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17화 (317/325)

제317화. 바르샤바 전투(2)

부병단장의 요청을 받은 11병단장이 잠망경처럼 생긴 관찰경으로 지휘마차 안에서 주변 정경을 살폈다. 기다란 길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삼층에서 오층까지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조선군의 형세가 좁은 협곡에 자리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양측 건물들로 포위된 형국의 길에서 병사들을 하차시켰을 때 적의 집중 사격이라도 가해진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따라서 부병단장의 요청을 11병단장은 단호히 거부했다.

11병단장은 부담스럽더라도 그대로 왕궁까지 마차로 진격, 왕궁 앞의 광장에서 하차전투를 개시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비교적 넓은 크기를 가진 왕궁 앞 광장에 도달해서 건물들 쪽으로 장갑마차로 벽을 치고, 뒷문을 열고 병사들을 내리면 건물 쪽에서 가해지는 적의 밀집사격에 아군 보병이 노출되는 시간과 범위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11병단장의 판단으로 장갑병단의 마차들은 죽어 늘어진 말들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말들을 단채 지속적으로 왕궁을 향해 진격했다.

그런 조선군의 마차들을 바라보며 유제프 장군이 눈가를 찌푸렸다. 자신의 판단과 다른 조선군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당황한 것은 폴란드 척탄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훈련했던 대로라면 여기서 조선군 병사들이 마차에서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당황감이 깊었던 몇몇 병사들이 유제프 장군의 금지 지시에도 불구하고, 폭발탄에 불을 붙여 전진하고 있는 조선군 마차 대열로 던졌다.

쾅!

첫발을 시작으로 수십 발의 폭발탄이 마차들 주변에서 터졌다.

설계부터 폭발탄 공격에서 생존하도록 만들어진 장갑마차는 상관없었다. 장갑병단으로 구성되면서 기동마차들도 한두 발의 폭발탄 폭발은 견뎌 낼 수 있도록 보강되었다.

그러니 마차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말은 또 다른 문제였다.

폴란드 척탄병들이 던진 폭발탄의 폭발에 고스란히 노출된 말들이 피해를 입었다. 장갑마차를 고안하던 초기부터 취약점으로 거론되었던 구동부, 그러니까 말에 공격이 집중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가뜩이나 직전에 가해진 집중 사격에서 다수의 피해를 보았던 말들에서 큰 희생이 나왔다. 폭발의 중심에 위치한 몇몇 마차는 아예 기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름 성과를 보이자 망설이던 척탄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폭발탄에 불을 붙여 조선군 마차 대열로 던졌다.

양측 건물들에서 폭발탄들이 다수 던져지자 기01 사수들과 현식총 사수들이 보이는 모든 건물에 총탄을 퍼부었다.

요란한 기관총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폭발탄 폭음에 묻혀버렸다. 그 속에서 구슬피 우는 말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여기저기 터져 오르던 폭발이 잦아들자 드러난 정경은 목불인견이었다. 말들이 무더기로 죽어있었다. 마구에 묶여 있던 말들은 도망도 가지 못한 채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죽은 말보다 살아있는 말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로인해 11장갑병단의 이동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졌다.

원해서 멈춘 것이 아니라 말들이 모두 죽은 선두 마차들이 서면서 모든 군열이 멈추어 선 것이었다. 바퀴가 빠진 마차들이 주저앉듯 말들이 죽어버린 마차들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린 셈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자신의 부대를 바라보는 11병단장의 눈 속에 파란 불길이 일었다.

“개새끼들!”

이를 갈아붙이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11병단장이 하차전투를 명령했다.

다수의 피해가 생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지휘마차의 깃발신호에 맞춰 일제히 기동마차들의 뒷문이 열리면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병사들도 나오자마자 적병의 목표가 될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차와 동시에 자신들이 내린 마차의 옆면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가까운 건물들의 반대편으로 숨은 셈이다. 나름 노력한 것이었지만 반대편 건물의 고층부에서 는 그조차 훤히 보인다는 것을 미처 감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곧바로 가해지는 폴란드군 척탄대의 사격에 속절없이 조선군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장갑마차의 기01 들이 그런 건물 고층부에 거세게 총격을 퍼부었지만 건물이 너무 많고 가까웠다. 폴란드 척탄병들은 영악하게도 한발을 사격하고는 재빨리 건물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곧바로 자신들이 서있던 자리를 기01과 현식총 세례가 훑고 지나가면 재장전한 총을 들고 다시 자리를 창가로 옮겨 사격을 이어갔다.

