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65화 (65/251)

# 65

65화 진심으로, 고맙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정덕수의 인사에 알바들이 먼저 가게를 나섰다.

곧 주방에서 비슷하게 생긴 형제가 형을 부축하며 바깥으로 나섰고, 이내 정적이 찾아왔다.

형님네 버거 오픈 날.

“형, 저분들은?”

“첫날부터 힘들게 일했는데 붙잡아두기가 그렇잖아. 이번 주 휴일 전에 따로 회식하기로 했다.”

정덕수는 그렇게 말한 뒤, 대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강형우와 공지혜, 김민석이 돕자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그러고 돌아와 보니, 아주 술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셔라! 마셔라!”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소주 한 병 원샷하면 술값은 니가 내는 거다.”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소리만 안 질렀지 다들 흥겹게 먹고 마시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일하는 시간이 무려 14시간이었다.

실제 장사 시간도 길지만 장을 보거나 밑준비를 해야 하는 등의 일이 있어서 이런 날이 아니면 놀 기회가 전혀 없었다.

일 마치면 다들 피곤해서 들어가 자기가 일쑤였으니까.

때문에 오늘은 날 잡은 것처럼 다들 들떠 있었다.

정덕수는 그 광경에 씨익 웃더니, 이내 카운터로 들어갔다.

간판불과 조명 일부를 끄자 가게 안이 어두워졌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어수선한 가운데, 정덕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따다다다단딴, 딴딴따 다다다단, 따다단단~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건 분명 나이트 댄스곡이었다.

테이크 온 미였나?

그때 정덕수가 마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자, 오늘 저희 형님네 버거 오픈 기념일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뭔가를 만지니 볼륨이 올라갔다.

이거 진짜 나이트 필인데?

생각해 보니, 덕수 형은 예전에 나이트 기도 일도 했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사람 펑크 나면 간간히 무대에 올라 이런 저런 걸 하기도 했다나?

듣기로 당시는 디제이가 직접 믹싱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CD 돌리고 흥만 냈다고 했다.

대충 10년 전, 2002년 월드컵 시즌이었으니까.

어쨌든 말하는 스타일이 정말 구닥다리였다.

결론은 먹고 마시라는 거였다.

2차는 자기가 산다고 여기서 간단히 흥을 내고 가잔다. 그러면서 볼륨을 올리니, 아주 춤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사실 강형우가 시장, 혹은 상가 사람들 모임에 적응하지 못한 부분이 이런 거였다.

배산회 모임에서 야유회를 간 적이 있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주축이 돼서 관광버스를 빌려서 갔는데, 정말 충격받았다.

부산에서 세 시간.

처음 30분은 얌전하더니 버스가 고속도로 올리자마자 춤판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술도 마시고 안주도 먹으면서 무려 두 시간 풀타임을 쉬지 않고 놀았던 거다.

심지어 DOC와 춤을 노래가 나오니까, 전부 관광버스 춤을 추더라.

그때 강형우는 진짜 신세계를 경험했다. 왜 이게 위험한지도 깨달을 수 있었고.

어쨌든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다들 장사 스트레스 때문인지, 원래 흥이 넘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악만 나오면 춤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딱 그랬다.

어설픈 간접조명에 오래된 나이트 음악.

그저 테이블을 치운 빈 공간에, 딱히 무대라고 할 것도 없었는데 몇 명이서 먼저 나와 춤을 추고 있었다.

창주 형이 토끼춤을 시작하니, 혁수 형이 나섰다.

그 뒤에서 현우 형이 어정쩡하게 서태지 춤을 추더라.

분명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데, 희한하게도 신나 보이긴 했다.

“헐.”

나름 폼 낸다고 기술을 펼치다 현우 형이 자빠졌다.

그걸 보고 다들 웃는데, 강형우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였다.

춤출 사람은 추고 마실 사람은 마시고, 이야기할 사람은 이야기하고.

그때, 그놈이 찾아왔다.

“형님,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분위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지혜가 자리를 비워줬고, 녀석이 옆에 앉았다.

이름 정병수, 나이 27살.

한창 파스타로 바쁠 때, 주방 보조 알바로 들어왔다가 사흘 만에 나갔었다.

