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42. 이제 때가 됐습니다 (2)
나경호의 최종 선고 기사가 나긴 났었다.
게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한 징역 2년 6개월에 추징금 1억5천만 원에 불과한 선고.
그게 대법원의 최종형량이었다.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일절 간섭하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경호 쪽에서도 법무부나 검찰과 합의를 봤을 게 뻔했다.
깎아줄 것 다 깎아주고 확실한 것만 추려내서 만든 게 2년 6개월이겠지.
개입할 순 있었으나, 리스크가 컸다.
혹여나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가 떠돌고, 비슷한 말이라도 나와선 좋을 게 없었다.
내가 가진 검찰 인맥도 서울중앙지검장인 손기택이 전부.
그래서 검찰과 법무부를 그대로 놔뒀고, 예상한 대로 결과도 썩 나쁘진 않았다.
1차 목표인 금뱃지 떼는 일은 성공했으니까.
또한 보수신당의 힘을 약화시키고, 당내 프락치의 연줄 끊는 것도 해결이 됐고.
그리고 최종 선고로 인해 보수신당을 지지하는 극우집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단체에서 비판성명을 냈었다.
기다렸다는 듯 국회 정론관에서 성명서 발표한 것이었다.
동시에 법원 앞에서는 다시 판결하라는 시위까지 있었고, 순식간에 활자화되어 기사로 나왔었다.
물론 며칠 반짝한 일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게 묻힌 것이었다.
쉰 내 날 정도로 지겨운 정치권의 얘기와 다른, 삶과 더 가까운 자극적인 소식이 터진 탓이었다.
바로 메르스.
[(속보)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국내 첫 발생]
[중동판 사스, MERS‧메르스 환자 확진자 발생···현재 격리 치료 중]
[치사율 40퍼센트↑ 메르스 환자 첫 발생···질병관리본부 감염 경로 확인에 나서]
신문마다 치사율 40퍼센트, 사스 같은 자극적인 글자가 실렸다.
나경호가 사라지는 건 순간이었다.
이 사태는 고작 한 달 안에 참사로 기억될 예정이었다.
그것도 방만한 대응과 소극적인 오판으로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죽게 될 터.
물론 정권이 바뀌긴 했으나.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는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더 큰 피해자가 날지도 모를 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애초에 발로 뛰는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내 몸이 다치고, 상처 입는다고 사람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전염병이었다.
역학조사를 하는 데만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일.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야 했다.
정당과 상임위를 움직이고, 정부와 지자체를 흔들어서 대책을 수립해야 했다.
한마디로 나 혼자가 아니라, 집단을 이용해야 하는 일.
이 과정에서 제한이 있다면, 내가 써먹을 사람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괜한 사람을 쓸 순 없었다.
내 사람이 아닌, 다른 이들이 칭찬받게 만들어 줄 순 없지 않겠는가?
청와대와 행정부, 보건당국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고, 그걸로 자축하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영원호 침몰 때처럼 메르스 사태도 악화시킬 부류였다.
이런 사태를 다음에 막기 위해서라도 보다 나은 사람을 써야 했다.
바로 조성현 당대표.
내가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던 사람이고, 스스로 내게 같이 하자고 말했던 사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우리 당에서 가장 쓸 만한 인사를 꼽는다면, 그 밖에 없었다.
물론 인지도로 따진다면 유명한 최고위원이나 상임위원장 등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상태가 좋질 못했다.
내 말대로 움직여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움직인다 한들 딴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고일 대로 고인 물이고 썩을 대로 썩은 물이었으니까.
걔 중 그나마 깨끗한 이가 조 대표엿다.
만약 대권후보를 뽑는다고 해도, 조 대표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모조리 구정물에 불과할 터.
여태 위기를 자초해 가며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구정물에 들어가 옷을 더럽힐 이유가 뭐 있겠나?
그동안 세탁하고 다림질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어쨌든 먼저 준비를 해야 하니, 박 보좌관부터 호출했다.
