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84화 신나게 달리는 거다
기본은 이거였다.
지성분식 본점은 순이 이모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
일단 공지혜와 이강석이 빠지면, 남은 인원은 순이 이모와 정은혜, 백창호였다.
이 세 사람은 이제 완전히 지성분식의 사람이었다.
사실, 전에 강학희가 가게에 왔을 때 다들 유독 표정이 밝았던 게 이유가 있었다.
전에는 일이 힘들거나 하면, 틈틈이 차비 형식으로 얼마씩 돈을 줬다. 손님이 많아서 바빴던 달은 월급에 십만 원, 이십 만 원씩 더 주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걸 완전히 없애 버렸다.
월급도 딱 약속한 금액만 입금했고, 한 푼도 더 내주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만이 없었다.
회식 때 말하기도 했지만 한 번에 모아서 보너스 형식으로 준다고 미리 알려줬던 것이다.
12월 1일이 그 첫째 날이었다.
그게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다들 싱글벙글할 수밖에 없었다.
강형우가 꼼꼼히 계산해 보니, 공지혜 월급이 180만 원에 보너스만 거의 160만 원이 나왔다. 그러니 이달에 가져가는 돈만 340만 원이 되는 셈.
마찬가지로 순이 이모도 300만 원에 가까웠고, 이강석도 처음으로 100만 원이 넘었다. 물론 카드 빚청산도 이제 넉 달 정도면 끝인 상황이었다.
또, 정은혜하고 백창호는 거의 2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쥐게 되었다.
그 이유 때문에 직원들의 충성도는 최고였다.
어쨌든 그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 다들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순이 이모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그러니까, 나보고 점장을 하라고?”
“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모만 한 사람이 없어요. 솔직히 우리 가게 중심은 이모잖아요.”
실제로 강형우가 자리를 비웠을 때, 모든 건 공지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내고 이런저런 개선안을 가지고 오면 그걸 조율했던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공지혜 바로 뒤에 순이 이모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였다.
같은 창업 공신이라는 점도 있었고, 내년 2월이면 거의 이 년 가까이 붙어서 지낸 게 되니까.
“사실, 요즘 불안불안한 것도 있거든요. 솔직히 이모 어디 아프죠?”
“내가?”
화들짝 놀라는 걸 보니 역시나 짐작이 맞았다.
어지간하면 아파서 쉬는 경우가 없었는데, 최근에만 세 번이었다. 그 간격이 좁아지고 있었고 요즘은 부쩍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의 2년이었다. 중간에 잠시 외도(?)를 하긴 했지만, 지성분식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방을 이끌었던 것이다.
“저, 이모 고생한 거 다 알아요. 주 육 일이예요. 겨우 하루 쉬고 매일 주방에서 종일 일하는데 안 힘들 수가 없죠.”
“원래 식당 일이 다 그런 건데…….”
“그래도, 피로가 누적된 거 맞잖아요?”
강형우가 두어 번이나 반복해서 묻자, 순이 이모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에 물이 찼대. 지금은 약 먹고 괜찮아지고 있는데, 병원에서 좀 쉬면 나아진다고 하네.”
중요한 건 쉴 수 없다는 거다.
나이 마흔에,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딸이 있었다. 남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서 묻질 않았는데, 어쨌든 혼자 애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돈을 벌어야 했다.
즉, 이대로라면 무릎이 좋아질 일은 없는 셈.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이모가 저 좀 도와주는 셈치고, 그렇게 해줘요.”
“글쎄, 내가 잘할 수 있으려나?”
순이 이모는 걱정부터 앞서는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씨익 웃은 뒤, 이모의 손을 잡았다.
“그냥 저랑 지혜가 하는 거 배우면 돼요. 신경 쓸 건 많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편할 거예요.”
그러면서 대략적인 과정을 설명했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밥부터 하고, 다음 날 쓸 돈가스 고기를 준비하면 된다. 그러고 오전에는 김밥 재료를 준비하고 오후에는 맛간장과 여러 육수를 끓이고, 소스들을 준비하면 끝이였다.
