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19화 (319/325)

제319화. 조선의 뒤끝

광해의 부름을 받고 들어선 이들은 총리대신 정인홍과 육군 부총사 대리 정충신, 해군 총사 우치적, 그리고 해병대 부총사 대리 아원이었다.

육군 총사인 신립은 여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몇 달 전엔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까지 병석에 자리보전하고 누웠다.

거친 전장을 누비던 노장의 갑작스런 와병에 광해는 황실 전용비행선을 보내 북미 점령 작전을 지휘 중이던 그를 태워 조선으로 데려왔다.

그로인해 지금 북미 서부지역 점령 작전을 진행 중인 해병대의 지휘는 부총사인 김덕령이 지휘하고 있었다.

광해와 함께 정왜전쟁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차례차례 자리보전하여 눕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신립을 대신해 조선 육군을 이끌어야 하는 부총사 정기룡은 여전히 대한제국군과 함께 대월에 머물고 있었다.

일종의 점령군 사령관 직분을 수행 중이었는데 대월인들이 그를 두려워해서 고분고분하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조선은 대월이 확실하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판단되기 전까지 대한제국군을 대월에 주둔시키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 일들이 겹치다보니 현재 조선군의 중추를 이루는 해군은 물론이고, 공격의 핵심인 해병대의 지휘가 부총사도 아니고 부총사 대리에 의해 지휘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이들을 일별한 광해가 유럽 전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광해의 의견을 들은 총리는 광해의 생각에 동의했고, 군 지휘관들은 반대했다.

광해가 에스파냐 왕실의 복권과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인 독일의 항복을 받아들일 생각을 피력한 때문이었다.

“폐하. 피를 흘려 밟은 땅을 덧없이 돌려주어야 한다면 다음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왜 너희가 피를 흘려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육군 부총사 대리인 정충신의 말에 해병대 부총사 대리로 참석한 아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감히 미신이 하늘같은 폐하께 말씀드리면 송구하오나 같은 생각입니다. 돌려주지 마소서. 피로 얻은 땅이옵니다.”

더듬더듬 남간도 사투리가 나오지 않도록 애를 쓰며 말하는 아원의 자세는 극히 공손했다. 하긴 남간도인들에게 있어 광해는 신인이었다.

하늘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남간도에는 광해를 신으로 섬기는 사당도 많았다.

그런 일이 벌어졌던 초기에는 살아있는 태왕을 감히 사당에 앉혔다고 관리들이 펄쩍 뛰었지만 광해는 그저 허허 웃고는 내버려 두라 명했었다.

그게 번져서 지금 남간도의 가장 큰 종교는 다름 아닌 ‘태왕교’다.

한때는 ‘번개신교’라고도 불렸던 이 종교는 사실 정식 명칭 없이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태왕교’라 불린다. 이 종교의 신도들은 자신의 집에 사당을 만들고 그곳에 태왕의 어진을 걸어놓고 제를 올린다.

그들은 태왕을 믿고 섬기면 복이 오고,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정규교육을 받고 성장한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그 경향이 적지만 중장년층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싶을 정도다.

그런 남간도 출신인 아원의 집에도 작은 사당이 만들어져있고, 그곳엔 태왕의 어진이 걸려있었다. 그러니 지금 아원은 신 앞에 앉아 신의 말이 틀리다 말해야 했던 것이다.

전장에서 미친 들소라 불릴 정도로 전격전의 달인인 아원이었지만 태왕의 의견에 반대를 아뢰는 그의 음성은 자꾸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신의 뜻에 반대하려니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 아원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지은 광해가 유일하게 총사로 참여하고 있은 우치적을 바라봤다.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폐하의 뜻을 아오니 반대만 할 수는 없사옵고, 그렇다고 피 흘려 얻은 땅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도 없사오니······. 폐하. 그 중간을 취하심은 어떠하시옵니까?”

“중간을 취하라?”

“예. 저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각국에서 몇 지역씩을 떼어 내 조선의 강토로 삼으시옵소서. 전장에서 피를 흘린 병사들에겐 자부심이 될 거시옵고, 저들에겐 누대로 뼈에 조선의 경고를 새기게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우치적의 말에 광해가 고심하는 표정이자 육군 부총사 대리, 정충신이 그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리하소서. 소신의 생각에도 그것이 좋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그, 그리 하소서. 폐하.”

