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화 분위기로 먹는 거
현재 지성분식 본점은, 순이 이모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주방장은 홍성구였다.
이강석이 두 달 뒤 6월 18일에 군대를 가기 때문에 본인 희망대로 그렇게 조정을 했다.
게다가 다음 달 7일에 백창호도 입대를 한다.
해서 두 명을 더 충원했는데 작은 변화가 생겼다.
정은혜가 주방 보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은주에게 배운 게 적지 않다면서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저 덜렁이가 주방에 들어간다니!
솔직히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김밥 썰다가 밥을 피로 물들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가장 위험했던 건 튀김 솥을 엎을 뻔한 것이었다.
다행히 사람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그때는 진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어찌 주방에 넣을 수 있겠는가?
강형우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순이 이모한테 조언을 구했다.
돌아온 대답이 놀라웠다.
정은혜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단다. 무슨 결심이 섰는지 제대로 해보겠다고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런 의지라면 시켜봐도 괜찮을 것 같아서 허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사고(?) 치면 다시 홀로 보내겠다는 것.
그렇게 지성분식 본점은 정리가 되었다.
순이 이모가 준비를 하고, 주방은 홍성구와 이강석, 정은혜가 맡았다.
백창호와 새로 들어온 임정은이 김밥과 카운터를 번갈아 가며 맡았고, 서빙에 신입 박호성이 있었다.
그렇게 본점을 정리하는 사이, 2호점에도 사람이 늘었다.
주방장 이은주의 보조는 이영제였다.
거기에 잡일 담당 겸 주방 보조를 뽑았는데 히토미라는 일본 애였다.
고민 많이 했지만, 안 뽑을 수가 없었다.
일명 낙하산이었다.
집안 서열에서 나보다 높은 강영지가 협박을 가장한 부탁을 했던 거다.
대학 친구라나?
다행히 일도 잘하고, 한국말도 웬만큼 했고, 성격도 밝았다. 게다가 공지혜와 이은주와도 친해서 셋이서 종종 따로 만나는 것 같았다.
홀 매니저는 공지혜, 여기서 은선경이 김밥과 서빙을 했고, 마지막 한 사람이 최민지였다.
면접 때 사람이 순하고 착실해 보였다.
거기에 가산점이 있었는데, 집이 지성분식 2호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그래서 뽑았는데, 그게 실수였다.
“자, 오늘도 즐겁게 일해봅시다. 그리고 민지 씨는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예. 사장님.”
그렇게 정리한 다음 주방 뒤편으로 향했다.
신원이 형이 안쪽에 옮긴 커피머신을 작동시키고 최민지를 맞은편에 앉게 했다.
“민지 씨. 부탁이니까 제발 손님하고 싸우지 마세요.”
“저도 그러려고 했던 게 아인데, 너무하잖아요.”
“압니다. 저도 알아요. 하루 이틀 겪어본 것도 아니고, 그쪽이 말이 안 통하긴 해요. 하지만 손님이잖아요.”
“손님이 손님다워야죠. 완전 썅년들이 와서 난장을 지기는데…….”
순간, 최민지가 아차 하더니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애매하면 저를 부르라고 했잖아요.”
“사장님도 바쁘신데, 어떻게…….”
맞다.
강형우는 바깥출입(?)을 안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바빴다.
폭립과 파스타 때문이었다.
우리 통닭 일이 끝나고 여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도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그때야 팔 음식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넉넉히 다 때려 넣고 했다.
하지만 정식 메뉴로 올리려면 그래선 안 된다.
들어가는 재료들을 계량해야 하고, 원가도 줄이고, 다른 사람도 만들 수 있게 과정을 단순화시켜야 했으니까.
“민지 씨, 민지 씨는 가게 일하는 직원이에요. 손님하고 싸우면, 당장은 해결될지 모르지만, 동네 장사라는 게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만약 우리 가게가 반년만 넘었어도 제가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아요.”
