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36화 선배가 쏜다
으드드득, 끄으어억, 뿌드드득.
아주 온몸의 관절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후아. 죽겠다.”
강형우는 진짜 바닥에 쓰러지고 싶었다.
화끈 오뎅에 잠시 들렸다가, 형님 버거로 갔다.
사람들이 확 몰리는 걸 보고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그 타이밍에 공지혜가 전화를 했다.
손님 왔다고 빨리 가게로 오라는 거다.
강형우는 어쩔 수 없이 인사만 하고 다시 지성분식으로 향했다.
이후, 손님들 러쉬가 이어졌다.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나니 저녁 9시 20분, 그때까지 잠시도 못 쉬고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무려 다섯 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와! 죽다 살아났네.”
“오빠! 고생했어요.”
강형우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공지혜가 물수건을 건넸다.
“땡큐.”
강형우는 그걸로 땀을 닦으면서 인정둥이를 찾았다.
얘들이 테이블을 붙이더니 그 위에 바로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시체놀이를 하는데, 분장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끄으어, 끄으어!”
인우가 손을 바르르 떨자, 정우가 그걸 잡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차라리 우리 국밥집 가자.”
“나도 그 생각했다. 이건 진짜 전쟁이야.”
그 말이 적당한 표현이었다.
거의 전쟁 난 것처럼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학부모와 학생들, 그러다 공사판 아저씨들이 몰려왔고 곧 학원 강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런 뒤, 한숨 돌리나 했는데 철물점 사장님하고 반찬가게 동생이 찾아왔다.
거의 다 먹을 즈음에 정육점 친구가 들렸고, 알바랑 교대한 편의점 사장님이 오더니 마지막으로 갈비집 주방장 아저씨가 찾아왔다.
심지어 직원들까지 잔뜩 데리고서 말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낮부터 시작해서 초저녁에 다 팔아 일찍 마쳤단다.
따지고 보면 대목이긴 대목이었다.
사람들이 졸업식 때는 제법 나가더라도 번화가까지 가서 먹지만 입학식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내일 바로 등교해야 하기에 다들 가까운 동네에서 외식하고 들어갔던 것이다.
덕분에 지성분식도 미어터지는 줄 알았다.
그걸 증명하듯 설거지가 산더미였다.
강형우가 그쪽을 보자 인정둥이가 선수를 쳤다.
“오늘은 손도 꼼짝 못하겠습니다.”
“일 더 시키면 차라리 가출할래요.”
피식 웃은 강형우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저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만 들어가. 그리고 이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자마자 인정둥이가 벌떡 일어났다. 오만 원권을 보자마자 박카스 링거라도 맞은 것처럼 펄떡 뛰더니 바로 무릎 꿇고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하여간 눈도 손도 빠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머니 파워 충전!”
“오늘 야식은 치킨!”
이러면서 뺏듯이 돈을 받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걸 보고 피식 웃는데 공지혜가 갑자기 소매를 걷었다.
“이왕 힘쓴 거, 설거지까지 다하고 갈게요.”
딱 보니, 얘도 상거지 꼴이었다.
위생모 벗자마자 머리카락은 산발에 땀 냄새가 진동했고, 손가락 툭 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휘청휘청대면서 주방으로 향하는데, 좀비가 따로 없었다.
“됐어. 옷 갈아입고 나가자. 저녁은 먹어야지.”
“지금 밥 먹으면 최소 세 그릇!”
“다섯 그릇도 된다.”
강형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치마를 벗었다.
사실, 할 일도 산더미였다.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뒷정리하고, 무엇보다 내일 쓸 재료 밑준비만 해도 몇 시간은 걸릴 듯했다. 게다가 사골육수와 닭육수도 다 나가서 다시 끓여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만큼 오늘 하루는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일 매출 170만 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냉장고가 텅텅 빌 정도로 재료들이 다 나갔고, 중간에 밥을 다시 지어야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있는 걸로 해먹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거였다.
어르신 한 분이 파스타가 맛없다면서 돈 못 내겠다고 배째라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장사 잘되고 바쁠 때는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노렸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렇게 버티는 가운데 가게가 시끄러워지자 강형우가 튀어나왔다.
