 덕수 형은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야! 너 인마, 나랑 평생 하자고 해놓고.”

“당연히 형님하고는 평생 가야죠. 근데 먹고는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헐!”

“형님도 조카 태어나면 그렇게 될걸요? 헤헤.”

그렇게 넉살을 부리자, 덕수 형도 피식 웃고 말았다.

강형우는 김민석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어쨌든 축하한다. 넌 이제 인성식품 1호 직원이야.”

“오오, 그럼 저 말고 다른 직원도 있습니까? 어떻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진심으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차차 뽑겠지만… 일단 직원은 너 하나야.”

“아, 그런가요?”

김민석은 잠시 실망하다가 뭔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주위를 돌아본 것이다.

강형우는 의심에다 확신을 찍어주었다.

“맞아. 너 빼고 다 사장!”

김민석의 얼굴의 와락 일그러졌다.

동시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일단 치울 걸 먼저 치우자고 결정을 내렸다. 형들과 의논도 했고, 그렇게 합의까지 봤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김민석을 데리고 화끈 오뎅 2호점으로 출근을 했다.

앞으로 일을 시키려면 가르쳐야 했으니까.

참고로, 원래 김민석이 운영하던 밥버거 집은 3호점에서 청소 설거지하던 선배가 맡기로 했단다.

어쨌든 그렇게 며칠 정리를 하고 첫 출근을 했는데, 또 한 명이 찾아왔다.

그런데, 맙소사…….

왜 TV에서나 보던 사람이 여기 있는 거지?

“안녕하십니까? 임경윤이라고 합니다.”

“아! 예.”

강형우가 당황해서 얼떨떨하게 대답하는데, 김민석은 더했다. 물 마시고 돌아보다가 그대로 뿜어버린 것이다.

“설마, 그… 임 셰프님?”

“하, 하하. 그게 방송 때문에… 그냥 편하게 임경윤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임경윤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안 그래도 요즘 뜨고 있는 방송 중에 그게 있었다.

중화요리 신성을 찾아라!

제목은 좀 유치했지만 의외로 인기가 많았다. 예능 형식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식을 소개했고, 혼밥 시대를 겨냥한 요리법도 많이 나와서였다.

원래 삶의 달인이란 방송에서 중식 사대문파인가 뭔가를 띄워 버렸다. 덕분에 크게 이슈가 됐고, 당시 그분들을 모시고 여러 방송을 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청률이 나오다 보니 일부 방송국 놈들이 이상한 콘셉트를 만들었다.

제자들끼리 한 번 대결시켜 보잖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중화요리 신성을 찾아라!’였는데 임경윤은 나와서 초반에 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원래부터 중식 요리사로 유명했고, 방송 활동도 많이 하고 있어서 지명도에서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겨루기에는 나이도 좀 있었고, 경력도 이미 10년 이상 앞서 있었다.

해서 논란이 생기자 한 달 전에 자진 하차를 한 상황이었다.

그랬는데, 그런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강형우는 혹시 방송 촬영이 아닌가 싶어서 재빨리 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보이는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임경윤이 말했다.

“강주혁 실장님 부탁받고 왔습니다.”

“예? 그럼…….”

강형우는 설마 싶었다. 그런데 임경윤이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맞습니다. 두루 컴퍼니 본사를 대표해서, 이렇게 배우러 오게 됐습니다. 당분간 잘 부탁드립니다.”

175

175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이건 반칙이다.

아니, 동네 떡볶이 집 육수 알아내려고 유명 셰프를 부르다니, 진짜 주혁 형은 해도 해도 정말 너무했다.

사실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몇몇 조건을 바꾸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니 사흘 동안 모든 걸 알려주겠다. 물론 감추는 거 하나도 없이, 우리 직원하고 똑같이 교육 시키겠다고 했다.

양념 비율도, 육수 조합 방식도 빼놓지 않겠다.

메모를 해도 좋고 동영상 찍어가도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시간을 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왜냐?

정말 할 일이 정말 많아서였다.

일단, 회사는 공사 중이었고 3호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주혁 형이 준 과제도 하나 남아 있었고 그 외에도 처리할 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공부할 게 많았다.

이번 계약(?) 일을 겪으면서 회사 만드는 게 장난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냥 뚝딱 차려서 육수나 요리 재료 납품하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법도 알아야 하고, 회사의 시스템도 배워 나가야 했다.

회계 장부도 어느 정도 볼 줄 알아야 했으며, 거래처 관리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당연하게도 주혁 형은 흔쾌히 허락해 줬다.

그랬는데, 이런 꼼수(?)를 쓰다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임경윤이 다시 말했다.

“편하게 임경윤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예? 선생님이요?”

딱 봐도 열 살 이상은 많아 보였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니,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제가 배우는 입장이니 당연한 겁니다. 실제로 본사에서도 마찬가지인걸요.”

“아!”

병신같이 까먹고 있었다.

