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화 전부 내 탓이야
“이 아줌마들이 왜 이래?”
“왜요?”
“아니, 이 메모들이 이해가 안 되네?”
강형우는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내밀었다.
그걸 본 공지혜는 썩은 표정을 지었고, 반대로 강신원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줌마들이 정신을 놓고 나왔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예.”
공지혜가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내용들이 상당했다.
이유는 알겠는데,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해서 손님을 끌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제일 많은 게, 커피를 달라는 거였다. 돈가스 먹고 후식으로 마실 수 있게 해주라는 것이다.
순간 멍해졌다.
이런 미친!
차마 두 사람이 보고 있어 욕은 참았지만, 같은 내용이 마흔 장 가까이 되니 짜증이 올라왔다.
생각해 봐라.
점심 피크 시간이 11시부터 2시까지다. 그리고 세 시간 동안, 최소 테이블당 2회전은 돌아야 한다.
만약 지성분식이 몇만 원짜리 메뉴를 파는 집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천 원짜리 김밥에 삼천 원짜리 라면, 그리고 오천 원짜리 돈가스가 메인이었다.
물론 제일 잘나가는 게 하와이안 돈가스이긴 하지만 이것도 고작 육천 원짜리였다.
즉, 한 테이블에 손님 네 명이 꽉 차도 평균 매출은 이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커피를 달란다.
백번 양보해서 좋다고 하자.
솔직히 신원이 형이 부탁을 해서 커피머신은 한쪽에 놔둔 상태였다. 원재료도 상당수가 남아 있었고, 부피를 크게 차지하는 것도 아니어서였다.
무엇보다, 지성분식 식구들과 먹기 위해 놔뒀다.
그게 보이니 이런 메모를 쓴 거겠지.
하지만 사람이 상식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메뉴판에 없는 걸 해달라고 하다니.
물론 좋게 생각해 메뉴 추가해서 팔 수도 있었다. 그런데 메모에 어떻게 되어 있느냐.
<커피 한 잔만 서비스로 주시면 안 돼요? ♡♡♡>
<다 좋은데 밥만 먹고 가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가게 분위기도 있는데, 커피 정도는 주는 게 예의라고 봐요. ^^;;>
<저 밑에 가게들은 카페라떼 같은 거 그냥 주던데, 여기는 없나봐요? -_->
이 정도가 순화된 거다.
몇 개는 노골적으로 달라는 것도 있었고, 하다못해 자판기라도 가져다 놓으라고도 했다.
이걸 해석하면, 한마디로 공짜로 내놓으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런 메모가 무려 마흔 장이나 됐다.
무슨 이런 거지 새끼들이 다 있는지!
물론 절대 불가였다.
손님이 앉고, 주문하고 음식 나오기까지 평균 10분 정도 걸린다.
먹는 데는 15분에서 25분 정도.
사람마다 편차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강형우가 꼼꼼히 계산해 보니 대부분 20분 이내 식사를 마쳤다.
여기에 커피 한잔하면 10~15분 정도가 더 걸리는 셈.
물론 오후 늦은 시간 손님이 뜸하면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한 번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점심, 저녁 손님 몰릴 때 요구하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게 쌓이면 타격이 컸다.
시간당 1.5회전도 어려우니 전체 매출의 25% 가까이가 날아가는 게 되니까.
“하아~ 머리 아프네.”
“그냥 무시해요. 뭐 하러 이런 걸 고민…….”
“지혜야,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이백 장 중에 마흔 장이야.”
“그런데요?”
“전체 비율의 20% 라는 거지. 한마디로 단골이 될지도 모를 손님 그만큼을 버려야 한다는 거야.”
강형우도 그게 아쉬웠다.
오픈발은 길어야 삼 개월이다.
하지만 지성분식 계약 기간은 무려 2년.
무엇보다, 그 이상 장사하려면 가능한 최대한의 고객들을 끌어들여 단골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이건 손님이 아니라 썅년들이잖… 오빠, 쏘리.”
홧김에 나온 말이라 그런지 단어에 감정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 말에 강형우와 강신원이 빵 터졌다.
어휴, 속이 다 시원해지네.
강형우는 잠시 웃은 뒤, 가게 바깥을 쳐다봤다.
조용한 주택가라 그런지 가게 앞 골목에 공간이 없지는 않았다.