하도 바빠서 칼 들고 나갔는데, 그걸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이고 총각. 그게 아니라…….” 이러면서 만 원짜리를 냅다 던지고는 도망친 거다.
공지혜가 잔돈 받아 가시라면서 뛰어나갔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한 시간 뒤 경찰하고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칼 들고 협박을 하네, 잔돈도 안 주네 하면서 따지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파스타 먹던 갈비집 알바가 멱살을 잡은 거다.
알고 보니 무전취식 상습범이었던 것!
덕분에 강형우 대신 알바가 증언하겠다고 경찰을 따라갔고,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주방장 형님이 말씀하시길, 며칠 전에도 갈비 5인분에 소주 두 병 마시고 도망갔다나?
그날 알바 동생은, 사장한테 작살나도록 깨졌단다. 게다가 월급에서 깐다는 말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장님 성격에 말뿐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그 알바는 무전취식범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 어디 가요?”
공지혜가 옷 갈아입고 나오면서 묻자 강형우는 폰을 흔들었다.
“이 앞에 포차로 오라네.”
***
왕언니 포차.
나름 배산역 터줏대감 중의 하나였는데, 진짜 왕언니가 있었다.
내일모레 환갑이란다.
그러면서 안주를 그득그득 내주는데, 진짜 손도 왕언니였다.
이만 원짜리 전 세트를 시켰는데, 커다란 해물파전에 김치전과 명태 대가리전이 나왔고 서비스로 두부김치가 추가되었다.
그것만 시켰으면 다행인데, 오늘은 동네 잔치였다.
오뎅탕에 닭도리탕, 조기 매운탕 플러스 부대찌개까지 아주 한 상 거하게 나왔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 다 모였다.
화끈 오뎅에서 창주 형와 직원 아가씨 두 분.
정덕수 형과 가게 일 돕는다는 후배 남자 알바 한 명.
혁기 형과 미래의 형수 진아림 누님, 그리고 통닭집 현우 형까지 오자 가게가 꽉 찬 것이다.
“마시자!”
정덕수 형이 막걸리 병을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잔이 아니라 병으로 마셔야 한다면서 일인 일병을 까기로 한 거다.
이해는 되었다.
오늘만 장사하는 게 아니라, 내일도 가게를 열어야 하니 후딱 취하고 빨리 헤어지잔다.
“자! 다들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신나게 막걸리 병을 치고, 다들 쭈욱 들이켰다.
“크아아~ 시원하다.”
“후아~ 좋네.”
강형우도 단숨에 삼분의 일을 비웠다.
진짜 꿀이라도 탄 것 같은 맛이었다.
거기에 얼음주머니를 목구멍에 넣었다 뺀 것처럼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자! 일단 안주 한 점씩 드시고!”
덕수형은 파전 세 조각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걸 시작으로 다들 젓가락을 놀리더니 금세 안주가 파탄 나 버렸다.
공지혜는 세 그릇을 말한 게 농담이 아니었다.
닭도리탕을 순식간에 작살냈는데, 입으로 우물우물 하자마자 뼈만 깨끗이 튀어나왔다.
진짜 진기명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닭도리탕 건더기가 자취를 감출 무렵 밥 달라고 하더니 깍두기를 다져 넣고 바로 볶아 버린 것이다.
강형우는 한 입 먹고 맛에 반했다. 그래서 또 먹으려고 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공지혜가 냄비 바닥을 박박 긁고 있었던 것!
“야! 진짜 오늘만 같으면 금방 부자 되겠다. 왕버거가 이백 개 넘게 나갔어!”
정덕수가 환호를 하면서 강형우를 쳐다봤다.
넌 어떠냐는 의미였다.
“저도 뭐, 그럭저럭 나갔네요.”
대충 둘러대듯이 말했는데, 명태 대가리를 으적으적 씹던 공지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우리 가게. 최고 매출인데…….”
그걸 들은 정덕수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야. 대박이네, 대박. 자! 오늘 지성분식이 최고 매출기록을 갱신했답니다.”
“오오~ 진짜?”
“이야. 축하한다. 역시 지성분식 최고다!”
다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데 조금 민망했다.
아니, 아팠다.
