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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131화 (131/251)

# 131

131화 여름 메뉴라

강신애가 나랑 동갑이니 올해 스물아홉이었다.

이은주는 두 살 아래 스물일곱이었다.

그런데 언니라고?

“잠깐? 신애야,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어? 뭐가?”

아직 실수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건, 강신원이나 이은주도 마찬가지였다.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네가 나이가 많은데 왜 은주가 언니가 돼?”

순간, 세 사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어버버 어버버 하면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실수야, 실수. 말이 잘못 나온 거지.”

강신애가 그렇게 말하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눈치껏 강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형, 이제 먹어도 되죠?”

“어? 어, 먹자. 퍼지면 맛없으니까.”

약간 분위기가 어색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우선은 냉짬뽕 비슷한 음식에 집중했다.

면 위에 올라간 고명은 의외로 다양했다.

초록색 호박과 오이, 핑크색 무절임과 노란색 계란지단이 보였고 그 옆에 얇게 저민 홍고추가 떠 있었다.

또, 냉채족발에 들어가는 해파리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냉면이나 밀면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다.

의외인 것은 삶은 새우였다. 보통 칵테일 새우라 불리는 것인데, 데쳐서 넣었는지 색감도 이뻤고 다섯 개나 되니 양도 적당해 보였던 것이다.

문제는 지성분식에는 없는 식재료라는 것.

강형우는 젓가락으로 고명을 옆으로 밀고 그 아래 있는 양념장을 살폈다.

색이 노란 게 된장 같기도 했지만, 향을 맡으니 단번에 알 것 같았다.

“형, 이거 땅콩소스예요?”

“어? 한 번에 맞추네?”

“제가 음식 장사가 몇 년인데… 이거 뭐뭐 섞은 거예요?”

“그게, 진도 땅콩하고 아몬드를 조금 섞고, 소금, 설탕에 식초, 양파하고 마늘, 생강도 넣어서 갈았지.”

비율을 보니 거의 땅콩이 메인이었다.

“그런데 진도 땅콩이요?”

그 질문에 강신원과 강신애가 이은주를 쳐다봤다.

“오빠, 그게요. 동생이 제주도로 여행 갔다 오면서 사온 거예요. 진도 땅콩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다면서 한 통 주더라고요.”

아니, 동생한테 선물 받은 게 왜 지성분식에 있느냐고!

진짜 그걸 묻고 싶었지만, 강형우는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일단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국물부터 마셔봐요.”

이은주의 조언에 강형우는 젓가락으로 면을 밀었다.

후루루룹~

아직 살얼음이 녹지 않아서인지, 국물 맛이 정말 시원했다.

매콤하거나 얼얼한 맛이 아닌 담백하고 진한 곰탕 같은 맛이었다. 맑고 투명해서 가벼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묵직했던 것이다.

“이제 잘 풀어서 국물 맛을 보고, 먹으면 돼요.”

이은주가 시범을 보이듯 젓가락을 움직였다.

일단 고명을 옆으로 밀고 소스를 면 중앙으로 몰았다. 거기서 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돌리더니 몇 번이나 면을 높이 들면서 섞어버렸다.

“이렇게 해야 더 맛있어요.”

이은주의 말에 강형우는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런 뒤, 국물 맛을 보니 진짜 별미였다.

담백함의 끝에 약간의 새콤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느낄 찰나에 땅콩의 고소함이 확 치고 들어왔다.

순간 감탄사가 나오려는데, 마지막에 얼얼함이 혀끝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어? 이거 진짜 신기한 맛이네요?”

강형우가 쳐다보자 강신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딱 보니까, 저 형도 처음 먹는 것 같았다. 맛을 음미하기 위해 면을 조금, 그리고 국물을 같이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독특하네요. 처음에는 백짬뽕을 시원하게 한 건 줄 알았는데, 뭐랄까? 익숙한 듯한데 못 먹어본 맛?”

“그러네. 동남아 음식 같기도 하고……”

강신원이 주저하자, 이은주가 끼어들었다.

“이게 중국식 냉면이에요. 그러니까 보통 중국집에서 파는 냉면은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양념장을 넣잖아요. 매콤하고 새콤하고, 시원하게요.”

“어. 그렇지.”

“그게 변형된 거거든요. 원래 중국식 냉면은, 집안마다 차이가 있는데 오히려 육수가 담백한 걸 선호해요.”

이은주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콩국수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했다. 소금 간을 해서 콩물의 고소한 맛을 올리듯이, 짠맛을 추가해 육수를 진하고 담백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심심해서 땅콩소스로 변화를 줬다고 했다. 한국식으로 매콤한 양념장을 많이 넣게 되면 육수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우니까.

엄밀히 따지면 중국식 냉면과, 일반 중국집 냉면하고는 다른 요리란다.

“아~ 그래서 일반 중국집 냉면이 밀면하고 비슷하게 느껴졌구나.”

밀면집도 가게마다 다양한 특색이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밀면집들은 매콤하고 새콤한 맛을 유독 강조했다.

식탁에 새콤한 식초와 겨자가 있는 게 그래서였다. 게다가 꼭 넣어 먹어야 제맛을 느낀다고 강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양념장 추가에 식초만 넣는 걸 좋아했다.

겨자 맛이 강한 터라 다른 맛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그런데, 중국집에서 배달 냉면을 시키면 밀면하고 거의 느낌이 비슷했다.

맵고 달고 시원하고.

그냥 차갑고 자극적인 맛으로 먹는다는 기분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중국식 냉면은 달랐다.

“확실히 맛있네. 그런데 우리 가게에서 팔기는 좀 그렇겠다. 분식집이잖아.”

“왜요?”

