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화 오늘이네
“형, 여기 주문을…….”
친근하게 이야기하려던 인정둥이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강형우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였다.
그제야 아차 하더니 놓았던 정신줄을 붙잡기 시작했다.
“형, 그게 아니라…….”
강인우가 다급히 손을 젓는데, 공지혜가 슬쩍 끼어들었다.
“오빠, 괜찮죠?”
“그야…….”
강형우는 힐끗 시계를 봤다.
아직 영업 시작 30분 전이었다.
손님들이 줄 서기까진 시간도 있었고, 막 식사도 마친 상황이니 기름도 식지 않았을 터.
강신애가 먼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 안 맞으면 다음에 올게.”
그 순간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났다. 뭐, 한 끼 정도는 어떠랴 하는 기분도 들었고.
“아냐, 먹고 가. 맛있는 거 해줄게.”
“오, 진짜? 정말 괜찮겠어?”
“내가 사장이다.”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눈짓을 했다. 그러자 인정둥이가 잽싸게 메뉴판들을 들고 왔다.
“저희 지성분식의 인기 메뉴는…….”
예상대로 고른 건, 하와이안 돈가스였다.
강형우는 씨익 웃더니 강신원의 팔을 잡았다.
“형, 요리 하셔야죠.”
“뭐? 내가?”
“집에서도 음식 한다면서요? 어차피 다 가르쳐 줬잖아요. 할 줄 몰라요?”
그 말에 강신원이 눈치를 살폈다.
일단 주방 책임자인 이강석을 봤고, 강신애를 돌아봤다.
그런 뒤 공지혜가 엄지를 들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한 모양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제가 책임질게요. 그리고, 이럴 때 동생한테 근사한 모습을 보여야죠. 자자, 형님, 하는 겁니다!”
강형우는 강신원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면서 슬쩍 주방으로 몰았다.
이 형은 다 좋은데, 도전 의식이 부족했다. 게다가 주방의 메인 작업인 밑준비, 소스 만들기, 육수 우리기 같은 걸 다 가르친 상황이었고, 간간이 이강석에게 음식 만드는 걸 배우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강형우의 계획이었다.
음식을 배우면서, 지성분식 식구들하고의 서먹함을 없애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 단골손님들과 거리가 줄어들면 나중에는 서빙이나 주방 보조를 맡길 생각이었다.
강신원이 나중에 카운터까지 보게 된다면 매출에 무지막지한 도움이 될 터.
이미 그 그림을 위한 준비는 마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정적인 계기였다.
만약 강신애로 인해 물꼬가 터진다면 그 역시 좋은 일 아니겠는가?
잠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인정둥이가 부산을 떨었다.
테이블을 물 수건과 마른 수건으로 번갈아가며 깨끗이 닦더니, 가게에 몇 개 없는 좋은 와인 잔에 소믈리에 흉내를 내며 쿠울피스를 따랐다.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강형우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데, 공지혜가 옆구리를 툭 쳤다.
“왜?”
“쟤들 눈 못 봤어요? 완전 하트인데요?”
“에이, 설마?”
강형우는 진짜인가 싶어서 인정둥이를 쳐다봤다.
확실히 눈빛이 다르기는 했다. 반짝반짝거리기도 했고, 어느 정도 자신감까지 보였던 것이다.
저게 문제인데 정말 모르는 모양이었다.
전에 백창호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인정둥이가 외모는 되는데 왜 여자들한테 까이는 거냐고.
알고 보니, 여자만 보면 금세 헬렐레한단다.
아주 좋아서 죽는다는 티를 팍팍 내니 금방 싫증을 느낀다나?
지금도 딱 그러고 있었다.
쯧, 적당히 할 것이지.
강형우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공지혜가 소곤거렸다.
“휴가 나온 군인이잖아요. 언제 저런 미녀를 보겠어요?”
“미녀?”
“솔직히 예쁘잖아요. 같은 여자라서 질투날 만도 한데, 저 정도면 그런 마음도 안 들어요.”
“그런… 가?”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강신원이 벌써 돈가스를 튀겨서 가져왔다. 아무래도 이강석이 보조로 거들어준 모양이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신원이 돈가스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사이 강신애는 연신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진짜 맛있어 보인다.”
“당연하지 내가 만든 건데.”
오랜만에 강신원이 웃으니, 확실히 그림이 살긴 살았다.
유전자가 정말 탁월하다고나 할까?
