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76화 김밥이 쉽지 않네
김밥.
참 쉬우면서 어려운 음식이다.
솔직히 잘 구운 김에 밥만 싸 먹어도 김밥이었다.
여기에 참기름, 간장, 마가린을 비빈 걸로 싸먹어도 꿀맛이었고, 반숙 계란이 더해지면 푸짐한 한 끼가 된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려진 김밥은 그런 게 아니었다.
김에 밥을 깔고 단무지, 우엉, 시금치, 계란, 햄, 맛살 등등의 각종 재료를 넣고 말아서 만드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참 먹기 힘든 거였는데.”
기억하기로 소풍날, 혹은 어디 여행 갈 때만 겨우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날이 오면 어머니 박혜숙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분주히 움직였다.
제일 먼저 하는 건, 야채였다.
우엉과 당근, 시금치를 데쳐서 양념 조물조물 무쳐 적당한 크기로 잘라놓고, 통단무지 역시 길게 썰었다.
맛살은 비싸니까 손으로 반으로 찢어서 썼고, 제일 중요한 햄은 가장 마지막에 볶았다. 옆에서 몰래몰래 하나씩 집어먹는 바람에 항상 마지막에 쌀 때는 항상 모자랐던 것이다.
강형우도 슬쩍 집어 먹다가 국자로 머리통에 불이 나게 맞은 기억이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재료를 준비하면 겨우 밑준비가 끝이었다.
이걸 말아야 완성된 김밥이 나오는 거다.
“확실히 지금과는 다르게 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다는 거지.”
하지만, 90년대 초반 한 가게의 등장으로 김밥이 전국적인 음식이 된다.
바로 김밥천국이었다.
기억하기로 동네마다 한 집씩 생긴다고 할 정도였다. 조금 큰 분식집들이나 애매한 식당들이 전부 김밥천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던 것이다.
물론 초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김밥 한 줄 천 원.
그걸 미끼로 손님들을 끌어들였고 이내 북적거리기 시작하자 대박이 났던 거다.
그 덕에 많이 가게들이 김밥천국으로 바뀌었다.
본사에서 거의 모든 재료를 가져다주니 장사하기도 편했고, 박리다매 형식이라 열심히만 하면 성공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IMF였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천 원짜리 김밥 한 줄로 한 끼를 때울 수 있었으니 손님들이 대거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밥천국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리고 그 여파로 동네 작은 분식집들은 거의 망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에 대한 평가는 무척 다양했다.
외식업계에서는 전체적인 수준이 상향 평등화됐다고 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게들이 사라졌고, 장사 잘되는 최소한의 기준이 정해졌다는 거다.
실제로 많은 가게들이 위생적인 면에서 나아졌고 이전보다는 훨씬 청결해졌다.
맛의 기본 수준이 올라갔고, 메뉴부터 고객층에게 맞게 변형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본격적인 세트 메뉴의 등장이 이때부터라고나 할까?
확실히 이건 장점이기는 했다.
“문제는 맛의 획일화라는 거지.”
요리사들 기준으로 봤을 때 김밥천국의 폐해는 엄청났다.
일단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음식들이 싸구려가 됐다. 전국 어딜 가도 비슷한 맛, 비슷한 가격이었고 지방색 같은 특징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음식이 됐다고나 할까?
“김밥이 제일 심했지.”
강형우가 가장 고민했던 게 그 부분이었다.
김밥의 경우, 저렴한 가격이란 심리적 한계에 묶여 어느 누구도 투자를 하지 않았다.
힘들게 만들면 뭐 하나? 남는 게 없는데?
그러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재료는 점점 부실해졌다.
김도 제일 저렴한 걸로 쓰기 시작했고, 위에 바르던 참기름조차도 물을 많이 타서 희석한 향미유로 대체가 되었다.
김밥이란 음식의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누가 그러더라.
그냥 김밥이 팔면 남는 게 없어서 개발된 게 참치 김밥이라고.
들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치즈김밥이나 참치김밥, 김치김밥, 혹은 계란말이 김밥 같은 건 좀 남기는 했으니까.
