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화 야이, 미친놈들아
괜히 쑥스럽고 민망했다.
원래 덕수 형 스타일이 사나이는 이래야 한다, 남자라면 당연하지 같은 식이었다.
해서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거의 안 했다. 그런데 손잡고 고맙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긴 했다.
사실 조성기가 벌인 개지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나였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악을 했고, 나중에는 그 새끼한테 한 방 먹이기 위해서 형들을 도운 거였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경험함으로써 시야도 넓어졌다.
“뭐, 저도 살려고 한 거죠.”
“그래도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게 아니야. 나 봐라. 너 때문에 망해가는 가게 성공했어.”
“그거야 돈 받고 한 거구요.”
강형우는 괜한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정덕수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마!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냐? 그리고, 내가 돈 안 줬어도 해줬을 거 아냐.”
“그야. 뭐…….”
“봐. 나 가게 확장했어. 그러면서 동생도 생겼고, 걔들 덕에 단골도 빵빵하다. 그리고…….”
정덕수는 피식 웃으면서 혁기 형과 아림 누나를 가리켰다.
“태성반점 지금 꽤 괜찮대. 부추잡채가 SNS에 핫하게 뜨는 바람에 멀리서도 사람들 찾아온다더라.”
“그야, 형네 아버지가 음식 잘하니까 그렇죠. 들어보니 그쪽 계통에서 명장급이라던데.”
들어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먹어봐서 안다.
요즘 중국집들이 많이 하고 있는 게 짜장면 가격을 낮춰서 손님들을 끄는 거였다.
하지만 혁기 형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짜장면도 하나의 요리라면서 재료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확실히, 다른 중국집들과는 맛이 달랐다.
달달하면서도 아주 살짝 한방족발의 향이 들어 있었는데 그게 확실한 차별화가 된 거다.
그 맛에 길들여져서인지 이상하게 다른 집 짜장면은 맛이 없더라.
어쨌든 혁기 형 아버지는 요리를 잘한다. 3, 40년을 중식만 만들어서 그런지 부추잡채도 금방 만들었고, 비주얼 역시 끝내줬던 것이다.
“요즘은 예약이 필수라더라. 장사 잘되니까 배달도 접으려나 보던데.”
“그 정도예요?”
“그래. 그래서 저 둘이 올 가을에 결혼한댄다. 그리고 내년 즈음에 정식으로 가게 이어받기로 했대.”
그러면서 강형우가 추천해 준 메뉴 덕에 홍화반점 생기기 전보다 매출이 뛰었다고 했다.
가게가 안정되었기에 마음 놓고 염장질이라나?
뭐, 덕수 형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건지도.
“현우 저놈만 예외긴 한데, 조만간 결심을 할 것 같아.”
“어떻게요?”
“그야 가게를 접든지, 니 말을 듣든지 하겠지.”
정덕수가 씨익 웃는데, 왠지 소름이 돋았다.
에이 설마?
“그리고 창주 봐라. 화끈 오뎅 확장하면서 아주 살판났다. 저거 잘만 되면, 아주 이 동네 떡볶이집 싹쓸이하게 생겼어.”
“그야 뭐……”
솔직히 창주 형은 다 본인의 노력이었다. 단단히 결심해서 고급 튀김 전략으로 나간 덕에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그 힘든 요리 과정을 철저하게 지켰다. 맛이 변하면 다 죽는다는 심정으로 새벽부터 밑준비를 했었다.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화끈 오뎅 육수 비법을 팔라면서 무려 천만 원까지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 돈 주고서라도 배우겠다면서 열 명도 넘게 찾아왔다나?
하지만 딱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거절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 육수가 가게의 생명이라면서 정중히 사양했다는 것이다.
그 딱 한 명이 나였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게다가, 지우 씨랑 잘돼간다더라.”
덕수 형은,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화끈 오뎅이 잘되면서 직원을 늘렸다.
창주 형은 그중 한 명과 썸을 타다가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새벽부터 나와서 장사 준비하고, 하루 종일 튀김 기름 앞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서 바로 집에 들어가 잠만 자고.
그러니 어찌 연애가 되겠는가?