그때 너무 많은 것을 물어봐서 느낌이 안 좋았는데 진짜 도로 맞은편에 파스타집을 차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지성분식이 돈가스를 메인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타격이 컸을 터.

때문에 영 내키지가 않았는데 녀석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실 미리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 정 사장님! 괜찮습니다.”

강형우가 웃으면서 말하는데, 괜히 찔린 모양이었다.

정병수는 당황했는지 맥주병을 따려다 몇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프너가 번번이 미끄러진 것이다.

강형우는 그걸 뺏듯이 받아 이빨로 따버렸다. 그런 뒤 병을 내밀고 정병수를 쳐다봤다.

잔을 비우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정병수는 다급히 맥주를 마신 뒤 잔을 내밀었다.

“그래, 정 사장님. 장사는 잘되시죠?”

“아, 그게… 죄송합니다.”

계속 죄송하다고 하는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풀리는 건 별개였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 싸다구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지.

어쨌든 정병수가 술을 따라주자 예의상 잔을 쳐줬다.

“사실은 제가 덕수 형님 사촌뻘입니다. 동래 정씨 3X대 손으로 수 자 돌림을 쓰거든요. 그러니 저한테도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들어보니 수 자 돌림에 갑을병정 순인데, 셋째 집 장손이라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병자를 받았단다.

뭐, 집안 족보야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니 그런가 했다.

어쨌든 고개를 푹 숙이는데, 살짝 기가 막혔다.

나는 녀석이 지성분식에서 일 배울 때 편하게 대할까 말까 상당히 고민했다. 터울도 비슷하니 서로 말 놓고 지냈으면 했는데, 녀석이 그걸 거절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거다.

꼭 그게 옳다는 건 아니어서 넘어갔는데, 지금은 먼저 말을 놓으라고 했다.

이런 쌍놈의 새끼를 봤나.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자 정병수가 움찔했다. 그러더니 먼저 고백을 하더라.

“사실은, 원래부터 파스타집을 하려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세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원래 김밥천국 자리여서 비슷하게 해보려 했단다.

하지만 도로 맞은편 김밥천왕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도저히 없었단다.

결국 이런저런 아이템을 고르다가 지성분식에 학생들이 줄 선 걸 봤다는 것이다.

“아버님 성화도 있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급함에…….”

“그래서 우리 가게 지원한 건가요?”

“그때도 진짜 파스타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순간 짜증이 팍! 났다.

홧김에 맥주를 쭈욱 들이켜서 비우자 정병수가 잽싸게 잔을 채웠다.

“분명히 기분 나쁘실 거 압니다. 저도 정신 차리고 보니 큰 실수를 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찾아가 용서를 구할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늦어졌습니다.”

“아니, 뭐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정 사장님이야 정 사장님 나름대로 장사하면 되는 거고, 저희도…….”

그때 정병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머리 박듯이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형님, 죄송합니다.”

아주 음악 소리를 뚫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 덕에 다들 쳐다보는데, 약간 당황스러웠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정병수는 꼼짝을 안 했다.

누굴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결국 강형우는 정병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독이는 것처럼 하면서, 힘으로 끌어서 강제로 자리에 앉혀 버렸다.

철푸덕 앉아버린 정병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녀석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마! 우리 나중에 이야기하자!”

***

하아~

술자리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다들 덕수 형네 가게에서 이상하게 흥을 내더니 2차로 고깃집에 오자마자 무식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 일이 많으니 후딱 마시고 후딱 가잖다.

뭐, 흔히들 있는 일이니 대수롭지 않았는데… 문제는 술이 약한 애들이었다.

좌 병수, 우 민석!

이 두 녀석이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먼저 정병수, 이 새끼가 맥주 세 병을 못 마신단다.

“형님, 감사합니다.”

바로 옆에서 계속 이러는데 귀에 딱지 앉겠다. 벌써 서른 번은 훌쩍 넘었고, 20분 가까이 이랬던 거다.

진짜 지치니까 짜증도 안 나더라.

원래는 술 좀 먹이고 크게 한 소리 하려고 했다.

덕수 형 얼굴 봐서 아는 척은 해줄 테니 딱 그 정도로 지내자고.

