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화 몰라도 돼
“죄송합니다.”
강형우는 일단 플라스틱 테이블을 잡았다. 가게 입구 주변에 바람막이용으로 비닐이 쳐져 있었는데 그 구석까지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럼에도 공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더 밀려들고 있어서였다.
입구에만 대여섯 명씩 줄을 서 있는데, 여기서 치명타가 터졌다.
“실례합니다.”
덩치 큰 아저씨 세 명이 성큼성큼 입구로 들어섰다.
강형우조차 흠칫 놀랄 정도로 인상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눈빛만 마주쳐도 움찔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사실 냉정하게 뜯어보면 그 정도는 아닌데, 경험인지 관록인지 쉽게 접근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어보였다.
그건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다.
김밥 기다리던 손님들이 좌우로 움직이더니 바로 길을 터주더라.
황당한 건, 그 덕에 더 비좁아졌는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가게 안쪽에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후, 대표로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비닐 봉투 세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인상파 아저씨는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곧 동료들과 함께 사라졌다.
새치기인가 싶었는데, 곧 사장님이 해명을 했다.
미리 예약 주문을 받은 손님이란다.
근데 아무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느낌이랄까?
마침 강형우처럼 궁금해하는 손님이 있었다.
“저 아저씨들 뭔데? 다른 사람들 다 기다리고 있는데…….”
“마! 형사 아저씨들 모르나? 잠복근무 떨어지면 한 번씩 저렇게 김밥 한 뭉탱이씩 사 간다.”
“엥? 김밥을?”
“제일 만만하다 아이가. 딱 보니 이틀은 집에 못 드가겠네. 아니면 잡으러 가는 형사들이 많던가. 그럼 그만큼 위험한 놈이라는 건데…….”
사 가는 양을 보고 수사가 며칠 걸리는지, 아니면 어떤 놈을 잡으러 가는지를 예상하는 걸 보면 확실히 단골은 단골인가 보다.
“헐, 진짜?”
“그래! 보면 알지. 거의 이삼 일에 한 번은 이런다.”
그 말에 줄 선 사람들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특이한 상황이긴 하네.
어쨌든 강형우는 원조 김밥을 다 먹고 두 번째 김밥을 뜯었다.
이 집에서 제일 많이 팔린다는 땡초 김밥이었다.
일단 오뎅 국물로 목을 적신 뒤, 하나를 입에 넣었다.
맛을 분석하기 위해 차분하게 씹으면서 음미하고 있는데, 손님들의 시선이 더욱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마치, 넌 뭐냐?
딱 그런 눈빛이었다.
강형우는 슬쩍 고개를 돌리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전부 포장 손님들이었다. 애초에 여기서 먹으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니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가게 안은 두 평이 조금 넘을 듯했다.
들어가는 왼편에 커다란 도마가 놓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거기서 김밥을 말았다.
반대편 벽에는 가스 화구 셋짜리가 있었는데 불로 하는 조리를 거기서 거의 다 하고 있었다.
정면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커다란 냉장고가 하나 있었고, 그 위쪽에 각종 포장재들이 보였다. 정말이지 놓을 공간은 다 채우겠다는 듯 잡다한 것들로 무척 빡빡했던 것이다.
황당한 건, 그 안쪽에 벽을 보고 먹을 수 있는 삼인 테이블이 달랑 하나 있다는 거였다.
참으로 이상한 기형적인 구조였다.
이건 처음부터 손님 많이 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건데…….
“웁!”
강형우는 전신을 관통하는 짜릿한 통증에 신음을 내고 말았다.
쓰벌.
매워도 너무 매웠다. 땡초를 씹자마자 화악 하고 터지는데, 혓바닥을 가스 토치로 지지는 듯 했던 것이다.
“아우.”
강형우는 다급히 오뎅 국물을 마신 뒤, 심호흡을 했다.
그런 뒤, 복불복하는 기분으로 다음 김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그것만 유독 매운 고추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지금 씹는 건 적당히 매콤할 뿐만 아니라 맛도 조화로웠던 것이다.
강형우는 그렇게 김밥을 해치우면서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확실히 신기하긴 했다.
