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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9화 (9/160)

▣ 9화

몬스터는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했다. 이쯤 되면 미미의 말이 옳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놈은 분명히 나를 노리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미련해 보이는 몬스터들의 잠재의식에 일일이 람바스에 대한 적개심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마하니 이 몬스터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진짜 거물들이 있는 건가?

귀찮다, 귀찮아.

나는 귀찮아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몬스터-생김새는 어마어마하게 큰 장어를 닮았다. 하늘을 나는 장어-의 표정이 점점 변하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이놈! 한입에 먹어 치워주마!’ 하는 표정이었다가 점점 ‘이게 아닌데?’, ‘어라? 당하는 건 오히려 나?’ 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급기야는 나와 충돌하기 직전에 방향을 선회했다.

‘새끼, 쫄기는.’

그와 거의 동시에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야! 거기, 확실하게 어그로 잡아!”

“이놈 대체 어디 가는 거야?”

입고 있는 의상으로 보건대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장비는 모두 같은 색깔이고 가슴팍에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휴, 촌시러.’

절대 길드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한 번도 그럴 생각을 해본 적 없지만 방금 결심이 더 굳어졌다. 길드는 회사나 마찬가진데 뭐하러 들어가서 남의 지시를 받으며 일한다는 말인가?

좀 적게 벌어도 자유롭게 사는 게 최고지.

정확히 말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쉬는 것이 장땡이다.

몬스터는 내게 선뜻 덤벼들지 못하면서도 그렇다고 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듯 머리 위를 뱅뱅 맴돌았다.

어쩌다 보니 비정규 몬스터를 잡는 현장의 한가운데에 내가 자리하게 되었다.

“오! 멈췄습니다, 대장!”

“좋았어, 놈을 포위하고 확실하게 조준 사냥한다. 모두 자리 잡아!”

헌터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대장이라고 불린 리더의 지시에 따라 둥글게 앉아 쏴 자세를 취한다.

어떤 사람은 소총 모양의 무기, 어떤 사람은 권총 모양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자세가 제법 나오는 게 썩 괜찮은 그림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내 옆에는 미미가 있다.

“거기 두 사람 뭐해요?”

“위험하니까 빨리 도망가요!”

헌터들은 게으른 표정으로 서 있는 나와 현장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미소를 띠고 있는 미미가 답답한 듯했다.

급기야 리더라는 자가 내 쪽으로 뛰어와 어깨를 붙잡았다.

“당신 미쳤어?”

그는 답답한 나머지 나를 집어 던지려고 했다. 헌터에게 집어 던져지면 부상의 위험이 있지만, 이곳에서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설마,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힘 조절을 하겠지.

하지만 그는 나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딱히 버티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내게는 그가 힘을 쓰는 것이 마치 마임을 보는 듯했다.

가짜로 힘을 쓰는 흉내만 내는 것처럼 그의 아귀에서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찮아서 한마디 했다.

“소용없어요. 어딜 가도 저놈은 나를 따라올 거니까.”

“오! 주군, 원리를 터득하셨군요!”

원리는 개뿔.

당연한 일 아닌가? 몬스터가 나를 노리는 것은 미미 말마따나 본능인 것 같다.

놈이 나를 포기하려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했다.

“하아…….”

내가 미칠 것 같은 귀찮음에 한숨을 쉴 때, 헌터들이 소리쳤다.

“대장!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합니다!”

“대장도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

대장이라는 자가 어금니를 불끈 깨물었다.

“나는 분명히 피하라고 했소!”

자기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시점에 내가 본인보다 뛰어난 헌터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건가?

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장어를 닮은 몬스터는 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몬스터에 대한 기억이 일부 깨어났습니다.]

[기억이 정리됩니다.]

[‘몬스터 도감 I’을 획득했습니다.]

‘뭐가 어쨌다고?’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기억이 깨나고 그 기억이 정리되었단다. 그리고 ‘몬스터 도감’을 획득했다고도 하고.

혹시 이 짧은 시간에 몬스터 정보가 도감으로 정리된 건가?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장어를 닮은 몬스터를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러자 홀로그램처럼 두꺼운 책이 불쑥 솟아나더니 책장이 파라락 넘어가며 특정 페이지를 내보였다.

도감(圖鑑)인 만큼 그림도 그려져 있다.

이름 : 아미토스(변종)

등급 : A-7

특성 : 레가타 행성의 호수에 살다가 진화하여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괴수. 생명체는 닥치고 포식하는 습성을 갖고 있으며, 흥분하면 점액을 분비한다.

약점 : 뇌. 일반종의 뇌는 머리에 있지만, 변종의 뇌는 아랫배에 있다.

헌터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타다다다다!

‘아, 시끄러워 죽겠네.’

헌터들도 아미토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이 총구를 겨눈 방향은 전부 놈의 머리통이었으니까.

아미토스는 총을 맞더니 꿈틀대면서 포효했다.

“크와아아앙!!”

‘두 배로 시끄러워졌네!’

