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83화 골치 아프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여신이 걷는데, 그 옆으로 시간이 턱턱 하고 멈추고 있었다.
남자들은 석상이 됐고 입으로 들어가던 술이 옆으로 그대로 흘러내릴 정도였다.
여자들 역시 눈이 확 하고 커졌다.
못해도 두 배 정도는.
그게 딱 10초였다.
여신이 내 옆자리에 앉기까지, 이 공간 자체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곧이어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전부 남자들이었다.
강형우도 그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미모가 정말 톱급이었다. 어지간한 여자 연예인을 데려다 놔도 밟아버릴 듯 정말 대단했던 것이다.
마치 전성기의 이영애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몸매 역시 예술이었다.
가게 들어오면서 재킷을 벗었는데, 상체는 쫙 달라붙은 주황색 폴라티에 하체는 스키니 진이었다. 허리의 흰색 벨트가 그 경계를 만들어주어 가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던 거다.
그 여신의 첫마디가 이거였다.
“오빠! 술 마셔?”
“어? 어, 가볍게.”
강신원이 어색하게 대답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때 여신이 강신원의 팔짱을 끼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 맨날 집에만 있는 것보다 가끔 이렇게 나오는 게 좋지.”
“그렇… 지?”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바람도 좀 쐬고, 바로 집 앞이 광안리인데 거기도 좀 다녀보고 그러라고.”
“그게 쑥스러워서.”
“왜? 여자들이 자꾸 쳐다봐서?”
이어진 건 무언의 긍정이었다.
“역시, 우리 오빠 잘생긴 건 세상이 다 아네.”
강형우도 솔직히 그건 인정했다.
애초에 첫인상부터 외모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실감했으니까.
동시에 처절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정말 저 두 사람 사이에 있으려면, 호돌이 인형으로나 가능할 것 같았다.
그때 강신원이 앞을 가리켰다.
“이쪽은, 강형우라고… 알게 된 동생이야.”
강형우는 기회다 싶어 고개를 숙였다.
“예. 강형우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돼서 영광… 입니다.”
“혹시, 몇 살이세요?”
“예? 그게 스물여덟인데…….”
“동갑이네. 반갑다 친구야.”
여신이 악수하자는데, 강형우는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편하게 말해. 나도 스물여덟이고, 생일은 다음 달 십 일. 안 바쁘면 선물 부탁해!”
그러는데, 중간에 강신원이 난처하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먼저 이름부터 말해야지. 그리고 보자마자 말 놓는 건 예의가 아니다.”
“헤헷. 내가 그랬나? 험험, 그럼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름은 강신애, 나이는 스물여덟. 남친은 없구요. 주량은 소주 다섯 병이요.”
강신애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강형우가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강신원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중간에서 그가 소개를 다시 했다.
그 직후, 술잔이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간단한 호구조사가 들어왔다.
아니, 강형우만 조사를 당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강신애가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던 것이다.
어쨌든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강신원의 동생이었는데, 현재 작은 쇼핑몰을 하고 있단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소주 서너 잔이 들어가니 여신이 사라졌다. 이상하게 그냥 평범한 동갑 친구 여자로 보이는 것이다.
잠시 고민했다.
내가 고자였나?
하지만, 그건 하늘에 맹세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외모만 뜯어보면 대장금에 나왔던 이영애하고 정말 많이 닮았다. 그런데 현실은 ‘친절한 금자 씨’더라.
어찌나 욕을 섬뜩하게 잘하는지.
“그래서 씨X~ 회사 때려치운 거라고.”
“뭐?”
“첫날부터 대리 새끼가 자꾸 손을 만지잖아. 그래서 지랄했더니 다음 날부터 과장 놈이 자꾸 더듬으려 하네? 그거 몰래 셀카로 찍어서 모아놓고 있다가 기회 봐서 과장한테 잠시 폰 빌렸지.”
연기를 섞어서 부탁하니 의외로 쉽게 들어줬단다.
그게 그 과장의 최후였다.