그런 창주 형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기린 빌딩으로 확장을 결심하자 강주혁이 사람을 한 명 소개시켜 줬다. 지점 매니저 역할을 할 사람이라면서 본사 직원 한 명을 데려온 것이다.
그게 고지우 누나였다.
근데 이 누나도 참 취향이 독특한 것이, 일 열심히 하는 남자가 매력 있단다.
적어도 식구들 밥은 굶기지 않을 거라나?
몇 번 술자리 합석해서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진짜 사귀게 될 줄은 몰랐다.
참고로 창주 형도 나와 조금은 비슷한 과였다.
좋게 말하면 진화가 덜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짐승 스타일의 외모였으니까.
“내가 다른 건 안 부러운데, 저건 진짜 부럽더라.”
정덕수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형도 인연이 생기겠죠. 이제 큰 가게 사장님이신데.”
“모르겠다. 이제 서른둘인데,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봤으니 가망이나 있겠냐?”
“에이, 한때는 날아다녔다면서요?”
“그건 정식 연애가 아니지. 그냥 외로운 사람끼리 잠시 부대껴서 지낸 거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알콩달콩한 연애 하고 싶다고!”
정말 부러운 건지, 저 꼴 보기 싫다며 담배나 피우러 나가잔다.
강형우는 나가면서 이모한테 해물된장찌개 세 개를 주문하고 가게를 쭈욱 돌아봤다.
확실히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술집에 모이면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 정리해야 하나? 이제 뭐 해먹고 살지?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 그때의 일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런 생각하는데, 정덕수가 불쑥 물었다.
“근데, 넌 연애 안 하냐?”
“저요? 시간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뭐, 거의 포기 상태죠.”
미진이한테 차이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란 놈은 돈 많이 벌어서 삶에 여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 연애 못 할 거라는 걸 말이다.
무엇보다.
“아주 유능하신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저 불혹 때까지는 여자 못 만날 거래요.”
“뭐? 불혹이면 마흔이잖아? 아니, 누가 그런 악담을 해?”
“있어요. 그런 분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상하게 갑자기 천경 어르신이 뵙고 싶었다. 분명 해가 바뀌기 전에 오신다고 했는데, 그게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사고라도 생기신 게 아닌지 덜컥 걱정까지 들었다.
투툭, 투툭.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인가 싶을 정도로 굵었는데, 이내 간판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두 사람은 서둘러 담배를 끄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단골 가게 ‘선미 지리산 흑돼지’의 시그니처 메뉴인 해물된장찌개가 나왔다. 덜어서 같이 나오는 돌솥밥에 비벼 먹으면 진짜 맛이 최고였다. 게다가 삼겹살까지 올려 먹으면 그냥 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소주 두병이나 더 마시고 말았다.
***
“기사님. 수고하십니다.”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강형우는 공지혜와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했다.
“일단 망미 초등학교 가주세요.”
“망미 초등학교요?”
택시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영 사적공원 질러가면 걸어서 불과 10여 분 정도였는데, 택시 탈 만한 거리가 아니어서였다.
“예. 거기 들렸다가 부산여상 가주세요.”
“그럼 큰길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골목으로?”
“큰 길로 가주세요.”
비오는 컴컴한 밤에, 골목 쪽으로 가는 건 위험했다. 길이 좁은 것도 있었지만 거긴 가로등도 드물었던 것이다.
“오빠, 저 걸어가도 된다니까요?”
“야밤에 술 마시고 걸어가는 거 아니다. 그리고 너 많이 취했어.”
“그래도 집이 코앞인데.”
“됐고, 들렀다 가면 돼.”
강형우가 그렇게 말하자 공지혜는 입술을 비쭉거렸다.
“뭐가 위험하다고… 아! 맞다. 오빠한테 말할 게 있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요.”
“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뭐였더라?”
공지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정말 생각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서 푹 쉬고, 모레 보자!”
“예. 오빠.”
공지혜는 대문 앞에서 아차 했다. 그제야 말하려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택시는 출발한 상황.
“전화라도 할까? 에이, 뭐 집에 가면 알겠지.”
역시나 귀찮음이 앞선 모양이었다.
소나기는 갑작스럽게 왔던 것처럼 순식간에 그쳤다.
해서 강형우는 중간에 내렸다.
술도 깰 겸, 한 십여 분 정도 걸으면서 머리도 식히려는 생각에서였다.
