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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3화 (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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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3화

오솔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페널티 아크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최근 6년간 제대로 뛴 적이 없어서 필드에서 걷는 게 완전히 몸에 밴 상태였다.

전생에는 이런 행동 때문에 ‘필드 위의 양반’으로 불리며 조롱을 당하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잖아. 대충해도 충분한데 열심히 뛰는 게 손해지.’

중동과 중국을 오간 6년 동안 오솔은 제대로 몸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그저 요식 행위였고, 밤에는 술과 여자, 파티에 몸을 맡겼다. 덕분에 컨디션은 항상 F등급에 머물렀다.

아무리 정상급 선수라고 해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법이다.

‘평범한 경우에는 그렇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솔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는 이미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공격 관련된 모든 능력치를 90까지 올린 상태였고, 그러고도 수많은 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해 남겨놓고 있었다.

포인트들은 능력치를 올리는 것 외에도 시스템 상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컨디션 조절 물약이라는 걸 팔았다.

‘컨디션 조절 물약 하나면 만사 오케인데, 뭐 하러 컨디션을 조절하겠어.’

컨디션 조절 물약은 자기관리를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아주 적격인 물건이었다. 일단 물약을 마시면 당일 컨디션은 무조건 A등급이 됐기 때문에 물약만 있으면 경기 전날 밤새 과음을 해도 괜찮았다.

컨디션 물약은 마약과도 같았다. 오솔은 물약을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것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급되는 포인트 수도 줄었으니까 거의 쓸 수 없겠지.’

오솔이 딴생각에 빠져 가볍게 뛰는 사이, 그의 팀이 공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공은 수비진에서 천천히 중앙으로 그리고 이승훈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오솔은 수비수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해 없이 공을 잡기 위해 적절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승훈은 정면의 오솔을 발견하고 약속대로 공을 건네고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중앙 수비수 중 하나가 오솔에게서 시선을 뗐다.

‘좋아. 기회다!’

오솔은 그 잠깐의 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수비수를 밀어내며 공을 마중 나갔다. 덕분에 수비수는 한 발 늦게 따라왔다.

‘단번에 돌파해주마.’

오솔은 굴러오는 속도에 따라 왼발을 앞으로 내밀었고, 공이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왔을 때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감싸며 방향을 전환했다.

인사이드 리시브&턴(Inside Receive & Turn)이 끝났을 때, 오솔은 이미 우측 사이드로 달리고 있었다. 수비수는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오솔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휴. 하마터면 튕겨나갈 뻔했네.’

성공적인 돌파에도 불구하고 오솔은 식은땀을 흘렸다. 개인기, 볼터치, 드리블 기술이 모두 낮아진 탓에 하마터면 공이 발에 맞고 튕겨져 나갈 뻔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인기를 시도했다가 스스로 발이 꼬여 뺏기는 경우,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민망해진다.

‘다행이야. 하마터면 돌아오자마자 이불킥을 할 뻔했어.’

한편 돌파를 허용한 수비수는 재빨리 따라붙으며 몸싸움을 시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오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큭! 이 녀석 뭐야?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수비수는 순간적으로 단단한 바위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사실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오솔의 힘은 스킬의 도움을 받아 77에 이르렀다. 컨디션 때문에 70%로 감소한다고 쳐도 K리그 주전 수준이었다. 거기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의 몸싸움 경험이 합쳐졌으니 고등학교 1학년의 몸싸움 정도는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별다른 저항 없이 골 에어리어까지 접근한 오솔. 그는 바짝 긴장한 골키퍼를 확인하고 침착하게 공을 찼다.

목표는 반대편 골대였다. 그런데 막 오솔의 발이 공에 닿는 순간, 반대편 사이드에서 쇄도하는 이승훈이 보였다. 수비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은 노마크 찬스였다.

‘바보 같긴. 내가 패스 같은 걸 할 것 같아? 그것도 이런 득점 찬스에서?’

오솔은 이승훈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공격수의 본능이 첫 골은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발등이 공의 중심부를 강하게 때렸다. 정확도와 세기를 모두 갖춘 슈팅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지속 스킬,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야.’가 발동합니다. 패스가 50% 확률로 부정확해집니다.

뜬금없이 등장한 메시지와 함께 공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분명 반대편 골대를 보고 찬 슛이건만 가까운 쪽 골대를 향해 날아간 것이다.

텅!

결국 공은 골대에 맞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니, 난 패스를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공의 이동 경로 상에 같은 편이 도달할 가능성이 있으면 패스로 간주합니다.

“아니, 뭔 이따위 판정이…….”

오솔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멋진 돌파를 선보였습니다.]

-개인기가 25로 증가합니다.

-드리블이 18로 증가합니다.

-돌파 성공으로 6%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현재 경험치 : 6.6%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시합 중에 보인 퍼포먼스 덕분에 능력치가 올랐다는 것이다.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개인기를 펼친 덕분에 개인기와 드리블이 각각 1개와 2개 씩 상승했다. 골을 놓친 것은 아쉬웠으나 덕분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솔의 돌파는 그게 끝이었다. 상대팀에서 그를 혼자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항상 둘 이상이 협력해서 수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솔의 몸싸움 능력은 둘을 상대로도 능히 버틸만한 수준이었으나, 그러면서 동시에 공까지 간수할 수는 없었다.

‘전생이랑 능력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지 적응하기 쉽지 않네.’

동료들의 도움이라도 있었다면 조금 나앗겠으나 곁에 있는 공격수라고는 이승훈 한 명 뿐이었고, 그마저도 패스가 부정확해서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결국 전반 남은 시간 동안, 오솔의 팀은 공격다운 공격도 못하고 내내 수비만 해야 했다.

