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13화 계산은 바로 해주마
“다 좋은데, 양념은 별로야.”
“예?”
강주혁은 후라이드를 모조리 해치우고 나서 양념을 시도했는데, 평가가 이거였다.
“이거 맛없다고!”
“그, 그럴 리가…….”
“이게 장모집 치킨하고 무슨 차이가 있냐 싶네. 오히려 후라이드 맛을 망치는 수준이야.”
그 신랄한 평가에 좌절감이 들었다.
사실, 소스는 현재 반반이었다.
완전히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다양한 맛이 나온 터라 기준을 제대로 못 잡았다. 그래서 우뚜기 깡통 소스랑 절반을 섞어 익숙한 맛을 냈던 것이다.
무엇보다 소스는 많이 준비되지 않았다.
원래 예상은, 기본적인 건 다 갖추는 거였다.
누구나 좋아하는 매콤 달달한 양념, 여기에 유행은 끝났지만 아직도 많이 팔리는 단짠단짠 간장 양념과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는 매운 양념이 있었다.
당분간 이 세 개만 집중적으로 만들어서 팔고 나머지는 나중에 추가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후라이드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 생각한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질 않았던 거다.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지 않아요?”
“어, 평균. 딱 그 수준.”
강주혁은 그렇게 말한 뒤, 양념을 맛봤다.
한 조각을 절반쯤 베어 물고 입을 오물거리더니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알겠다. 니가 헤맨 이유를…….”
“뭐가요?”
“이 양념은 너네 지성분식에선 안 쓰잖아?”
아우야~ 진짜 제대로 찌르네그려.
맞다.
양념 소스에서 좌절한 이유가 그거였다. 판매용으로 대량 제작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시간을 들이면 완벽하게 할 수 있지만, 오픈 일정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거의 두어 달을 장사하지 못했고, 리모델링에 들어간 금액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인이 되는 후라이드의 완성도가 있기에 일단 강행한 거다.
“솔직히, 인정해요. 형 말대로 많이 만들어보고 많이 먹어봤으면 좀 더 좋은 소스가 나왔겠죠.”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가이드가 잡히지 않더라고요. 여기서 더 달면? 아니면 더 매콤하게 할까? 마늘을 넣어서 향을 끌어올리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 들더라고요.”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치킨 옆의 양념을 가리켰다.
“솔직히 기준을 모르겠어요. 직접 만드는 가게들도 많이 가봤는데, 기본은 비슷한데 맛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왜 다르게 한 건지를 찾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이렇게 내놨다고?”
“아, 그건…….”
강형우가 당황해하는데, 오히려 강주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 천재냐? 아니면 본능적으로 아는 건가?”
“무슨…….”
“양념 퀄리티는 떨어지는 게 맞아. 하지만 선택은 아주 잘했어.”
아까는 아니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맞다고?
이게 또 무슨 사람 헛갈리게 하는 소리란 말인가?
“보통 소스 맛을 정할 때, 뭘 보느냐 하면… 누가 먹으러 오나를 봐.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 고객층의 나이대를 생각해 변화를 주는 거지.”
“예에?”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령 간장 양념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거야. 나이가 좀 있고 양념갈비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치킨을 팔기 위해서 개발한 것이거든.”
“그래… 요?”
“내가 뭐라 그랬냐? 공부 계속하라고 그랬지?”
“하,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그래. 배워서 남 주는 거 아니다. 음식 장사한다고, 또 장사가 잘돼서 돈 많이 번다고 해도 딱 그때뿐이야. 유행은 일정 주기로 돌고 도는 거고, 거기에 맞춰서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강주혁은 그렇게 단단히 주의를 준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양념으로 돌아가서. 간장 양념의 주 대상은 너무 달달한 거 싫어하는 어른들이었어. 이런 분들은 금방 질려 하거든.”
“그래서, 익숙한 간장 양념이 나온 거군요.”
