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회사 하나 차리자
“형, 일단 제가 준비하라고 한 건 다 했어요?”
“어? 아… 했어. 일단 등갈비 재료는 다 손질해 놨고, 소스 재료도 전부 다듬었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마트도 한 번 더 갔다 왔거든.”
강신원은 그렇게 말한 뒤, 주방 안쪽을 가리켰다.
역시나 이 형은 무능한 게 아니었다. 의외로 복잡할 수도 있는 일들인데 손쉽게 처리했던 것이다.
전에 강신애가 말하길, 나름 고급 인력이었단다.
단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사람이 소심해진 것일 뿐.
해서 하나씩 일을 늘리고 있었는데, 요즘은 숙련이 됐는지 속도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종일 돈가스를 두들겼을 일을, 반나절 만에 해치우곤 했던 것이다.
“오늘부터 저하고 작업 좀 해요. 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옆에서 조금 거들어주면 돼요.”
“그래. 알았어!”
손쉽게 대답해 주니 편하긴 편했다.
그만큼 믿는다는 의미였다.
“제일 먼저 뭘 할 거냐면요…….”
***
“한 달이 순식간에 가네?”
어느 순간 달력은 4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사이 강형우는 하나씩 차근차근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현재 우리 통닭은 나름 자리를 잡았다.
일단, 통닭 가격은 만삼천 원으로 맞추기로 했다. 여기에 양념을 천 원 더 받기로 했고, 한 달 정도 영업해 보면서 반응을 살피자고 결정했다.
그사이 소스 문제를 해결했다.
일단 주혁 형이 준 자료를 기반으로 양념 소스와 간장 소스를 만들어봤다.
확실히 완성도가 높았다. 기존에 파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쓸 생각이 없었다.
괜한 빚(?)이 생길까 싶어서였다.
강형우는 여기에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더 넣고, 다진 마늘의 양을 늘렸다. 소스 맛의 기준을 주고객에게 맞추기 위해서 적당히 손을 봤던 것이다.
덕분에 동네 어르신들이 너무 달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간장 소스 역시 어렵지 않았다.
지성분식에서 쓰는 맛간장을 기본으로 배합을 했더니, 더 좋은 게 나왔다.
대신 우리 통닭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일부 재료를 빼고 과정을 단순화시켰다. 필수 재료를 넣고 약한 불에 우리는 것으로 끝낼 수 있게 말이다.
그 과정을 현우 형과 준식이 형한테 가르치니 의외로 쉽게 따라 하더라.
마지막은 매운 양념이었다.
강형우는 여기서 약간의 꼼수를 부렸다.
원래 지성분식에서 쓰던 불돈가스 소스가 있었다. 사골 육수와 닭육수를 일부 섞어서 만들었는데, 시판 제품 중에 제일 비슷한 걸 찾았던 것이다.
바로 치킨 스톡이었다.
이걸 끓여서 기존의 양념과 섞고 고춧가루와 고추를 다져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만든 양념은 하루 숙성시켜 사용했다. 갓 튀긴 후라이드에 살짝 묻혀서 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강형우는 이후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장사 4주 차에 연락이 왔다.
“형우야, 고맙다.”
뜬금없이 불러내서 한다는 말이 이거였다.
“에이, 왜 그래요?”
“아냐. 요즘 정말 꿈꾸는 것처럼 살고 있어.”
두 마리 치킨 할 때도 돈은 많이 벌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피곤했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요즘은 손님들하고, 시비 한번 없다. 다들 좋은 말만 해주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이번 일로 깨달은 게 많다고 했다. 예전에는 돈 벌기 위해서 장사를 했다면, 이제는 손님들을 위해 장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례식이 와주었던 단골 아저씨들이 그랬다.
이게 예전보다 훨씬 맛있단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옛날에 먹던 어머니 손맛 비슷한 게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투리 심한 아저씨가 그랬다.
아들이, 이렇게 잘해 나가고 있으니 이제 어머니도 편해졌을 거라고.
“잘… 됐네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
“또요?”
“아니, 가게 문제가 아니고, 동네 아줌마 한 분이 선볼 생각 없느냐고 하더라고.”
순간 멍해졌다.
괜히 치킨집 문제라고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랄까?
“험험, 잘됐네요. 한 번 만나보지 그래요?”
“근데, 아줌마 딸이래. 올해 대학생이라고 그러는데…….”
“에이 그건 아니죠. 형이 서른셋인데 그러면 나이 차이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좀… 그렇죠.”
“근데 아줌마가 그렇게 안 보더라. 나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봤대.”
현우 형이 짓궂은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확실히 장난이었구나 싶더라.
그런데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는 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현우 형의 몰골은 반 시체였다. 그러다 결심을 하고, 장사 준비하면서 혈색도 좋아졌고 얼굴에 살집까지 올랐던 것이다.
그건 테스트 하면서 치킨을 무지하게 먹어서였다.
덕분에 얼굴이 조금 동글동글해졌는데, 이전보다는 동안처럼 보이기는 했다.
동시에 현우 형도 아쉬움을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친구들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주 형과 지우 누나가 그랬고, 덕수 형도 3호점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근처에 집을 알아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잘 풀리는 모양이었다.
혁기 형은 벌써 신혼 살림을 차린 상황.
어쩌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여간 돈 많이 벌어요. 그러다 착한 형수 만나서 잘 살면 되죠.”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니 덕에 요즘 살맛 난다. 게다가 입소문까지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손님 몇몇이 입구에 보이는 기름통에 대해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새 기름을 쓰는 거라고, 일부러 날짜를 적어서 내놓은 거라 했단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그 이후, 놀랍게도 치킨이 남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오히려 딱 한정 수량만 판다고 해서 9시 전에 마치는 날이 더 많아졌던 것이다.