저 좁은 공간에서 그 모든 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열한 종류의 김밥과 라면, 냄비 우동에 떡볶이와 오뎅까지 말이다.
다만 공간이 좁아 오뎅통만 밖으로 뺀 거고.
“확실히 맛있긴 맛있네.”
개인적인 취향은, 원조 김밥이었다. 이건 1,500원이 아니라 2,000원에 팔아도 충분할 정도로 맛의 퀄리티가 월등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
“흐어어, 질린다, 질려.”
이후에도 꾸준히 유명하다는 김밥집을 찾아다녔다.
제일 먼저 남포동으로, 깡통시장 구석의 아는 사람만 안다는 나물 김밥을 먹어봤다.
우선 방앗간에서 짜 가지고 왔다는 참기름 향이 예술이었다.
특히 들어가는 나물 고명이 많았는데 우엉과 고사리의 맛과 식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끓인 간장으로 간간하게 간을 한 나물 비빔밥 같은 맛이랄까?
그다음으로, 옆 동네에 있는 30년 전통 명문 김밥집도 가봤다.
제일 유명한 건, 단출하게 진미채만을 넣은 일미 김밥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씹을 때마다 입에서 침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적당히 탱글 쫄깃한 식감이랄까?
가장 중요한 건, 전혀 부담이 없다는 거였다.
쌀을 충분히 잘 불렸는지 소화도 잘됐고 금방 트림이 나올 정도였다.
그다음 코스는 남천동의 떡볶이집이었다.
이 집에서 유명한 건, 떡볶이에 찍어 먹는 김밥 튀김이었다.
하지만 소스 맛 때문인지 크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냥저냥 같이 먹기 좋다는 정도?
역시나 블로그는 다 믿으면 안 된다. 예상외로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의외로 괜찮았던 건 맛나 김밥이었다.
그리 유명하지 않았는데, 무려 30년 전통이라고 되어 있었다.
확실히 여긴 기본에 충실하게 나왔고 다른 가게들보다 고명이 훨씬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게 맛의 비결인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 고벙민 김밥 본점도 들려봤는데 프랜차이즈가 돼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단지 평타 이상은 된다는 것, 그리고 본점 맛이 좀 더 깊이가 있다는 게 전부였다.
그 외에도 특이한 김밥이 정말 많았다.
서면의 유명 분식집에서는 계란말이 김밥을 시키니 충무김밥 스타일로 오뎅과 무말랭이 깍두기가 함께 나왔다.
또, 대학교 앞에는 짜장 라면을 넣은 김밥도 있었고, 콘치즈 김밥도 이색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괴정시장 구석의 콩나물 김밥이었다.
진짜 집에서 양념간장하고 콩나물 넣고 비빈 걸, 김에 싸 먹는 딱 그 느낌이었다.
이런 것도 다 파나 싶었는데, 가격은 고작 1,200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맛있게 느껴질 수밖에.
“확실히, 김밥만 전문적으로 하는 집들이니 깊이가 있기는 하네.”
많이 다니고, 많이 먹어보니 김밥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딱 이렇다, 이래서 이러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헐, 진짜요?”
“그래. 소문이긴 하지만… 맞을 거야.”
강형우는 이평석과의 통화를 끊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혹시나 싶어 정보를 물어봤는데, 이평석이 업자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알아왔다.
손미 왕김밥은 확실히 장사가 잘될 만했다.
오히려 늦게 유명해진 게 이상할 정도였다.
놀랍게도 사장님께서 김밥 장사를 결심하고 지금 메뉴를 결정하기까지 무려 3년이나 걸렸단다. 그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해가면서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삼 년 동안 김밥 연구만 했다니. 대단하네.”
강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못할 짓이었다. 자신이라 해도 그 정도 노력하는 건 엄두가 안 날 정도였던 것이다.
근데 슬쩍 웃음이 나왔다.
“역시 예상대로이긴 한데…….”
이전에도 그 집 김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오다 가다 유명하다 해서 싸 가서 먹은 거라 그리 특별한 기억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분석하면서 먹으니 확실히 달랐다.
맛이 꽉 차 있었다.