“차라리 밖에 뭘 하나 만들까?”
“밖에요?”
“그래. 테이블 놓고 의자 서너 개 정도 가져다놓는 거면 어느 정도 될 것 같은데?”
물론 구청에 허락을 받아야 했고, 공사도 해야 했다.
돈이 좀 들겠지만 그 정도로 무마할 수 있다면 나쁘진 않겠지.
“전기 하나 빼서 자판기 놓으면 될 것도 같은데?”
“됐어요. 돈 아까움.”
“그런가? 그럼 이 문제는 일단 패스.”
사실,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메모를 보면 유모차 끌고 들어오기 불편하니 계단을 없애달란다.
“헐, 차라리 가게를 주차장에 지어달라고 하지.”
공지혜의 신랄한 반응에 일단 이것도 무시해 버렸다.
이번에는 정말 황당한 의견이 나왔다.
“음식이, 양이 적다고?”
“그럴 리가 없죠. 알잖아요?”
공지혜는 그렇게 말하면서 저번의 일을 꺼냈다.
사실, 지성분식은 양이 적은 편이 아니었다.
라면이나 김밥이야 어쩔 수 없지만, 돈가스도 큰 편이었고 볶음밥도 성인 남자 기준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많이 줄이고 줄인 거였다.
왜냐?
원래 음식 하는 사람은, 자기가 먹는 걸 기준으로 양을 맞춘다. 강형우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이 먹는 편이니 당연히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걸 공지혜가 지적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이 많아서 남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해서 이강석 기준으로 양을 조절했다.
하지만 그것도 성인 남자가 먹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양이 적다고?”
“그게… 제가 주문받은 게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뭔데?”
“애들 먹이게 더 달라는 거죠.”
짧고 간결한 결론이었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에서 그런 내용 같은 걸 본 기억이 났다.
돈 내기는 싫고, 애는 먹이고 싶고. 그래서 일부 식당에 무리한 주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바로 고개를 저였다.
“이것도 패스. 우리는 우리 정량으로 간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마지막이 남았다. 이게 의견이 제일 많은 거였는데 그래서 가장 머리가 아팠다.
강형우는 먼저 가게를 둘러봤다.
테이블 열여섯 개가 꽉 찬 공간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뭘 더 짓기는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의견을 모으는 중이니 한 번은 물어봐야 하겠지.
“아이들 놀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건데, 어떻게 생각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놀이 공간 있으면, 동네 애들 다 모일걸요?”
“지혜는… 애들 싫어해?”
“그건 아니죠. 애들이 얼마나 귀여운데, 하지만 장사 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반대예요.”
공지혜는 강경하게 결사반대를 외쳤다.
그러면서 말하는데, 우리가 고깃집이냐는 거다. 가족 외식 식당도 아니고 고작 분식집인데,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직원 하나가 아예 아이들한테만 매달려 있어야 한단다. 지금도 인정둥이가 있어 서빙이 수월한 거지 애들 군대 복귀하기 전까지 사람 못 구하면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도 문제긴 했다.
일전의 경험 때문에 공지혜 장군의 통솔력이 상승했다.
무엇보다, 인정둥이가 군대에서 일만 하는 일병이 되었기에 경험치까지 높아진 상황.
그 덕에 손님들이 미친 듯이 몰려왔음에도 사고가 없었다. 가게 앞에 손님들 줄까지 길게 새웠음에도 잡음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때 강신원이 처음으로 나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애들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끄러워지면 다른 손님들도 불편해할 거야.”
성격상 조용한 걸 좋아하니 그런 의견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긴 한숨에 이어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게 전부, 내 탓이야!”
***
“흐음, 이게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메모에는 황당한 요구 사항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것도 많았고, 일부는 바로 시행이 가능했다.
일단 음료수 정도를 다양하게 늘려달란다. 요즘 탄산수가 유행하니 달달한 하와이안 돈가스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차피 돈 받고 파는 거니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또, 어떤 메모에는 쿠울피스도 복숭아 말고, 파인애플이나 망고도 넣어달라고 했다.
이유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단다.
강형우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나중에는 빵 터지고 말았다.
확실히 메모도 귀여웠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외 음식에 대한 내용은 가볍게 넘겼다.
