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화 다른 거 넣지 않았어요
“형, 그런데… 요즘 어때요?”
“어?”
“그래도 나름 즐겁지 않아요?”
강형우가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마주쳤다.
곧 강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나름 행복하다고 할까?”
“그래요. 그러면 된 거예요.”
강형우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강신원이 씨익 웃었다.
마치 영화 속 정우성이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잘생긴 사람이 웃으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환한 미소에 강형우는 힘이 났다.
“사장은 저니까, 형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래도…….”
“형. 여긴 날개가 아니에요. 지성분식이라고요. 이제 겨우 이년, 아니, 삼 년 차가 된 초보 사장이지만, 제 가게는 제가 지켜요.”
강형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걸 본 강신원은, 편안한 안도감을 느꼈다.
싸움을 피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강형우가 피식 웃었다.
“대신 형도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흐어어어. 죽겠다.”
김현우는 정말 몸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하긴, 거의 일주일 강행군을 했으니 아플 만도 하지.
강형우가 지성분식 오픈에 목숨을 걸고 매달린 만큼, 김현우도 통닭집을 위해 개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일정에 조정은 있었다. 게다가 강형우가 주문했기에 이전보다 정밀하게 원가도 뽑아야 했고, 알아볼 것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강형우는 그 모든 걸 직접 해내기를 원했다.
어차피 이 가게, 우리 통닭의 사장은 김현우였으니까.
“형, 저 왔어요.”
강형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현우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하다. 너무 늦게 연락했지?”
“아뇨.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형우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오픈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고객들의 메모를 참고로 자잘한 걸 고쳤고, 이제 큰 거 몇 가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형, 공장 다녀온 건 어떻게 됐어요?”
“잘됐어. 일단 이걸 받기로 했는데…….”
김현우는 그렇게 말한 뒤, 안쪽 서랍에서 은색의 밀봉된 비닐 팩을 꺼냈다.
“공장 다섯 군데 돌아봤는데, 그것만 하루 넘게 걸리더라.”
“그래요?”
“그나마 세 군데가 양산 쪽에, 나머지 두 곳이 김해라서 다행이지 조금만 멀었으면 못 갈 뻔했다.”
강형우는 비닐 팩을 살피더니 곧 성분표를 살폈다.
정제염, 정백당, 다시다에 소고기 양념 분말과 감칠맛을 내는 요소들이 추가되어 있었고, 역시 마늘, 생강, 양파 가루에 기타 조미료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사실 성분표만 보면, 다 구할 수는 있는 거였다.
소금, 후추, 고춧가루 등등이 있었고, 그 외에는 재료를 사서 가루를 내면 되니까.
그건 화학조미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개인이 그걸 전부 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소 직원 대여섯 명 이상이 되는 가게여야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선 재료 배합도 수십, 수백 번을 실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렇게 만들어진 걸 사는 게 훨씬 합리적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성황인 건지도 몰랐다.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이기는 하네요?”
“그렇게 보이지? 실제로도 이게 제일 괜찮아 보였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가장 흡사하더라고.”
김현우는 그렇게 말한 뒤 비닐 팩을 뜯었다.
“이게 1㎏ 포장인데, 딱 70마리 분량이더라고. 물론 조금 여유 있기는 해.”
역시 계산한 게 어느 정도 맞았다.
사실, 김현우가 실습을 빙자한 개고생을 하는 동안 강형우도 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장사하는 사장이 전부 알고 있어야 했기에 모르는 척 듣기만 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두 마리 치킨을 할 때, 거의 대부분을 업자에게 맡겼다. 어머니한테 배운 대로 반죽 만드는 걸 제외하고, 전부 받아서 썼던 것이다.
그 역시도 기존 거래처를 물려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치킨무나 포장지, 샐러드용 야채에 소스까지 전부.
“거기까지 가격이 얼마나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11호 닭을 쓰잖아. 생닭을 손질 다 해서 가져오는 조건으로 4,400원에 받기로 했어. 염지제도 계산해 보니까 700원 꼴이니 얼추 5,000원 선이네.”
그래도 프랜차이즈에 비하면 많이 저렴한 편이다. 여기서만 무려 천 원, 이천 원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면, 튀기기 전까지는 준비가 끝난다.