때문에 마감조였던 박기태의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더 당겨졌다.
“두 마리 치킨, 튀겨 팔 때보다 일에 여유가 있어. 게다가 주류 판매량이 늘어나 수익이 더 좋아졌거든.”
“그래요?”
“어. 솔직히 당황스럽긴 했는데, 손님들이 그러더라고 치킨이 맛있어서 술이 더 들어간다나?”
그러면서 말하길, 그냥 치킨 튀겨서 팔면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져단다. 안주가 맛있어야 술도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는 것이다.
“뭐, 계절 탓도 있고.”
현우 형이 피식 웃는데, 강형우도 그걸 깨닫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지성분식 매출도 소폭 올라갔으니까.
“그리고 형우야, 이거.”
김현우가 뒷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설마 했는데 그게 맞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아니, 저기…….”
“창주하고 덕수가 그러더라고. 미안하고 민망해서 통장으로 보낸 거래. 그런데, 난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면서 손에 쥐어주는데 기분이 묘했다.
사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에 주혁 형이 그랬다.
걱정이 동정이 되면, 오히려 상대가 비참해진다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계산 확실한 게 더 좋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구에 실제 치킨집 컨설팅 회사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비용이 이천만 원이 넘는단다.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고 일을 맡을 경우 무려 오천만 원이나 받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강형우는 당당하게 봉투를 받았다.
그만큼 고생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볼일 다 끝났으니까 한잔해야지?”
“장사는요?”
“거의 끝났어. 마무리는 준식이가 한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게 안을 보니 손님도 두어 테이블밖에 없었다. 준식이 형이 카운터를 지키는 사이, 기태와 선아가 주방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간만에 치맥을 하기로 했다.
그 술자리에서 정당히 취기가 오르는데, 현우 형이 말했다.
“전에 창주하고, 덕수하고 다 같이 이야기한 적 있거든.”
“뭔데요?”
“회사 하나 차리자고 하더라고.”
“예에?”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현우 형이 씨익 웃었다.
“대표는 네가 하면 좋겠다!”
***
“휴우, 이제 바깥일은 당분간 하지 말자.”
강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치킨집은 너무도 큰 도전이었다.
대신 확실한 성과는 있었다.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너무도 많은 것을 공부했다. 이건 정말 돈 주고 학원 다녀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치킨은 단순하게 보면 의외로 간단했다.
생닭을 사서, 염지로 간을 하고, 반죽에 튀기면 된다.
크게 보면 세 과정이 전부였고, 조금만 알아보면 가정에서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사는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된다.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 꾸준한 판매가 가능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택하는 게 그래서였다.
실제 조리 과정을 제외하면, 신경 쓸 것이 적었다. 그 번거로움을 돈으로 사면 되니까.
그래서일까?
“너만 좋다면, 다들 OK라고 하더라고.”
며칠 전, 현우 형이 했던 말이 잊히지가 않았다.
농담으로 듣기에는 표정이 너무 진지했는데, 이미 작년부터 친구들끼리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건, 밥버거 2호점 때란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를 해보자는 건데…….”
아주 거창하게 크게 하자는 게 아니었다.
지성분식과 화끈 오뎅, 형님네 밥버거, 그리고 우리 통닭.
이걸 묶어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갖춘 회사를 차리자는 거였다.
비슷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물론 조건 같은 건 있었다.
돈 많이 벌기 위해, 막 가맹점 늘리는 식은 다들 싫다고 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딱 좋다는 것이다.
“많이 두루뭉술하기는 하네. 뜬구름 잡는 말 같기도 하고.”
솔직히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지금 당장 하자는 게 아니야. 다들 바쁘고 맡고 있는 걸 감당하는 것만으로 벅차니까. 하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같이해 보자는 거지.”
그게 형들의 의지라고 했다.
형우, 널 믿는단다.
“이거 가만 생각해 보면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겠다는 건가?”
말해놓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에구, 당분간은 내 일에만 집중하자. 회사 대표는 무슨…….”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날려 버렸다. 지금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파스타는 포기해야 하나?”
작년 이맘때, 지성분식을 살린 일등공신이 파스타였다. 떡볶이가 포함된 세트로 불티나게 팔리면서 본격적으로 돈다발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성분식은, 정병수네 가게 때문에 파스타 매출이 줄었지만 그럭저럭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2호점은 아예 곤두박질 상태였다. 음식물 쓰레기 비중의 상당수를 차지한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몇 번이나 개량을 시도했고 약간의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어떤 날은 만들어놓은 소스를 폐기하기도 했었다.
“골치 아픈데.”
강형우가 이걸로 끙끙대는데, 공지혜가 주방 안쪽의 실험실로 찾아왔다.
“오빠, 시간 됐어요.”
“그래? 벌써 장사할 시간이구나.”
참 신기한 게, 방금 전까지 풀이 죽어 있다가도 돈 벌 생각을 하니 기운이 불끈 솟았다.
강주혁이 말하길, 그게 장사 체질이란다.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음식점 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그런 게 있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손뼉을 쳤다.
그런 뒤 밖으로 나가 오픈 준비가 얼마나 됐는지 확인했다.
현재 주방장은 이은주였다.
벌써 2주나 됐는데, 정말이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었다. 오랜 경력이 말해주듯 실수 한번 없었고 가끔 맹한 행동을 하는 것 말고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대신, 이영제가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주방 보조 한 명이 더 들어왔음에도 이은주를 보조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홀에는 공지혜와 은선경, 그리고 얼마 전에 들어온 최민지가 있었다.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올해 27살, 최민지 아줌마.
이 여자가 투사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