그런데 녀석이 선수를 쳤다.

2차 고깃집에 오자마자 옆자리에 앉더니 열심히 고기를 굽더라.

먹지도 않고 계속 술을 따르니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게다가 쌈까지 싸서 주는데, 분위기상 지랄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알았다, 알았다를 시전하면서 버텼는데 막 뭐라 하기도 전에 먼저 취해 버린 것이다.

뭐,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 다 있는 건지.

“예. 형님은 처음 봤을 때처럼 정말 좋으신 분이시네요. 진짜 제 진심을 알아주시는…….”

반쯤 풀린 눈으로 말하면서 소주잔에 술을 채우는데, 이번에는 철철 넘치기까지 했다.

“에휴~”

한숨이 나오는데 차마 패지는 못할 것 같았다. 녀석을 보니 시키면 당장이라도 배 까고 누울 기세였던 것이다.

흡사 말년 병장을 보는 이등병의 눈빛이라고나 할까?

“그래, 알았고. 저기 니 마누라가 부른다. 집에 들어가자고 하네.”

“옙! 형님.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꼭 저희 가게 들러주십시오.”

그러면서 일어서려다 자빠졌다.

다행이 깨지거나 다친 건 없었는데, 결국 여자 친구가 몇 번이나 사과를 하면서 녀석을 데리고 나갔다.

그다음 진상은, 김민석이었다.

술자리 꼴불견 1위.

질질 짜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전부 형님 덕분입니다.”

“내가 뭘?”

“저를 밝은 빛으로 인도해 주시지……”

그러면서 한참을 중얼거리는데, 자기 인생에 은인이 있다면 나하고 덕수 형이란다.

지금껏 살면서, 누구에게 인정받은 적이 처음이라나.

중학교 때는 왕따였고,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싸움이라도 잘하면 친구들 무리에 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건 겉보기였다.

진짜 자기를 인정해서 일을 맡긴 사람은 생전 처음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열심히 하겠단다. 또 열심히 살겠단다.

그걸 울면서 몇십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예전에 덕수 형한테는 했지만, 나한테는 못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진상 짓을 펼친 거다.

다행이 윤다정이 뒤통수를 세 차례나 후려갈긴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급하게 마시는 바람에 살짝 맛이 갔던 게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두 병신(?)들을 보내고 나서야 정덕수가 다가왔다.

“그래도, 애들 귀엽지 않냐?”

“아오~ 징그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아니, 그래. 형은 형네 애들인데 왜 내 옆에 붙여요?”

“애들이 그러고 싶다잖아. 너한테 고맙다는데 뭘 그래?”

“솔직히 병수는 좀…….”

강형우가 난감해하는데, 정덕수가 피식 웃었다.

“미안하다. 사실 우리 집안에 병 자 들어가는 애들이 좀 그래. 갑은 갑질하고, 을은 잘 울고, 병은 병신 짓 하거든.”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안 간다. 그래서 불쑥 물었다.

“그럼 형은요?”

“덕이 많지.”

“헐.”

강형우는 황당해하다가도,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애들이 너한테 고맙다고 그러는 거잖아. 사실 민석이도 그런 식으로 일하다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그러고. 병수도 너한테 배운 거 아니었으면 장사는 엄두도 못 냈을 거라 하더라.”

“아이고, 너무 많이 들어서 귀가 다 아플 지경입니다요.”

“큭큭, 그랬냐? 어쨌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덕수 형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는데, 딱 궁서체 느낌이었다.

“야, 너는 모르지만, 우리가 얼마나 고마워하는 줄 아냐? 이게 다 네 덕분이라고.”

“예? 뭐가요?”

“조성기! 이 새끼가 그 지랄 했을 때, 우리 다들 어쨌냐? 솔직히 이 동네 폭탄 맞은 분위기였다고. 그것도 거의 원폭 수준이었지.”

다 망해가는 동네.

아니, 근근이 상권이 유지만 되고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다.

그걸 조성기가 완전 박살을 내놨다.

정덕수는 소주 한 잔을 따라주더니 피식 웃었다.

“그때, 다들 패배자 심정으로 살고 있는데, 거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게 너야.”

“그건…….”

덕수 형이 갑자기 내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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