실제로 프리미엄 김밥집은 제법 수익이 괜찮은 편이었다. 최근에 유행하는 고벙 김밥이나, 바른김 선생 같은 경우가 이에 속했던 것이다.
“일종의 퍼플오션 전략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말한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역시 공부 많이 하니까 입에서 고급 단어들이 나오기는 하네.
그렇게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공지혜가 말했다.
“오빠, 잠 덜 깼어요?”
***
“배달 왔습니다.”
정말 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가게 납품업자이자, 가끔 쓸 만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형이었다.
이평석.
나이 서른다섯,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모태솔로라는 점이었다.
내 밥상을 나올 때, 분석이 형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야채와 각종 식품, 그리고 소규모 식자재들을 가져다주고 약간의 수수료와 정보료를 받아가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다.
“형, 궁금한 게 있는데요?”
“우리 잘나가신다는 강 사장님. 그래 뭐가 궁금한데?”
“그게 김밥 속 재료 말이예요.”
강형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평석은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영업 비밀은, 노노. 업체 알려달라는 것도 노노.”
“그런 게 아니고, 좀 좋은 걸로 바꾸고 싶은데…….”
“그런 건 환영하지. 근데, 알잖아? 우린 영업 책자 같은 거 없다는 걸.”
“그렇기는 하죠.”
“보자. 일단 상중하를 다시 상중하로 나누는데…….”
이평석이 수첩을 꺼내 제품 업체들을 확인하더니 메모를 시작했다.
“일단 지성분식은 중중이네. 보통 이천 원대 김밥 집에서 쓰는 것 중에선 제법 좋은 거야.”
실제로 모든 재료를 다 사서 쓰면, 지성김밥은 적자였다.
업자들 판매가는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중간 마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포함된 가공품이라서였다.
때문에 강형우는 참치 캔의 경우 인터넷으로 할인할 때, 대용량을 대량 주문해서 썼고 소스는 직접 만들었다.
하지만 그 외의 재료 김, 계란 지단, 햄, 맛살, 시금치, 우엉 등등은 받아 쓸 수밖에 없었다.
직접 만들기보다는 업자를 통해 주문해서 쓰는 게 훨씬 편하고 저렴했으니까.
실제로 유명 맛집을 제외한 일반적인 분식집 김밥은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사실 강형우도 처음에는 하나하나 전부 직접 만들어서 썼는데, 이게 만만치 않았다.
이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만들어 팔면 어떨 때는 200원도 안 남을 때가 많았다. 시장에서 사는 재료가 매일 같은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가는 수량도 많고 밑준비에만 최소 두세 시간 이상이었다.
인건비 계산하면 오히려 적자인 셈.
해서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이평석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래, 어느 수준까지 올리려고? 보통 중상 정도면 프리미엄 김밥집도 커버가 가능하거든. 메인 재료만 직접 만든다는 가정하에서……”
“보통 중상 재료를 다 가져다 쓰면 어떻게 돼요?”
“가격?”
“예.”
“보자~ 보자.”
이평석은 계산기를 뚜드리더니 1,240원을 찍어서 보여줬다.
여기에 대충 계산해서 쌀이 100원, 참치가 200원 정도에 야채에 양념할 소스 재료와 이것저것을 추가로 더해보니 대략 1,800원 정도가 나왔다.
이게 인건비 제외한 순수 재료비였다.
“보통 프리미엄 김밥집은 여기에 제육을 조금 넣어서 삼천 오백 원 정도에 파니까. 나쁘진 않지.”
그 말을 듣고 다시 계산해 봤다.
돼지 뒷다리로 제육볶음을 만들어서 50g 정도 넣으면 되려나? 아니지, 푸짐하게 들어가야 하니까 70g 정도 잡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총 재료비만 2,400원 선.
대략 김밥 한 줄에 천 원 정도가 남는 셈이다.
“인건비 계산하면 의외로 남는 게 적네요?”
“그래서 비싸면 비쌀수록 많이 남는다는 거야.”
그러면서 이야기해 주는데, 프리미엄 김밥집은 그래도 된다고 했다.
왜냐?
일단 김밥이 고급이면 가게 이미지가 상승한단다. 똑같은 라면인데도 토핑 추가해서 천 원씩만 더 받아도 훨씬 남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가게에서 먹으니까.
