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91화 부탁 좀 하자
통닭집이 의외로 오래됐구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강형우는 공지혜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감상했다.
“사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됐지.”
“그야, 소주방에서 치킨 튀겨주는 데가 이 씨네 말고는 없었으니까.”
일종의 형식이 없다고나 할까?
실제로 부산의 오래된 시장 구석을 가면 그런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그날 싼 식재료를 사 와 되는 대로 만들어 팔았다. 메뉴판에 없어도 손님 주문에 맞춰서 이런저런 음식들을 내놨던 것이다.
가격 역시 주인장 마음대로였다.
당면과 야채를 볶아서 잡채 한 접시 나가는데 삼천 원, 하지만 사람 수에 맞춰 양을 늘리면 오천 원 하는 식이었다.
파전도 마찬가지였다.
홍합이 싸면 그게 듬뿍 올라갔고, 오징어가 제철이면 그게 메인이었다.
치킨도 손님들 요구에 맞추다 보니 시작하게 된 것이고,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가장 많이 찾는 메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라도, 맛있었으니까 계속 시켰지. 양도 많았고.”
“맞어. 맛없으면 누가 먹나?”
당시에는 남자 넷이서 통닭 한 마리 시키면 충분했단다. 가격도 팔천 원에 불과했고, 먹다 남은 걸 종이봉투에 싸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장사가 잘된 건, 삼 년에 불과했다.
“그 옆에 옆에 집 박 씨가 문제였어. 통닭집 잘된다고 똑같은 걸 차렸으니…….”
불과 일 년 사이, 좁은 시장 골목에 통닭집만 세 군데가 생겼다. 물론 지금은 현우 형네 통닭집이 유일했지만, 당시 경쟁이 무척 심했단다.
악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래쪽 큰 도로가에 맥시칸과 장모집 같은 프랜차이즈가 들어섰다. 배달을 주로 했지만 호프도 팔았기에 현우 형네 통닭집도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매출은 뚝뚝 떨어지고, 손님은 하루 두세 테이블밖에 없었다. 그래도 가게 살려볼 거라고 늦은 새벽까지 영업했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배달까지 했다.
“김 씨가 무리했지. 새벽에 자는 시간 빼고 하루도 안 빠지고 가게를 지켰으니까.”
“허고, 그때 나도 있었잖여. 사람이 픽 쓰러지는데 놀라서 일일구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간암 3기.
지금이야 수술하고 관리 잘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15년 전에는 아니었다.
결국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눈을 감으셨다.
이건 강형우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후 어머니가 가게를 맡아 꾸렸고 현우 형이 군대 제대하고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게 7, 8년 전이었다.
우리 통닭은 그때부터 강형우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됐다.
통닭 한 마리는 고작 만이천 원이었다.
하지만 5인분 같은 한 마리가 나왔고 그거로도 부족하면 현우 형이 어머니 몰래 이것저것을 튀겨서 채워주었다.
그랬던 가게인데…….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네.”
고개를 돌리니 정덕수가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그리고 김창주도 한숨을 내쉬며 옆자리에 앉았다.
“오느라, 고생했다.”
“당연히 와야죠.”
강형우가 소주를 들어 형들 잔을 채웠다.
그때 김창주가 말했다.
“너 오기 전에, 기성이랑 태구, 연희 왔다 갔다.”
“그래요? 빠르네.”
“애들도 일이 있어서 오래 못 있다 갔어.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태구하고 연희는 다음 달 상견례 하기로 했다면서?”
“예. 망년회 때 일이 좀 있었거든요.”
홍태구가 혼인 신고서를 꺼낸 이야기를 했더니, 김창주와 정덕수가 피식 웃었다.
“어린 년놈이 감히, 이 형님들보다 먼저 가려 하다니.”
“야. 너도 준비 중이잖아. 제수씨가 올해 하자면서?”
“마! 앞으로 형수라 불러야지. 내가 너보다 생일 빠르잖아.”
“그래 봐야 고작 보름이거든? 그리고, 너 내 여친한테 형수님이라 부를래?”
덕수 형의 지적에 창주 형이 잠시 움찔했다.
“하긴, 친구끼리는 제수씨지.”