염지제에 버무린 닭 조각을 비닐에 넣고 밀봉한 뒤, 하루 냉장 숙성시키면 끝이었으니까.
이걸 반죽 묻혀서 튀기면 치킨이 완성되는 거다.
“기름은 카놀라유로 알아봤는데…….”
“왜요?”
“업계 1위가 이거 쓴다고 해서. 거기다 두 마리 치킨 체인도 이걸 많이 쓴대.”
그러면서 말하길, 20리터 한 통에 평균 50~60마리 정도를 튀긴단다. 그러니 돈이 좀 들어가도 2~3리터 정도를 더 넣고 70마리만 튀기면 깨끗하게 할 수 있단다.
“이전에는 거의 육백 원 꼴이었는데, 이렇게 하니 마리당 천 원 정도가 나오더라고.”
김현우는 살짝 울상을 짓더니, 다이어리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치킨무, 샐러드, 포장 박스 얼마에, 소스 개당 가격 등등을 더하니 원가만 거의 7,500원 선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게 다 소모되는 게 아니니 플러스마이너스 5% 전후로 잡아야 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알바는 구했어요?”
“졸업 시즌이라 잘 구해지네. 네 말대로 세 명 뽑았다. 그중에 한 명은 정직원으로 쓴다고 했고.”
“주말 알바는요?”
“일단 두 명은 구했는데, 상황 봐서 조절해야겠지.”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전의 그 서류를 꺼내 다시 이런저런 걸 체크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남는 건 거의 없었다.
대충 계산하기로 한 마리 오천 원 이하로 남을 때, 주말 포함하면 수익 평균은 40만 원 정도였다.
25일 영업하면 대략 1,000만 원 정도 버는 셈이다.
여기에 인건비만 600만 원이고, 월세도 100만 원이나 나간다.
세금을 대략 15% 정도 잡고 돈을 빼놓고, 카드 수수료에 현우 형이 이야기한 공과금과 잡비를 제외하면…….
“형 기본급이 백만 원이 안 되네요.”
말해놓고 보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김현우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내 월급이 백만 원도 안 돼?”
“일단 계산은 그렇게 나오는데요?”
강형우는 잘못됐나 싶어서 김현우가 보는 앞에서 다시 꼼꼼히 계산했다.
“역시 한 마리, 만이천 원이란 가격이 무리수였나?”
“아냐, 맞아. 그렇게 하면 그 정도 벌어가는 게 얼추 내 계산하고도 비슷해.”
“와! 그럼, 진짜 치킨집 남는 게 없네요?”
강형우가 혀를 내두르는데, 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가게마다 다르니까 딱히 뭐라고 하긴 그렇고. 우린 큰 닭하고 기름 좋은 거 들이잖아. 그리고 배달 안 하고, 홀하고 포장 장사하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거 빼먹었다.”
“아!”
마음이 급해서인지 제일 중요한 걸 놓쳤다.
바로 주류 판매였다.
사실, 이건 명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술 없이 음료수만 마시는 손님들도 있었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하면 무지하게 많이 나가는 날도 있었으니까.
“하루 소주 50병만 나가면, 그래도 한 달에 이삼백은 벌어가겠네요.”
“그래. 원래 동네 장사가 그런 거야. 솔직히 우리 어머니가 할 때도, 치킨으로 남는 건 거의 없었어. 술이 돈이 되지.”
따지면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약간 충격받았다.
이런 식이라면, 과연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뭐로 벌어먹고 사는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 그리고… 형 전에 이야기한 거, 생각해 봤어요?”
“생각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냐? 네가 하자면 하는 거지.”
“그럼, 태구 부를까요?”
“지금?”
김현우가 의아해하는데,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치맥에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더 좋죠.”
“그래. 그래라.”
***
“아오오오!”
어디서 늑대가 우는가 싶었다. 하긴, 도심 한가운데는 그럴 리는 없겠지.
예상대로 원흉은 홍태구였다.
“이 빌어 처먹을 고객 놈아. 시간이 몇 시냐?”
“어, 지금이 저녁 아홉 시 반?”
“저녁이냐? 밤이지. 그것도 한창 바쁠 시간인데.”
