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35화 미쳤네
“1번에 파스타 세트 하나요.”
“4번 테이블도 파스타 세트 하나요.”
주문이 들어오자 강형우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달군 팬에다 소스를 붓고 곧이어 순서대로 야채와 대패삼겹살이 들어갔다.
거기에 면을 넣고 졸이듯이 볶아 주면 끝이었다.
강형우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부렸다.
동시에 팬 여섯 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섞어 주는데, 정말 묘기에 가까웠다.
그건 지금의 파스타를 개발하는 동안 수백 그릇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거다.
“여기 떡볶이요.”
공지혜가 떡볶이 1인분씩 담은 그릇 세 개를 가져왔고, 강형우는 그 옆에 파스타를 올렸다.
불과 5분 남짓한 시간에 세트 세 개가 나왔다.
이정도면 분식집 기준으로는 합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강형우가 한숨 돌리기도 전, 또다시 주문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세트였다.
마지막 손님까지 나가자 그제야 가게가 한산해졌다.
주방에서 나온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돈 버는 것도 좋은데, 이러다 죽겠다.”
그걸 증명하듯 등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마를 감싼 수건 역시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떨어질 듯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나은 편이었다.
공지혜는 아예 의자 두 개를 붙여서 거기에 벌렁 드러누웠다. 씩씩하고 숨을 고르는데, 다행이 숨넘어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에 인정둥이들이 열심히 눈치 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하긴, 그게 당연하겠지.
인정둥이가 일한 건 일주일도 안 되었다.
사람이 늘어나니 일도 어렵지 않았고, 조금 복잡해지면 공지혜가 교통정리를 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별탈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인정둥이도 여러 번 실수하고 말았다.
주문 안 한 음식이 나가고, 나가야 할 걸 빼먹었다. 주문 순서와 다르게 음식이 나가기도 했고, 그릇도 세 개나 깨 먹었던 것이다.
또, 재료 떨어진 걸 주문 받아서 손님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다.
그걸 능숙하게 무마한 게 공지혜였다.
“죄송합니다. 음료수 서비스 드릴게요.”
“이건 빼고 계산할게요. 아뇨. 저희가 잘못했는데. 예!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
“떡볶이 추가요? 어떻게 하죠. 다 떨어졌는데? 대신 같은 가격에 김치볶음밥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맵게요.”
“잠시만요. 주방에 확인하고 주문받을게요.”
그런 식으로 인정둥이들의 사고다발을, 20년차 보험설계사처럼 해결해 버렸다.
만약 공지혜가 없었다면, 그 손님들이 지성분식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지도.
그걸 알기에 인정둥이들이 저 소란을 피웠다.
인우는 벽걸이 선풍기를 떼서 공지혜의 머리를 식혔고, 정우는 열심히 다리와 발바닥을 안마했던 것이다.
“고생했다.”
강형우가 한마디 하자 공지혜는 상체를 일으켰다.
“아휴~ 오빠도 고생했어요. 주방 진짜 더울 텐데…….”
그러다 갑자기 씨익 웃더니 손가락을 꼽았다.
“근데 오빠. 우리 대박 났음.”
“뭐가?”
“파스타 세트만 무려 70개 넘게 나갔어요.”
“헐!”
“거기에 매출 100만 원 돌파!”
“미쳤네.”
강형우는 입을 쩌억 벌렸다.
평균 11시부터 2시 반까지가 점심시간이었다.
지금은 3시 반이 훌쩍 넘었다. 그만큼 많은 손님들을 받았다는 거다.
물론 날이 날이니 만큼 저녁 손님들이 줄겠지만, 이 정도라면 진짜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 하하하. 하하.”
나오는 것 헛웃음뿐이었다.
매출 100만 원.
가게 오픈 빨 받은 직후에나 올렸던 매출이었다.
이후 맛집으로 소문나서 사람들이 줄서서 하루 종일 장사했을 때, 저 정도를 벌 수 있었다.
그때는 주방 아줌마만 둘이었고, 공지혜와 알바 한 명을 더 써서 겨우 감당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 그걸 달성했다.