“그 셀카, 와이프 톡으로 한꺼번에 보내 버렸지. 꺄하하하.”
황당한 건, 과장 부인의 오빠가 바로 부장이었다. 심지어 껄떡대던 대리 놈도 처남이었던 것이다.
가족끼리 다 해먹는 회사라 그렇단다.
이후 아주 치고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회사가 지옥으로 변했다나?
이 여자, 진짜 무서운 여자일세.
그런 생각하면서 슬쩍 쳐다봤는데 호탕하게 웃는 게 참 역설적인 매력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겸한 1차를 ‘간판 없는 집’에서 마무리하고 어쩌다 보니 2차까지 가게 되었다.
강형우는 일부러 뒤로 떨어져서 걸었다.
강신애가 장난치듯 강신원의 팔짱을 꼈는데, 확실히 선남선녀였다. 둘 다 키도 컸고 모델처럼 늘씬했으며 얼굴 역시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커플(?)이 지나가니, 진짜 커플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더라.
진짜 하트 브레이커가 여기 있었네그려.
강형우는 잠시 저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상상을 해봤다.
정말이지 끔찍했다. 남자들이 왜 정우성이나 원빈 옆에 서지 않으려는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2차는 수영 로터리 근처의 생선구이집이었다.
“이모~ 저 왔어요.”
강신애가 씩씩하게 인사를 하자 이모들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무래도 자주 오는 단골집인 모양이다.
사람들 시선을 피하기 위해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자리가 많이 좁았다. 어쩌다 보니 강신애와 자꾸 다리가 부딪히게 된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불편함을 참고 다리를 한껏 오므려서 앉았다.
잠시 후, 밤이 깊어지면서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형,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인기피증은 아닌 것 같은데요? 누가 봐도 평범한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지금은 많이 나아졌거든. 그런데 아직도 손님들한테 돈 받는 상상을 하면 두려워. 나한테 뭐, 물어보는 것도 겁나고.”
강신원이 한숨을 내쉬자 강신애가 등을 토닥거렸다.
“그거야 인기남의 비애지. 우리 오빠, 길거리 걸으면 거의 십 분에 한 명 꼴로 여자들이 말 걸어오거든.”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그렇거든.”
그러면서 강신애가 어깨를 으쓱하는데,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갈 뻔했다.
마침 강신원이 적당한 수준에서 말렸다.
“신애야, 자랑은 적당히 하고. 사실 내가 백화점 판매직을 오래했잖아. 당연히 사람 대하는 기본은 있어. 그 정도도 없었으면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
“그럼?”
“아직도 손님 받는 건 자신 없어. 그래서 주방 안쪽에서 일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진심으로 아쉬웠다.
저 얼굴과 비율이라면, 카운터에만 있어도 여자 손님들이 가게를 꽉 채울 텐데.
그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왜 장사하면서 은신술(?)을 펼쳤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건 커플들을 지켜주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던 것이다.
“형, 주방 일 생각보다 힘든데 경험은 있어요?”
“없지만 해봐야지.”
“카페 하면서 조금은 해보지 않았어요?”
강신원은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해답이라고 내놓은 게 기가 찼다.
커피는 기계가 알아서 한단다.
프랜차이즈 식이라 액상 원재료 넣고 기계 돌려주면 끝이라나?
빵이나 케이크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근처 제과점과 제휴를 해서 이틀 간격으로 소규모로 받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카페의 기본적인 메뉴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카페 날개의 경쟁력은 분위기였다. 커피 맛으로 찾는 가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럼 인테리어는 형이 한 거예요?”
“어. 사실 나도 그쪽으로는 잘 몰랐는데, 서울 쪽에서 일할 때 다니던 조용한 가게들이 있었거든. 거길 참고로 해서 자료 찾아서 공사한 거야.”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강학희의 성격상 저런 섬세한 느낌의 가게가 나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눈앞의 미남미녀는 전혀 주인 아저씨를 닮지 않았다.
유전자의 승리라기보다 진화의 기적에 가까웠던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2차 술집에서 예상보다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신원은 정말 술이 많이 약했다. 결국 업어서 집까지 데려가야 했던 것이다.
