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64화 어떻게 알았어요
“자, 잠깐만. 다정아.”
“예. 오빠.”
“잠깐 나갔다 올래?”
강형우의 제안에 김민석이 손을 저었다.
“아~ 왜요?”
“그게, 잠깐…….”
강형우가 뭐라 하려는데, 정덕수가 도왔다.
“아, 내가 부탁한 거야. 안 그래도 우리 둘이서 할 이야기도 좀 있고 해서… 형우,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라. 올 때 내 담배 하나만 사다 주고.”
“예. 형, 말보루 멘솔 육미리죠?”
“어. 부탁 좀 하자.”
강형우는 자연스럽게 윤다정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고깃집 앞 편의점에 들러 담배와 스포츠 드링크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이거.”
“어? 고마워요.”
윤다정은 캔을 따자마자 단숨에 들이켰다. 이걸로라도 갈증을 풀겠다는 그런 행동 같았다.
“괜찮아?”
“예. 잠깐 정신없기는 했는데, 근데… 우리보고 가게 맡으라는 게 정확히 뭐예요?”
“음, 그게…….”
힐끗 가게 안을 보니 정덕수가 입에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김민석이 고개를 끄덕였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몇 번이나 인상을 찌푸렸다.
“간단히 말하면, 너희 둘 지금 월급 받잖아.”
“예.”
“둘이 합치면 이백오십 정도 되나?”
“거의 그 정도요.”
윤다정이 대충 얼버무리지만, 강형우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김민수가 거의 풀타임으로 백오십 정도를 받았다. 윤다정도 백만 원 정도 였는데, 그 외에도 정덕수가 이삼십 정도를 더 챙겨준다고 들었던 것이다.
“사실, 덕수 형도 고민 많이 했는데, 너희들 일하는 거 보니까 너무 잘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어. 그래서 본점 없애고 같이 큰 지점으로 데려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손님들이 걸리는 모양이야. 애들 손님도 있고.”
그 말에 윤다정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상수네 형제와 또래 애들은 윤다정을 정말 잘 따랐다. 학교 일찍 마치면 가게 한쪽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가끔 숙제도 봐주면서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한가한 시간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게 복으로 돌아왔다. 아침 먹는 아이들을 주축으로, 오후에는 친구들이 많이 늘었던 거다.
강형우가 머문 기간은 고작 열흘.
그럼에도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뿌렸던 밑밥(?)이 마침 성과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대로만 된다면 본점이 동네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애들 어머니들이 윤다정에게 작은 선물 같은 걸 해주는 걸 보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긴 안 될 수가 없구나.
무엇보다 확실히 동네 친화적인 가게는 잘 망하지 않았다.
강형우가 머리카락 빠지게 고민해서 천 원짜리 라면을 만들어준 것도 그래서였다.
“덕수 형이 확장을 하면 손님이 많이 줄 거야. 하지만 단골들은 계속 본점을 찾게 될 거야.”
일단 도로까지 내려오긴 힘들었다.
무엇보다 차별화를 위해 라면 한 그릇을 천 원에 팔았다. 그걸 지켜주기 위해 배산역점은 라면 판매 대신 사발면 매대를 가져다 놓기로 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배산역점의 시스템이었다.
덕수 형은 햄버거에 미련이 있었는지 그쪽 비중을 확 올려 버렸다.
고기 패티를 좋은 걸로 쓰고, 소스도 좀 더 고급 제품으로 바꿨다.
빵도 시제품이 아닌 배산회 맴버 가게 ‘최고빵 제과점’에서 받기로 했다.
무엇보다 매장 자체가 롯데X아 비슷한 형태였는데 테이블 수를 확 늘렸다. 저렴한 가격의 밥버거지만 편하게 먹고 갈 수 있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때문에, 본점과는 확실한 차이점이 있었다.
“이건 내 짐작이지만, 지금처럼 하면 한 달에 못해도 삼사 백은 벌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예?”
윤다정은 얼떨떨해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엄지를 척 들었다.
“너희들이 잘만하 면 한 달에 오백 버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걸?”
