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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2화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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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2화

1장 데이터를 계승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암흑 속에서 익숙한 글자가 떠올랐다.

-사용자 오솔은 2019년 6월 7일 17시 14분,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셨습니다.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나요? 혹시 후회만 가득했던 건 아니겠죠? 만약 그렇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레전드 플레이어(Legend Player)'의 첫 번째 사용자에게 특별히 1회 한정, 회귀의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회귀?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야?’

모든 것이 끝난 순간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아니, 새롭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니 모든 것이 익숙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축구 인생 2회 차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오솔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든 뒤집고 싶었다. 이제는 축구도, 그리고 인생도 제대로 써 나가고 싶었다.

-1회 차 데이터를 계승하시겠습니까?(능력치는 10%만 가산되며, 스킬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또한…….

‘능력치를 계승할 수 있다고? 회귀로도 충분한데. 후후. 좋아, 그렇게 해줘.’

예상치 못했던 회귀에 능력치 계승이라는 특전까지 있었다.

-축구 인생 2회 차를 시작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글자는 고운 입자가 되어 오솔을 향해 날아들었다. 입자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입자는 그의 몸 구석구석 달라붙더니 스스로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 * *

삐익!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 까 어둠 속에서 익숙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오솔은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앞에는 모래와 흙으로 된 학교 운동장이 펼쳐져있었다.

“마크해. 마크!”

“이쪽!”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축구공을 쫓고 있었다. 오솔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왜 그러니? 긴장해서 그래?”

‘이 녀석은…….’

남자의 또랑또랑한 눈빛을 본 오솔은 곧바로 그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이름은 여민국.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였고, 같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이 고1 때라는 건데…….’

오솔은 어느샌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2003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입단 테스트를 치렀을 때구나.’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아이들이 이리저리 달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들은 나름대로 치열한 경합을 선보였으나 오솔이 보기에는 귀엽기만 했다. 사실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몇 달 전까지는 중학생이었다. 아직은 청년보다 소년에 더 가까운 모습들이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만약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은데.’

오솔은 발에 힘을 주며 땅을 밟았다. 단단한 흙의 감촉이 축구화를 통해 전해져 왔다. 축구화가 작아서 그런지 발이 아팠다.

‘아프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오솔을 덮쳤다. 고통이야 말로 다시 살아났다는 확고부동한 증거였다.

“후후. 땀과 흙먼지, 고함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한참을 흐뭇하게 웃던 오솔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감상에 젖는 건 1분이면 충분했다. 이제는 다시 달릴 시간이다.

오솔은 손바닥으로 오른쪽 귀를 덮으며 작게 속삭였다.

“상태창 열람.”

-‘레전드 플레이어(Legend Player)’ 2회 차를 시작합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상태창이나 보여줘.’

-1회 차 데이터를 계승·적용 중입니다. 능력치 변동이 적용됩니다. 1회 차 능력치의 10%만 가산됩니다.

오솔은 이전 생에서 공격수에게 필요한 능력치를 모두 90까지 올렸었다. 아마 해당 능력치가 전부 9씩 올랐을 것이다.

-1회 차 스킬이 적용됩니다. 스킬은 가감 없이 기존 효과 그대로 적용됩니다.

“스킬? 내가 무슨 스킬이 있었더라?”

상태창을 확인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내용조차 가물가물했다. 돈을 좇아 중동으로 떠났을 땐 이미 포인트로 올릴 수 있는 한계까지 능력치를 올린 상황이라 굳이 확인하지 않았고, 중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적어도 6년은 상태창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 셈이다.

-지속 스킬 ‘강건한 육체’가 발동합니다. 강인함에 +5 보너스가 붙습니다.

이 스킬은 오솔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스킬이다. 효과는 강인함에 5의 보너스가 붙는 것으로, 강인함이 높으면 부상에 잘 당하지 않고, 설혹 부상에 당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휴식 시 체력 회복도 빠르고, 육체의 노화 속도도 줄어드는 등 높으면 여러모로 건강에 좋았다. 게다가 그는 이 스킬 덕분에 운동선수의 가장 큰 적,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지속 스킬 ‘천하장사’가 발동합니다. 힘에 +5 보너스가 붙습니다.

이것 역시 원래부터 갖고 있던 스킬이었다. 효과는 말 그대로 힘이 세지는 거였다.

오솔이 축구부에 들어오고자 한 것도 이 주체할 수 없는 힘 때문이었다. 어리석게도 당시 그는 죽어라 뛰고 나면 사고칠 기운도 없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 덕분에 ‘시스템’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었다.

‘구색을 맞춘 경기에서만 시스템이 발동한다니, 누가 알았겠어.’

'레전드 플레이어(Legend Player)'는 그냥 공만 찬다고 발동하지 않았다. 22명의 선수와 주심과 부심, 90분의 경기 시간 등 정식 경기에 준하는 수준에서야 비로소 시스템이 작용했다. 덕분에 오솔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빨리 발견했으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후후. 아서라 시스템에 회귀까지 했으면서 이 이상을 바라면 안 되지.’

오솔이 가볍게 몸을 푸는 사이 시스템은 나머지 스킬을 빠르게 나열했다.

-‘양반은 아무리 급해도 뛰지 않는다.’가 발동합니다.

-주력이 50% 감소합니다.

-‘아버님 페널티 박스에 붙박이장 하나 놓아야겠어요.’가 발동합니다.

-낮은 활동량으로 인해 지구력이 50% 감소합니다.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야.’가 발동합니다.

-패스가 50% 확률로 부정확해집니다.

-‘모난 머리가 공 맞는다.’가 발동합니다.

-헤딩이 50% 확률로 부정확해집니다.

-‘게으른 천재가 진짜 천재지.’가 발동합니다.