축하한다고 돌아가면서 등을 두드리는데, 점점 손이 매워지는 게 아닌가?
심지어 덕수 형은 다 먹은 파전 접시로 두들기려 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능청스럽게 스윽 물러났다.
아무래도, 왕버거 가르칠 때 너무 혹독하게 굴렸나 보다.
사실, 형님 버거는 다른 방향으로 리뉴얼 했다. 기존의 밥버거를 따라하되 기본에 더욱 충실한 형태로 개량한 것이다.
밥은, 지성분식에서 짓는 것처럼 무와 배춧잎, 다시마를 응용해 미리 단맛을 넣었고, 여기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밥새우였다.
마른 멸치와 건새우를 볶아서 밥을 뭉칠 때 함께 넣었던 것이다.
여기에 당근과 양파, 태운 파를 듬뿍 넣고 끓인 간장을 더해서 간을 맞췄다.
그렇게 만든 밥은, 그냥 밥만 먹어도 달작하니 맛있었다.
이렇게 차별화를 두었지만 대부분의 메뉴는 일반 밥버거 집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형님 버거만의 시그니처 메뉴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게 왕버거였다.
뭉친 밥 위에 다진 오이 피클과 단무지, 볶은 김치를 올리고 치즈, 햄버거 고기 패티에 구운 양파를 추가한다. 그리고 다시 밥을 덮으면 끝이었다.
맛은 제법 괜찮았다.
가장 비슷한 걸 굳이 찾는다면 김치치즈떡갈비 밥버거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깊이 있고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고보면 된다.
포인트는 매콤한 바비큐 소스였다. 그게 햄버거 패티의 맛을 제대로 살렸던 것이다.
크기도 보통 밥버거보다 15% 정도 컸다.
이걸 2,500원에 내놨다.
또 햄버거에 감자와 콜라가 있는 것처럼 세트메뉴를 만들었는데, 바로 유부가 들어간 라면 국물과 큼직한 계란말이였다.
이걸 추가해서 3,300원에 팔기로 했던 것이다.
당연히 다른 가게에서 팔지 않는 조합이기에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고, 정덕수는 진짜 죽다 살아났다.
바로 전자저울 때문이었다.
처음 밥버거를 만들었을 때, 괜히 짰던 게 아니었다.
대충 손대중으로 뭉텅뭉텅 집어넣는 바람에 양념에 양념이 더해졌던 거다.
해서 강형우는 전자저울에 호일을 깔고 지옥훈련을 시켰다.
밥 몇 그램에, 피클과 단무지 몇 조각.
거기에 김치도 얼마, 참치도 얼마, 스팸도 얼마 하는 식으로 적절한 양이 몸에 익을 때까지 철저하게 굴렸던 것이다.
하지만 쉽게 되지 않았고, 결국 정덕수는 안테나를 가져와서 실수할 때마다 손등을 쳐달라고 했다.
처음에 한 시간 연습했을 때, 못해도 오십 대는 넘게 맞았을 거다. 그러다 삼십 대가 되고, 이십 대가 되더니 서서히 정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농담 삼아 소금 몇 알갱이까지 구분할 수 있단다.
“근데, 쿠폰 확인해 봤냐?”
김창주가 슬쩍 묻자 강형우가 손가락을 꼽았다.
“저희는 서른두 장 들어왔어요. 나간 건 대충 육십 장 정도 될 거예요.”
“그래? 우리는 사십 장 정도 들어왔거든. 나간 건 거의 백 장 넘는 걸로 아는데?”
강형우와 김창주는 동시에 정덕수를 쳐다봤다.
“그래. 나한테 싸그리 다 들어왔다. 덕분에 아주 가게 폭발하는 줄 알았다.”
그때, 김현우가 슬그머니 물었다.
“쿠폰? 너네 뭐 하기로 했냐?”
“형, 기억 안 나요? 그때 형은 안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김현우가 어리둥절해하자 이혁기가 거들었다.
“그날, 너 많이 취했어. 그리고 통닭집하고 안 맞다고 안 한다고 했잖아.”
“그랬나?”
김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강형우가 뭔가를 내밀었다.
명함 크기의 종이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배가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