다행인 건, 강신애와 대화를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는 거다.
***
“골치 아프네.”
생각보다 일이 많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수능 때도 이 정도로 생각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일단, 미남미녀 남매는 강형우가 마음에 든단다.
특히 강신애가 말하길, 아버지는 자기 말이라면 껌뻑 죽으니까 계약하는 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참 희한하기는 했다.
가게 계약하러 가서, 주인집 자식들과 친해지다니.
보통은 그런 경우가 없는데 말이다.
“일단 순서대로 하나씩 풀자.”
강형우는 며칠을 고민해서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 나갔다.
사실 지성분식을 확장하려는 건,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였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가게가 하나면 일하기는 편하다고 했다.
수익만 안정적이면 그게 제일 여유롭다나?
하지만, 외부 충격에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맷집이 약하기에 망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강형우도 그런 경험을 처절하게 겪었다.
조성기의 김밥천왕 때문에, 잘 키운 가게가 날아갈 뻔했으니까.
해서 기회가 되면 지성분식을 두 개, 잘 되면 서너 개로 늘릴 생각이었다. 그럴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가 망해도 다른 가게들이 있다면 일단 버틸 수는 있었다.
그 외에도 지점이 많으면 장점도 많았다.
우선 들어오는 식자재 가격을 줄일 수 있었다.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할인도 되고, 대형 유통 업체를 통해 물건을 받으면 더 저렴하게 구입도 가능했으니까.
실제로 화끈 오뎅 때문에 식자재 공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듣기로 수십 개 단위면 동네 마트가, 수백 개 단위면 평석이 형 같은 업자가 더 낫단다. 그리고 천 단위, 만 단위가 넘어가면 전문 유통 회사와 거래를 하는 게 훨씬 이익이었다.
실제로 규모가 큰 식당들도 그렇게 한단다.
기본 물량만 보장된다면, 제품에 따라서 최대 40%까지 가격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무엇보다, 일정 조정이 가능해진다는 거지.”
실제로 식당 같은 경우, 직원이 하루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아파도, 집에 일이 있어도 우선은 출근부터 해야 했으니까.
그 서러움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돈 때문에 일을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된 기분이랄까?
실제로 어떤 악덕 업주는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아파라, 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이 업계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체 인력이 부족해서였다.
지성분식은 그나마 나았다.
일단 강형우가 있었다.
때문에 공지혜가 바빠도, 순이 이모가 일이 있어도, 이강석이 가출(?)해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강형우가 없을 때, 순이 이모가 아프면?
딱 한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날 점심때 이강석이 죽다 살아났다. 공지혜가 주방 보조로 들어갔음에도 음식 하다 지쳐서 쓰러질 뻔했던 것이다.
어쨌든 가게 확장에는 그런 의미도 있었다.
서로 간에 바쁜 가게를 도와줄 수 있었고, 사람이 빠져도 금방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
“문제는, 어떻게 설득시키냐인데……”
강형우는 첫째 목표를 순이 이모로 잡았다.
“그러니까? 지혜를 데려가겠다고?”
“예. 강석이도 필요한데, 괜찮을까요?”
순이 이모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야 형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사장이 직원 쓴다는데…….”
“그럼, 이모가 힘들어지잖아요.”
“힘들긴… 차차, 준비하면 되지.”
순이 이모는 웃으면서 손등을 두드려 줬다.
솔직히 고마웠다.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지만, 미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건 오로지 내 의지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강형우는 차분히 앞으로의 과정을 설명했다.
정식 계약은 며칠 뒤, 12월에 하고 1월 중순 정도에 오픈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전에 직원을 더 뽑는데 순이 이모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야 뭐 그냥 일하면 되는 거지. 특별할 게 있나?”
“예. 당연히 있죠.”
강형우가 웃으면서 말하자, 순이 이모는 고개를 흔들었다.
“뭔데? 사람 궁금하게 뜸 들이지 말고.”
“그게요. 이모 승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