아군병사들의 희생이 늘어가는 것에 분기탱천한 11병단장이 지휘마차를 박차고 나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마차 뒤에 숨지 말고 건물로 들어가! 지금은 건물을 최대한 빨리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건물로 뛰어!”

11병단장의 고함소리에 반응하듯 병사들이 마차 뒤편에서 뛰어나와 건물들로 달려 들어갔다.

수탄을 까 넣고, 폭음이 울리자 안으로 제압사격과 동시에 진입하는 시가전은 조선군이라면 지겹도록 받는 훈련이다.

그 교리 그대로 11장갑병단의 병사들이 건물 점령전을 벌여나갔다.

11장갑병단이 고착되면서 시크 여단은 도시 안으로 진입도 하지 못한 채 대기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총소리와 폭음소리가 연달아 울리자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시크 여단장이 병력의 하차를 명령했다.

여단 전체가 하차하자 시크 여단장이 손짓으로 바르샤바를 가리키고는 뛰기 시작했다.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린 여단 병력 전체가 그렇게 앞서 뛰는 여단장을 따라 달렸다.

그렇게 달린 시크 여단이 바르샤바 성문을 통과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시크 여단 장병들이 본 도시는 온통 전투로 채워져 있었다.

중앙대로를 가득 메우고 주저앉은 기동마차와 장갑마차 사이에서 조선군과 폴란드군 사이의 총격전이 한창이었고, 도로 양측 건물 안에서도 연속해서 총소리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성벽에서 몰려 내려온 폴란드군이 중앙대로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도 조선군의 마차들이 주저앉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창과 칼 같은 구식 무기로 무장된 병력이었지만 접근전이 벌어지면 그들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시크 여단장이 우선 2개 단을 나누어 그렇게 몰려드는 폴란드군을 막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3개 단, 3천의 병력과 함께 11장갑병단을 돕기 위해 중앙대로로 진입했다.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여단장의 수신호에 따라 각 단, 또는 각 대가 각기 전투지역을 맡아 흩어졌다. 주변으로 숱하게 떨어지는 총탄 속에서도 꿋꿋이 지휘중인 11병단장을 발견한 시크 여단장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일단 건물 안으로 가시죠!”

반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한 시크 여단장의 손길에 이미 11장갑병단 병사들과 시크 여단 병력이 장악한 건물로 들어선 11병단장에게 시크 여단장이 말했다.

“전격전이 장군님의 장기라면 이런 난전은 제 전공입니다. 맡겨주시면 반나절 안에 싹 정리해서 폴란드군 지휘관 새끼를 장군님 앞에 끌어다 놓겠습니다.”

사방에서 가해진 일제 사격에 상당수의 병사들을 잃은 분노 탓에 눈이 시뻘겋게 변한 11병단장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 개새끼 반드시 잡아와!”

“결사!”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린 여단장의 고갯짓에 본부대 소속 시크 병사들이 앞서가는 여단장을 따라 움직였다.

이제 바르샤바 안에 들어와 하차전투에 임해있는 모든 조선군의 지휘는 시크 여단장이 도맡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크 여단장이 자신의 임무를 맡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11병단장은 다시금 건물을 나서 지휘마차로 들어갔다.

하차 전투를 위해 기동마차의 보병들이 내리긴 했지만 장갑마차는 그대로 남았고, 기01 사수들은 여전히 총격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11병단장이 그런 기01 사수들을 지휘해 한창 건물을 수색하고 있을 조선군 병사들과 연계한 엄호사격으로 총격을 변화시켰다.

창문으로 몸을 내민 조선군 병사가 손으로 위를 가리키면 기01로 바로 위층에 총격을 퍼붓는 형태였다. 그렇게 총격을 받은 층의 폴란드 척탄병들이 안쪽으로 몰리는 순간, 조선군 하차보병들이 수탄을 안으로 까 넣었다.

쾅!

