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화 여왕처럼 모시겠습니다
“다른 거?”
반사적으로 물었지만, 홍태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강형우는 혹시나 싶어 가슴살 부분을 살폈다.
확실히 제대로 튀겨진 게 맞았다.
같이 치킨 투어를 돌면서, 계속 연구했고 고민했으면 여기에 여러 노하우가 들어가 있었다.
세척이 잘된 좋은 생닭, 자체 염지에 하루 냉장 숙성.
이걸 가격이 나가지만 좋은 기름에 튀긴다.
초벌로 8분, 잠시 식혔다가 더 높은 온도에 5분이었다. 게다가 기름도 열심히 털어서 1분 이상 놔두고, 그걸 또 탈탈 털어서 가져온다.
이 기준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맛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때문에 방금 현우 형이 튀겨온 치킨은 분명 맛있었다.
물론 수십 년 장사한, 유명 가게들에 비하면 특색이 부족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하면서 차차 만들어가야 할 일!
그런데 다른 게 들어갔었다고 하니, 갑자기 궁금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형우야, 너 기억 안 나냐?”
“글쎄? 좀 긴가민가하긴 한데……”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홍태구가 다급히 쏘아붙였다.
“그때 네가 그랬거든? 무슨 향신료 같은 게 있다고 했어.”
“내가?”
“그래. 사실 우리 친구들 중에 네가 입맛이 제일 예민하잖아. 어릴 때부터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돌아다녀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있는데 홍태구가 이야기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그랬단다.
아버지 쉬는 날, 같이 손잡고 이곳저곳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맛집 같은 데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영도 안쪽에 있는 제주도식 물회집이나, 구서동 간판 없는 칼국수집, 대신동의 어묵이 잔뜩 들어간 대구탕집에 그 아랫동네 삼십 년 된 육회 비빔밥집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입맛이 유독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특이한 맛을 잘 느낀다고 했다.
“사실 그때부터 난, 네가 음식 장사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네 말을 믿었지. 그때 내기했잖아?”
“아!”
이제야 어슴푸레 기억이 났다.
현우 형 어머니가 해준 치킨은, 깔끔한 맛이 났다. 약간 달달한 듯하면서도 묘한 청량감 같은 게 있었고 무엇보다 기름의 느끼한 맛이 적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께서 웃으셨다. 그래서 치킨 튀길 때 깻잎 같은 게 들어가냐 했더니 모호한 표정을 지으셨다.
하긴, 염지니 반죽이니 하는 개념조차 없었을 때였다. 철이 없이 아는 체하고 다녔던 시기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날 친구들끼리 두 패로 갈라져서 내기를 했었다.
오연희와 박정수, 이지애, 최기성이 한 편이었다. 유일하게 홍태구만이 내 말을 믿어주었던 것이다.
승부는 나와 태구가 이겼다.
뭔지는 이야기 안 하셨지만, 분명 향신료 같은 게 들어간다고 했었으니까.
덕분에 그날 술값이 굳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맞네.”
사실 그때의 맛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냥 내기 이야기에 살짝 떠올랐을 뿐.
강형우는 치킨 한 조각을 들어 단숨에 입으로 뜯어버렸다.
바삭한 튀김옷에 촉촉한 살코기, 여기에 기름 맛이 살짝 감돌았고 마지막에는 간간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시장 통닭 방식에 현대식 시스템을 도입해 맛을 끌어올린 것일 뿐, 우리 통닭만의 매력이 부족했다.
“형은 생각나는 거 없어요?”
강형우가 묻자 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반죽하고, 튀기는 거는 지금까지 어머니한테 배운 대로 했어. 이번에 바꿨지만 식감이나 신선도 문제지, 향신료 같은 건 모르겠어.”
“흐음, 그럼 결국 생닭 손질이나 염지 단계에 뭐가 있다는 건데…….”
그 외에도 의심 가는 게 있기는 했다.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우 형한테만은 가르쳐 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모른다는 걸 보면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형우야, 이거 심각한 문제야?”