군더더기도 없었고, 모든 속 재료가 딱 김밥 맛을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이게 김밥의 정석이네.”
강형우가 생각한 딱 그 기준에 제일 가까웠다.
김밥 한 줄이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나 되어야 연구하고 분석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평석이 형이 그랬다.
거기는, 받아 쓰는 재료가 하나도 없단다. 전부 부전시장에서 장을 봐서 그때그때 조리하기 때문에 원재료의 맛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위치에 그런 작은 가게를 얻은 것도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만든 김밥에 대한 절대적인 자부심!
그런 작은 가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시작한 게 분명했다.
해서 강형우는, 최종적인 분석을 위해 다시 한번 그곳에 들려서 김밥을 잔뜩 사 가지고 왔다.
***
“오빠! 들어가도 돼요?”
공지혜가 바깥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삼스럽게 무슨, 빨리 들어와. 애들도 와 있어.”
“그래요?”
곧 문이 열리고 공지혜가 부엌을 통해 방 안에 들어왔다.
근데 표정이 영 아니었다. 이내 킁킁 하고 냄새를 맡더니 와락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다.
“우와~ 홀아비 냄새!”
“아니,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강형우는 잠시 당황해하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뭔가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강석과 백창호의 도움을 받아 방 청소를 했었으니까.
또, 혹시나 싶어 방향제 스프레이도 한 통을 거의 다 쓸 생각으로 팍팍 뿌렸다.
문제는 공지혜가 개코라는 것!
갑자기 방 안을 둘러보더니 이래저래 뒤지기 시작했다. 코를 간질간질하게 했던 원인을 찾겠다는 듯 탐정의 눈빛으로 사방을 스캔했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뚝 하고 동작을 멈추었다.
“왜… 그래?”
“아니, 저기.”
그러면서 옷장을 가리키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뭐, 뭐가 있다고......”
“오빠, 솔직히 말해요. 저기 뭐 있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진짜 아무것도 없어.”
“정말요?”
자꾸 다그치는데 애가 왜 이러나 싶었다.
좀 과하게 오버한다고 해야 하나?
그때 공지혜가 먼저 움직였다. 아래쪽 서랍을 열더니 비닐 봉투를 하나 꺼내서 펼쳤던 것이다.순간 공지혜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휙 돌렸다.
“이건 뭐......”
그때 이강석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형, 뭔데…… 으헉, 진짜 썩은 내가.”
봉투 안을 보던 이강석이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다.
강형우는 민망한 얼굴로 비닐 봉투를 슬며시 잡아당겼다.
“아니, 버리려고 했던 건데…….”
“그럼 당장 버려욧!”
공지혜가 버럭 하더니 비닐을 확 뺏어서 꽁꽁 묶어버렸다. 그러고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바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걸 본 백창호가 조용히 물었다.
“형, 진짜 뭔데요?”
“니들은 몰라도 돼!”
강형우가 손을 내젓는데 이강석이 잽싸게 대답했다.
“구멍 난 팬티하고 양말.”
“야!”
“진짜, 몇 달을 처박아놨는지 곰팡이까지… 웁, 우웁!”
실수였다. 입 막는 게 조금 늦어지는 바람에 정체가 까발려진 것이다.
“험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이것부터…….”
강형우가 화제를 돌리려는데, 공지혜가 울컥했다.
“아, 몰라요. 물어내요.”
“뭘?”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처음 들어와 본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진짜. 기대가 다 깨졌잖아요!”
얘가 대체 무슨 기대를 하고 온 건지 모르겠다. 그냥 김밥 같이 먹고 의견 좀 구하자고 한 건데.
“아니,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나라고 특별한 게 있을 리가…….”
“그래도 그렇지. 저거는 진짜!”
“아, 그건 좀 미안.”
“이게 말로 때울 일이에요? 맨날 가게에서는 위생에, 청결에, 설거지에, 깨끗이 치워야 한다고 그렇게 잔소리하던 사람이… 저게 뭐예요!”
공지혜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얘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이강석과 백창호가 말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쁜 자식들 같으니라고, 이럴 때는 내 편 좀 들어주지.
근데,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