단지 시끄러운 걸로 끝이 아니었다. 흥분하면 점액을 분비한다는 도감의 내용대로 놈이 끈적이는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몬스터의 바로 아래에 서 있는 나와 미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마 몬스터의 분비물이니만큼 극독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피할 수는 있다.

그런데 발을 움직이기 귀찮았다.

거대한 점액 덩어리가 내 머리통에 닿으려는 찰나.

척.

커다란 막이 펼쳐지며 점액이 그 위로 떨어졌다.

옆을 보니 미미가 웃고 있었다. 손에는 우산을 든 채로.

물론 묵직한 몬스터의 점액을 받아내는 걸 보면 평범한 우산은 않았다.

퉁! 퉁! 퉁!

미미가 물었다.

“주군, 귀찮지 않으세요?”

“당연하지.”

“어떻게 하면 귀찮은 게 해결될까요?”

“……그런 방법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조금만 귀찮고 많이 귀찮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쯥!”

나는 미미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당연히 몬스터를 죽이면 되지.

그러면 이 소란이 모두 잠잠해질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딴 헌터들이 어떻게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도 어려워 보였다.

“뭐야? 왜 안 죽어?”

“분명히 머리가 터졌는데? 왜 반응이 안 오지?”

“에휴…….”

나는 미미에게 말했다.

“우산 좀 빌려줄래?”

“얼마든지요, 주군.”

미미가 우산 손잡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착 소리를 내며 접었다. 만져보니 일반적인 우산이다.

다만 점액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미미의 근력과 그녀가 우산 위로 방출한 마나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아…….”

나는 우산을 쥐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쩐 일인지 내 눈에는 몬스터의 약점이 훤히 보였다.

열심히 포효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마치 뇌가 있는 부위에 LOCK이 걸려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이 따라간다.

나는 그곳을 향해 우산을 던졌다.

쐐애애액-

작은 우산이지만 마치 로켓처럼 어마어마한 기세를 뽐내며 날아갔다.

퍽!

장어의 배가 뚫렸다.

노란 장기가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약점인 뇌가 파괴된 것이 분명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대체 레벨이 몇이나 오르는 거야?

그냥 간단하게 [레벨 ??가 되었습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끝내면 안 되나?

장어가 힘을 잃고 추락했다.

그것을 목격하는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왜냐면 몬스터가 사냥 된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높은 청력을 가진 내 귀에 헌터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야, 저거 우리가 안 잡은 거 맞지?”

“저 사람이 던진 거 설마 우산 아니야?”

“우산에 어떻게 몬스터 배때기가 뚫려?”

“그냥 우산이 아니겠지. 아마 엄청 비싼 장비일 수도.”

“그나저나 어떡하냐? 애매한 상황인데?”

“야, 대장이 쳐다본다. 조용히 해.”

응, 니들이 안 잡은 거야.

우산 맞거든?

애매할 게 뭐 있냐?

누가 봐도 내가 잡았는데.

나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 옆에 있던 미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나 했더니 어느새 아미토스가 추락한 곳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몸집만 한 칼을 꺼내어 곧장 몬스터의 몸뚱이를 가르기 시작했다.

‘솜씨 깔끔한 거 보소!’

언젠가 유튜브에서 보았던 참치 해체 쇼보다 훨씬 시원시원한 솜씨다.

몬스터에 대한 해부지식이 있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그때, 걸걸하고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 봐요! 누구 마음대로 몬스터를 해체합니까?”

아까 나를 집어 던지려고 했던 대장이 등장했다. 그는 인상을 팍 쓰고 미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여자야! 정신 나갔어? 일단 배분 문제부터 얘기해야지! 당신 어느 길드 소속이야?”

이제야 우리가 헌터라는 자각이 오셨나?

실력이 출중한 걸 보더니 길드 소속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대장은 급기야 미미의 어깨를 잡았다.

콱.

그리고,

“으아아아악!”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평소 같으면 귀찮아서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인데.

어쩌면 아까 나를 집어 던지려고 했던 일 때문에 언짢은 감정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미미에게 윽박을 질렀다거나 어깨를 무식하게 잡아채서 화가 난 것은 아니겠지.

화라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감정인가? 그것도 남을 위해서 내는 것은?

대장은 이근수에 이어 두 번째로 내 손에 의해 푸른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근데 내가 방금 힘 조절을 했었나?’

“뭐 어때.”

죽지는 않겠지.

나는 미미가 몬스터를 해체하는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몬스터를 잡고 돈을 벌게 되었다.

그것도 A급 몬스터를.

생활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당분간은 신나게 놀고먹을 수 있게 된 것!

거대한 몬스터를 해체하면서도 미미는 자기 몸에 이물질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필요한 부위만 깔끔하게 도려내 인벤토리에 넣은 그녀가 나를 돌아보고 웃었다.

“끝났어요, 주군!”

“응, 집에 가자.”

피곤하니까 택시 타야지.

우리가 현장을 벗어나는 동안 다른 헌터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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