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화 어떻게든 풀리겠지
“우리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서류 뭉치를 꺼냈다.
사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정작 필요한 건 많지 않았다.
내용의 80%가 새로운 치킨집에 대한 홍보에 가까웠다. 그 뒤에 덧붙인 부분만 조리법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이다.
김현우가 그걸 살펴보는 사이, 강형우도 고민에 빠졌다.
만이천 원과 만오천 원.
분명 삼천 원 차이였다. 아니, 무려 삼천 원이나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그 가격이 적당하다면 그 이유가 있을 터.
“그러니까, 주혁이가 만오천 원이 적정가라고 했어?”
“예. 솔직히 그 부분에선 저도 확신은 못 하고 있어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물론 생각한 바는 있었다.
분명 주혁이 형이 그랬다. 치킨집이 뭐로 돈을 버냐고.
바로 떠오른 건 배달이었다.
하지만 우리 통닭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하루 안에 전부 소진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실, 주혁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거든.”
“예? 언제요?”
“주방에 잠시 들어와서 이것저것 묻더라고.”
새 기름을 붓고, 마늘과 파를 튀겨서 향을 입히는 것부터 묻더니 왜 기름통을 밖에 내놨냐고 했다.
깨끗한 기름을 쓴다는 걸 알리기 위해 매일 날짜 표시를 해서 손님들이 볼 수 있게 한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좋은 방식이라고 박수까지 쳤다는 것이다.
또, 염지 방식에 대해 물어서 대충 설명해 줬단다.
물론 현우 형도, 주혁 형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부 알고 있었다.
화끈 오뎅을 잡기 위해 창주 형에게 술을 사면서 여러 번 같이 만났고, 나이도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으니까.
“그럼 녹차하고 박하 이야기도 한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그건 네가 절대 말하지 말라면서? 준식이 한테도 아직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혹시나 싶어 그 작업은 오전에 혼자 하라고 했었다.
그럼 진짜 맛만 보고, 박하 빼고 전부 맞췄다는 건데?
진짜 신의 혀가 여기 있었네.
갑자기 현우 형한테 미안해졌다. 주혁이 형한테 박하 이야기를 하고 말았으니까.
물론 절대 외부에 말할 사람이 아니란 확신이 있었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기는 하네?”
“뭔데요?”
“장마철에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고.”
현우 형의 말에, 순간 머리가 쾅 터졌다.
아! 병신같이,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해답은 정말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역시, 장사의 달인이 맞구나.
강형우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분명 주혁 형한테 배웠는데, 그걸 까먹다니.
“형,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요. 만이천 원… 이거 안 되는 거네요.”
“뭐?”
“그게요. 어떻게 된 거냐면요.”
강형우는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설명했다.
장사는 하루 이틀 하고 말 게 아니다. 최소 일 년을 보고 그에 맞춰서 계획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인 만큼 그것까지 감안해서 가격을 책정해야 했다.
“로스예요. 로스.”
Loss, 일명 손실분을 말한다.
우리 통닭의 한 마리는 원가가 거의 50% 이상이었다.
여기에 인건비나 기름, 기타 포장재를 계산하면 겨우 천 원 정도가 남는 셈.
주류를 팔아서 수익을 보충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수익 변동이 예측 불가능이었다. 많이 팔리면 많이 벌고, 적게 팔리면 적게 버는 것이다.
“전제를 잘못 잡았어요. 수량이 적어서 무조건 다 팔린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열 마리만 남아도 적자예요.”
“그게… 그렇게 되나?”
“예. 안 팔리는 날도 생각해 봐야죠.”
특히 장마철이 그랬다.
대부분 치킨집은 배달이라도 하겠지만, 우리 통닭은 그게 불가능했다. 만약 기상 악화로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면 그게 전부 마이너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미안, 내가 괜히 싸게 팔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아니에요. 제가 착각한 거예요.”
음식의 퀄리티를 너무 우선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목표가 장사를 계속하는 거였다.
