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바르샤바 전투(1)
모스크바가 불길에 휩싸인 다음 날, 제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이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폭격비행선단의 공중폭격으로 반쯤 부서진 바르샤바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부서진 성벽을 각종 자재들로 긴급 수리한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보석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다.
그런 바르샤바와 대략 1천보(약1.8km) 거리에 멈추어선 조선군의 선두에서 쌍안경으로 성문과 성벽을 관찰하던 11병단장이 물었다.
“현재 잔존 수비 병력은?”
도착 직전 대서양군 사령부에서 무선전신으로 받은 정보내역을 훑어보며 부병단장이 답했다.
“정보대의 계산으로는 1천 내외랍니다.”
“저기 성벽에 늘어선 놈들만 추려도 그 숫자는 넘지 싶은데. 설마 내 눈이 잘못된 건가?”
11병단장의 물음에 부병단장이 피식 웃으며 답을 이었다.
“멀리 떨어진 책상 앞에서 주판이나 튕기는 놈들이 뭘 알겠습니까. 기밀 정찰대의 관찰 결과로는 3천 내지 4천 정도의 수비대가 존재하는 것 같답니다. 물론 전부 정규 병력은 아니랍니다.”
“정보대 녀석들은 기밀 정찰대랑 연락도 안한다던가? 어찌 그리 숫자가 다른지. 쯧. 그나저나 3, 4천이라······. 도시민들에 대한 강제 징집인가? 그렇게 보기엔 또 숫자가 너무 적은데.”
“젊은 장정들만 소집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부병단장의 답에 쌍안경을 내려놓은 11병단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러나저러나 두들겨보면 답이 나오겠지. 야! 포병대장.”
11병단장의 부름에 뒤에 모여 있던 참모들 중 이화문양 2개를 어깨에 단, 장령 한 명이 나섰다.
“예. 병단장님.”
“포병대 방렬하고, 성문 격파해. 넓게.”
“마차 통로 개척 포격입니까?”
“그렇지. 장갑마차 선두에 세워서 기동마차 진입시킨다.”
병단장의 답에 포병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내 제압사격 실시 후에 진입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선거왕 뒈질까봐 공중폭격도 중단 됐는데 우리 포격으로 죽으면 누가 책임지나? 그놈 죽으면 여기저기서 칭왕(稱王)하는 무리가 생길 테고, 전선이 넓어진다. 그때 입는 피해가 성내 제압사격 미실시 상태로 진입하다 입는 피해보다 클 거다. 그러니 그냥 성문 파괴하고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포격 준비하겠습니다.”
복명하고 포병대가 대기하는 지역으로 뛰어가는 포병대장을 일별한 11병단장이 묵묵히 곁에 서 있는 시크 여단장을 바라봤다.
“시크 여단 포병대의 지원도 부탁하지.”
“예. 장군님.”
절도 있게 답한 시크 여단장의 눈짓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시크 여단 포병대장도 자신의 포병대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11병단장이 말을 이었다.
“바르샤바는 결국 성내 진입 후 벌어지는 시가전이 모든 걸 결정지을 걸세. 귀관의 여단이 우쯔에서 보여주었던 전투력의 절반만 보여줘도 어렵지 않게 풀어날 갈 수 있을 테니 여기서도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11병단장을 확인한 시크 여단장이 군열의 후방에 위치해 있던 자신의 여단으로 향했다.
성문이 파괴되고 돌입명령이 떨어지면 장갑마차를 선두에 세운 11장갑병단의 뒤를 따라 시크 여단도 바르샤바 안으로 진입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포격 준비를 갖춘 11장갑병단 포병대와 시크 여단 포병대가 450문의 삼포를 동원해 일제 포격에 들어갔다.
사격방식은 조선군 포병대가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일점포격이었다.
성문을 좌표로 잡고 발사한 450발의 작렬탄이 성문과 그 주변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가뜩이나 조선군 비행선의 공중폭격으로 강도가 낮아져있던 바르샤바의 성문과 그 주변 성벽이 단 한차례의 포격에 무너졌던 것이다.
하지만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 포병대의 사격은 계속되었다. 무너진 성벽의 넓이를 넓히고, 무너져 내린 석재를 잘게 부수어 마차가 진입하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장장 30분에 걸친 통로개척 포격이 마무리되자 11장갑병단장이 탄 지휘마차 앞으로 본부대 소속 장갑마차 8대가 나섰다.
“돌격!”
짧은 11병단장의 명령에 따라 8대의 장갑마차를 선두에 세운 11장갑병단이 개척된 통로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장갑마차 위에 장착된 기01 총좌들이 연신 성벽위의 바르샤바 수비대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총격을 퍼부었다.