김현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데, 강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그런 건 아니에요. 이대로 영업해도 좋을 정도로 치킨은 괜찮아요. 얘도 그랬잖아요.”
“예. 이거 맛있어요. 이 정도면 뭐, 돈 아깝다는 소리는 안 들을 거예요.”
홍태구까지 지원사격을 하자, 김현우의 표정이 많이 풀렸다.
강형우는 이때를 틈타 원래의 목적을 밝혔다.
“태구야, 여기 리모델링할 거거든. 그래서 너 부른 거야?”
“여길?”
홍태구는 강형우와 김현우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크게 할 건 아니고. 주방이나 바닥 공사는 필요 없고 벽체하고 천장, 그리고 전등을 다른 걸로 갈 거야. 입구도 조금 손볼 거고.”
강형우가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곧 두 사람도 나오자 강형우가 입구를 가리켰다.
“여길 전면 유리로 할 거거든. 주방이 보이게.”
“여기 아래까지 전부?”
“어. 그리고 위에 간판도 그대로 떼서, 뒤에만 새로 하고 그대로 입힐 거야. 너 대충 견적은 나오지?”
“어. 말 그대로 대충.”
“그럼 됐어.”
강형우는 입구 쪽의 몇 가지를 가리킨 다음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에 손가락을 붙였다 뗐다 하더니 두 사람을 쳐다봤다.
“만져보면 알겠지만, 너무 오래됐어. 벽지에 기름 찌든 냄새도 심하게 나고 그래.”
“흐음, 알겠어. 그런데 디자인은 어떻게 하려고?”
강형우는 미리 생각해 놓은 걸 이야기했다.
곧 김현우도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홍태구는 하드에 저장된 데이터 몇 개를 불러왔다.
그걸 보며 이야기한 끝에, 대략적인 견적이 나왔다.
“이천팔백에서 삼천 정도 들겠는데?”
“생각보다 많이 드네?”
강형우가 쳐다보는데, 김현우는 크게 고민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사실 제일 걱정되는 게 비용이었다.
그냥 장사해도 되는데, 굳이 몇천만 원이나 들일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김현우는 피식 웃으면서 쉽게 대답했다.
“하자. 하면 되지. 다 잘되라고 하는 거잖아.”
***
“이야기는 들었는데…….”
강학희의 얼굴은 한층 밝았다.
그 이유를 알기에 강형우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요즘, 신원이 형이 집에서 요리를 연습하고 있단다. 지성분식에서 배운 대로 살림까지 맡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방 안에만 있던 아들이, 이제는 수시로 아버지 식사를 차렸다.
그러니 어찌 기분 좋지 않으랴.
“아버님,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허, 나야 일거리 늘어나면 좋지. 안 그래도 요즘 체력 딸려서 현장 공사를 줄이고 있는 판에, 리모델링은 한결 수월해.”
이로써 현우 형네 통닭집 공사는 해결이었다.
물론 홍태구를 통해 소개받아 다른 업체랑 해도 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대충 공사해서 덮어버리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학희가 하는 걸 직접 봤기에 실력도 인정하는 상황이었고.
“그런데, 장사는 잘되는가?”
강학희는 알고 있으면서도 넌지시 떠봤다.
요즘 소문이 장난이 아니었다. 근처 상가 사람들이 지성분식 때문에 살맛이 난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서 골목에 활기가 생겼다나 뭐라나?
“이제 시작이라 아직 뭐라 이야기할 정도는 못 됩니다.”
“허허, 요즘 친구들답지 않게 겸손하네.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본 게야.”
고지식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기에 강형우는 무조건 고개를 숙였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열심히 해보게. 그 통닭집은… 다음 주에나 한 번 가보겠네.”
“예.”
용건이 끝나서 나가려는데, 강학희가 한마디를 더 했다.
“강 사장! 고맙네, 정말 고마워.”
***
“형님, 우리 좀 살려주세요.”
“예. 이건 정말 아닙니다!”
거의 죽어가는 듯한 표정으로 인정둥이가 말했다.
강형우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대체 뭐가 아닌데?”