여전히 죄스러워하며 고개도 잘 들지 못하는 아원까지 우치적의 의견에 힘을 싣자 광해의 시선이 총리대신에게로 향했다.

“총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폐하께오서 전쟁을 끝내고 저들의 항복을 받아주고자 하심은 더 이상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자 하시는 것에 있다 사료되옵니다. 세 군부 지휘관들의 말을 가납하셔도 그 뜻은 지켜지지 않겠사옵니까? 하오니 소신은 감히 저들의 뜻을 가납하여 주십사 청하옵니다.”

총리대신까지 동의하자 잠시 고심하던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그대들의 뜻을 가납하겠다. 유럽 전장에 나가있는 이 원수와 논의하여 각국에서 취할 곳을 정하여 짐에게 보고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일제히 외치며 몸을 숙이는 네 신료들을 광해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광해에게 우치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오면 신성로마제국은 어찌 하옵니까? 일의 원흉인 그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질 않겠사옵니까?”

“그들은······.”

왠지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광해가 뒷말을 이었다.

“짐에게 따로 생각이 있느니라.”

그리고 이어진 광해의 말에 네 명의 눈이 커졌다.

*****

조선에서 태왕과 총리대신, 그리고 삼군 총사들과 협의한 사항은 대전의 논의와 유럽원정군 총사령관인 이순신과의 상의를 거쳐 최종 결정되어 시행되었다.

그 결정 사항들이 리스본에 머물며 이제나저제나 조선의 결정이 떨어지길 목 빠지게 기다리던 각국의 사절들에게 전달되었다.

우선 에스파냐는 왕정이 복고되었다. 대신 선왕이었던 펠리페 3세는 폐위되어 조선에 억류되었다. 마드리드로 귀환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몇 귀족과 광해로부터 신왕으로 책봉된 펠리페 4세 뿐이었다.

훗날 역사학자들이 신의주 조약이라 부르는 이 외교 조약에 의해 에스파냐는 대한제국에는 가입하지 않지만 조선을 상국으로 섬기는 속국으로써 향후 국왕의 책봉을 받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에스파냐는 매년 일정량의 조공을 바쳐야 했다. 그것으로 전쟁배상금은 면제되었다. 또한 빈 동맹국들 중 유일하게 땅을 빼앗기지 않은 나라였다.

그런 일련의 조치에 태자비와 페르난도 왕자가 광해를 찾아와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유독 에스파냐의 왕정만이 보호된 이유가 자신들에게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폴란드는 항복의 조건으로 북부 해안 지대인 서포모제와 포모제 지역을 조선에 할애하도록 요구받았다. 이 두 지역을 조선에 내어줄 경우 폴란드는 바다로 나가는 길이 바르미아마주리 지역의 좁은 구역으로 한정된다.

리투아니아는 항복의 조건으로 폴란드에서 독립하되 조선의 속국이 되어 의회에서 선출되는 리투아니아 대공은 조선의 책봉을 받아야 했고, 매년 상당량의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라도가 호수, 남으로는 일멘 호수에 이르는 열두 개의 도시와 부속 영토 전체를 넘기고, 매년 일정량의 조공을 바치도록 요구받았다.

이것을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는 발트해를 통해 유럽 지역으로 진출하는 부동항을 영구히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시아 쪽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지역은 이미 조선이 점령하여 영토로 삼은 상태였다. 따라서 조선은 이 땅을 빼앗음으로써 러시아를 대륙 안에 가둬버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독일 지방의 귀족들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할 것과 함부르크를 포함해 엘베 강 주변의 여섯 도시를 조선에 할애하도록 요구받았다.

에스파냐를 제외한 세 나라와 한 지방이 모두 상당한 영토의 상실을 포함한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항복 자체가 거절된 오스만 제국이나 아예 항복 논의조차 거부된 네덜란드를 보고는 감히 불만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거기다 국토가 사방으로 찢겨나가게 된 프랑스의 상황은 오히려 자신들의 조건이 후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 프랑스에게 제의된 조건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항들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도 프랑스가 이번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까지 감수하겠다면 항복을 받아들이겠지만 아니라면 그대로 전쟁을 지속해서 조선의 뜻대로 프랑스를 찢어발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던진 제의였다는 소리다.

이와 같은 결정이 떨어진 배경에는 유일하게 조선과의 동맹 약속을 지켰던 잉글랜드를 배려한 것이었다.