전에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지우 형수가 말하길 임경윤이란 유명 셰프가 황룡 본점에서 요리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돌급의 인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열정이 있어, 주방에 서는 걸 빼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CCTV 이야기도 나왔고, 유투브하고 연결해서 수익을 내보겠다는 사업도 구상 중이라고도 들었다.

어쨌든, 그것 때문에 두루 캅을 알게 되었다. 가게 전체에 CCTV를 달고 보안 관련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그건 본점과 3호점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미친년 싸대기 사건이 잘 해결되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그럼 뭐부터 하면 됩니까?”

“예?”

“배우러 왔으니 뭐라도 좋습니다. 저, 설거지도 잘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거든요.”

임경윤이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오니,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결국 강형우는 속성 코스를 밟기로 했다.

김민석이 죽어나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일종의 자존심 싸움 같은 거였으니까.

***

자존심은 개뿔!

사람이 이렇게 좋으니, 그런 감정조차 생기지 않았다.

분명 인터넷 찌라시에는 이런 게 있었다.

임경윤 건방지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와서 싸가지가 없더라.

항상 자기 일만 끝나면 여자 꼬시러 다닌다던데.

등등의 악평들이 의외로 많았었다.

그런데 왜인걸?

세상이 이렇게 바른 사람도 있나 싶을 정도였다. 열과 성을 다해서 배웠고, 그러면서도 선생님이란 말을 빼놓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이 사람의 겸손함에 끌렸다. 그래서 홀리듯이 비법을 가르쳐 주고 말았다.

“아! 그래서 같은 양을 써서 조리했는데도 맛이 달랐던 거군요.”

“예. 그런 거죠.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원물 재료 자체가 다르니까요.”

분명 디포리 한 줌을 넣은 건 맞았다.

하지만 임경윤과 김민석이 우린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다.

이건 창주 형의 노하우였다.

화끈 오뎅은 디포리가 가장 맛을 내는 계절에 대량으로 매입한다. 이걸 잘 아는 곳에 부탁해 해풍 건조를 시켰고, 무려 1년 치를 한꺼번에 사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는 창고에 보관해서 쓴다.

그걸 모르고 그냥 디포리를 사서 쓰면 당연히 맛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루 컴퍼니가 제대로 된 맛을 내는 데 실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홍합도 방식이 다르죠. 보통은 신선한 해물을 쓰는 게 좋다고 하는데, 오히려 한 번 건조시킨 게 맛이 더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도 창주 형과 자신만이 아는 노하우였다.

육수를 우리기 전, 끓는 물에 가볍게 데치는 것도 그래서였다.

강형우는 이렇게 끓인 멸치 육수와 홍합 육수를 맛보게 했다.

“아~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하나하나는 거의 미묘하게 같은데, 섞이니까 느낌이 다르네요.”

“예. 그래서 세 가지 육수를 따로따로 우려서 확인한 다음에 섞는 겁니다.”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김민석의 뒤통수를 두들겼다.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였다.

아무리 맛 구별이 어렵다고 하지만, 종이컵으로 무려 세 컵씩이나 마시는 건 뭐란 말인가?

게다가 분명히 짜다고 이야기했다. 그걸 잊어버렸는지 냉수를 찾았단 것이다.

강형우는 또다시 다음 코스를 설명했다.

마지막 해물 육수까지 우린 뒤, 세 육수를 섞으면 그제야 화끈 오뎅의 맛이 나온다. 응축된 감칠맛이 터지면서 침샘이 폭발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매운맛이 추가였다.

다행히 들은 게 있었는지 임경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청양고추에서 고추씨만을 따로 빼서 이걸로 매운맛을 낸다.

여기에 홍시를 으깨서 붉은 색상을 내고, 호박을 우려서 단맛과 매운맛의 벨런스를 잡는다.

“확실히 심오하네요. 육수와 떡볶이 양념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음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경윤은 그렇게 말한 뒤, 바로 메모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확실히 가르칠 맛이 생기더라.

어쩌면 주혁 형이 그래서 날 갈군 게 그래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강형우도 마냥 가르쳐 주기만 한 게 아니었다.

치이이이익.

끓는 기름이 고추 튀김이 들어가면서 기포가 올라왔다.

잠시 후, 튀김을 건진 강형우는 단면을 잘라 두 사람한테 건네줬다.

맛을 보라는 뜻이었다.

임경윤은 심호흡을 하더니, 고추 튀김을 입으로 가져갔다.

파사사삭. 파삭.

갓 튀겨서 기름 뺀 거라 그런지 정말 고소했다. 게다가 씹는 식감이 보통 수준을 넘었던 것이다.

“선생님,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튀김 옷 사이에서 약간의 저항감 같은 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휴우~ 어렵네요.”

임경윤은 몇 번이나 튀김을 맛보았음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임 셰프님은 탕수육 어떻게 튀기나요? 제가 봤을 때 튀김 식감은 비슷한 것 같은데?”

“하하하,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저희는 식용유를 섞어서 기포를 만들거든요. 그걸 두 번 튀기면, 온도 때문에 반죽의 기름이 흘러나옵니다. 그 공간 때문에 바삭하게 되는 거죠.”