폭음이 울리면 동시에 제압사격을 퍼부으며 돌입하는 형태의 조선군 점령 작전이 바르샤바의 가운데를 가르는 중앙대로 양측의 모든 건물들에서 벌어졌다.

전투는 중천의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석양이 붉게 물든 바르샤바의 중앙대로로 화려한 폴란드군 장성 복장을 한 사람이 끌려나왔다.

그를 거칠게 내동댕이친 시크 여단장이 11병단장에게 보고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수비대장 유제프 장군이랍니다.”

생포되는 와중에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은 피투성이에 장군복 상의도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그런 유제프 장군의 모습에 눈매를 찌푸린 부병단장이 나섰다.

“패장에게 모욕을 주는 법은 없는 법입니다. 장군님.”

부병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권총을 꺼내든 11병단장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나동그라지는 유제프 장군의 모습에 놀라는 부병단장에게 11병단장이 씹어뱉듯 답했다.

“난 그따위 거 몰라! 그저 저 개새끼 때문에 내 생떼 같은 애새끼들 날아간 것만 알지. 야! 기찰.”

“예? 아! 예. 장군님!”

방금 벌어진 일에 놀라 얼이 빠졌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린 기찰군교의 답에 11병단장이 말했다.

“저 새끼 시체 시궁창에 처박아. 그리고 포로로 잡힌 새끼들 있으면 죄다 쏴 죽여.”

“하, 하지만······.”

당황하는 기찰군교에게 11병단장의 윽박질이 날아들었다.

“뭐야 새끼야! 너 명령불복종이야!”

“아, 아닙니다.”

“그럼 그대로 실시해!”

거칠게 내쏘는 11병단장의 명령에 기찰군교들이 우르르 포로 쪽으로 몰려갔다. 그 모습에 시크 여단 고위 참모가 여단장에게 속삭였다.

“말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무장 포로의 학살행위는 조선군법상 참형입니다.”

고위 참모의 걱정에 시크 여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태왕 폐하로부터 바르샤바는 격멸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걸 다 죽여야 한다는 뜻이지.”

“그, 그럼······.”

“병사들의 희생에 분노하기도 했겠지만 일부러 저러는 거다. 비무장인 포로나 바르샤바 시민들을 죽여야 하는 병사들의 부담을 자신에게 전가시키려는 거지. 11병단장, 생각보다 더 좋은 지휘관이야.”

시크 여단장의 말에 고위 참모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11병단장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11병단장의 고함 속에 포로들이 사살되고, 중앙대로를 정리한 조선군이 왕궁으로 진출했다. 이미 왕궁엔 구포병들이 배치되어 비격진천뢰를 퍼붓고 있었다.

왕궁문과 왕궁 성벽을 비격진천뢰로 부순 조선군이 곧바로 왕궁 안으로 진입했다.

폴란드 수비대에서 왕궁에 배치한 병력은 자원병으로 구성된 3백 명 남짓이었다. 이들도 무장은 칼과 창 같은 구시대의 무기였다.

그런 이들이 다양한 화기로 중무장한 조선군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약간의 교전 끝에 3백 수비대가 사살되자 왕좌에 앉아있던 선거왕이 끌려나왔다.

계획대로라면 선거왕을 태운 채 빠져나와 삼포로 바르샤바를 아예 자근자근 밟아서 뭉개는 것이 11장갑병단에 내려진 임무였다.

하지만 말들을 대규모로 상실하면서 당장 이동이 문제가 된 탓에 바르샤바 격멸작전은 비행선대에 일임하기로 하고 대서양군 사령부로 도시 폭격을 요청했다.

직후 11병단장의 지시로 도시 밖에 대기하고 있던 시크 여단 소속 전마들을 부려 도시 안에 주저앉은 11장갑병단의 마차들을 도시 밖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생각 외로 긴 시간이 걸려서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되는 데는 거의 만 하루가 꼬박 소요되었다.

그렇게 마차를 도시 밖으로 빼내는 조선군을 바르샤바의 시민들이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는 사이 도착한 2개 폭격비행선단이 11병단장의 폭격 개시 요청에 따라 바르샤바에 공투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곧바로 2천 4백발의 공투탄이 바르샤바를 그 안에 든 시민들과 함께 온통 화염 속으로 집어 삼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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