그 순간 강형우는 강학희를 떠올렸다.
대체 유전이 어떻게 되어야 아들과 딸이 정우성과 이영애가 나오는 건지.
“그런데 오빠는 멀쩡하네요?”
“뭐가?”
“보통은 저 정도 반응이 정상이잖아요. 애들 봐요.”
그러고 보니 이강석과 이영제도 강신애한테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특히 인정둥이는 마지 공주를 보호하는 기사라도 된 것처럼 결연한 의지까지 얼굴로 드러냈던 것이다.
확실히, 연예인 중에서도 톱급의 외모였으니 저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강형우의 눈에는 그냥 보통의 사람이였다.
신원이 형이 잘라주는 돈가스를 받아먹으면서 좋아하고 있었고, 연신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냥 영락없는 단골손님 정도로만 보였던 것이다.
“예쁘긴 한데, 뭐 딱 그 정도? 그건 그렇고 이제 곧 영업 시간인데…….”
강형우는 주방으로 들어가 이강석과 이영제에게 장사 준비하라고 일러뒀다.
그건 공지혜하고 은선경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났다.
강신원이 그릇을 치운다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강신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손님 많은 줄 알겠다. 진짜 맛있어.”
“그러면, 장사 망할 일은 없겠지?”
강형우가 피식 웃자 강신애가 손뼉을 쳤다.
“당연하지. 이제 우리 오빠, 밥 굶을 일은 없겠는걸?”
“아버님한테, 월세 밀릴 일도 없을 거라고 전해 드려.”
강신애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뜨끔해하다가 이내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 한 것이다.
역시나, 강형우의 예상대로 염탐(?)이 맞았다.
하긴 강학희 입장에서도 답답했을 거다.
아래층이 장사를 시작했고 아들이 일도 한다. 그럼에도 한 번도 와보질 못했다. 연일 손님이 많아 북적거리니 괜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눈 뒤, 보내려고 하는데 강신애가 지갑을 꺼냈다.
“사장님, 얼마예요?”
장난스러운 그 말에, 인정둥이가 튀어나왔다.
“서비스입니다, 서비스.”
“예. 저희가 사는 겁니다.”
동시에 강형우의 주먹이 움직였다.
따닥.
뒤통수에 꿀밤 한 대씩 입금해 주고, 강형우가 말했다.
“이건 신원이 형 월급에서 깔 거니까, 그냥 가면 돼.”
“에이, 우리 오빠 월급 얼마나 된다고 그래?”
“글쎄? 이전 카페 할 때보다는 많이 벌어갈걸? 생각 하나만 바꾸면…….”
뒷말은 거의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아직은 강형우 혼자 생각한 그림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강신애를 보내고 난 뒤, 인정둥이를 앞에 세웠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 번쩍 들게 혼내주고 싶었지만, 이제 영업시간이 코앞이었다.
그러다 뭔가가 떠올랐다.
“그렇게 좋냐?”
“형, 진짜 연예인 보는 기분!”
“정말요. 우와, 나랑 같은 세상에 저런 분이 계시다니… 그냥 인종이 다른 것 같아요.”
아주 입에 침까지 발라가면서 말하는데, 기가 찼다.
천사가 하늘에서 자빠져서 내려온 거라느니, 선녀가 죄를 지어 잠시 머물다 가는 거라느니 하는데…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일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할지도 몰라. 그런데 니들은 못 보겠네?”
“왜요?”
“아까 놀게 해달라면서? 잘됐네.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된다.”
순간, 인정둥이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형우는 둘을 버려두고 강신원에게 갔다.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주방 안쪽에서 피식거리고 있는데, 그걸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형, 해보니까 어때요?”
“그게… 흐음, 나쁘지는 않더라.”
“집에서 해주는 거하고 완전히 다르죠?”
“어? 어.”
웃는 표정을 보니, 이거다 싶었다.
신애한테 부탁해서 친구들도 부르고 신원이 형이 직접 음식하면서 서빙까지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면, 대인기피증도 괜찮아질 테지.
강형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방을 나왔다.
이제 영업시간이었다.
***
복귀 전날.
인정둥이가 원하는 대로 맛집 투어를 했다.
어머니 박혜숙과 영지도 불렀고, 공지혜와 함께 소고기 외식을 했다.
그런 뒤, 치킨도 먹였고 군대에서 못 먹는다는 양곱창까지 꾸역꾸역 사줬다.