물론 이게 큰 거고, 그 외에도 자잘한 게 있었다.
파마늘 기름 양념장을 미리 만든다든가, 일주일에 한 번씩 사골 육수를 만드는 것.
또, 12월부터 어묵 국밥도 판매할 거니까 그것도 준비해야 했고 떡볶이 소스도 전날 만들어놔야 했다.
하지만, 일은 육체적으로 편했다. 오픈 주방에서 하루 종일 돈가스 튀기는 것보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제가 이모 솜씨를 믿잖아요. 어차피 다 계량해 놔서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순이 이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몇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지성분식 2호점에 더 집중하겠지만 어차피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들릴 거다.
그러니 실수해도 된다. 그리고 이모 실력이 있으니 실수할 만한 일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덧붙였다.
결론은 기존에 공지혜가 하던 작업을 하면서 가게 관리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정말 그러면 돼?”
“그럼요!”
그렇게 순이 이모는 강제로 점장 진급이 결정됐다.
***
이후에는 정말 간단했다.
“강석아~ 넌, 나 따라가는 거다.”
“예? 제가 왜요?”
“넌, 내 노예잖아.”
“헐.”
“싫으면 도망가든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니 바로 해결(?)됐다.
하긴, 지가 가면 어딜 가겠는가? 내 방 아래 자기 방이 있는데 말이다.
그때 슬그머니 백창호가 끼어들었다.
“형님, 저도 그쪽으로 가면 안 됩니까?”
눈치를 보니 강석이랑 같이 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크리티컬 대미지를 날렸다.
“너, 넉 달 뒤에 군대 간다면서?”
“크흑, 형님. 어쩜 그렇게 잔인한 말을…….”
“용돈 부족하면 휴가 나와서 일하다 가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이렇게 백창호까지 전사를 시켰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 정은혜와 공지혜였다.
역시나 정은혜가 먼저 손을 들었다.
“오빠 저는요?”
“우리 은혜는 참 착해. 시키면 정말 열심히 하고, 요즘에는 손가락 대신 김밥도 잘 썰고. 백창호 리모컨도 잘 누르고 하잖아.”
이건 순이 이모가 한 말이었다.
가끔 백창호가 여자 손님들한테 말을 걸었다. 나름 친절히 한다고 하는 건데, 한 번씩 무지하게 길어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정은혜는 백창호를 호출했다.
이거 해, 저거 치워. 요거 닦어, 조거 씻어놔.
결국 서열(?)이 깡패라고, 백창호는 꼼짝없이 불려 나가 시키는 대로 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일 잘한다는 거잖아요?”
“그럼. 그러니까 하던 일 계속하라는 거지.”
“치이~”
“귀여운 척해도 안 통한다. 안 귀여운 거 이제 다 아는데 뭘.”
실제로 정은혜는 귀엽다기보다 살벌한 쪽이었다.
아까 한우 먹을 때, 간에 환장하더라.
혼자 다 쓸어먹고 입가에 벌건 걸 묻히고 웃는데 이강석이 진짜 간 떨어질 뻔했다나?
어쨌든 강형우는 정은혜를 적당히 다독였다.
사실 얘가 이러는 건 이유가 있었다.
어제 잠깐 공지혜와 함께 2호점을 또 보고 왔는데, 강신원을 같이 만났다. 그런 뒤 가게에 와서 그 잘생김을 마구 떠들어댔다.
정은혜가 은근슬쩍 끼려는 게 그래서 같았다.
하지만, 사고는 예방이 최우선이었다.
괜히 강원신과 엮여서 이상해지면 가게에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이제 남은 건, 공지혜였다.
솔직히 얘를 빼면, 어떤 식으로 운영하든 위치가 애매했다.
기본적으로 식당은 두 개로 나뉜다. 바로 주방과 홀이었다.
일단 초반에는 강형우가 주방을 지킬 계획이었다. 이강석과 단둘이서 요리를 하고, 보조로 강신원을 채워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럼 당연히 홀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게다가 같이 밑작업을 할 수 있으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역시 공지혜밖에 없었던 것이다.