확실히 개운하긴 했다.
뭔가 큰 매듭 하나를 푼 것 같은 기분이랄까?
사실, 형님네 버거에서 잠시 일하면서 덕수 형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었다.
가게 운영 방법이라든가, 메뉴를 어떤 식으로 늘릴 거냐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 외에도 도움이 되는 게 적지 않았는데 가장 큰 소득은 쌀 도정기였다. 밥맛이 좋아진 덕인지, 손님들 칭찬까지 많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의외의 것도 알게 되었다.
정병수, 이놈.
사실 잊고 싶어서 기억 구석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애써 무심하게 지냈는데, 아까의 일로 생각나 버렸던 것이다.
왜 나한테 고마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 구하기가 무척 어려울 때였다. 그것도 간만에 주방 보조가 들어온 거라 조금 들떴고, 그래서 무지하게 열심히 가르쳐 줬었다.
불과 사흘이지만 음식 노하우 빼고는 거의 다 알려준 셈이었다.
해서 장사하다 막힐 때, 나한테 배운 걸 떠올렸단다. 일종의 임기응변 같은 거 말이다.
그게 고마워서 몇 번이나 찾아오려고 했는데, 파스타집을 하는 바람에 어렵게 됐단다. 그런 상황에서 오픈 날 모임 한다고 들으니 기회다 싶어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솔직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됐으니 좋은 게 좋은 건가?”
뭔가 찜찜하기는 한데, 그냥 가게 나간 알바가 찾아온 셈 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옥탑방 계단을 올라가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안에서 들리는 건 ‘강남스타일’ 노래였다.
근데 방 안에선 네 마리 커다란 짐승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더라.
순간 멍한 표정으로 보다가,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아무래도 착각 같아서였다.
근데 아니었다. 이 미친 짐승 새끼들이 온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쿵쾅거리는데, 마치 정신병동에 온 듯한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때 음악이 바뀌었다.
갑자기 러빙 유우~ 우우~~ 하더니 얘들이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서 길쭉한 남정네 네 명이서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어대고 있었다.
진짜 진심으로 토할 것 같았다.
내 방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야이! 미친놈들아.”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정말이지 방 안은 개판이었다.
털털이 에어컨이 풀로 돌아가고 있었고, 27인치 모니터에서 시스타가 요염하게 춤추고 있었다. 새로 산 스피커는 성능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빵빵하게 음악을 틀어댔었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방 한쪽에 빈 소주병만 열 개가 넘었고, 치킨 박스도 무려 세 개나 보였다.
중요한 건, 이 미친 새끼들이 아직도 춤을 추고 있다는 거였다.
***
“기상.”
“기상!”
“어쭈, 동작 봐라. 0.1초씩 늦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엎드려.”
“엎드려!”
동시에 짐승 넷이 엎드려뻗쳐를 했다.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야심한 시각이니 목소리는 크게 내지 않는다. 모두 이십 회, 실시.”
“실시.”
“하나, 둘, 셋…….”
남자 넷이서 비 그친 달밤에, 유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벌써 푸시업만 이백 개째.
이강석과 백창호는 부들부들거리고 있었고, 그래도 남은 두 놈은 어느 정도 맞춰가고 있었다.
“이강석. 백창호. 기상.”
“기상.”
두 녀석이 일어나자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못하냐?”
“죄송합니다.”
“왜, 힘이 남아도는 것 같은데? 아까 춤출 때 보니까 막 날아다니던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이냐?”
“아닙니다.”
“그럼 다시 엎드려! 이십 회 실시!”
“실시!”
이강석과 백창호가 다시 푸시업을 시작했다.
그때 맞춰서 남은 두 녀석이 스무 개를 마무리 지었다.
“인정둥이 기상!”
“기상!”
강인우와 강정우가 일어서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무식한 놈들 같으니라고. 백 일 휴가 나오자마자 경찰을 불러? 바로 복귀하고 싶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더 열심히 말렸어야 했습니다.”
강정우가 선수 쳐서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야! 니가 제일 열심히 추더라.”
“부대 장기자랑에서 우승했습니다.”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하아~ 이런 녀석들이 내 동생이라니, 진심으로 동네 부끄러웠다.
뭐,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