“지금부터 메르스 사안을 최우선으로 처리 할 겁니다.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요구나 법안 발의부터 국토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중동의 국내 건설기업 메르스 대책, 공항, 터미널 등 유동인구 교차지역 대비 방안, 대중교통 이용과 직접 방역, 관계자 섭외, 그리고 강북구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까지…… 박 보좌관님이 맡아서 업무 배분해 주시고 오늘 안으로 최초 계획서 마련해 주세요. 인턴하고 지역구 사무소, 입법 조사원들까지 싹 굴리세요.”
“네?”
박 보좌관이 얼떨떨한 얼굴을 해 보였다.
총선 때나 움직일 숫자와 내가 요구한 대책에 놀란 것이었다.
하긴, 이제야 확진자 한 명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전부.
여태 다른 소식은 없었다.
언론사의 판매부수와 시청률 상승을 위한 자극적인 말만 떠돌고 있었다.
아직 메르스의 위험성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이른 시기.
더구나 정부도 아직은 가만있었다.
확진자 발생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관심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하지만, 그마저도 아직 발표되기 전이었다.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의 본격적인 활동도 일주일은 지나야 이루어질 테고.
어느새 박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의원님, 다음 달에 대표자로 발의할 법안이 네 개나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개는 아직 마무리가 덜 됐고, 발의자 서명도 못 받았는데…….”
“메르스 확진 관련해서 들은 게 있습니다.”
말을 끊자, 박 보좌관의 눈빛이 변했다.
“어떤 말씀을……?”
“현재 격리된 환자, 최초 확진 전에 병원 네 개를 거쳤습니다. 기간은 열흘.”
“네?!”
아직 언론에서는 나오지 않은 내용.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특급입니다. 마른 들판 불 붙듯이 번질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예상치 못한 감염자가 발생한다는 의미.
“아……! 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눈치 빠른 박 보좌관이 허둥지둥 개인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조성현 당대표.
같이 일할 사람이니, 이번 메르스 사태에 관해 논의해야 했다.
물론 단순히 칭찬 받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이는 얼마 남지 않은 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1개월 남은 총선이 아니라, 그 이후의 전당대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차기 대선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대표님, 오늘 좀 만나 봬야 할 것 같습니다.”
- 지금 지역구에 내려와 있는데, 급한 겁니까?
“급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얘기입니다.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봬야 합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죽는 걸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도 아니었다.
최소의 피해, 그리고 최대의 효과를 바랄 뿐.
그런 면에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조 대표와의 약속도 마찬가지.
단호하게 말하자, 대답이 조금 더디게 넘어왔다.
- ……그럼 일곱 시에 봅시다.
시간 계산을 한 모양.
지금 시간이 오후 두 시 무렵이니, 일곱 시면 네 시간 뒤였다.
그건 늦었다.
전생과는 다르긴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도 악화될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두겠는가?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조 대표를 향해 곧장 대꾸했다.
“조금만 더 일찍 보시죠.”
***
행복한국당의 당대표 조성현이 숨을 들이마셨다.
일부러 저녁 식사 약속도 미루고 윤수혁을 보려고 했는데, 더 일찍 보자는 말에 여유도 없이 달려온 탓이었다.
의원실 문을 열자 보좌진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어? 대표님!”
이미 몇 번의 전례가 있긴 했지만, 당대표가 예고 전화도 없이 오는 건 늘 낯선 것이었다.
중대장실로 대대장이 불쑥 찾아오는 겪이니.
“윤 최고 안에 있지요?”
“아, 네. 제가…….”
안내하려던 비서를 지나, 조성현이 개인사무실 문까지 열었다.
사무책상에 있던 윤수혁도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일찍 오셨네요.”
“급하고 중요한 거래서 얼른 뛰어왔습니다.”
“앉아서 얘기 나누시죠.”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자, 윤수혁이 사무책상의 노트북과 서류를 챙겨 맞은편에 앉았다.