“맞아. 그래서 네가 선택을 잘했다는 거야. 만든 양념과 시판 양념의 배합. 익숙한 맛인데,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낄 정도의 수준이지. 이걸 싫어할 사람은 없어. 다들 익숙하니까.”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충 가이드가 잡히는 것 같았다.
양념 맛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우선이었다. 성별과 나이대를 분석해서 좋아하는 맛에 가깝게 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래서…….”
머릿속을 스친 건 번개 치킨이었다.
여긴 다양한 소스를 저렴하게 따로 팔았다. 뭘 좋아할지 모르니, 취향대로 골라보라는 것이다.
개당 삼백 원씩 받는데 생각보다 많이 팔린단다.
“귀찮으면 시판 소스 깔아놓고, 손님 취향대로 고르게 하는 것도 선택이긴 할 거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 후라이드가 아깝다.”
그 지적에 순간 뜨끔했다. 방금 막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치킨집 안 해봤잖아요.”
강주혁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라는 뜻이었다.
강형우가 의자를 바짝 붙이자 강주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치킨 체인을 한 번 해보려고 했거든. 어느 정도 데이터도 뽑았고 준비도 거의 끝났단 말이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후라이드 비결을 알려준 게 실수인가 싶었던 것이다.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도 테스트 많이 해봤지. 요즘 양식에 쓴다는 레몬이나 로즈마리, 그 외에 허브 솔트로 밑간도 해봤고 인도 향신료도 구해서 써보기도 했고.”
결론은 실패였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한 맛이 나오질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주혁의 신념과 맞지 않았다.
공장에서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 최소한의 조리만으로 완성품을 만드는 것.
그래야 가격을 낮춰서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기준에 치킨이 맞질 않았다는 거다. 아무리 교육을 잘 시킨다 해도 결국 점주가 대충 튀겨 버리면 생각했던 맛이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요즘 잘나간다는 프랜차이즈는 나름 완성도가 높단다.
점주 개개인의 역량으로 생길 만한 차이를 대부분 커버해서 나오니까.
“나도 박하는 생각해 보지 못했어. 생소한 재료인 것도 있지만, 향이 너무 강해.”
“하아, 그래서 저도 개고생을 했죠. 비율 맞춘다고 거의 열흘을 밤샘하다시피 했으니…….”
강형우가 투덜거리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 고생이 이렇게 맛있는 후라이드를 만든 거지. 그 시간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박하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이거 내가 사 가마.”
“예?”
강형우가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강주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가면서 어깨를 두들긴 뒤 말했다.
“계산은 바로 해주마.”
***
“이게 그 계산이란 말이지.”
강형우는 눈앞에 있는 한 뭉치의 종이를 쳐다봤다.
아침 일찍 고지우 누나가 가져다준 거였다. 치킨 값+아이디어 값이란다.
그러고 돌아가려는 걸 커피 한잔만 하자고 간신히 붙잡았다.
그런 다음 조심스레 물었다.
지우 누나 말로는, 치킨 사업은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못할 건 없지만 더러워서 안 한단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너무 심하게 견제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대충 들었는데, 그 방식은 너무 치졸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거래 업체에 압력을 넣어 일정 수량 이상의 생닭 공급을 막는다.
관공서의 연줄을 이용해 각종 민원과 신고를 한다.
또,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해 세무조사를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기타 등등의 수단으로 방해하려 한 흔적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두루 컴퍼니는, 그들 입장에선 일종의 해악이거든.”
그러면서 설명하길, 대기업끼리는 알게 모르게 담합이 있단다. 두루 컴퍼니가 들어가면 그 생태계가 깨지고 자신들의 죄악(?)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필사적이라나?
사실, 강주혁이라면 정면 돌파로 기업체 몇 개를 깨버릴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현재 두루 컴퍼니는 사정상 숨 고르는 중이었다. 다음 행보를 위한 준비 때문에 한발 물러선 거라는 것이다.
