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화 한마디로 지극정성
인정하자.
난 요리를 너무 가볍게 봤다.
맛을 보고, 직접 만들어 보고 나서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걸 절대 쉽게 보면 안 된다는 걸!
사실 자만했다.
튀김 몇 개 개량했다고 뭐라도 된 듯 행동했고,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 나에게 주혁 형의 시범은 큰 자극이 되었다.
왜, 새로 생긴 게임 오프닝을 보면 이런 게 나온다.
만렙 대마왕이 마법 한 방 쓰면, 저렙 용사들이 떼거지로 죽어 나가는 거.
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주혁 형은 터무니없게 쉽게 만들었다.
일단 버터와 밀가루를 동량으로 섞어 은근히 볶았다.
“이게 양식의 기본이 되는 루다. 일단 크림소스니까 색이 하얗게 되면 바로 불을 꺼야 돼.”
기초 중의 기초였다.
하지만 나는 시판 크림스프를 끓여서 쓰기에 그 단계를 생략해 버렸다.
“네가 만든 건 정통 까르보나라가 아니야. 그냥 크림소스 라면이지.”
그러면서 짧게 설명하는데 원래 계란과 파마산 치즈를 섞어서 만든 소스에 볶아 먹는 거라고 했다. 흔히 알려진 크림소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정통을 붙여서 검색해 봐.”
정말인가 싶어서 해 봤는데 진짜였다.
그제야 핸섬 파스타에서 시킨 게, 왜 치즈에 치즈, 치즈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스, 면, 야채, 전부 따로 준비하고, 나갈 때 한 번에 볶아야 돼.”
조금 귀찮아서 스튜식으로 끓였는데, 그러면 감자나 고구마의 전분들이 흘러나와 걸쭉해진다고 했다.
그게 치즈 맛을 뿌옇게 만들어 맛을 흐린단다.
“봤지? 제일 먼저 야채를 볶고, 소스 넣고, 면을 넣어서 휘리릭 휘리릭.”
그렇게 나온 한 그릇은, 겉보기에는 자신이 만든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크림소스에 비슷한 건더기 그리고 라면사리까지 거의 똑같았다.
문제는 맛의 레벨이 다르다는 것!
먹어 보니 확실히 깨달았다. 깊이 있고, 적당히 짭짤하면서 마지막까지 느끼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림 파스타 원가는 평균 4,000원 선. 물론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데, 맛을 내려면 거기서 더 추가돼! 만 원대 전후에 판매가가 정해지는 게 그래서지.”
강형우는 무식하게도 이걸 1,500원 내외로 맞추려고 했다. 심지어 시판 제품을 썼고, 조리 과정도 편하게 하면서 가격까지 낮추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맛이 날 리가 있나.
강주혁의 말대로 분식집 버전으로 만들겠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수준이라는 게 이해가 되었던 거다.
그걸 깨닫고 나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적은 너무나도 정확했다.
“루를 쓰는 이유는 이게 기초공사거든. 그래야 전체적인 맛이 균일하게 잡혀.”
“치즈를 많이 쓰면 향과 맛이 좋아지지. 이걸 줄이려면 그만큼 더해야 하는 게 있는데, 이거야.”
느끼함을 줄이는 비결.
바로 소금이었다.
치즈를 괜히 많이 쓰는 게 아니었다. 포함된 염분이 크림의 맛을 배가시켰고, 그게 고소한 맛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소금을 더하자 크림맛이 더 올라왔다.
“자! 강의는 여기까지. 계좌 번호 불러 줄 테니까 입금해.”
“예? 뭐라고요?”
“형우야. 내 몸값 생각하면 더 불러야 되는데, 딱 백만 원만 받을게.”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왜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그게요.”
“왜? 비싸? 그래도 너라고 싸게 부른 건데?”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는데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피식 웃은 강주혁은 딜을 걸어왔다.
“그러면 다른 걸 내놓으라고!”
***
와! 제대로 당했다.
역시 아무나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주혁 형은 정말로 돈을 다 받아 낼 기세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원래 자신은 컨설팅 한 번 하는데 못해도 이천만 원씩 받는단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망하면, 다 물어 준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없으면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란다.
혼자 망하면 또 모를까, 어설픈 훈수는 같이 수렁에 빠진다나?