“에이~ 그건…….”
윤다정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쳤다.
첫 인상은 영 아니었지만, 지난 열흘간 많이 친해졌다.
더 친해졌다가 실수하면 거시기를 까일지도 몰라서 조금 주의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근데 갑자기 윤다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손가락을 꼽더니 뭔가를 계산하는 게 아닌가?
“근데 오빠.”
“어?”
“한 달에 오백이면, 많이 버는 건가요? 그게 어느 정도죠?”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 년 정도 아껴 쓴다면 작은 빌라 전세금 정도는 나올걸?”
“어느 정도 크기요?”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을 칠 수 없었다.
강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깃집 뒤편을 가리켰다.
“저 뒤쪽이라면 방 두 칸에 주방하고 거실 있는 정도는 가능할 거야. 대충 전세가 삼사천 정도 선이니까. 반전세로 들어가면 더 큰 집도 가능하고.”
“그래요?”
“그래, 그 정도면 애 키우고 학교 갈 때까지는 문제없…….”
순간 아차 싶었다.
윤다정을 보니 얘도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 그게…….”
강형우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은 아니고.
대충 이 년 정도 전이었다.
내 밥상에서 일할 때, 분석이 형은 날 많이 챙겨주고 여러 가지 것을 가르쳐 줬다.
그 이유는 미래의 매제라고 점찍어서였다.
실제로 바로 밑 여동생이 정금희 누나였는데,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다.
근데 내 체격과 외모가 딱 누나 취향이라더라.
듬직하고 남자다운 스타일을 좋아한다나?
어쨌든 무척 친했고 잘 챙겨줬으며, 그래서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다. 누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같이 사는 미래를 꿈꿔도 좋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페이크였다. 누나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거다.
문제는 분석이 형이 그 상대를 내켜 하지 않았다는 것.
바로 공장에서 일하던 병찬이 형이 그 상대였다.
오갈 때가 없어서 공장에서 고용했는데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운전뿐이었다. 게다가 좋게 말하면 순한 성격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많이 무식했다.
어쨌든 정금희 누나는 분석의 형을 속이기 위해 나와 친한 척 지낸 거였다.
그러다 같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금희 누나 행동이 아까 윤다정과 거의 비슷했다.
술 좋아하던 호탕한 누나가 갑자기 음료수를 마시지 않나, 담배 나가서 피우라고 걷어차기까지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울해하더니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임신 14주였단다.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 별수 있나?
어쨌든 지금 누나는 시집가서 잘산다. 그리고 병찬이 형은 애처가, 공처가 수준을 넘어서 그 집 머슴(?)으로 진화를 해버렸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분석이 형이 가끔 찾아가 위로해 줄 정도까지 되었으니, 더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어쨌든 금희 누나의 선택은 무척 현명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분석이 형이 나한테 잘해주는 게 그래서였다.
그때 충격을 받아서 회사 그만두고 분식집을 차린 거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분명 아니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그게,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어서. 근데 맞지?”
“그게… 예. 저번부터 그게 없어서 혹시나 싶어 병원을 갔는데요.”
윤다정은 주저주저하면서 어렵게 말했다.
벌써 13주나 됐단다. 근데 원래 날씬해서인지 전혀 티가 나질 않았다.
말하면서 윤다정은 몇 번이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딱 보니까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지금도 갈등하는 듯 눈빛이 흔들렸고, 나지막이 한숨까지 몇 번이나 내뱉었던 것이다.
분명 축하할 일이기는 한데,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 많이 되지?”
“사실 그렇죠. 오빠도 같이 지내봐서 알잖아요? 지금이야 성실히 하긴 하는데, 언제 또 또라이 같은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글쎄? 내가 볼 때는 안 그럴 것 같은데.”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가게 안을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윤다정은 화들짝 놀랐다.
김민석이 울고 있었다. 눈물을 질질 짜면서 어깨를 마구 들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
“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네.”
강형우는 마무리를 강석이한테 맡기고, 공지혜와 함께 지성분식을 조금 일찍 나왔다.
