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36화 (136/191)

# 136

42. 이제 때가 됐습니다 (1)

2015년 4월 중순.

[1,000억대 국회의원의 결혼 1주년 데이트]

[캡틴코리아 윤수혁의 아내, 베일에 싸인 미모의 여인은 누구?]

[연예인 부럽지 않은 가로수길 인파의 주인공, 국회의원 윤수혁 본지 단독 취재!]

잡지의 목차였다.

글자 끝마다 표시된 페이지 넘버만 봐도 잡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양.

심지어 표지에도 내 얼굴이 실려 있었다.

한사랑과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촬영한 컷으로, 이 표지를 위해서 거의 150장 가까이 촬영했었다.

원래는 유명 연예인들만 표지모델로 뽑힌다는데 미 대사 피습 사건이 난 지 얼마 안 됐고, 한사랑과 함께 한 덕분에 표지에도 얼굴을 싣게 된 것이었다.

잡지 이름은 ‘여성제일‘.

여성 잡지 중 최다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업계 1위의 잡지사였다.

미용실, 네일숍, 마사지숍, 피부과 등등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손길이 닿을 정도.

덕분에 집과 강북구 사무소, 국회의원 사무실로 배달된 100권의 잡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어머니도 그렇고, 유권자들이나 동료 의원들이 챙겨 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한사랑이 가장 반겨서 좋았다.

애초에 여성잡지 인터뷰 아이디어도 그녀가 제안 했던 것이었다.

“수혁 씨 여성제일 알아요?”

그렇게 나온 물음이 데이트가 아니라, 잡지사 인터뷰 업무로 바뀌게 됐다.

나도 데이트를 빌미로 공개된 장소에서 사인하고, 사진 촬영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예 일이 됐다.

더욱이 한사랑은 전부터 생각한 것인지, 이유까지 달았었다.

한 달 전 피습 사건의 이슈도 있고, 결혼 1주년이므로 구색을 갖출 수 있다고.

그런 인터뷰는 거절 대신에 오히려 환영할 입장.

당연히 수락했다.

마침 유명 아이돌과 가수들이 컴백한 지 좀 되었고, 배우들의 결혼식 다음 표지가 비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이 때 아니면 나오기 힘들다는 말.

그렇게 잡지를 보는 한사랑이 행복해 했다.

“이거 결혼식 사진보다 더 잘 나온 거 같아요.”

보기 좋았다.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한 결혼이라고 해도, 집안이 화목하면 그거 자체로 마음이 놓였다.

가화만사성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예쁜 여자가 웃고 있으니,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수혁 씨, 저 모델 할까 봐요.”

“모델?”

“사진이 너무 잘 받는 거 같아요. 볼륨도 엄청 커 보이고.”

“음…… 그럼 모델 쪽 알아 봐줄까요?”

“저는 수혁 씨 전문모델 해 줄 생각인데. 정말 모델 시켜 주려고요?”

“아이 낳은 뒤에는 할 일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직 젊으니까.”

당연히 사전 조사 마치고, 관계자까지 포섭한 뒤, 내 사람들을 깔아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 다음이지만.

그녀가 좋다는 듯 웃었다.

“그럼…… 디자인 좀 배우고 싶은데, 괜찮아요?”

“어떤 디자인이요?”

“옷이요!”

한사랑이 싱긋 웃으며 외쳤다.

나쁘지 않았다.

유력 정치가의 아내가 만든 의류 제품은 쓰일 곳이 많았다.

사업, 자금 마련, 기부 등등.

2년 뒤의 미합중국 영부인도 직업이 모델이 아니었던가?

물론 개인적인 인성이나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좋네요, 옷.”

“그거 입고 유세하면 되겠다, 그쵸?”

그 말에 웃음까지 났다.

“무슨 유세요?”

“음, 다음 총선이나 전대에서 유세하잖아요. 빨리 만들면 다음 총선에 하고, 안 되면 전대에서 하고.”

역시 사업가 딸이라 그런가?

잡지사 인터뷰도 그렇고, 유세도 그렇고, 생각하는 게 제법 계산적이었다.

정치 유망주라고 봐야 하나.

아직 어려서 종종 감정을 내비쳐서 그렇지, 좀 더 나이 먹으면 그럴 일조차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외모가 강점이었고.