초기에 그들이 망설였다는 것도, 또 참전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광해는 그것들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잉글랜드가 어여뻐서가 아니라 한 가지 효과를 위해서였다.

‘보라, 조선과의 약속을 지키면 어떤 대가를 얻는지’라는 말을 유럽 전역에 행동으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조선의 의도 하에 프랑스에 제시된 조건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조선은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잉글랜드와 마주보고 있는 모든 지역인 브르타뉴, 노르망디, 피카르디, 노드파드 칼레 지방을 잉글랜드에 할애하도록 요구했다.

아울러 남부의 메디피레네와 랑그독루시움, 그리고 프로방스 지역은 조선에 영구 할애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할 경우 프랑스는 중부만 남기고 북부와 남부의 모든 영토를 빼앗기는 셈이었다.

그나마 서부 지역인 페이드라루아르와 푸아투샤랑트, 그리고 아키텐 지역을 통해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열려있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프랑스가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여기에 더해 프랑스에 향후 매년 국세 수입의 3할을 30년간 조공으로 바칠 것과 선출된 왕은 반드시 조선의 동의를 받으라는 조건을 추가로 걸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를 조선의 속국으로 삼지 않아 조선의 보호막조차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이 혹독한 조건을 받아든 프랑스의 사절은 넋이 빠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의 사절조차 제발 다시 논의해 달라고 울부짖는 오스만 제국의 사절과 네덜란드의 사절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절들은 향후 2달 이내에 결정을 내리라는 조선의 요구를 함께 받고 있었다. 가혹했던 것은 그 2달 동안에도 조선의 공격은 계속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조선의 공격을 단 하루라도 먼저 끝내기 위해서는 각국이 최대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함을 뜻했다.

사절들은 숨도 쉴 겨를 없이 각자 자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

잡혀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선 편으로 귀국한 펠리페 4세가 왕좌에 오르자 점령군이었던 대한제국군 5만과 잉글랜드군 3만이 에스파냐의 영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군은 본연의 임무인 북미 점령 작전의 재개를 위해 퀘벡을 통해 다시금 북미로 투입되었지만 잉글랜드는 그렇게 철수한 3만을 고스란히 프랑스 전선으로 투입했다.

잉글랜드는 그 병력을 활용해 전선을 남부로 확대해서 페이드라루아르 지방과 일드프랑스 지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가 조선의 가혹한 항복 조건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잉글랜드의 움직임이 오히려 프랑스의 위기의식을 더 크게 자극했던지 생각 외로 가장 먼저 항복 조건을 받아들인 곳은 프랑스였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 불리던 마르세유에 모여 회의를 가진 프랑스의 잔존 귀족들은 조선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합의했다.

마르세유 합의라 불리게 되는 이 합의로 잉글랜드와 조선에 할애될 지역의 귀족들은 남겨지는 중부의 귀족들에게 대체 영지를 양보 받았다.

모두가 이전보다 작아진 영지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었지만 모두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에 합의한 것이었다.

가장 가혹한 조건을 제시받았던 프랑스가 조선의 조건에 동의해 최종 항복협정 체결에 나서자 나머지 나라들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프랑스의 전권대사가 리스본에 도착하던 시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러시아, 그리고 독일 지방 귀족들의 전권대사들도 다시 리스본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도 조선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정식 항복절차를 완료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서에 제1차 유라시아 전쟁이라 기록되는, 하지만 사실상 조선과 유럽의 전쟁이었던 짧지만 강한 충격을 남긴 전쟁이 그렇게 끝났다.

리스본으로 이동해 모든 항복국과 항복 조약을 마친 유럽원정군 사령관 이순신이 막대한 전쟁배상을 지게 된 나라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풀어주듯 한마디를 던졌다.

“아! 태왕 폐하께서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배상 전쟁에 대해선 관여치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사절들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배상 전쟁’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사용된 까닭이었다.

그런 사절들에게 배석해 있던 리스본 총독 대리 겸 대서양군 사령관 이억기가 설명을 덧붙였다.

“잃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독일 지방을 제외한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전쟁 행위를 방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속된 말로 네들이 신성로마제국을 다 뜯어먹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이순신은 한 가지 먹음직한 미끼까지 던졌다.

“다 찢어 영토로 삼아도 상관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당장 사절들의 눈빛이 사납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사절들을 바라보며 이순신과 이억기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