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99화 (99/251)

# 99

99화 초조하네

“아오, 힘들어.”

강인우의 말에, 강정우는 골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쉬자.”

“그래. 그러자.”

인정둥이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타이밍 더럽네.”

“그러게. 하필이면 이럴 때 나온 거냐?”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행보관한테 조르는 게 아닌데. 괜히 빨리 보내달라고 해서.”

인정둥이는 혀가 타는지 입을 쩝쩝거렸다.

원래라면 다음 주가 휴가였다.

하지만 설 연휴에 맞추기 위해 간부한테 졸랐는데, 짬밥에서 밀렸다. 둘 말고도 많은 고참들이 그때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연휴 끝나고 나온 게 오늘이었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인 상황.

“그래도, 형 너무하지 않냐?”

“그러게. 예상은 했었지만 바로 이래 버리네?”

“다음 주 토요일이 복귀인데, 이러다 휴가 내내 묶이는 거 아냐?”

“설마?”

인정둥이들은 소름이 돋는지 갑자기 팔을 문질렀다.

혹시나가 역시나, 설마가 사람 잡는 경우를 여러번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형한테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돼? 우리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차라리 지혜 누나 없으면 집에라도 가겠는데…….”

덕분에 둘은 꼼짝없이 강형우 자취방에서 지내야 했다. 옷가지라든가, 필요한 게 전부 거기 있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집 열쇠였다.

예비키를 이강석이 들고 있었는데, 정은혜의 전화 덕에 사전 차단이 됐던 거다.

“근데 2호점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형한테도 한 번씩 전화해 보자고 했잖아.”

“전화비도 비싼데, 형은 전화해도 용돈 안 보내준다고, 누나한테만 하자면서?”

“내가… 그랬나?”

사실 강정우가 먼저 한 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거 언제 다 돌리냐?”

강인우는 손에 들린 전단지 한 뭉텅이를 흔들었다.

둘이 합쳐서 삼백 장이었다.

강형우에게 자취방 열쇠를 받아 옷 갈아입고 오자마자 할당된 양이었다.

사실, 중간에 도망칠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눈치챘는지 이강석한테 폰을 빌려서 단단히 쥐어주었다. 심지어 택시타고 갔다 오라면서 만 원까지 건넸던 것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코가 꿰인 셈.

“아오, 휴가 첫날부터…….”

“그러게. 차라리 엄마 식당이나 갈걸.”

“군복 입고, 거길 가자고?”

“하긴…….”

국밥집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특히 단골 어르신들이 많아서 손님들 앞에서 군가를 불러야 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에구, 모르겠다. 이거나 후딱 돌리고 들어가자. 그래도 동생인데 밥은 주겠지.”

“과연 그럴까나?”

인정둥이는 반신반의하면서 일어났다.

그래도 일병이라고 일하는 데 익숙한 모양이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더니 두 시간 만에 끝난 것이다.

인정둥이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지성분식 2호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먹을 건 없었다. 테스트 삼아 만든 건 벌써 다 먹었고, 재료까지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인정둥이는 다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

“에이, 장난 좀 친 거지.”

강형우가 너스레를 떨며 두 동생을 끌어안았다.

힘이 다했는지 지쳤는지, 의외로 거부하지 않았다. 그냥 강형우 품 안으로 무너진 것이다.

“혀엉님, 살려주세요.”

“우리, 진짜 배고파요.”

설 연휴 내내 휴가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전날부터 전투복 각 잡고, 군화 광나게 닦고, 새벽부터 신고한다고 대기한 뒤 바로 부대를 나섰던 것이다.

먹은 건, 점심 때 국수 한 그릇이 전부였다. 맛있는 거 먹겠다고 참았다가 봉변을 당한 거다.

“그래, 그래. 조금만 가면 된다. 조금만. 여기 건널목 건너면 니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삼겹살이 있다고.”

강형우는 인정둥이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 뒤로 공지혜와 강신원, 이강석이 붙었고, 새로 뽑은 알바 둘도 눈치를 보면서 따라갔다.