-연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이제 축구는 재미없어졌어.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가 발동합니다.

-시합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스타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가 발동합니다.

-컨디션이 D등급(최대 70%)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뭐, 뭐야?”

-2회 차 난이도 조절을 위해 모든 필요 경험치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더불어 레벨 업 시, 포인트 지급이 기존 5개에서 3개로 감소합니다.

-‘레전드 플레이어(Legend Player)’ 2회 차, 하드 모드(hard mode)를 시작합니다. 이번 생에는 부디 과거의 [후회]를 바로잡기 바랍니다.

“하드 모드라고?”

오솔은 그제야 1회 차를 ‘계승’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계승이란 단순한 능력치에 보너스를 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전생의 실수까지 따라온다는 뜻이었다.

“일단은 상태창부터 보여줘.”

-오솔(오른발잡이)

-신체 : 균형감각 66/ 힘 72(+5)/ 반응속도 63/ 순간속도 60/ 주력 68(50%↓)/ 점프력 50/ 지구력 66(50%↓)/ 강인함 90(+5)

-기술 : 개인기 24/ 드리블 16/ 볼터치 24/ 슈팅 23/ 패스 13(50%↓)/ 헤딩 20(50%↓)/ 스로인 14/ 태클 15/ 일대일 마크 10

K리그 선수가 대충 50언저리의 능력치를 가졌다고 보면 된다. 50보다 낮으면 K리그 후보 선수. 그보다 높으면 K리그의 주전 선수 수준이었다.

오솔은 신체 능력 자체는 웬만한 운동선수를 능가했으나, 축구 기술 쪽은 아직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수준이었다.

-페널티는 능력치가 오를 때마다 차등해서 감소합니다. 그 외에도 상점에서 회복 물약을 쓰거나 ‘어떤’ 계기만 있으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따위로 페널티를 먹여놓고 복구할 방법이 있다고 하면 다냐? 젠장.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입부 테스트부터 끝내고 생각해보자.’

스킬로 인한 페널티가 걸렸지만, 어쨌든 초기 능력 자체는 전생보다 높았다.

오솔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전방으로 이동했다. 경험치는 평점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무조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게 최고였다. 그가 페널티 아크로 향하자 미리 도착해있던 같은 편 선수가 의아한 듯 바라봤다.

“뭐야? 포지션 겹치잖아. 다른 곳으로 가.”

“뭐? 중앙보다는 사이드가 편하다고?”

“내가 언제, 으아악!”

오솔은 팀원의 옆구리를 살살 어루만져줬고, 그 친구는 너무 좋아서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가, 갈게! 간다고!”

“흐흐. 진작 그럴 것이지.”

간단하게 원톱의 자리를 차지한 오솔은 미드필더진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헤이! 여기! 패스해!!!”

파앙!

오솔의 끈질긴 요구 끝에 마침내 공이 그에게 굴러왔다.

한데 패스가 영 좋지 않았다. 패스를 한 친구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녀석이라 그런지 힘이 약해서 공이 생각보다 느리고 짧았다.

프로 무대에서 십여 년간 양질의 패스를 경험해왔던 오솔인지라 대뜸 불만부터 튀어나왔다.

‘쳇! 이따위 패스밖에 못하다니. 데쿠나 램파드였다면 딱 내 진행경로 앞에 갖다 놨을 텐데……. 이크!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공을 커트할 생각으로 수비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솔이 하도 요란하게 패스를 어필한 탓에 상대편도 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다닷!

결국 오솔과 수비수의 속도 경쟁이 벌어졌다. 오솔은 공을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이건 내 거야!’

그러나 오솔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발은 느려터졌다. 50%나 감소한 주력 탓이었다.

‘추, 추월당한다!’

파앙!

결국 딱 한 걸음 차이로 공을 뺏기고 말았다. 짧은 거리를 달렸는데도 한 걸음이나 차이가 난다는 건 사실상 속도에서 경쟁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큰일이네. 이렇게 되면 나 혼자 기회를 만드는 건 힘든데…….’

오솔의 속도도 문제였지만 같은 팀의 패스 실력도 좋지 않았다. 골을 넣으려면 작전을 변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까 사이드로 쫓아냈던 친구를 다시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이봐 이름이 뭐야?”

“이, 이승훈인데, 왜?”

“이제부터 내 바로 아래에 서서 공을 받으라고. 내가 수비수들을 등지고 있으면 바로 패스하고 수비 뒤로 우회해서 침투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2 대 1 패스를 하자고? 우린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이 없잖아. 과연 말처럼 쉽게 될까?”

“무슨 소리야?”

오솔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미끼가 있어야 수비수들의 시선이 분산될 거 아니야. 너는 적당히 시선만 끌어. 골은 내가 넣어줄 테니까.”

“······.”

너무도 당당한 미끼 제안에 이승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울컥했으나 오솔의 덩치를 보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부 테스트는 잠깐이지만 학교생활은 3년이었다. 벌써부터 학년 짱(?)에게 찍힐 수는 없었다.

“그럼 부탁한다. 미끼야.”

이승훈은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의 공간으로 향하며 조용히 구시렁댔다.

‘어차피 미끼라고 부를 거면서 아까 이름은 왜 물어본 거야?’

오솔의 작전은 간단했다. 중앙에서 최전방으로 단번에 공이 넘어오기 힘드니 중간에 연결점을 하나 놓는 것이다.

패스가 부정확하고 약할 때는 지금처럼 긴 패스보다는 짧은 패스를 하는 편이 점유율을 유지하고 찬스를 살릴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수비수의 시선을 끌어줄 미끼까지 있다면 금상 천화였다.

‘능력치가 얼마나 깎였든 상관없어. 기회만 와라. 아직 전생의 득점 감각이 온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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