B22
그렇게 극적인 합의를 본 뒤,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현우 형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현우 형은 한동안 연락도 안 되고 그랬는데.”
“그게…….”
“사정이 좀 그랬어.”
둘 다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소주 한두 잔이 들어가니 김창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원래 어머니 아픈 거 다 알고 있었잖아.”
“그야… 그랬죠.”
기억하기로 5년 정도 됐다.
어느 날부터 계산이 안 맞고, 손님 주문도 빼먹었다. 잔돈도 잘못 주기 일쑤였고 한 테이블에 통닭만 두 번씩 나간 적도 있었다.
건망증인가 싶어, 병원을 갔더니 치매란다.
“그때가 초기였지. 그래도 반년 정도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한 번 기름이 터진 거야.”
가마솥 온도를 올려놓고 까먹어 버렸다.
아무것도 튀기지 않는데 기름이 펄펄 끓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구별이 애매했는데, 거기에 반죽 닭을 넣는 순간 펑 해버린 것이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화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며칠은 입원해야 할 정도였다.
치매 증상이 심해진 게 그때부터란다.
“그 정도로 무서운 병인지는 몰랐어. 그냥 기억력이 조금 안 좋아지는 건가 싶었는데…….”
일 년이 지나자, 말을 잊어버렸다.
지능이 다섯 살 수준으로 떨어졌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됐다.
강형우는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현우 형 방 한쪽에 잔뜩 쌓인 성인용 기저귀 박스를 말이다.
“솔직히 무섭더라. 이게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사람 얼굴을 잊어버리고, 걷는 방법도 까먹는다.
음식 씹는 걸 기억하지 못해 옆에서 누가 떠먹여 주지 않으면 식사조차 못 하게 된다.
보통 이 정도 되면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우 형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요양원 들어가면, 일 년 안에 다들 돌아가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힘들어도 직접 모시겠다고 결심한 거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사였다.
밤새 울면서 고함을 내지르니 여러 번 신고가 들어갔고, 비슷한 일로 이웃들에게 피해가 갔던 것이다.
강형우 자취방보다 윗동네, 산 아래 낡은 주택 독채를 얻었다. 그리고 홍태구에게 부탁해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폰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놨다.
그거로도 안심이 안 되어 이웃집 할머니에게 매달 오십만 원씩 주고 돌봄 부탁까지 했다.
술은 일주일에 딱 한 번이었다.
그 외에는 가게와 집만 다녔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2시 전에 들어갔다.
어머니 식사 챙겨 드리고 기저귀 갈고, 약까지 먹이면 새벽 세 시.
그제야 현우 형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또, 쉬는 날마다 어머니 목욕을 시켜 드려야 했고, 손수 이발까지 했다.
그런 지극정성 때문일까?
병세는 악화되지 않았고, 가끔 집 앞을 산책할 정도까지 되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기력이 쇠해지셨단다.
“현우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거지. 먹는 것만 봐도 나오니까.”
하루 두 번 죽을 먹는데, 이제 삼키는 법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목으로 넘기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았다나.
결국 현우 형은, 입원을 결심했다.
그게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눈을 감으셨단다.
“그래도 편하게 가셨대. 아쉬운 건, 현우 얼굴을 못 알아봤다는 거야.”
지난 삼 년간, 현우 형에게 아빠라 불렀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알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김창주는 그렇게 말한 뒤 소주를 권했다.
한 잔 넘기는데, 목구멍이 따가웠다. 쓰고 매워서 쓰라릴 정도로 독하게 느껴졌다.
그때 마침, 자리를 돌면서 인사를 하던 김현우가 맞은편에 앉았다.
“형우야, 고맙다. 너도 많이 바쁠 텐데…….”
“아뇨. 괜찮아요.”
강형우는 잔을 하나 꺼내 김현우 앞에 놓았다. 그리고 무릎 꿇고 정성스럽게 술을 따랐다.
“그런데, 상주가 자리 비워도 되냐?”
김창주가 묻자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올 사람은 다 왔어. 상인회 사람들하고 회장님하고 시장 사람들 대부분 낮에 다녀갔거든.”
“하긴, 의외로 많이 왔더라.”
“대충 백 명은 넘는 것 같은데, 다들 고마우신 분들이지.”