무엇보다, 잘못되면 사기꾼으로 몰리고 깜빵 가기 딱 좋다고 했다.
어쨌든 주혁 형이 돈 대신 요구한 건 이거였다.
레시피들을 알려 달라는 것!
대충은 짐작은 하는데 몇 군데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는데, 누구 놀리나 싶었다.
어묵국밥, 고추튀김을 현미경으로 해부한 것처럼 알고 있었다. 육수 비율이나 추가로 들어간 것까지 이미 분석이 끝난 것처럼 말했던 거다.
그 정도 되면 감추는 게 무의미한 상황.
게다가 주혁 형은 업계 종사자의 호기심 정도라고 못을 박았다. 그걸로 결코 사업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오히려 다른 쪽으로 도와 달라고 했다.
만약 김창주가 원하면 프랜차이즈 쪽으로 같이 작업해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거다.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서 일단 그렇게만 받아들였다.
레시피를 들은 이후 강주혁이 바쁘다고 떠났고, 난 미친 듯이 실습에 들어갔다.
까먹기 전에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장사 마치고, 공지혜와 인정둥이들을 보낸 뒤 혼자 가게에 남았다.
이날, 면만 70인분을 넘게 썼을 거다.
***
“맛은?”
“굿입니다, 형님.”
“안 느끼해?”
“전혀요.”
인정둥이들이 엄지를 들었고, 공지혜는 아예 손뼉을 쳤다.
그 뻑뻑한 강영지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맛에서는 합격이라고 봐도 좋았다.
곧 강형우는 또 다른 파스타를 내놨다.
크림 파스타와 쌍벽을 이룬다는 토마토 파스타와, 두 소스를 섞은 로제 파스타였다.
이 두 개 역시 호평을 받았지만 고민 끝에 로제 파스타는 빼기로 했다.
일단 퀄리티는 나온다.
하지만 어중간한 맛 때문에 다른 두 메뉴의 판매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크림소스까지 삭삭 긁어 먹은 공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 파스타 집처럼은 못할 텐데?”
“그건 비~밀.”
“아잉, 좀 알려 주면 안 돼요? 집에 가서 해먹어 보게요.”
“그게 알려 줘도 못해.”
“피~ 거짓말.”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남은 접시를 치웠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방법을 알려 주면 한 번은 해먹겠지만, 두 번은 절대 안 해먹을 테니까.
강주혁이 말하길 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대표적이라 했다.
첫째는 대량 매입을 통해 재료비를 낮추는 것.
둘째는 부족한 재료만큼 몸으로 때워서 깊은 맛을 내는 것.
강형우는 두 번째를 택했다.
일단 버터와 밀가루를 아주 약한 불에서 색이 변하지 않게 볶았다. 루의 색이 변하기 전까지, 얼마나 열심히 저어 주느냐에 따라 입자가 풀리는 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감자, 사과, 양파, 브로콜리는 각기 알맞은 크기로 썰어서 살짝 표면이 굳어질 정도로만 튀겨 냈다.
그걸 물에 데쳐서 90% 선까지 익혀 내는 게 요령이었다.
그래야 볶아서 손님 테이블에 나갔을 때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맛이 살아 있었다.
그다음은 베이컨 대용으로 쓰는 대패 삼겹살이었다.
정육점 친구를 통해 도매가로 가져온 건데 수입산 100g에 400원 정도였다.
이걸 소금물에 30분 이상 절인 뒤, 튀겨 내서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야채와 소스, 삶은 면을 한 번에 넣어서 볶아 나가면 끝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해 보이는데,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각 재료를 특성에 맞게 따로따로 조리함으로 깊은 맛을 끌어내는 것. 그래야 맛이 선명해지고 마지막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진짜 노가다 중에 최상위급이었다.
한마디로 지극정성!
그게 진정한 맛의 비결이었다.
여기에 공지혜의 조언이 곁들여져 세트 메뉴까지 완성되었다.
강형우는 달력을 쳐다봤다.
오늘은 2012년 2월 29일.
결전의 날은 바로 모레였다.
***
뚱땅, 뚱땅!
새벽부터 분주하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막바지인 듯, 공사 자재들이 부지런히 트럭에 실리고 있었는데 다들 한시름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강형우도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기린빌딩 외벽에 크레인이 올라가면서 간판들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원 들어온 모양이네?”