횡단보도를 지나자마자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커다란 간판이 있었는데, 형님네 하고 버거 글자 사이에 커다란 캐리커처가 눈에 확확 들어왔다.
요즘 최고의 히트곡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그 앨범 캐릭터 비슷한, 선글라스 낀 대머리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살집이나 표정이 의외로 덕수 형과 무척 비슷했다.
“뭐, 어울리긴 하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입구로 향했다.
나레이터 모델 두 명이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연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을 실천하고 있는 형님네 버거가, 여기 배산역에 신규 오픈을 했습니다. 저희 가게는요…….”
그러면서 골반을 마구 흔들더니 온몸으로 웨이브를 타면서 섹시한 신음을 흘렸다.
순간 지나가던 남자들이 움찔하더니 못 들은 것처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건 강형우도 마찬가지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공지혜의 무시무시한 눈빛과 마주쳤던 것이다. 게다가 입술까지 잘근잘근 깨무는 걸 보니 뭔가 분노를 참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지혜야. 들어가자.”
서둘러 공지혜를 끌고 형님네 버거 안으로 들어갔다.
공사 중간에 몇 번 와서 보기는 했는데, 막상 오픈하고 나니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화이트에, 포인트로 톤이 다운된 알록달록한 색상을 많이 썼다. ㄷ자 형태의 구조를 녹색, 노랑, 빨간색으로 경계를 나눠놨던 것이다.
딱 보면 어릴 때 쓰던 베네통 책가방 색상 같았다.
알바 유니폼 역시 그와 비슷했다. 초록색 모자에 노란색 폴로티, 빨간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애들이 좋아할 만하긴 했다.
“여, 형우 왔냐?”
“어? 다들 일찍 와 계셨네요?”
강형우가 쳐다보니, 한쪽 자리는 벌써 만석이었다.
김창주와 화끈 오뎅 매니저 고지우, 태성 반점 이혁기 형과 예비 형수님 진아림 누님이 제일 먼저 보였다.
그 옆에 통닭집 현우 형도 있었고, 마무리하고 내려온 김민석과 윤다정도 보였다.
“근데 주혁이 형은요?”
“아, 걔는 본사 호출 때문에 좀 늦는대.”
창주 형이 그렇게 말하는데, 또다시 입구 문이 열렸다.
홍태구와 오연희,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 정육점 사장 정재일과 취준생 이지애가 공교롭게도 함께 왔던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금세 배산회 멤버들이 더 추가되었다. 자리를 알아봐 준 부동산 삼촌과 공사를 도와준 철물점 사장님도 왔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공지혜와 함께 한쪽 자리에 앉는데 흐미, 테이블에도 먹을 게 천지였다.
혁기 형이 깐풍육과 부추잡채를 깔았고, 창주 형이 튀김 세트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현우 형도 이에 질세라 통닭도 다섯 마리나 깔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만들어오는 건데…….”
강형우가 중얼거리자 공지혜가 옆구리를 툭 쳤다.
“왜?”
“오빠. 저기, 입구에…….”
공지혜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웬 젊은 청년이 여자하고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참았다.
정덕수가 끼어들어서 소개를 했기 때문이다.
“아! 형우하고는 구면이지? 우리 가게 옆에서 장사하는 친구인데, 내가 불렀어. 정병수라고 다들 알지?”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지성분식에 주방보조로 왔다 간, 파스타집 사장 놈이었으니까.
가까스로 인상을 풀려는데 녀석이 먼저 다가왔다.
“강 사장님.”
“어? 아아, 예. 정 사장님.”
따로 뭐라 부를지 몰라 대충 대꾸했는데, 녀석이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 황당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갑자기 여친으로 보이는 아가씨도 머리를 숙였다.
“아니, 왜…….”
“사실은 미리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더듬더듬 말하는데, 덕수 형이 녀석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그 이야기는 둘이 나중에 풀고. 일단 자리에 앉아.”
“아, 예.”
정병수가 물러나는데, 덕수 형이 갑자기 나한테 윙크를 했다.
일단 신호가 있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분위기가 갑자기 요상하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