김현우는 소주잔을 잡으려다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멈췄다.
“아무래도 술은 무리겠다.”
“그렇지? 그럼 마시지 마라. 그리고 나랑 덕수가 지킬 테니까 좀 쉬고 있어.”
그렇게 김창주와 정덕수가 떠나자 김현우가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사실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되는데, 정신이 없더라고. 나중에 부재중 통화 남은 거 보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아뇨. 제가 미안하죠. 저는 그런 일 있었는지 몰랐어요. 오히려 먼저 찾아갔어야 되는데.”
“뭐, 와도 못 보지. 가게 문 닫은 지 한 달 넘었거든.”
김현우는 아직도 소주잔을 보고 망설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 잔이라도 마시기 시작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형…….”
“나, 괜찮아. 애도 아니고.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야. 오히려… 오래 곁에 계셔줘서 고마웠던 거지. 버틸 만큼 버티신 거고, 오 년이면… 그래도…….”
김현우는 몇 번이나 울컥하더니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건, 미안함과 자책감, 죄송스러움 등이 복잡하게 얽힌 그런 거였다.
그때 뒤쪽의 어르신 한 분이 현우 형의 어깨를 잡았다.
“마. 한잔해라.”
“저…….”
“됐고. 니는 할 만큼 했다. 요즘 시상에 치매 어미, 오 년 모셨으면 지극정성이다. 이 씨도 복 받은 기라.”
“그러지. 그만큼 했으면 됐다. 니 여기서 울면 이 씨 맘 편히 못 간다.”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위로를 했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소주 대여섯 잔을 먹이니, 현우 형은 정말 신기하게도 시체처럼 기절해 버렸다.
“근데 니는 누고?”
“아는 동생입니다.”
“그래? 그러면 데려다가 눕히라. 사람이 오래 긴장하고 있으면 이리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라제. 이래라도 쉬어야 출상할 거 아이가.”
이야기 들어보니 다 알고 행동한 거였다. 하루 종일 서서 조문객들을 맞았으니 쉴 때가 되었다면서 억지로 마시게 한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김현우를 업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덕수 형의 도움을 받아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줬다.
이날 공지혜를 먼저 보낸 강형우는 아침까지 뜬눈으로 보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많아서였다.
***
“어, 그래. 부탁 좀 하자.”
의외로 씩씩한 목소리였다.
다음 날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하고, 기장에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창주 형이 말하길, 그날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게 사흘 전이었다. 그리고 강형우는 그날 전화로 부탁을 받았다.
가게 새로 할 거니까 도와달라고.
“이틀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지성분식은 사람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공지혜나 이강석을 부르려는데, 현우 형이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힘쓰는 일이 아니라나?
해서 강형우는 홀가분하게 우리 통닭으로 향했다.
마침 김현우는 냉장고 속의 오래된 음식물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있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장사하지 않았기에 입구에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어. 왔냐?”
“예. 형. 근데 괜찮아요?”
강형우가 조심스럽게 묻는데 김현우가 피식 웃었다.
“그럼 괜찮지. 죽겠냐?”
차마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우는 평소보다 밝게 웃으며 한쪽에 앉으라고 했다.
“사실, 생각 많이 했거든. 두 마리 통닭은 돈이 되는데, 무척 힘들더라고.”
그러면서 과정을 설명하는데 정말 일이 많긴 많더라.
닭을 사와 염지를 하고, 반죽을 입혀서 초벌로 튀긴다. 이걸 주문 들어오면 다시 6, 7분간 튀겨서 나간다.
이렇게 보면 간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박리다매이기에, 한 사람은 무조건 튀김 솥 앞에 붙어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 서빙을 하면서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사람 뽑아도 금방 나가더라고. 몇 달 사이에 알바만 열 명 그만두더라.”
“돈 많이 주면 되잖아요.”
“그랬는데도, 싫대. 힘들고 기름 냄새 난다고 못 하겠다더라.”
“그 정도예요?”
“하루 이백 마리씩 튀긴다고 생각해 봐. 당연히 냄새 나지.”
김현우는 최대한 자세히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확실히 문제가 많았다.
강형우는 작정한 듯, 물었다.
“형, 무조건 제 말대로 할 자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