현우 형이 어머니 장례식 때 와준 손님들을 생각해서 적게 남아도 좋다고 했다. 그걸 계속 염두에 두는 바람에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맛만을 위해 원가를 너무 올려 버렸다.
“치킨집이 뭐로 남는지, 왜 그 말을 했는지 알겠네요.”
역시나 기본이 제일 중요했다.
치킨집은 치킨으로 남아야 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물론 다른 집들 상황은 이해는 되었다.
바로, 프랜차이즈 본사가 있었다.
거기서 나간 수량만큼 채워주고, 재고 관리를 한다. 안 팔려서 버리는 게 거의 없으니 파는 만큼만 벌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가 오거나 해서 덜 팔려도 큰 문제는 없었다.
받아놓은 숙성 닭이 하루 이틀 만에 상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통닭은 아니었다.
이틀 이상의 염지 숙성을 테스트해 보지 않았다. 맛이 변할 가능성도 컸고 무엇보다 장마철의 경우, 이틀 내로 다 팔린다는 보장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게 계속 이어지면 심각해진다는 거다.
“형, 다시 계산 해볼게요.”
강형우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챙겼다.
그런 뒤, 천천히 심호흡을 해서 가슴을 안정시켰다.
그제야 시야가 환해졌다.
복잡한 게 가라앉았고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생닭이 4,500원 선인데… 형 이거 가격이 바뀔 일은 없죠?”
“아니야. 보통 일이 주일 간격으로 몇백 원씩 차이가 나. 우리 같이 작은 가게는 항상 같은 가격에 받기는 어렵지.”
“그래요? 그럼 다른 건요? 가격 변동이 있나요?”
“글쎄? 기름값 같은 건 조금씩 오르는 경향이 있어. 단기간은 아니고 반년 정도?”
“역시…….”
강형우는 변동 사항까지 포함해 계산기를 두드렸다.
로스율을 10% 정도를 잡으니, 적정 가격은 13,800원이 나왔다.
이게 영업을 계속하기 위한 최저 기준이었다.
“형.”
강형우가 계산기를 보여주자, 김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
강형우는 자취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밥상을 펼쳤다.
소주 한 병을 놓고, 가져온 치킨 반 마리를 깔았다.
커다란 맥주잔에 소주를 붓고 단숨에 술을 비워 버렸다. 그런 뒤,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파사삭, 아사사삭.
“식어도 맛있네.”
현우 형이 태성반점에서 일주일 개고생을 해가며 배운 반죽이었다. 깨끗이 씻은 생감자를 갈아서 밀가루와 섞었고, 여기에 고구마 전분과 올리브유 일부가 들어갔던 것이다.
사실 정확한 비율은 강형우도 몰랐다.
들었기는 했지만, 직접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 덕에 정말 바삭바삭했다. 찍먹이나 부먹이 아닌, 볶먹으로 나가는 탕수육을 만드는 것처럼 소스에 쉽게 뭉그러지는 그런 튀김옷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반성하자.”
강형우는 또다시 소주를 따라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지성분식 2호점의 수익 때문에 자신감이 넘쳤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지성분식 본점과 2호점 수익을 합치니, 단숨에 부족했던 권리금을 채울 수 있었다.
또, 이렇게 일이 년만 벌면 아파트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지성분식을 3호점까지 낸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터.
이대로 사오 년만 더 장사를 한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문제였다.
돈이 마구 들어오니,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왔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느슨한 게 생겼던 거다.
“장사는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다. 철저한 계산으로 시작하는 거지.”
그렇게 배웠다.
그랬음에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병신같이!
“일단 가격은 만삼천 원으로 시작하자. 이 정도면 현우 형이나 손님들도 납득은 할 거야.”
금요일과 토요일은, 100마리씩 준비할 계획이었다. 이것까지 다 팔린다면 그럭저럭 여유는 생기겠지.