“메르스 확진자 발생한 거, 확인하셨죠?”
“들었습니다.”
“그 사태를 의논하려고 대표님께 전화 드렸던 겁니다.”
“당 차원에서 말이요?”
조성현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다지만, 아직 ‘사태’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보건당국에서도 메르스에 대한 관심을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한 게 방금 전이었다.
“당 차원의 최고위원회의보다는 대표님이 우선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하며 테이블도 살폈는데, 가관이었다.
메르스 관련한 법안이라도 낼 것처럼 자료를 한가득 퍼뜨려 놨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극성인지, 조성현이 의문스러워 할 때.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때가 됐습니다.”
갑작스런 말에 조성현이 차마 대꾸도 못하는 사이에도 윤수혁의 말은 이어졌다.
“오늘 일을 계기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 주고, 차기 당권까지 휘어잡아야 합니다.”
“아니…….”
조성현은 대꾸조차 못했다.
메르스 확진자 한 명 생긴 걸로 리더십은 뭐고, 차기 당권은 무슨 말인가?
감 잡기 어려운 상황.
윤수혁이 설명이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메르스 감염 추가로 발생할 겁니다. 확진자가 거쳐 온 병원만 네 곳이고, 기간만 열흘 입니다.”
그 말에야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두세 곳으로 듣긴 했는데…… 추가 감염자가 발생할 순 있겠군요.”
그러나 아직 완전히 납득한 상황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사스 경보가 떨어졌을 때도 별다른 피해 없이 넘어간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2차, 3차는 물론이고 사망자까지 발생할 겁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
이건 확언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얘기가 아니라 단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사망자 수십 명이란 얘기는 무서운 것이었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진 않았으니까.
조성현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윤 최고…… 내가 같이 일하자곤 했지만, 이런 얘기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 얘기의 근거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성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보고 믿었던 윤수혁은 똑 부러진 일 처리에 올바른 결과를 내는 사람이었다.
설령 그 과정에 편법과 계산적인 이익이 있을지라도.
윤수혁은 결국 국민적인 호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내곤 했었다.
또한 가진 능력도 대단했고.
그래서 자신이 돕겠노라고, 함께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이 될 줄은 몰랐기에, 조성현은 당황한 눈으로 윤수혁을 바라봤다
이유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윤수혁의 입에선 다른 말이 나왔다.
“그때, 기억하십니까?”
“……?”
“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하셨던 대답 말입니다.”
“……충분히 했다고 했지요, 하지만 이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조성현이 설명하듯 말했다.
일전에 분명 충분히 의심했다고 대답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적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확언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정치적인 것과는 다른, 합리적인 의심이 아닌가?
납득이 되지 않으니 당연히 묻거나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조성현이 반박하려던 찰나, 윤수혁이 말을 끊었다.
“저는 지금 이 상황도 포함해서 여쭤봤던 겁니다.”
처음과 다름없는 단호한 말.
조성현은 윤수혁의 시선을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 하나로 그 전의 약속을 깨트리기에는, 윤수혁이 너무 아까웠다.
그가 해 온 업적과 가진 능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랬기에 윤수혁이 저지르는 작은 편법이나 일탈도 감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더구나 윤수혁이 하는 일도 그릇된 목적이 아니었다.
조성현이 의심한 건 근본적인 이유의 부재, 그리고 과장된 사고에 불과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곧 조성현도 굳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키지 않더라도 일단 따라 주십시오. 대표님께서 본인을 쓰라고 하셨던 말도 기억하시죠?”
이어진 물음.
윤수혁이 확언을 받겠다는 듯 연타를 날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먹었으니 대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요, 기억합니다.”
설령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조치가 될 지라도, 전염병을 예방하는 일이니 약간의 예산 낭비는 감수할 만했다.
혹시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런 면에서 좀 더 급박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기도 했고.
다른 데서 새는 예산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조성현은 결국 웃고 말았다.
윤수혁의 나지막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럼 대표님 좀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