강형우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건 인식 차이이긴 한데, 솔직히 우리 가게에서는 좀 어렵고요. 일단 형, 샘플 좀 받을 수 없어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고객님.”
“그러면 수량 좀 맞춰줘요. 일단 만들어서 확인 좀 해보게.”
“그래. 그러지.”
그러면서 피식 웃는데, 역시나 문제가 있었다.
“최소 주문 수량 백 줄이다.”
***
“끄응.”
좀 더 좋은 재료를 써봤다.
결론은 실패였다.
중중에서 중상으로 바꿨는데도 맛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황당하게도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돈을 더 들였음에도 맛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대신 안정성이 올라갔다. 백 줄 중에 서너 줄은 조금 짜거나 싱겁거나 맛의 밸런스가 애매한 게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상품의 레벨이 그런 구조였구나.”
전체에서 상중하는 맛의 단계였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상중하는 재료의 평균 퀄리티였던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제대로 한 끼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것도 있었고, 몇 번이나 테스트도 해봤으니까.
문제는 상하급 재료의 가격이었다.
대략 1,600원에서 1,800원 수준이었다. 이건 삼천 원대 이상의 고급 김밥을 팔 때나 사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혹시 상상급의 재료는 어디서 쓰냐고?
프리미엄 김밥집 체인이나, 유명 도시락집, 그리고 샐러드 바나 저렴한 호텔 뷔페에서 쓴단다.
하지만 사실 수요가 적어서 비싼 것일 뿐, 실제 맛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특급의 식자재도 있었는데 일반인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면, 그 이상이면 다들 직접 만들어 쓰는 게 더 낫단다.
하긴, 기업 회장님들이 먹는다는 십만 원짜리 김밥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그건 그렇고 빨리 가이드를 정해야 하는데.”
강형우는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일반 분식집처럼, 김밥에 이것저것 추가하는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격을 더 받아서 프리미엄 김밥을 추구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김밥과 라면을 합쳐서 오천 원, 딱 이 수준에 맞추고 싶었던 거다.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나저나, 김밥도 자주 먹으니 물리네.”
강형우가 먹을 수 있는 개수는 세 줄 정도였다. 테스트 한다고 사나흘 내내 김밥만 먹었더니, 꼴도 보기 싫어졌던 것이다.
“에휴~ 그래도 별수 있나?”
전에 강주혁이 그런 말을 했다.
팔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많이 다녀보고 먹어보라고.
“오,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
손미 왕김밥.
부산 진경찰서 앞에 있는 김밥집이었는데, 최근 유명해진 집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사실 대박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동네 맛집 정도?
그러다 어느 순간 사는 동네가 변해 버렸다.
철길 주변이 정비가 되고, 시민공원이 들어선다는 이야기 때문에 땅값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이 들썩거렸고 돈이 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산의 중심지 서면 일대에서도 집값이 저렴했던 동네.
그런데 불과 사오년 사이에 재개발 수준으로 수백 개의 원룸 단지가 들어서 버렸다. 그러다 보니 수천 명의 혼밥족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그 영향으로 손미 왕김밥은 유명한 맛집이 된 것이다.
강형우가 먹어보니 진짜 맛집이긴 했다.
“천오백 원짜리 기본 김밥인데, 뭔가 퀄리티가 달라. 맛이 뭐랄까, 꽉 찬 느낌?”
이게 솔직한 감상이었다.
다른 김밥들도 거의 이천 원대였다.
김치말이 김밥이라든가, 돈가스, 참치, 치즈 등등이 이천오백 원이었고 제일 잘나가는 땡초김밥도 이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라면에 김밥이면 사천오백 원. 딱 내가 생각하는 가격이긴 하네. 근데…….”
강형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입구 한쪽에 플라스틱 테이블이 딱 하나 있었다. 오뎅 국물에 김밥을 먹고 있는데, 손님들이 김밥을 주문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이 가게는 테이블이 하나였다. 그런데 그걸 강형우 혼자 차지하고 있었으니, 다들 힐끔힐끔 쳐다봤던 것이다.
마치 동물원 우리 안의 고릴라가 된 느낌이랄까?
기분이 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