여기에 양념을 따로 천 원 더 받으면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장사하다가 시기를 봐서 천 원 정도 더 올리면 나쁘지 않을 터.
이런저런 생각으로 방법을 찾는 사이, 소주 한 병이 동이 났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서 술을 꺼내려는데 문소리가 들렸다.
“누구?”
“저요. 강석이.”
“어, 들어와.”
강형우는 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밤 11시가 넘었다.
이강석이 이 시간에 찾아올 일은 거의 없었으니 의외였다.
문을 열어주니, 이강석이 들어왔다.
“형, 또 술 마시고 있었어요?”
“어? 아, 아니 그게 말이야. 생각할 것도 많고 머리가 복잡해…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무슨 핑계를 대요? 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쩝. 그런가?”
강형우가 머리를 긁적이는데, 이강석이 비닐 하나를 내밀었다.
역시나, 소주였다.
“너도 한잔하고 싶었냐?”
“그런 것도 있고요. 몰라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이강석은 말릴 겨를도 없이 밥상에 비닐을 놓았다.
그런 다음 익숙한 듯이 싱크대에서 컵과 수저를 챙겨서 앞에 앉았다.
아주 자기 집같이 하는 걸 보니, 웃기긴 했다.
아니, 집주인 아들놈이니 자기 집이 맞기는 하겠지.
“한 잔 줘요.”
“그래. 마셔라.”
강형우가 술잔을 따라주자, 이강석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리고 또 잔을 내미는 게 아닌가?
“무슨 일 있냐?”
“그게요.”
“왜? 그렇게 한숨 쉬냐고?”
강형우가 묻는데, 이강석은 연거푸 술만 비웠다. 그러다 반병 가까이 마신 뒤 또 한숨을 내쉬었다.
“형. 나 영장 나왔어요.”
***
예상은 했지만, 빠르네.
백창호는 5월에, 이강석은 6월에 간다고 했다.
“끄응. 골치가 아프구나.”
정말이지 두통이 가실 날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통닭집 가격 문제에, 파스타에, 진상 아주머니들에 신메뉴 폭립까지.
이런 상황에서 강석이와 창호까지 빠진다고 하니, 아주 머리통에서 다중충돌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일단 이강석의 부탁은 이거였다.
먼저 지성분식 본점에서 일하고 싶단다.
거기까지는 집에서 십여 분 거리였고, 2호점은 이삼십 분 거리였다.
별 차이는 없었지만 남은 시간이 석 달이니 그 정도 부탁은 흔쾌히 들어줄 수 있었다.
아마 창호랑 같이 일하고 싶은 거겠지.
덕분에 다음 주부터는 이은주가 2호점으로 오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건 이거대로 골치 아플 것 같았지만 그때 가서 대응해도 되겠지.
어쨌든 이강석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부탁을 더 했다. 자잘한 건 바로 OK해 줬는데 유독 하나가 걸렸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자기 없는 동안 어머니 좀 챙겨달란다.
애잔한 자식 같으니라고.
결국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대신 전역하면 바로 밑으로 오라고 했다.
평생 부려먹을거니까 각오하라고.
그랬더니 울면서 웃더라.
“뭐, 어떻게든 풀리겠지.”
강형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목과 어깨를 풀었다.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운동이 최고였다.
“어? 봄인가?”
쌀쌀하던 바람이 어느새 따뜻해졌다.
벌써 3월 중반이니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크게 숨을 들이켰는데, 시발 황사였다.
“좋은 아침!”
강형우는 지성분식 본점에 들렸다가 2호점으로 출근했다.
마침 강신원이 준비하고 있기에 슬쩍 주방 안으로 들어가 봤다.
“형, 뭐 해요?”
대수롭지 않게 물었는데, 화들짝 놀라더라.
게다가 폰을 후다다닥 감추는 걸 보니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왜 감춰요?”
“그, 그냥. 프라이버시?”
뭔가 수상했지만, 더 묻기가 그랬다. 얼굴이 벌게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