딱 여기까지면 좋았을 텐데, 두 녀석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어버렸다.
먼저 고발(?)한 거다.
형이 진짜 사악한 악덕 업주라면서, 거짓말까지 해가며 가게 나오게 하더니 쉬지도 못하게 부려먹었다고.
당연히 강형우가 일한 만큼 용돈 줬다고 하자 갑자기 강영지의 추궁이 이어졌다. 오빠한테 받은 돈 다 어떻게 했느냐고 말이다.
곧 등짝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녀석들은 꿍쳐둔 용돈을 모두 뱉어내야 했다.
그건 좀 너무하다 싶었는데…….
이 괘씸한 놈들 같으니라고!
알고 보니 내가 돈 한 푼 안 주고 부려먹어서 놀지도 못한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나 몰래 어머니한테 용돈 이십만 원씩 받았고, 강영지한테도 십만 원씩 타냈던 것이다.
계산해 보니 휴가 열흘 동안 받아간 돈만 알바들 한 달 월급 정도 되더라.
그중 절반 이상을 통장에 집어넣었는데, 그게 무려 팔십만 원이나 됐다.
그걸 강영지가 전부 압수해 버렸다. 거짓말한 죄에 괘씸죄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두 녀석이 올라가는 날, 차표 끊어주고 따로 이십만 원씩 쥐여줬다.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었고, 군인 월급이 쥐꼬리 수준이니 이런 거라도 있어야 조금은 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짐 덩이를 치우고 쉬려는데, 홍태구한테 연락이 왔다.
홈페이지가 다 됐단다.
“에휴, 쉬는 날이 쉬는 날이 아니네.”
직원은 쉴지언정, 사장은 그러지 못했다. 장사 외적인 부분도 감당해야 했기에 이래저래 바빴던 것이다.
일단 홈페이지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나왔다. 폰으로 검색해서 보게끔 맞췄던 거다.
강형우는 이걸로 크게 뭘 하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일 때문에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이번 주말, 즉 오픈하고 삼 주째였다.
약속한 대로 사은품 추첨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공정성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유투부에 올리고 주소 링크 걸면 된다는 거지?”
“어. 일단 동영상부터 찍으면 돼.”
“폰으로 해도 잘 나오려나?”
홍태구가 피식 웃더니,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뭔데?”
“출장비 삼십만 원. 촬영은 서비스로. 그 외 기타 작업까지 다 해주마.”
잠시 생각해 봤지만, 싼 건지 비싼 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걸 하려면 거의 반나절을 매달려야 하니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여기에 신경 쓸 바에야 장사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
“근데, 확실히 비싼 거 아니지?”
“야, 카메라만 삼백짜리다. 렌즈 옵션하고 다 붙이면 더 비싸. 이거 설치하고 촬영하고 하면, 그 돈이면 거의 공짜지.”
“헐, 더럽게 비싸네.”
“이걸로 먹고사는데, 그 정도 투자는 당연한 거야.”
홍태구가 당당하게 말하는데, 뒤쪽에서 오연희가 눈을 크게 떴다.
“뭐? 나한텐 백만 원도 안 된다고 했잖아!”
“헉! 연희야… 그게…….”
홍태구가 살려달라고 했지만, 강형우는 잽싸게 도망쳤다.
부부싸움에 끼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었으니까.
***
“확실히… 대박 났네.”
사은품 행사 덕분일까?
아니면 오픈발?
어쨌든 지난 이 주간 손님이 없는 시간이 없었다. 이전에는 손님이 끊겨서 휴식 시간이 생겼다면, 이제는 강제로 브레이크 타임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바빴던 것이다.
“본점에서 들어오는 수익도 얼추 육백 정도 되니까…….”
몇 번이나 계산했지만, 정말이었다.
이번 달, 통장에 꼽히는 수익만 무려 이천만 원이 넘어갔다.
세금을 감안해도 순수익이 천칠백 이상인 셈.
플러스마이너스를 여유 있게 잡으면 연봉은 무려 이억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오픈 석 달까지는 어떻게 될지 몰랐고, 무엇보다 손님 떨어질 걸 생각하고 준비하는 게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오늘이네.”
강형우는 달력을 확인했다.
2월 28일, 이달의 마지막 날이었다.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오늘 사은품 지급 추첨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 뒤, 공휴일과 일요일 이틀을 쉬고 일부 시스템을 변경할 생각이었다.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입구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