홍태구가 투덜거리는데,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연희가 그러더라. 가게 손님 다 나가서 한가하다고.”
“헐, 쪼잔한 새끼. 그걸 전화 걸어서 물어본 거냐?”
“당연히 뻥이지.”
순간 홍태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기에 선만 잘 그으면 피카소 그림이 나올 정도로.
“자, 우리 동네 홍 반장님. 일거리가 들어왔으니, 작업 준비하세요.”
“또 할 게 있어?”
“그 전에 홈페이지는 얼마나 됐냐?”
홍태구는 씨익 웃더니 자리를 잡았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더니 그래픽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것이다.
그사이 강형우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고, 현우 형이 치킨을 튀길 준비를 했다.
“봐. 일단 이 정도까지 했어.”
일단 화면은 시원했다.
중앙에 본점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고, 그 위에 커다랗게 지성분식 글자가 보였다. 그리고 아래쪽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 정성으로 음식을 만듭니다>
“정말 메인 페이지는 이게 다야?”
“넣을 게 없잖아.”
“쩝.”
확실히 그게 문제이긴 했다.
홍태구가 말하길, 메인 화면, 메뉴 사진과 음식 설명, 약도,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고객 게시판도 달랑 하나였으니 뭐 넣고 자시고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도 크고 시원시원하게 했단다.
“그런데 이거 인터넷으로 되냐?”
“여기 무선 안 잡힌다. 아직 도메인, 호스팅도 다 안 돼서 내 노트북에서밖에 확인이 안 돼.”
전에 용어에 대해 설명을 듣긴 했는데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났다.
뭐, 태구가 그렇다니 그런가 할 수밖에.
“보충하고 싶은 거 있으면 따로 적어서 메일로 보내고, 동영상 링크 정도는 내가 해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침 통닭이 나왔다.
홍태구가 현우 형 술잔에 맥주를 채웠다.
“일단 시원하게 한잔하고.”
세 사람은 잔을 치고 단숨에 술잔을 비워 버렸다.
그런 뒤, 냉정하게 치킨을 분석했다.
강형우와 김현우는 이미 여러 번 먹어봤다. 해서 홍태구의 반응을 기다렸는데, 의외의 말이 나왔다.
“형, 이 정도면 잘 팔리겠는데요?”
“그래?”
“예. 만이천 원에, 이 정도 양이면 남자 셋이서 충분히 먹잖아요.”
순간 김현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평가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던 것이다.
“그럼 맛은?”
“괜찮아요. 바로 튀겨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동네 치킨집보다는 훨씬 낫네요.”
“좀 더 자세히!”
강형우가 묘한 집착을 보이자 홍태구는 피식 웃었다.
“일단 튀김옷은 두꺼운 편이지만 부담 갈 정도는 아니에요. 게다가 바삭하고, 약간 짠듯하면서도 고소한 느낌이 있고요. 솔직히 형이 전에 팔던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두 마리… 치킨?”
“에이, 그건 치킨이 아니죠. 그냥 싼 맛에 안주 삼아 씹는 정도지…….”
아주 혹평으로 비수를 파파팍 박았다.
현우 형은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마다 비틀거리더니, 평가가 끝나자 고개까지 푹 숙였다.
한마디로, 두 마리 치킨은 치킨이라는 이름조차 아깝다고 했다.
그 범주에 넣는 게 오히려 치킨에 대한 모독이라나?
“하지만 이건, 그 전에 했던 것보다는 맛있어요. 특히 두툼한 살코기에… 이거 보이죠? 육즙!”
“그래.”
“사실 이건 배달 치킨에서는 맛볼 수 없는 거거든요. 바로 튀긴 통닭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랄까? 하여간 그래요.”
홍태구는 나름 위로한답시고 결론을 내렸다.
두 마리 치킨 이전에 팔던 것보다 괜찮다. 그리고 더 고급스럽고, 어머니가 할 때보다 훨씬 맛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형!”
“왜?”
치명상을 입었는지, 김현우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반대로 강형우는 귀를 쫑긋거렸다.
의외로 눈치 빠른 홍태구였다. 입만 살았다는 말도 많이 듣지만, 정말 아는 것도 많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뭔가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잠시 심호흡을 하던 홍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하실 때요. 뭐 다른 거 넣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