“아니, 그게 순이 이모가, 여름 메뉴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

어제 회식에서 잠시 그 말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노는 자리에서 일 이야기 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결국 몇 마디가 오간 걸로 끝이 났다.

“그래서 오늘 시원한 게 땡겼구나.”

이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니 강신원과 강신애도 자동이었다.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강석이의 말도 있었으니 더욱 궁금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더 묻기가 참 애매했다.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해치운 강신애가 약속이 있다고 먼저 일어나 버렸으니까.

그 직후, 이은주도 설거지만 후다닥 하더니 지성분식을 빠져나갔다.

결국 강신원과 둘만 남은 상황.

“형. 그런데 아까…….”

“미안하다, 형우야. 나도 좀 혼란스럽거든.”

“예?”

“나중에 정리가 되면 이야기해 줄게.”

신원이 형이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반칙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까 더는 묻기가 어렵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웃고 있는 것도 같았다.

***

잠시 시간을 내서 기차역까지만 강석이를 바래다주기로 했다. 부산역에서 대전까지, 거기서 버스타고 논산으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외인 것은 김복희 여사님이 나오질 않았다는 거다.

혼자 가도 된다고 극구 말렸다나?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괜찮거든요? 오히려 배웅한다고 나오면 좀 그래요.”

이강석은 짧게 자른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어머니한테 씩씩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강형우도 그랬다.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기분이 참 미묘하더라.

두렵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했으며 수시로 감정이 왔다 갔다 했으니까.

물론 요즘은 내가 갈 때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달 전부터 시작한,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군대가 생각한 것보다 빡빡하지 않다고 보는 애들이 많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건 그냥 예능이었다. 전부 개 뻥인 것이다.

실제로 방송에서 나오는 것처럼 했다가는 맞아 죽는다.

점호 때 웃는다고 이빨 보이면, 그 이빨이 날아가는 곳이 군대였으니까.

“하여간 잘 다녀오고. 휴가 나오면 연락해라. 형이 맛있는 거 많이 사주마.”

“진짜죠? 약속 지켜요?”

“대신 몸 성히 다녀오고.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무조건 건강히 제대한다고만 생각해.”

강형우가 진심으로 말했는데, 이강석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정우하고 인우가 그러더라고요. 형이 잔소리하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헐, 걔들이 고생을 덜 해봐서 그래. 군대는 항상 상상 이상이라고.”

“눼에, 눼에~ 알겠습니다요.”

“시간 된 것 같은데 확인해!”

이강석은 습관적으로 폰을 찾다가 아차 하더니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일요일 저녁에 잠시 시간 내서 선물한 건데, 좀 놀랍기는 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폰을 산 뒤로 손목시계를 차본 적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저게 습관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강형우는 막냇동생을 보내는 기분으로 이강석을 배웅했다.

***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폭립은 진짜 강형우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본격적으로 판매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아예 점심시간에 다 팔려 버렸다. 저녁때 손님들이 찾아와도 팔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서둘러서 테스트를 진행했고 곧 2호점에서도 30인분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래서 10인분을 저녁 시간으로 돌렸는데도 7시 전에 전부 다 나가 버렸다.

확실히 그 때문인지 손님이 많이 늘었다.

오픈했을 때와 이벤트했을 때 수준으로 가게가 북적북적거렸으니까.

강형우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다급히 대책을 세웠다. 본점에서 옮긴 진공 포장기와 수비드 기계를 다시 가져다 놓고, 아예 용량이 넉넉한 새 기계를 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게 35인분 정도였다.

여기에 본점에서도 20인분 정도를 준비할 수 있게 해서 여유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불과 한 달도 안 되서, 찾는 손님들이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허망하다고나 할까?

“원인을 모르겠네.”

지금은 하루 30인분 정도가 꾸준히 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맞게 조절을 해서 폐기 수량을 줄였기에 큰 손해는 없는 상황.

또, 신원이 형과 남은 걸 가지고 몇 가지 실험도 해보고 있었다.

어쨌든, 매출은 잠깐의 호황 이전으로 돌아갔고 분위기도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매상이 폭발하면서 몇 가지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테이블 회전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미묘하게 틀어졌던 거다.

점심 피크 때는 빠르면 한 시간에 테이블이 세 번 돌았다.

손님 들어오고, 음식 나오고, 먹고 나가서 치우는 데까지 20분이 안 걸렸다. 그랬기에 매출이 쑥쑥 올라가고 있었는데, 폭립 때문에 두 테이블이 어려워졌던 것이다.

다행인 건, 단가가 높아졌다는 것 정도?

해서 약간의 조절을 하기는 했다.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로 전체 테이블 수의 삼분의 일 이상을 채우지 않았다. 여섯 접시를 내고, 그 손님들이 나갈 때까지는 폭립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일반인들이 모르는 장사꾼들만의 방식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손님들이 찾지 않는 건, 내가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당분간 폭립에 대한 건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고민해도 답이 없는 상황, 거기에만 끙끙대기에는 당장 더 급한 게 있었던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 폭염이 시작되었으니까.

해서 고민한 것이 바로 여름 메뉴였다. 중국식 냉면을 먹고 난 영향인지 갑자기 확 와닿았던 것이다.

이런 거 하나만 있어도 빠지는 손님들을 잡을 수 있었다.

또,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접근하느냐는 건데.”

***

“흐음, 여기란 말이지?”

강형우가 찾은 곳은 서면 뒷골목에 있는 곰 라멘이었다.

전에 주혁 형한테 듣기로 부산 서면에서 처음 자리 잡은 일본식 라멘 집이었다. 1세대 일본식 퓨전 라멘의 계보를 이으면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서면 유일의 가게라는 것이다.

현재 서면과 남포동 딱 두 곳만 운영한단다.

먹어볼 음식은 바로, 냉라멘이었다.

강형우는 12시 오픈하자마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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