사실 공지혜와 이강석은 사정을 아니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신원과 알바 둘은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오픈하고 장사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군인 둘이 들어왔다.

전투화 때문인지 키가 거의 190에 가까웠다. 거기에 얼굴도 시커멨고 몸도 다부져 보였다.

그런 애 둘이 갑자기 대가리를 바닥에 박더니 한참을 끙끙댔다. 게다가 잠시 후 가게를 나가더니, 거의 40분 만에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놀랄 일이지만, 끝이 아니었다.

강형우가 전단지 한 뭉텅이를 주면서 이랬다. 다 돌리기 전에 밥 먹을 생각하지 말란다.

신기한 건, 그런 폭정(?)에도 반항이 일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그걸 보고 나니, 사장이 정말 무서운 사람 같았다. 지금도 거의 도살장 끌려가다시피 매달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공지혜가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 오빠 안 무서워요.”

“어? 그건, 나도 알지만…….”

“저건 장난이라고요.”

강신원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남정네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는데 어찌 장난처럼 보이겠는가?

게다가 알바 둘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일하면서 겪게 된 게 있어서였다.

분명 사장님은 웃고 계시는데, 이상하게 무서웠다. 무엇보다 큰 키와 다부진 덩치 때문인지 농담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주방 보조 제안을 받은 이영제도 마찬가지였다.

거부하면,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위압감이 있다고나 할까?

월급 십만 원 인상 때문이 아니라 무서워서 하겠다고 한 거였다.

“자! 다 왔다.”

강형우가 데려간 곳은, 역시나 단골집인 지리산 흑돼지 집이었다.

문을 여니, 이미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부탁했기에 이모들이 서비스한 것이다.

잠시 후, 지성분식 본점의 식구들까지 합류했다.

강형우는 천천히 둘러본 뒤, 한 명 한 명에게 소주를 따르러 돌아다녔다.

먼저 본점의 순이 이모와 이은주, 홍성구와 백창호, 정은혜에게 다가갔다.

그 옆에는 공지혜와 신원이 형, 그리고 주방 메인으로 승진한 이강석이 보였다.

참고로 다음 달이면 카드값을 모두 메꾼다고 했다. 그러면 바로 그만두겠다고 해서, 아예 2호점 주방장으로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강형우는 김복희 여사님에게 미리 그 진급 소식을 알렸다.

덕분이 이강석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망치려면 호적에서 판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것이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군 입대였다.

“자, 오늘은 제가 삽니다. 다들 마음껏 드세요.”

강형우는 이제 2호점 새 식구들에게도 술을 따랐다.

주방 보조 이영제와 홀 서빙 은선경도 조심스레 소주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자르지도 않은 삼겹살을 통째로 입에 구겨 넣고 있는 인정둥이였다.

강형우는 진심으로 사랑스러운 동생들을 쳐다봤다.

“휴가, 축하한다!”

***

빰빰 빰빠밥, 빠라빠라 밤빰, 빰빰빰~

“아오! 쒸팔!”

강형우는 벌떡 일어나면서 욕설부터 내뱉었다.

원흉은 저 발밑에서 자고 있는 인정둥이었다.

어제 같은 경우 회식은, 가볍게였다. 간단히 1차를 하고 호프만 마시고 헤어지자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다들 많이 마시지 않았고 나름 즐거운 분위기였다. 본점과 2호점 식구들의 화합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으니까.

문제의 시작은 이영제였다. 예비군 2년 차라면서 하필이면 군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긴, 제일 만만한 게 휴가 나온 인정둥이였으니까.

거기에 홍성구가 끼였고, 신원이 형도 가세했다. 갑자기 군대 이야기가 한 시간을 넘게 이어진 것이다.

덕분에 호프집에선 기본만 마시고 여자들 먼저 들어가 버렸다.

어쨌든 인정둥이와 이강석, 백창호와 함께 집에 왔는데 누가 또 꼬시더라.

결국 치킨에 소주 간단히 먹고 잠들었다.