“넌, 나 따라가는 거다.”
“그야 당연하죠. 오빠가 제 직속상관인데.”
역시나 공지혜다웠다.
그렇게 마음에 짐이 풀리니, 지갑도 풀렸다.
맞다.
오늘이 12월 1일 토요일. 그리고 월급날이었다.
이미 확인할 사람은 다 했고, 다들 무지막지하게 들어온 금액에 반쯤 넋이 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순이 이모는 며칠 전 이야기했기에 눈치껏 빠져주었다. 1차로 한우 살 때, 딸 주라고 7만 원어치 포장까지 해주니 환하게 웃으면서 집으로 가셨던 거다.
이후 2차는 노래방 주점이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으로 잡았다.
이제 용건은 모두 끝났다.
강형우는,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자, 우리 오늘 신나게 달리는 거다!”
***
음주의 끝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마셨는지 골이 빠개질 정도로 아팠다.
“아오, 머리야!”
강형우는 아픈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곰곰이 떠올려 보니 진짜 많이 마시기는 했다. 곰 새끼가 벌꿀 먹는 것처럼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홀라당 술독에 빠졌던 것이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정은혜하고, 백창호는 통장 확인하고 진심으로 감격한 모양이었다.
이 액수가, 전에 일했던 데 석 달치 알바비였단다.
그러면서 형우 사장님한테 충성! 충성! 외치는데 기왕이면 정은혜까지 같이 데리고 입대했으면 좋겠다, 진짜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소란에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휴지 한 통을 온 사방에 다 뿌렸으니.
어쨌든 그러면서 감사하다고 계속 술을 주는데, 거기에 이강석도 참전을 했다.
처음에 내 밑에서 일할 때는 까마득했단다.
무려 1여 년이었다.
그동안 한 달에 오십만 원 받았는데, 첫 월급으로 김복희 여사님 내복 샀다가 맞아죽을 뻔했단다. 겨울 다 끝나고 내복 사는 놈이 어디 있냐고 그렇게나 타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장롱 속에 고이 모셔졌던 그 내복은 얼마 안 있으면 개봉이 될 거다.
어쨌든 이강석은 순이 이모한테 요리 다 배우고 나서야 월급이 십만 원 올랐고, 조정 과정을 거쳐서 이제 70만 원이었다. 그런데 보너스가 포함돼서 처음으로 130만 원이 넘었다.
그게 너무 고맙다면서, 형님이 최고라면서 이 새끼도 술을 팍팍 채우더라.
맥주 500㏄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는 놈이 다 있다니.
그 직후, 다들 미쳤었다.
원샷~ 원샷~
아주 사람 죽으라고 난리였다. 이렇게 마시면 이건 사약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역시나 주량을 믿고 마셨다가 핑 쓰러질 뻔했다. 꾸준히 수련하던 호흡법도 이것만은 막아주질 못했던 거다.
어쨌든 그 이후 3차까지 간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는… 사차를 가자고 했었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뭐… 지?”
불 꺼진 자취방이었다. 희미한 달빛으로 겨우 구분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정체불명의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손으로 만져봤는데, 촉감이 좀 남달랐다.
물컹, 물컹. 말캉, 말캉.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잠시 눈을 비비고 보니 공지혜였다. 옆에 딱 붙어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던 것이다.
“헙.”
강형우는 다급히 손을 뗐다. 그러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폰을 꺼내봤다.
시간은 여섯 시가 넘었다.
하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여명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불을 켜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계속 있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순간 뭔가가 날아왔다.
빡.
정수리에서 짜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진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던 것이다.
“아오!”
강형우는 잠시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가슴에 파고든 공지혜가 꽉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살며시 일어난 강형우는 가까스로 불을 켤 수 있었다.
정말이지 참상이 따로 없었다.
좁은 자취방 한 구석에 밥상이 보였다.
옆에는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안주로 먹던 치킨에 과자까지 뿌려진 상태였다.
그 위쪽은 세탁기 속 엉킨 빨래들 같았다. 애들이 전부 뭉쳐서 꼬인 상태로 자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