그사이, 말을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한사랑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니면 대통령 선거?”

흐흐흐, 결국 웃음이 나고 말았다.

***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

변호사 고급 접견실.

널찍한 유리가 깔린 탁상 위로 서류들이 펼쳐졌다.

글자가 빼곡한 부분을 짚으면서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최종 선고는 2년 6개월, 추징금 1억5천 정도로 마무리 될 겁니다.”

업계 3위 안에 드는 법무법인 퍼시픽의 변호사.

그가 이어서 테이블의 서류를 가리키며 설명하려 하자, 맞은편에 있던 사내가 손을 내저었다.

나경호였다.

일명 나경호 게이트로 백억 대의 뇌물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

수의 차림의 그가 익상을 팍 썼다.

“결국 교도소까지 간단 말이요? 구치소 생활도 열이 뻗치는데…….”

“특정범죄 가중 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이라서 그 밑으로는 좀 어렵습니다. 검찰하고 합의 봐서 구형 8년으로 맞춘 것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봐요, 그거 때문에 내가 후배들 몇을 팔아 넘겼는지 모릅니까?”

“그래서 8년 구형한 거고, 1, 2심에서 조금씩 깎아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아니었으면 8년이 최종 선고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예순 즈음 된 변호사가 단호하게 말하자, 나경호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안 그래도 구치소 생활이 괴로웠다.

뻣뻣한 수의, 찬 벽과 바닥, 퀴퀴한 냄새, 열악한 생활 시설, 그리고 범죄자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까지.

더구나 변호사에게 말했듯 구형 기간을 협의하고, 혐의를 벗겨내기 위해서 후배였던 국회의원들의 비리를 넘겼었고, 증인들을 매수하는 고생까지 했었다.

괴로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날려 버린 자신의 명예와 돈이 적잖았으니.

변호사는 금세 설명을 이어 갔다.

다음 주에 있을 최종 선고와 교도소 이감, 특별사면 등등.

“별문제 없는 한 내년 명절이나 광복절에 특사로 나오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정무수석하고 얘기 마쳤습니다.”

그 말에 입을 닫고 있던 나경호가 목소리를 냈다.

“별문제 있으면?”

“내후년 특사를 기다리셔야 하십니다.”

“……이봐요, 김 변. 당신 생각에 말이요, 이 쥐똥만한 땅덩어리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시오?”

변호사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끊이지 않고 문제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사회였고, 나라였다.

국방, 외교, 문화, 경제 등등 각 분야에서 트러블이 발생했고, 심각한 경우에는 정부나 대통령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재계 유착을 제외하더라도, 오랜 세월 쌓여서 악폐가 된 일부 공무원들의 관행과 사회 고위층의 부정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인맥이 최우선으로 작용하는 바람에 개선의 여지도 없었고.

그리고 작금의 대통령은 더 심했다.

부족한 이론과 말솜씨로 쓸데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다.

대통령 욕하기 좋아하는 단체나 언론에서 돌려 까고 있었고.

그러다보면 특별사면 지시는 눈치가 보여 감히 거론조차 못할 터.

그러던 중 나경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장 대표님은?”

“아, 현재 2심 준비 중이십니다. 아마 이번 선고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좀 낫겠네.”

자신이 모시던 의원이 보수신당의 당대표인 장세룡이었다.

그가 이 구정물에서 벗어나 활동의 제약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구제도 쉬워지리라.

수족처럼 뛰어다녔는데 놔두면 리스크가 크니까.

그리고 사건의 원흉으로 추측되는 윤수혁에게도 복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윤수혁이 국민적 영웅이 되긴 했지만, 복수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부정행위 한 번만 터지면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는 세상이니.

또한 100만 원 이상의 형을 확정 받으면 금배지도 떼야 했고.

그 사이, 문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똑-

가벼운 노크 뒤에 문 바깥에서 교도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원님, 복귀하실 시간 됐습니다.”

“그래, 들어간다.”

문가를 봤던 나경호가 이번에는 변호사를 바라봤다.

“김 변, 그럼 수고 좀 해 주시오. 나가면 섭섭지 않게 보답하리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변호사도 서류를 챙기며 몸을 일으켰고, 나경호도 몸을 묻고 있던 가죽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 가자.”