갑자기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지난 몇 달간 개고생했던 게 하나하나 떠올랐다.
김밥천왕에 치이고, 미진이한테 차였다.
순이 이모를 밖에서 봤을 때,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도 많이 쓰렸다.
또, 가게를 일으켜 보자고 신메뉴를 내기 위해 시험하다가 버린 재료비만 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몇 개나 폐기해야 했고,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메뉴들을 줄이거나 없애야 했다.
어묵국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게다가 크림 파스타!
저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정말 피나게 공부했다.
강주혁의 시범도 있었지만,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백 그릇을 만들었다. 그 덕에 양식의 기초를 대충이나마 감 잡을 수 있었고, 토마토 파스타와 그에 맞는 떡볶이까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고생들이,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하아~”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면서 저절로 눈이 감겼다.
아! 장백호의 기억과 경험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곁가지였다. 거목의 무성한 잎을 보고 판단했을 뿐, 그 깊은 뿌리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잠깐이지만 그와 동화되는 게 느껴졌다.
“후아~ 후련하네.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해 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예?”
공지혜와 인정둥이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강형우의 얼굴에서 잠시 빛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강형우는 벌떡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쳐다봤다.
“딱 20분만 쉬고 둥이들은 바로 설거지하고, 내가 가르쳐 준 대로 밑준비 해놔.”
“와! 진짜 개고생했는데…….”
“그러게. 숨도 못 쉬고 일했는데, 꼴랑 20분 쉬면…….”
“싫으면 국밥 말러 가던가.”
강형우의 일침에 인정둥이는 입을 다물었다.
참고로 국밥집은 24시간 풀타임이다.
그때 공지혜가 물었다.
“오빠, 저는요?”
“넌 하던 거 계속하면 돼!”
“뭘요?”
“애들 감독!”
***
“헐!”
강형우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말이 되나?
왜 튀김집에 줄이 저렇게 길지?
몇 번이나 눈을 비볐는데도 현실은 그대로였다.
대충 봐도 스무 명 정도였다. 게다가 안에 들어가서 먹겠다고 기다리는 손님들도 세 팀 이상이었다.
“와! 여기도 대박이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슬쩍 안을 쳐다봤다.
화끈 오뎅 주방은, 정말 화끈화끈했다.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울 정도였던 것이다.
“형!”
“어! 형우야. 왔냐?”
김창주는 안부를 물으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한 손으로 새우 꼬리를 잡고 머리만 튀기더니 시간을 딱 보고 다시 반죽을 입혔다.
그런 뒤 튀김 솥에 투하!
그걸 본 학생들은 입을 떡 벌렸다.
“와! 새우 대박.”
“그러게. 난 저런 새우튀김 처음 보는데?”
그 반응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하긴, 아직 애들이었다.
한창 술집 다닐 나이나 되어야 저런 걸 볼 수 있을 테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근데 한 개 1,200원이면 좀 비싸지 않아?”
“야! 난 비싸도 먹을 거야. 왕튀김 중에 저게 최고라고.”
“그래. 오늘만 특별히 더 파는 거지. 어제만 해도 다 팔려서 못 먹었어!”
“뭐? 안 팔아?”
“그게 아니라, 하루 딱 백 개 한정이래. 다 팔리면 못 먹음.”
“오올. 그럼 나도!”
아주 새우튀김 인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 인당 한 개만 판다고 하니 더욱 난리였다.
역시나 계획대로였다.
일단 이번에는 지성분식과 화끈 오뎅, 형님 버거만 함께하기로 했다. 그러다 장기적으로 다른 가게들도 하나씩 합류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첫 출격을 끊은 건 화끈 오뎅이었다.
이미 고추튀김으로 팬층을 확보한 상황.
다른 튀김들이 완성되는 대로 바로 실전에 들어갔고, 이내 왕튀김으로 입소문이 난 거다.
그게 며칠 전인데 이렇게 사람들이 밀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강형우는 블랙타이거 새우로 튀김을 하자고 했을 때, 김창주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이게 팔릴까?
가격은 개당 1,200원.