지우 누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지만, 대략적인 건 알려주었다.
회사가 작으면 견제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시장 영향력을 얻게 되면 다르다. 기존의 업체들이 기를 쓰고 방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은 일반인들이나 평범한 점주들은 전혀 모르는 거였다.
일종의 물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라고나 할까.
“그래서 강 실장님이 널 좋아하는 거야.”
“예?”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둬. 그리고…….”
우려와 달리, 박하의 사용처는 따로 있었다.
두루 컴퍼니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중에 불똥 포차가 있다고 했다. 현재 일본과 중국 진출을 진행하고 있는데 메인 중 하나를 닭꼬치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나라의 닭 정육이었다.
한국보다 특유의 냄새가 훨씬 강하단다. 그래서 각종 향신료를 가지고 실험 중이라는 것이다.
“아, 그래서 박하를……”
“하여간 도움이 되길 바래.”
“아, 감사합니다.”
강형우는 그렇게 고지우를 보내고, 눈앞의 서류를 살폈다.
솔직히 이건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부 외우기만 한다면, 당장 치킨집을 열어도 될 만큼 내용이 빡빡했다.
“이게, 주혁 형이 생각한 치킨집이란 거지?”
첫 장에 있는 건 가게의 정면 사진이었다. 그리고 내부 구조에 대한 도면이 있었는데,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마치 가족 외식 식당 같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급 고깃집 같은 형식이었다. 입구 쪽 절반은 평범한 치킨 호프에 가까웠는데, 안쪽에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와!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찬찬히 살펴보니 시중에 분화된 치킨집과 찜닭, 닭갈비 전문점,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닭 한 마리’ 스타일이 합쳐진 형태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싶었는데, 바로 이해가 되었다.
“대형 감자탕집이 메뉴를 늘린 것과 비슷한 구성이구나.”
실제로 아파트 단지가 많은 신도시 쪽에는 동네마다 이런 감자탕집이 한두 개씩 있었다.
메인은 분명 감자탕이었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특성상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게 메뉴가 추가되었다. 등뼈찜을 유행에 맞춰서 간장 양념과 매운 양념으로 나누었고, 아이들 먹게 돈가스도 팔았던 것이다.
또, 점심에는 손님을 끌기 위한 특선 메뉴가 있었고, 놀이방과 노래방 기계도 존재했다.
“발상이… 차원이 다르네.”
누가 감히 이런 규모로 치킨집을 차리겠는가?
아니, 이걸 애초에 치킨집이라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강형우는 서둘러 서류를 넘겼다.
필요한 건, 양념 소스였으니까.
한참을 살펴보던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놔. 도와주려면 확실히 도와주던가, 이게 뭐야?”
양념 소스만 무려 스무 종류였다. 간장 양념만도 다섯 종류가 넘었으니, 이걸 일일이 다 만들어서 맞는 걸 찾아야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과제였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주혁 형이네, 뭐 하나 공짜로 해주는 게 없어.”
***
저녁에 조금 일찍 마치고, 우리 통닭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9시 전인데 벌써 다 팔았단다. 동네 어르신들이 낮부터 몰려와서 작살(?)을 내고 갔다는 것이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역시 양념이 문제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강형우는 일하는 짬짬이 필요한 걸 우선적으로 골랐다.
대략적으로 추려진 건, 양념 세 종류와 간장 양념 두 개였다. 이 정도라면 쉬는 날 하루만 투자하면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형우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자 김현우도 마음을 놓는 듯했다.
해서 당분간은 후라이드 위주로, 양념은 찍어 먹게 따로 나가는 식으로 영업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격을 올리라고?”
“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치킨집이잖아요. 적어도 통닭에서는 어느 정도 남아야 할 것 같더라고요.”
강주혁이 지적한 것 중에 걸리는 게 있었다.
치킨집이 뭐로 돈 버는데?
바로 그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