이제 두 달이 조금 넘게 지난 상황이었다.
오픈발의 거품이 빠지고 있었고, 그걸 증명하듯 매출이 줄어들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단골과 뜨내기, 그리고 진상 손님이 서서히 구분되는 중이라는 거다.
해서 강형우는 어느 정도 지나면 진상을 분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일렀다.
“자, 커피 한잔하시고. 예, 천천히 드세요. 시간은 괜찮으니까.”
직접 골라서 뽑은 직원이었다.
가능하면 함께 오래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단지 지금이 고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가게가 어려워서 순이 이모가 잠시 나갔다 온 것도 강형우가 먼저 자른 게 아니었다.
월급 받기 미안해서 나간 거지.
또, 다들 열심히 해주었고 어느 순간부터 지성분식에 애착을 가졌기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아직은 일 배우는 단계니까 모르는 건 물어봐야죠. 그리고 어려운 손님 상대하는 건 제 일이에요.”
“진짜 그래도 괜찮을까요? 사장님도 마, 이야기하다 보면 속 다 디비질 낀데.”
“쿨럭, 컥.”
커피에 탄산도 없는데, 사례가 걸렸다.
강형우는 가까스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웃음을 터뜨렸다.
“민지 씨, 저 장사 3년 차예요. 진짜 별의별 손님들도 다 받아봤고, 가게에서 싸움 난 것도 많이 말렸어요. 낮에 술 안 파는 것도 그래서고요.”
팔기는 파는데, 사람 가려서 팔았다. 특히 아주머니 손님들 있을 때는 절대 낮술은 금지였다.
강형우는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하여간, 문제 생기면 저 부르세요.”
***
“그러니까, 형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죠?”
“어. 나도 백화점에서 일할 때는 여자들하고… 험험, 몇 번 파스타집을 갔는데, 부산 입맛이라 그런가? 차이를 모르겠더라고.”
강신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옆을 돌아봤다.
이은주도 비슷한 평가였다.
“중식 쪽 면 요리라면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애초에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저도요. 일본에서 편의점보다 맛나요. 보통 400엔 정도? 따지면 우리 가게, 싸요. 근데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히토미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고, 그건 이영제나 은선경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최민지만 말이 없었다.
“민지 씨, 할 이야기 없어요?”
“그게요. 제가 말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울컥하면 감정적으로 변하긴 하지만, 평소 최민지의 말투는 사근사근했다.
아마 습관적으로 나오는 사투리 때문인 것 같았다.
“편하게 하세요. 맛없다고 욕해도 좋으니까요.”
그 말에 최민지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이라. 이 동네 아지매들이 유별나서 그러는 거죠. 솔직히 내야 맛좋고, 싸고 해서 좋은데 헛바람 든 가시내들이 지랄하는 거죠.”
“예?”
당황한 건 강형우만이 아니었다.
강신원도 공지혜도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영제는 아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니까 파스타라는 게, 포크 딱 찍어가, 돌돌돌 말아가, 주디 쪼매 벌리서 오물오물하는 기라고 하데요. 젓가락으로 먹으면 천박하다고…….”
마음이 급해서인지 언어가 통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이해가 되었다.
“스테이키도 썰어야 맛이라고, 우리 가게 돈가스가 잘나가는 게 그런 것도 있어요. 육천 원짜리 경양식 아입니까. 보기도 좋고 하니, 아지매들이 좋아하는 거죠.”
확실히 이상했다.
저 나이대 사람들이 경양식이란 말을 썼던가?
게다가 이력서에는 스물일곱이라 되어 있었는데, 어째 순이 이모 초창기 느낌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진짜 순이 이모도 처음 봤을 때, 저랬었다.
괄괄하고, 욕 잘하고, 손님들하고도 서로 막말하면서 웃고.
그때는 식당 경력이 오래돼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사장하고 기 싸움하는 거였다.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를 보기 위해 과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 강형우의 성격을 알게 되자 평소대로 돌아왔다.