김치볶음밥에 김치만 너무 많다, 그러니 그거 빼고 고기를 더 채워달라.
김밥이 좀 짠 것 같다. 라면에 기름이 너무 많다. 사골 떡만둣국이 싱겁다. 떡볶이가 너무 맵다.
등등이 있었는데, 입맛이야 개인 취향이니 바꾸기는 불가능했다.
또, 화장실 휴지는 좀 더 부드러운 걸로 바꿨다.
비데 때문에 젖으면 쉽게 찢어질 것 같아서 두꺼운 걸로 했었다. 그런데 귀여운 불만이 무려(?) 두 개나 되어 당장 교체한 것이다.
“이제 다 처리한 것 같은데… 문제는 역시 이것들인가?”
거의 백여 개가 넘는 불만 사항!
그 대다수가 동네 아줌마들이었다. 그리고 강신원이 스스로 자백했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단다.
그게 어떻게 된 건가 하니…….
“처음부터 날개가 그렇게 장사한 거 아니거든. 정말 딱 커피 몇 종류만 팔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강신원이 원했던 건, 조용한 평화였다.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왔다 가고, 가볍게 커피 한잔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러다 저녁이 되면 간단한 안주에, 맥주 한두 잔 하고 헤어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단다.
문제는 동네 아줌마들의 요구였다.
커피에는 도넛이라고, TV 광고도 못 봤냐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소량을 사들고 왔다.
또, 누구는 달달한 케이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근처 제과점에 부탁해 그 역시도 주문해서 받았다.
물론 며칠 동안 안 팔린 건 버려야 했으니 손해도 적지 않았다.
그 외 손님들 요구 때문에 빵과 비스킷 종류가 생기면서 과자도 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아주머니들이 애들을 데려오기 시작하더라고.”
지옥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단골 고객 아줌마들이 매대에서 술을 빼란다. 애들 교육에 좋지 않다면서 항의까지 했다는 것이다.
또, 바깥에서 담배 못 피게 해달라고 해서 수시로 나가서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요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백화점에서 고객 상대하는 일을 했잖아. 그때는 무조건 예스, 하고 시작하거든. 부당하든 불합리하든,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니까. 그래서 그게 습관이 된 거야.”
“그래도 그렇지.”
공지혜가 안타까워하는데, 강형우도 답답함을 느꼈다.
전에 술자리에서 몇 번 듣기는 했다.
속칭 백화점 VVIP.
이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갑질 같은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원이 형도 많은 모욕을 당했고, 어이없는 화풀이에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또, 쉬쉬하는 이야기 중에 그런 것도 있었다.
어떤 미친년이 다음 날 다시 백화점을 찾았다. 같이 온 남자 친구가 여직원한테 눈길을 줬다고,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황당한 건, 여직원이 해고됐다는 것!
정말이지 그런 부당함이 비일비재한 곳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대인기피증이 걸리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거다.
“그래서 조용히 살고 싶었거든. 그런데, 폭발한 거지. 애들이 가게 장식용으로 놔둔 소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 던지더라고.”
“헐! 미친.”
“그래서요?”
강형우와 공지혜가 묻는데, 강신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당황스럽게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과 한마디 없더라고. 애들이니 그럴 수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다못해 돈이라도 물어달라고 해야죠. 아우! 진짜, 내가 다 속이 상하네.”
공지혜가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그때, 강신원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 처절한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페 ‘날개’가 문 닫은 게 그래서란다. 사람 보는 게 고역이었고 무척이나 괴로웠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인기피증도 심해져서 집 안에만 있었다고 했다.
강형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부른 강학희에게서 절박함이 느껴졌던 이유를 말이다.
갑자기 공지혜가 버럭 했다.
“진짜 그런 년들은 아예 출입을 못 하게 해야 하는데… 맞죠? 오빠!”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장사라는 게… 그래. 그런 거지. 그런 손님 받아봐야 뭐하겠어.”
강형우가 말을 바꾼 건 이유가 있었다.
전에 주혁 형이 그러지 않았던가?
손놈을 받으면 손님이 도망간단다. 그러니 싸우더라도 내쫓는 게 답이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확실히 여기가 그런 동네라면 거기에 맞게 장사하는 게 맞는 거겠지.
강형우는, 일단 기준부터 세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