“아, 저도 들어본 바가 있네요.”

“그 외에도 전분 차이이기도 하고요.”

임경윤은 자신이 아는 중식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표현되지 못한 것들까지도 재밌게 풀어줬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강형우도 얻는 것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고기 튀김에 대한 여러 가지도 배울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또 있었다.

임경윤은 중식 세프이기도 하지만, 주방을 노련하게 운영하기도 했다. 팀으로 나와서 경연을 하는 데 짧은 시간에 여러 개의 요리를 동시에 마무리했던 것이다.

그건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 단위로, 분 단위로 계산하는 겁니다. 지금 요리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수시로 살피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때문에 주방장은 모든 코스를 다 거치고 올라와야 한단다.

우선 면 삶는 걸로 초 단위의 시간을 몸에 익힌다.

그런 뒤, 튀김부터 시작해 찜, 조림, 볶음의 순서로 완벽히 배우고 나서야 장급의 셰프가 될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강형우는 두루 컴퍼니에 대해 물었다.

아쉬운 건, 임경윤이 아는 부분이 황룡에 한정되어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외에도 도움이 되는 게 많아서 시간 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튀김은 어떻게 이렇게 바삭한 겁니까? 보이기에는 그냥 반죽 묻혀서 튀긴 건데요?”

임경윤은 진심으로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가볍게 웃은 강형우는 당근을 내밀었다.

“여기 튀김 표면에 묻은 거 보이죠. 그 두께로 한 번 썰어보세요.”

임경윤은 반신반의하면서 당근을 썰었다. 거의 이쑤시개 두께로 얇게 자른 다음, 반을 갈라 길이를 맞춘 것이다.

“그다음은 이겁니다.”

“예? 이건… 감자?”

“맞습니다. 이것도 같은 두께로 썰면 됩니다.”

잠시 주저하던 임경윤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머릿속으로 조리 후의 완성도를 그리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반죽에 감자 칩을 넣다니.”

임경윤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조심스럽게 칼질하기 시작했다.

강형우는 한 번 확인한 다음 김민석이 하는 걸 살폈다.

나름 칼질이 늘었지만, 아직 임경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두께가 일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렇게 만든 칩을 반죽에 넣고요. 이렇게 묻혀서 튀기면 됩니다.”

치이이익.

커다란 고추튀김이 나왔는데, 당근은 확실하게 보였다.

반대로 감자는 보이질 않았다. 반죽과 색상이 비슷했기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강형우가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왜, 감자 핫도그라고, 도깨비 방망이라 부르던 게 있었다. 토막 낸 감자를 묻혀서 튀겨낸 바로 그거 말이다.

강형우는 튀김을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시도해 봤다.

놀랍게도 튀겨진 감자가 색다른 식감을 만들었다. 반죽이 두껍지도 않은데 더 바삭했던 것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두께를 맞추지 못하면 반죽보다 먼저 타버렸고, 점성이 묽으면 아예 묻어나지도 않았었다.

때문에 창주 형하고 이걸 맞추기 위해 며칠 내내 머리를 싸매기도 했었다.

“선생님, 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중식에서도 이런 방식은 쓰질 않아요. 진짜 뭐라고 해야 할까?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느낌이랄까?”

임경윤이 진심으로 감탄하니 조금 찔렸다. 이건 길거리 스타일을 응용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불과 사흘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임경윤은 그렇게 말한 뒤, 매주 수요일은 황룡 본점에 있으니 꼭 한 번 들러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대접하겠다면서 신신당부까지 했던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그렇게 미션 하나를 마무리 지었다.

얼마 뒤, 주혁 형이 전화를 해서 알려주더라.

임경윤이 만들었고, 김상일 이사가 꼼꼼하게 맛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

“허허, 더 필요한 거 없나?”

강학희는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얼핏 보기에는 도면대로 된 것 같았다.

이 층 사무실 두 곳과 연구실은 모니터 화면으로 본 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이제 집기만 들어오면 될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일 층 창고, 아니, 이제 식품 제조실이 될 공간이었다.

강형우의 요구대로 청소용 고압 호스가 보였고, 또 천장에서 내려오는 수도 호스도 세 개나 있었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곤 바닥 공사였다. 애초에 카센터로 시작된 곳이었고, 여러 해 창고로 쓰이면서 찌든 때들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음식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해서 강학희한테 도움을 청했더니, 바닥을 20㎝만 까자더라. 그 위에 시멘트를 덮고 타일을 깔든가 몰딩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버님, 정말 완벽하네요.”

강형우가 엄지를 척 들자, 강학희가 웃었다.

“허허허, 사람이 하는 일인데 꼭 그렇게만 보지 말게. 대신 하자 수리는 다 해줄 테니까,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그렇게 최종 확인까지 끝낸 강학희는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버렸다. 아직 3호점 공사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제조실을 쳐다봤다.

여기가, 인성식품의 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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