그래서 그런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군대 재대한 지 6년 만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일병이 되어 삽질하고, 삽질하고, 삽질하는데, 하늘에서 눈 폭탄이 쏟아진 것이다.

차라리 똥 꿈이면 복권이라도 사겠건만, 하루 종일 눈 치우는 꿈이라니.

“아오, 재수 없어.”

강형우는 일어난 김에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세시도 되지 않아, 결국 다시 눈을 감기로 한 거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또 ‘아! 쉬발 꿈’을 외쳤다. 이번에는 이등병이 되어 혹한기 훈련을 나갔던 것이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인정둥이가 잠결에 이불을 다 뺏어간 거다.

“하아! 초조하네.”

강형우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오늘이 오픈 날이었다.

자동문 뒤쪽에 카운터에는 공지혜가 있었다. 그리고 뒤쪽 의자에 은선경과 인정둥이가 앉아 있었고, 주방에는 이강석과 이영제가 대기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신원이 냉장고 앞에 있었다. 주문 들어오면 필요한 걸 바로 빼기 위해서였다.

“일단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웃긴 게, 지성분식 처음 오픈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떨리는 것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렇게 2호점까지 냈음에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어제 새벽에 꿨던 군대 꿈 이연타가 컸다.

덕분에 어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야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강형우는 또다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열한 시 오 분 전이었다.

길게 심호흡을 한 강형우는, close를 open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날, 평생 잊을 수 없는 매출을 기록했다.

***

“예상하고 너무 다른걸?”

강형우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어댔다.

비싼 돈 주고 사람까지 구해서 전단지를 뿌렸다.

오픈 기념 10% 할인.

세트 메뉴 시 음료수 한 병 공짜.

돈가스 주문 시, 쿠울피스 한 잔 서비스.

마지막으로, 2박 3일간 방문 고객에 한해 영수증 추첨을 하기로 했다.

1등 한 명이 3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고, 2등이 두 명이 10만 원짜리 구두 상품권이었다.

3등은 열 명이나 뽑기로 했는데, 세트 메뉴 무료 시식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공지혜가 냈는데, 그 때문인지 첫날부터 손님들이 북적거렸던 것이다.

고작 삼 일인데, 매출이 천백만 원이 넘게 찍히더라.

게다가 첫날은 무려 460만 원을 찍었다. 하루 종일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아줌마들까지 줄서서 2, 30분을 기다릴 정도였던 것이다.

“확실히 테이블 열여섯 개는 크네.”

자리당 평균 2회전에서 3회전을 했다. 한 시간에 거의 5만 원 가까이를 벌어준 셈이다.

그렇게 계산하니 점심 피크 시간에만 매출이 200만 원이 넘었다.

오히려 손님이 늘어난 건 오후였다.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퇴근하는 직장인들까지 찾아왔다. 여기에 근처 원룸에 사는 돈가스 포장 손님까지 추가되자 매출이 팍팍 늘어난 것이다.

“이러다 진짜 월 매출만 일억 넘어가는 거 아니야?”

강형우는 실실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휙 저었다.

꿈은 크게 갖는 게 좋았다.

하지만 헛된 망상은 빨리 지우는 게 현명했다.

“오픈발하고, 이벤트 끝나면 거품이 빠지겠지. 그리고 고객들이 선호하는 것도 알아봐야 하고, 손볼 것도 많이 생길 거야.”

그걸 위해 강형우가 준비한 게 있었다.

바로 평가 메모였다.

손님들이 오면 제일 먼저 새로 오픈한 사실을 알렸다. 그런 뒤, 메모지를 나눠주면서 불만 사항 같은 걸 적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물론 그중에 몇 개를 추첨해서 소정의 사은품을 준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인 게 대략 이백여 장이나 됐다.

그걸 2호점 식구들과 하나하나 읽어봤는데, 공지혜가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만 따로 추려 놨다.

강형우는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게 제일 심각하네.”

안 그래도 고민 많이 하던 거였다. 지성분식 본점이 있는 동네와 여기는 고객층이 많이 달랐던 것이다.

특히 아줌마들 입김이 장난이 아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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