“저희 휴가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일만 시키는 게 어디 있습니까?”
“장군, 이대로는 못 살겠소. 파업을 선언하오.”
그 순간 강형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인정둥이가 공지혜를 방패로 내세웠다. 그 뒤에 숨어서 머리만 쏙 내민 것이다.
“이것들이 돌았나?”
강형우가 소매를 걷자, 공지혜가 다급히 말렸다.
“오빠, 좀 봐줘요. 그래도 휴가 나온 건데.”
“지혜야, 나 정도면 정말 잘 챙겨준 거야. 솔직히 하는 짓을 생각하면 노숙이라도 시키고 싶은데, 겨울이라 참은 거라고.”
순간, 공지혜가 고개를 돌렸다.
인정둥이는 필사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손을 내저어댔다.
여기서 잘못되면, 그 이야기가 누나 강영지와 어머니 박혜숙의 귀에 다이렉트로 박힌다.
그걸 알기에 인정둥이는 다급했다.
“누나, 우리 거의 일주일 넘게 출근했어요. 알잖아요?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렇습니다, 누님. 저희는 결코 농땡이 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사람이 간절해지면 능력치가 올라가나 보다.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강형우조차 깜빡 속을 정도로 연기력이 출중했던 것이다.
심지어 공지혜가 강형우를 쳐다볼 정도였다.
정말이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노예처럼 굴린 줄 알겠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토요일 일찍 마쳤잖아?”
“그랬죠.”
“친구들 만나고, 월요일 출근 전까지 놀고 오라고 거금 오십만 원 줬거든?”
“그래에~ 요?”
인정둥이가 굳어졌고, 공지혜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강석이랑 창호 데리고 나이트 가서 하루 만에 다 쓰고 일요일 새벽에 들어왔어. 그래놓고 하루 종일 잠만 쳐 자더라.”
염치가 있는지 인정둥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화요일은 우리 같이 외식 했잖아.”
“그건 알죠.”
어머니와 영지, 인정둥이와 공지혜까지 끼어서 간만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었다.
“그날 밤에 용돈 오만 원씩 따로 줬거든? 둘이 어딜 갔는지 모르겠는데, 새벽 두 시에 들어왔어.”
“그랬… 어요?”
이제 공지혜가 완전히 돌아섰다. 인정둥이가 역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파업한대요?”
“모레 복귀한다고 용돈 더 달래. 그리고 이틀 동안 건드리지 말라는 거지.”
순간 인정둥이한테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공지혜가 누나로써 등짝을 후려갈긴 것이다.
“아오오!”
“끄아악.”
인정둥이가 한쪽으로 쭈그러들자 강형우가 피식 웃었다.
“됐고. 장난 그만하고, 시간 다 돼가니까 영업 준비나 해.”
인정둥이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제야 가게가 평소 분위기가 되었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저기, 실례합니다.”
순간, 지성분식이 침묵에 휩싸였다.
미모의 한 여자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특이했다. 춥지도 않은지 쫙 달라붙는 배꼽티에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역시 인정둥이가 빨랐다. 순식간에 튀어나가 양옆으로 서더니 자리 안내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 강형우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상대는 강신애였다.
옷차림이 가벼운 건 집에서 바로 내려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어이~ 친구!”
그러면서 장난치듯이 달려드는데,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스톱. 오빠는 저 안에 있거든?”
“그래? 땡큐. 그리고 이건 아버지가 가져다주래. 생각해 보니까 개업할 때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강신애가 주는 과일바구니를 받아 드는데, 몇 군데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안쪽에서 강신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게 오지 말라니까?”
“아빠, 심부름. 겸사겸사 오빠 하는 거 보러 왔지.”
“영업시간 다 됐거든.”
강신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인정둥이가 선수 쳤다. 잽싸게 양옆으로 가더니 고개를 숙인 것이다.
“식사 안 하셨으면 하고 가십시오!”
“예. 저희가 여왕처럼 대접하겠습니다.”
정말 황당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러고 있는데, 강신애가 한술 더 떴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러면, 제일 맛있는 걸로 부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