또, 지성분식 리모델링한 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훨씬 부드러워졌다.
강형우가 잠시 그런 생각하는데, 최민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맛이 문제가 아니고, 가격도 문제가 아이죠. 아지매들 대가리에 똥이 차가…….”
그 순간 다들 빵 터졌다.
진상 손님들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강형우는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남은 건 확인이었다.
“전 맛있어요. 친구들하고 먹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단골이자, 자체 홍보요원 박미희의 평가였다.
확실히 고3이라 그런지 가격이 우선이었다. 정말 비싸고 맛있는 건 한 달에 한 번 겨우 즐길 수 있는 사치라는 것이다.
친구들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희 어머님는 달랐다.
“호호호, 사장님도 참. 파스타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에요. 분위기로 먹는 거지.”
“예?”
“그러니까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멋진 직원이 서비스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예. 있죠. 나름 고급스러운 분위기.”
“맞아요. 여자들이 그래서 먹으러 가는 거죠. 가격이 비싸도 그만한 가치가 있거든요.”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미희 어머님은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저하고 친구들은 된장에 비빔밥이 더 좋아요. 집에서 고추장하고 참기름 넣고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파스타는 아니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어머니, 혹시 파스타집은 얼마나 자주 가시는지?”
“글쎄요? 일 년에 한 번 갈까?”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미희 어머님도 생각보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거다.
강형우가 잠시 머뭇거리는데, 어머님이 귀엽게 웃으셨다.
“호호호, 사장님. 애 둘 키우는 주부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델 자주 가요?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 와서 친구들하고 돈가스 썰어 먹으면서 기분이나 내는 거지.”
그런데, 그 말이 머리에 딱 꽂혔다. 이게 정답을 푸는 실마리 같았던 것이다.
이후 강형우는 파스타가 나가면 시킨 손님을 유심히 살폈다.
남기는 손님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반쯤 먹다가 다른 걸 주문하곤 했던 것이다.
아! 그래서 많이 남는 거구나.
강형우는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조금만 더 알아보기로 했다.
***
“하, 내가 삽질을 했구나.”
상권 조사를 할 때, 이쪽 라인만 확인했다.
파스타집은 없었고, 돈가스가 메인인 집도 딱 하나였다.
돈짱이라고 2,500원짜리 돈가스 집이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직접 만든 소스로 맛도 살린 좋은 식당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제법 있었고 상권도 달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파스타집이었다.
지성분식 반대편, 큰 도로 건너편에 무려 네 집이 경쟁하고 있었던 거다.
알아보니 강형우가 몰랐던 것도 당연했다.
메인은 스테이크였다. 그걸 전면에 내세운 전문점이었는데, 파스타와 샐러드도 팔았던 것이다.
그러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점심 특선의 경우 단돈 팔천 원에 미니 샐러드와 빵까지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 가게들은 미희 어머님 말대로였다.
외국말 좀 하게 생긴 쉐프들이 조리를 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거기에 숙련된 직원이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딱 그런 가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천 원짜리 파스타에 만족을 못 하는 거지.”
따지면 진짜 별것 아니었다.
지성분식에서 파는 게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분위기를 내지 못했던 것일 뿐.
“하아~ 왜 상권이 반이라는지 알겠네.”
이건 지성분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따지면 문제일 수 있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손님 붙잡아놓고 세뇌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문제는 버려지는 게 많다는 건데…….”
가격 올리고 샐러드와 빵을 추가할까?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주방 공간은 거의 포화 상태였고, 남은 공간도 새로 조리 기구를 넣기가 애매했다.
무엇보다, 지금이 딱 좋은 상태였다.
여기서 무리하게 일을 늘리는 건,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그럼, 파스타를 빼고 폭립을 팔면…….”
강형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고성이 들렸다.
설마 했는데, 최민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