삐익!

호각이 울리고 하프 타임이 돌아왔다. 그러자 전반전 내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뛴 미드필더가 오솔을 보며 소리쳤다.

“야, 아무리 공격수라지만 너무 안 뛰는 거 아니야?”

“뭐?”

“너 하나 때문에 지금 남들이 몇 배로 뛰고 있잖아. 넌 월드컵도 안 봤어? 전방 압박을 해줘야지.”

아직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였다.

공격진에서부터 강한 압박과 많은 활동량을 요구했던 거스 히딩크의 전략은 많은 축구팬을 감동시켰다.

오솔에게 전방 압박을 요구하는 소년 역시 그런 축구팬 중 하나였다.

‘조그마한 게 어디서 아는 척이야?’

오솔은 기가 막혔다. 압박이라는 건 혼자 많이 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공을 몰고 압박 타이밍을 정해서 해야 했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최전방 공격수가 자리를 비우면 골은 누가 넣으라고? 오히려 내가 고립되지 않게 너희들이 더 올라와줘야 하는데 지금 그게 안 되고 있잖아. 그리고 압박이 뉘 집 개 이름인줄 아나본데, 그거 엄청 어려운 거야. 이렇게 급조한 팀으로는 할 수 없다고.”

“웃기지 마. 뛰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지금?”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이런 젠장, 어린 애를 상대로 주먹질을 할 수도 없고. 으으. 참자.’

아무리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도 지난 30년간 형성된 성격이 한순간에 변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오솔은 최대한 성질을 죽이고 조용히 말했다.

“압박은 포기해. 지금은 죽어라 뛰어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라인을 내리는 편이 더 나을 거다.”

그러나 팀원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플레이만 본다면 오솔은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말을 꺼낸 미드필더는 중원에서 활발하게 뛰고 있었다. 그들이 봤을 때는 미드필더 쪽이 더 팀을 위해 뛰는 선수였다.

‘이런 바보 같은 놈들. 겨우 그 정도 전술 이해도로 축구를 한다고 하는 거냐. 지금?’

오솔이 좀 심하게 걸어 다닌 측면이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압박을 할 필요가 없어서, 혹은 압박을 해봐야 의미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지구력에 걸린 페널티 때문에 체력도 낮은 상황이라고. 어설픈 압박으로 체력을 소진시키느니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기회에 모든 체력을 쏟아 붓는 편이 더 나아.’

오솔은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고자 정신을 집중했다.

한편 축구부 감독은 오솔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흐음. 특이한 녀석인데? 전체적으로는 초심자처럼 어설프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그 나이 대에서 보기 힘든 플레이를 펼치고 있어.’

사실 오솔이 그렇게까지 소름 끼치게 잘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못하는 축에 속했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는 동년배는 물론이고 웬만한 프로선수 못지않게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위치 선정이 뛰어나. 설렁설렁 움직이면서도 제때 공격 찬스를 잡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저 오프 더 볼 움직임 덕분이지.’

예측력인지 아니면 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솔이 적진에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공간을 찾고 공격 찬스를 확보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다른 기술들이 어설픈 것에 비해 몸싸움만은 상당히 능숙해. 힘도 좋고 무게 중심도 낮아.’

오솔의 몸싸움 능력은 타고난 신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낮은 무게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모두 교과서적인 자세와 유연한 근육 덕분이었다.

자세는 지난 10년간 프로무대에서 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이었고, 근육은 스킬의 도움이 컸다. 덕분에 오솔은 수비수가 붙어 있음에도 자유롭게 페널티 에어리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재능이 있군.’

사람들은 축구선수로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할 때, 종종 절정의 골 감각이나 볼터치 능력을 보고 말할 때가 많았다. 마라도나부터 호나우두, 메시나 C. 호날두 등 흔히 신계에 있다는 선수들이 마치 공과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렇게 생각하기 쉬웠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공에 대한 감각도 일정부분 타고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탁수 감독이 생각하는 재능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타고난 신체 능력이야 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술은 꾸준히 연마하면 어느 정도는 커버가 가능해.’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익힌다는 가정이 필요하지만, 기술은 노력과 시간이 있으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서는 게 가능했다.

반면 몸은, 신체 능력은 그게 불가능하다. 물론 체력을 키우거나 달리기 연습을 통해 속도를 높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근육의 질까지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알기로 오솔은 경기 전에 따로 몸을 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보면 몸에 부담이 가는 동작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었다. 근육이 마치 야생 동물의 그것처럼 유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격 장면을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는데.’

이 감독의 시선은 오롯이 오솔에게만 꽂혀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오솔에게 패스가 이어지질 않았다.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의견 차이 때문인지 오솔에게 패스를 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팀원들에게 완전히 따돌림당한 오솔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덕분에 경기는 지지부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 자식들은 이길 생각이 있긴 한 거야? 겨우 의견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패스를 안 해?’

오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

오솔은 공이 근처까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 5분쯤 지나자 다툼이 있었던 그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패스할 곳을 찾던 미드필더는 상대편 선수가 붙자 공을 지키기 위해 몸을 틀었다.

‘지금이다!’

오솔은 가볍게 뛰는 속도로 공을 향해 접근했다. 그러다가 웬만큼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공을 뺏어냈다.

쿠당탕!

기존에 공을 두고 다투던 두 사람은 오솔의 몸싸움에 밀려 나란히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윽! 뭐, 뭐야. 야! 같은 편한테 태클을 하는 게 어디 있어?”

“원래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란다.”

“그게 뭔 소리야!?”

오솔은 황당해하는 동료를 뒤로하고 적진으로 달려갔다. 발끝으로 볼을 툭툭 건드리며 속도를 올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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