다른 튀김에 비해 비싸도 너무 비쌌다. 단가도 비싸서 과연 수익이 남을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이거 서울에서 개당 1,500원에 판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티나게 잘 팔리니까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창주가 제일 먼저 새우튀김에 집중한 건 그래서였다.
물론 손질은 무척 까다로웠다.
이쑤시개로 내장을 제거하고, 껍질을 다 벗긴 뒤에야 튀길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손이 많이 갔고, 하루 한정으로 딱 100개만 팔았다.
현실적으로 그 이상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형 많이 바빠요?”
“죽겠다. 두 시간 전부터 갑자기 밀려드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거 다 나가서 또 튀겨야 해.”
김창주는 바로 기름 온도를 확인했다.
일단 머리만 먼저 10여 초를 튀겼다. 그다음 반죽에 담갔다가 다시 통에 넣어 바짝 튀겨 냈던 것이다.
덕분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일부 학생들이 무섭다고 하면, 친절하게 대가리를 잘라 주는 서비스까지 베풀었다.
덕분에 블랙타이거 새우튀김은 히트 상품이 된 상황!
그런데.
“어? 형이 왜 거기서 나와요?”
주방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건, 황당하게도 강주혁이었다.
“아! 지나가다가 바빠 보이기에 잠깐 도와주러 온 거지!”
“헐! 그래도 그렇지.”
생각해 보니 짐작 가는 게 없지 않았다.
며칠 전만해도 화끈 오뎅의 프랜차이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가?
그 영업 과정의 하나라고 보면 이런 봉사(?)도 이해가 되긴 했다.
“어휴, 강 실장님 엄청 빠르더라. 칼질하고 새우 손질하는데, 손이 안 보여.”
김창주의 칭찬에 강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김 사장님, 서로 돕고 살아야죠. 조만간 한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데.”
허, 정말 너무하네. 나한테는 백만 원이 어쩌고 하면서 협박하더니.
밖으로 나온 강주혁은 씨익 웃더니 윙크를 날렸다.
한마디로 모른 척하라는 의미였다.
그러고서 창주 형을 보며 손짓을 하는데, 많이 익숙한 제스처였다.
“그럼 다음에 한잔! 괜찮으시죠?”
“아유. 저야 영광이죠. 편할 때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님 수고하세요.”
와! 역시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더니, 진짜 타고났네, 타고났어.
창주 형은,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쉽게 마음 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거침없이 한잔하자고 할 정도면 거의 80% 이상은 넘어간 거다.
“형, 정말 대단하네요.”
“솔직히 너한테는 미안한데, 이 동네에서 우리 회사하고 연결할 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어. 안 그래도 요즘 분식 체인이 최고 돈 된다고 하는데! 저기 봐! 저기!”
강주혁이 가리킨 건, 바로 옆 조가네 떡볶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경기도 장악하고, 불과 이년 만에 부산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벌써 체인점만 200개가 넘는댄다.”
“와! 그렇게 커요?”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강주혁이 계산기를 꺼냈다.
“점주 최소 보장이 300만 원. 그럼 월 매출 2500만 원 정도 보면, 본사가 매달 가져가는 게 20억이다.”
“헐!”
“프랜차이즈가 그런 거야. 물론 광고나 영업비용 같은 거 빼고 나면, 순수익은 많이 떨어지지만 식자재를 대량 구입하면 거기서 또 단가를 낮출 수가 있거든.”
생각해 보니 박일복 부장이 그랬다.
견학 허락은 미래의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그러니 부디 돈 많이 벌어 큰 회사 차리면 부디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근데 형, ‘철진 기획’ 일 하는 거 아니에요?”
“야. 말 그대로 당분간이다, 당분간.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냐?”
하긴 전에 술 마실 때 그랬다.
본업은 외식업이라고. 그래서 항상 입소문이 난 가게는 빼놓지 않고 다닌단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화끈 오뎅도 영업 대상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때 강주혁이 물었다.
“그런데, 너 장사는?”
“장사요?”
“그래? 이 시간에 가게 비워도… 야. 왜 웃냐?”
강형우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냥 계속 웃음이 실실 나오는데,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