그의 말에 문이 열렸고, 교도관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나경호는 아쉬운 듯 고급 접견실을 보다가 뒷짐을 진 채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

“아이구! 오셨습니까, 의원님!”

미래자동차 북부지점 지점장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왔다.

강북구 소재의 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이자, 강북구의 미용실 사장을 아내로 둔 사람.

한마디로 유권자 중에서도 손꼽는 대마(大馬).

그래서 굳이 좋은 시설 놔두고 여기로 차를 사러 온 것이었다.

“예, 안녕하세요.”

그와 인사를 나누자, 지점장의 시선이 옆에 있던 권 팀장을 향했다.

“오늘은 박 보좌관님이 아니시네?”

“저희 당 팀장님이세요.”

“아하!”

지점장이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더니 악수하듯 양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 북부지점장 문성구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권 팀장이 본인 소개를 하지 않았으나, 지점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 안내를 했다.

그도 50대의 연륜과 지점장의 짬이 녹록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럼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커피는 뭐로 드릴까요? 블랙? 믹스?”

“블랙 하나, 믹스 하나 주세요.”

내 대답에 지점장이 급하게 직원을 호출했다.

이윽고 여 직원 한 명이 커피를 내왔고, 지점장이 준비된 차량으로 움직였다.

“그럼 두말 할 거 없이 시승 먼저 해 보시겠습니까? 아주 기가 막힌 찹니다. 실내 사이즈가 굉장히 넓지요.”

대형급으로 취급되는 SUV였다.

권 팀장은 차를 보다가 나를 바라봤다.

“이게 아니라, 한 급 아래였던 거 같은데…….”

“압니다, 둘 다 가격 차이 얼마 안 나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해 봐야 4, 500만 원 차이.

근래에 회식하라고 준 돈 봉투에 불과한 액수였다.

물론 회식하고 장비 구입하며 이래저래 쓴 것과 본인이 다 가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차가 좋았는지, 권 팀장의 시선이 금세 차로 돌아갔다.

“……그럼 조금만 돌아 봐도 되겠습니까?”

“아휴, 물론이죠! 이 부장! 얼른 고객님 모셔요.”

그 말에 이 부장이라 불린 40대 사내가 날듯이 다가와서는 권 팀장을 데려갔다.

그다음은 내 차례.

미리 언급한 제네시스 쪽으로 움직였다.

“이제 디자인 바뀔 때구나.”

내 기억 속의 익숙한 전면부 디자인이 떠올라 중얼거리자, 어느새 다가온 지점장이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요게 이번에 프론트가 싹 바뀌었습니다. 디자인이 좀 더 트렌디하게…….”

“저는 이 색으로 한 대 주세요.”

“시승은요?”

“괜찮습니다. 차는 언제쯤 받아볼 수 있습니까?”

“사흘만 주십시오, 제가 댁으로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팀장님 오기 전에 계약서나 쓰시죠.”

“옵션이나 따로 차량 확인은…….”

“편의 최대로 해서 주세요.”

해 봤자, 1억도 안 되는 수준.

내 재산에 비하면 얼마 안 되니, 굳이 까다롭게 고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알겠습니다. 참! 의원님 잡지 저도 봤습니다. 와이프 가게에도 한 부 왔는데, 어휴! 사모님께서 굉장히 미인이시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으허허허, 자. 여기 계약서인데…… 아까 맥스크루즈 타고 나가신 팀장님것도 같이 준비할까요?”

그가 눈치껏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 분이 고르시는 거죠. 제가 사주는 거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차 같은 현물을 사주는 건 대외비로 취급해야 했다.

오직 당사자들만 알게끔.

떠벌리고 다녀선 좋을 게 없었다.

“아, 그렇죠. 여기 계약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점장이 계약서를 가져와서 설명을 늘어놓고, 서명까지 마칠 무렵.

생각보다 권 팀장이 일찍 왔다.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모습이었다.

평소에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권 팀장의 계약까지 마무리 된 다음.

내 신혼 1주년 잡지 소식과 기초의회의원 7명을 선출하는 4.29 재보궐 선거 결과까지 잠잠해질 무렵에 일이 터졌다.

아니, 어차피 벌어질 일.

그 탓에 나경호의 최종 선고 기사도 금방 묻혔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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