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0화 (10/160)

▣ 10화

11

택시 안에서 미미가 물었다.

“주군, 확인 안 하세요?”

“뭘?”

“아까 몬스터 잡으면서 레벨이 오르셨을 텐데.”

“그렇지.”

“안 궁금하세요?”

“어차피 자주 오를 것 같은데 나중에 한꺼번에 확인하려고.”

“저는 궁금한데…….”

내 레벨을 왜 네가 궁금해하냐.

물론 내 성장에 지대한 기대와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만.

나는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17이야.”

“와, 많이 올랐네요!”

“……응.”

진짜다. 원래 레벨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오르는 건가? 그것도 S등급의 레벨이?

나는 [레벨이 올랐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활동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거 생각보다 귀찮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으니까.

게다가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일일이 메시지가 뜨니 굉장히 비효율적이기까지 했다.

‘근데 왜 람바스는 레벨 메시지를 이렇게 만들어놨지?’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오른 레벨이 한꺼번에 보이도록 만들었을 텐데.

생각하는 것만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미미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람바스 님은 레벨이 잘 안 오르셨거든요.”

“진짜?”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으셨으니까요. 그래도 이틀이나 삼 일에 한 번씩은 또 메시지가 나왔다고 투덜거리셨어요.”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 2~3일에 한 번씩 레벨이 오르냐?

하긴 며칠에 한 번씩 레벨이 오르면 굳이 한꺼번에 메시지가 뜨도록 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득.

미미가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고 이상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택시 운전사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료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듣는다고 해도 이해가 갈 내용은 아니지만.

그때, 라디오에서 익숙한 사건을 보도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오늘 오후 발생한 A급 비정규 몬스터 사건은 사망자 없이 부상자만 12명 발생했으며…… 길드 ‘라이온’의 활약으로 잘 마무리되어…….

뉴스 내용을 들은 미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미토스를 죽인 건 주군이신데!”

“여기 증거도 있는데!”

나는 택시 안에서 아미토스의 내장을 꺼내려고 하는 미미를 만류했다.

“쉿, 조용히 해. 잘 됐잖아.”

사실 조금 걱정하고 있었다. 주위에 드론은 없었지만-아마도 아미토스가 한곳에 있지 않고 빠르게 이동했기 때문에 놓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혹시 내가 아미토스를 죽인 것을 누군가가 목격했으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길드 헌터들이 목격했지만, 뉴스 내용으로 짐작건대 그들은 아미토스를 잡은 것을 자기들 공으로 돌린 것 같다.

나중에는 현장에 그들만 남아 있었으니까 어쩌면 언론사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고.

‘자기를 집어 던졌다고 불평도 못 하겠네.’

A급 비정규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실적을 올렸는데 사소한(?) 문제로 그것을 무위로 돌릴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라이온의 대장은 그런데 집착하는 타입 같으니까.

‘그나저나 길드 이름이 라이온이 뭐냐?’

야구팀이냐? 왠지 타이거즈랑 이글스도 있을 것 같다.

미미는 아미토스를 사냥한 것이 내가 아닌 것으로 되어 골이 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내내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12

집에 오자마자 추리닝을 훌러덩 벗어던지고-결코 미미를 부려먹으려는 게 아니다. 내 귀찮음은 매너도 초월하니까.-몸의 더러운 부분만 물티슈로 쓱쓱 닦은 다음 침대로 들어갔다.

‘역시 집이 최고야.’

당분간 나가지 말아야지.

한 6개월 정도.

내가 벗은 추리닝을 빨래 바구니에 집어넣은 미미가 침대로 왔다.

내 옆에 앉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주군~ 주군~”

“왜?”

“오늘 사냥하셨잖아요. 기분이 어땠어요?”

“귀찮았어. 다신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

“…….”

기분 탓인지 거친 심호흡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그것 말고요, 주군~ 혹시 오늘 사냥에서 느끼신 게 없으세요?”

“장어는 징그럽다?”

미끌미끌한 거대한 생선이 하늘을 날면서 분비물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큰 귀찮음을 피하려면 작은 귀찮음을 무릅쓰면 된다. 어때요? 괜찮게 들리지 않아요?”

“음…….”

확실히 내가 좀 더 빨리 장어를 잡았더라면 귀찮음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미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말인데 주군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쿠바에 간다?”

미미는 내 대답을 들은 척하지 않고 자기 말을 계속했다.

“세상에 몬스터가 다 사라지면 주군이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지잖아요. 그러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아무도 터치하지 않지 않겠어요?”