강형우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한동안 관심을 끊고 살았는데 이렇게 보니 묘하게 거슬리기는 했다.
“뭐, 신경 끊자!”
강형우는 걸음을 재촉해 지성분식 앞에 섰다.
상쾌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한창 장사준비를 하던 중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바로 홍태구였다.
“야. 이런 건 좀 미리미리 해라. 꼭 급하게 말해서 사람 피곤하게.”
“미안!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에이구~ 내가 말을 말지.”
홍태구는 연신 투덜대면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조명을 켜고, 적당한 위치를 잡았다. 그런 뒤 가져온 것을 테이블에 펼쳐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오! 잘 나왔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홍태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테이블을 두드렸다. 거기에는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출력된 판이 있었다.
맞다. 새로 뽑은 메뉴판이었다.
“그리고 이거 쿠폰.”
“오~ 땡큐!”
“하여간 할 거 다 했으니, 나 간다. 입금은 시간 날 때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해!”
홍태구는 정말 바쁜지 바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강형우가 손을 들었다.
“스톱!”
“왜? 나 바빠.”
“바빠도 밥은 먹고 일해야지. 안 그래도 니 것까지 차려놨다. 먹자.”
“그게…….”
눈치를 보니 누가 기다리나 보다.
사실 안 봐도 뻔했다.
“연희 것도 도시락 싸 놨으니까, 먹고 가 인마!”
“그래? 그럼 차려 봐라, 고릴라야!”
“쯔, 이렇게 잘생긴 고릴라 봤냐? 됐고, 딱 3분만 기다려라.”
강형우는 주방에 들어가더니 뭔가 뚝딱뚝딱 해치웠다.
곧 김밥 두 줄과 라면 두 개, 그리고 떡볶이에 군만두까지 튀겨서 가져왔다.
“먹자!”
“땡큐!”
친구들끼리라 그런지 군말 없이 식사가 이어졌다.
배가 고팠는지 홍태구의 손이 바빠졌고, 음식은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
강형우가 무심한 투로 물었다.
“근데, 너 이 앞에 뭐 들은 거 있냐?”
“아, 학원 들어오는 거?”
“어.”
홍태구는 라면국물을 쭈욱 마신 후 그릇을 탁하고 내려놨다.
그런 뒤 짧게 설명했다.
학원 하나가 들어왔는데, 2층 호프집 맞은편을 안내실과 상담실, 강사실로 쓰고, 3층과 4층이 강의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5층 일부를 원장실로 쓰기로 하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가 안 나갔던 건, 학원 원장과 협상이 길어져서라나?
“무려 5년짜리 계약이래. 보증금 5억 받는 대신 월세 많이 깎아 주기로 해서 들어왔다더라. 천만 원인가 된다던데?”
“그럼 지하는? 거기 PC방 넣는다고 하지 않았나?”
“어! 지금 네트워크 공사 중이다. 그래서 바쁘단 거야.”
황당하게도, 홍태구 아는 형이 거기 공사 중인데 덕분에 알바하고 있단다.
열흘짜리 파트로 들어가서 딱 백이십 받고 나오기로.
“하여간 잘 먹었다. 근데 떡볶이는 더럽게 맵네!”
“원래 그렇게 만든 거야.”
“뭐, 됐고! 도시락은?”
홍태구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은박으로 된 2단 도시락을 비닐에 넣어 주면서 물었다.
“근데, 너네 둘. 확실히 사귀기로 한 거냐?”
“시끄러. 인마!”
“아니 뭐, 친구 사이에 물어보지도 못하냐?”
예상보다 격렬한 반응에 강형우가 움찔하는데 홍태구가 씨익 하고 웃었다.
“앞으로는 형수님이라 불러라.”
***
대부분의 입학식은 3월 초에 시작한다.
올해는 삼일절이 목요일이라 빠른 곳은 2일, 늦은 곳은 6일에 했다.
이날은 나름 대목이었다.
입학식이 끝나면 대부분 외식을 하는데, 동네 장사가 그렇듯 포화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식당은 적고, 사람은 많으니까.
덕분에 지성분식도 미어터지고 있었다.
게다가 모든 게 강형우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