하기야 나는 나를 죽여야 한다는 본능을 지닌 몬스터들에게 쫓기는 몸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몬스터가 사라지기 전에는 끝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미미의 말에는 맹점이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그런 영웅을 세상이 가만히 놔두겠어? 시달릴 생각 하니까 치가 떨릴 지경인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아요. 람바스 님은 스스로 권리를 요구하셨거든요. 결국 조용한 땅에 살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를 얻으셨죠.”

나는 솔깃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먼치킨 능력을 가지고 평생 눈에 띄지 않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당하게 자유를 요구하면 되지 않을까?

세상의 몬스터를 싹 사라지게 만든 사람의 요구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안 들어주면 콱 지구를 멸망시켜버린다고 하면 되지.

상상했더니 배시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세계의 대통령들을 하나씩 집어 던져 하늘의 별로 만드는 상상도 퍽 재미났다.

미미가 계속 속삭였다.

“자유에도 스케일이 있는 거랍니다. 람바스 님이 누린 자유를 말씀해드릴까요? 그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으셨어요. 왜냐하면…….”

우와~~

호오…….

나는 미미의 말을 들으면서 연신 감탄했다. 역시 람바스는 게으름을 피우는 일에 있어서도 먼치킨이었다.

‘그렇게 되면 좋긴 하겠네.’

어찌나 달콤한 얘기들인지 듣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3

열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침이었다.

이번에도 나를 먼저 맞은 것은 눈앞의 메시지.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이걸 봐야 하나?’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오늘 메시지는 어제보다 하나 줄었다는 사실이었다. 성장을 할수록 그 속도가 느려질 테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레벨 업 메시지가 사라진 뒤에 다른 메시지가 이어서 떠오른 것.

[특수능력 ‘조철웅’을 각성했습니다.]

특수능력?

조철웅?

확실히 스테이터스 창에 특수능력이라는 게 있기는 했다. 스킬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조철웅은 내 이름이잖아. 조철웅이 조철웅 능력을 각성한다는 게 말이 돼?’

[특수능력은 본인의 의지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꼭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뜻이다.

평소의 나라면 당연히 미루었을 테지만 능력의 명칭이 내 이름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의지라니.’

귀찮은 단어지만 달리 표현하면 그냥 누워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특수능력 ‘조철웅’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조금 내보였다.

[스킬 ‘노력(Lv 1)’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근성(Lv 1)’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의지(Lv 1)’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인내심(Lv 1)’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스킬 명칭들은…….’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하다. 바로 내가, 일 년 전까지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던 단어들이니까.

나는 힘들 때마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이 단어들을 메모했었다. 그렇게 필기한 노트가 수십 권에 달하며, 그것들은 아직 이 집 어딘가에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어 안 보이는 곳에 숨겨버렸지만-차마 버리지는 못했다.-.

‘조철웅이라는 특수능력으로 파생된 스킬들…….’

납득이 갔다. 과거의 나와 이 가치들은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었으니까.

‘뭔지나 한번 볼까?’

나는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스테이터스 창을 띄운 다음 스킬란에 생성된 기술들을 하나하나 터치했다.

명칭 : 노력(Lv 1)

등급 : Unique

내용 : 조철웅은 누구보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시간 대비 노력의 양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효과 : 스킬을 발동하면 주어진 시간 동안 ‘노력’한다.

유지시간 : 5분

명칭 : 근성(Lv 1)

등급 : Unique

내용 : 조철웅의 근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패가 있을지언정 포기는 없다.

효과 : 스킬을 발동하면 주어진 시간 동안 ‘근성’을 발휘한다.

유지시간 : 5분

명칭 : 의지(Lv 1)

등급 : Unique

내용 : 조철웅의 노력은 강인한 의지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의지력은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

효과 : 스킬을 발동하면 주어진 시간 동안 ‘의지력’을 발휘한다.

유지시간 : 5분

명칭 : 인내심(Lv 1)

등급 : Unique

내용 : 실패와 좌절이 거듭되어도 조철웅은 불굴의 인내심으로 그것들을 견뎌왔다.

효과 : 스킬을 발동하면 주어진 시간 동안 ‘인내심’이 생긴다.

유지시간 : 5분

“아…….”

왠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게 귀차니즘이 자리 잡은 뒤로 가능한 한 감정낭비를 안 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다.

왜냐면 내 ‘노력’이 인정받았으니까.

이 스킬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인생을 마냥 헛살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상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노력.

상상을 초월하는 근성.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의지력.

불굴의 인내심.

내가 이 정도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고 자위했지만, 거기에는 늘 고독이 따랐으니까.

성취가 없으니 인정을 못 받고 열등생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렇구나…….’

미미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람바스가 이 행성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에게 자신의 과업을 잇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 자체에 의미를 두고 죽도록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겠다고.

‘그게 바로 나.’

우주 최고의 재능을 지닌 먼치킨이 나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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