일단의 바르샤바 수비대가 급한 대로 뚫린 성문 앞에 마차들을 뒤집어 세워 장애물로 삼았지만 선두에 서서 달려오던 장갑마차들에서 기01 총탄 세례가 퍼부어지면서 장애물로 삼은 마차와 그걸 세운 병사들이 함께 형편없이 부서져 무너졌다.
*****
유제프 프와스키.
폴란드군의 수많은 육군 장군들 중 한명으로, 그가 바르샤바처럼 중요한 도시의 수비대장이 된 것은 고위 장수들이 모두 세임을 따라 우쯔로 피신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군들 중에서 유일한 평민 출신이었던 그가 버려지듯 남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남겨진 그를 보고 바르샤바 수비대 병사들이 안도했다는 일화가 남겨져있을 정도로 병사들에게 신임을 받는 장수였다.
실제로 귀족 제일주의가 만연한 유럽에서 평민으로 장군에 올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능력을 추측할 수 있을 터였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가 귀족이었다면 지금쯤 폴란드 전군 사령관을 맡고 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소리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유제프 장군은 바르샤바의 부족한 수비 병력을 채우기 위해 징집을 실시하는 대신 자원을 받았다.
그렇게 모여든 바르샤바 시민 3천명과 자신 휘하의 정규군 1천을 합해 4천의 바르샤바 수비대를 조직했다.
징집을 실시했을 때에 비해 훨씬 적은 숫자였지만 유제프 장군은 자원자들인 이상 징집병들처럼 전투 전에 겁을 먹고 도주하거나 전열을 유지해야 할 때 흩어져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유제프의 바르샤바 수비대 중에서 핵심은 역시 정규 병력으로 이루어진 1천이었다. 척탄대라고 이름붙인 그들을 요제프 장군은 성문 안 중앙대로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나머지 3천으로 성벽과 성문, 그리고 왕궁에 진을 쳤다.
중앙대로는 바르샤바의 성문부터 왕궁까지 직선으로 연결된 도로다.
요제프 장군은 이 중앙도로가 조선군이 바르샤바로 돌입하면 가장 많은 병력이 집중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 중앙대로 좌우로 척탄대를 집중 배치했던 것이다.
이렇게 배치된 척탄대에는 몇 가지 명령을 내려놓았다.
우선 조선군을 가능한 깊숙이 끌어들일 것. 첫 사격은 일제히 말에 할 것. 사격 후 재빨리 자리를 이탈해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것. 등이었다.
아울러 요제프 장군은 척탄대 병사들에게 폭발탄을 하나씩 안겼다.
이 폭발탄은 전쟁 직전 폴란드가 네덜란드를 통해 수입한 것으로 약 1천발 가량이 바르샤바 수비대에 보관되어 있었다.
초기엔 성벽에 배치된 포에 배분되어 있었는데 요제프 장군이 수비대의 지휘를 맡으면서 모조리 수거해서 척탄대에 나누어 준 것이었다.
요제프 장군은 이 폭발탄에 대해 조선군 마차를 목표로는 사용을 금지시켰다. 대신 조선군 병사들이 하차 전투를 벌이기 위해 마차에서 내려 보병 상태일 때 불을 붙여 조선군에게 던지라고 지시했다.
요제프 장군은 그 방법이 조선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요제프 장군의 예측대로 조선군은 소문대로 막강한 포병전력을 활용해서 성문을 파괴하고 마차 째로 도시에 진입했다.
무차별로 사격해대는 조선군 장갑마차의 파괴력은 유제프 장군이 누누이 들어왔던 조선 육군의 화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비행선이 퍼부었던 공중폭격 당시 받아봤던 총격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제프는 아무래도 조선군의 쇳덩이 마차에는 비행선의 중화기가 장착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조선군의 화력이 생각이상으로 강력했지만 바르샤바 수비대가 취할 수 있는 방어 작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어차피 바르샤바 수비대가 조선군을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작전은 제한 적이었기 때문이다.
척탄대 병사들은 유제프 장군의 지시대로 조선군 마차들이 깊숙이 들어오도록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바르샤바에 진입한 조선군도 목표가 왕궁에 머물고 있을 선거왕의 신병 확보였기에 가능한 주변과의 교전은 확대하지 않은 채 직선으로 대로를 따라 왕궁으로 향했다.
도로에 이것저것 장애물이 많아서 장갑마차는 물론이고 기동마차들도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
대신 장갑마차의 기01들이나 기동마차의 현식총들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지역이 있다면 사방으로 총격을 가해 혹시라도 모를 적의 공격을 사전에 분쇄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상태에서 포병대와 일부 경호 병력의 마차를 제외한 11장갑병단의 마차가 대부분 중앙대로로 진입했을 때였다.
탕!
한발의 총소리 이후 사방에서 총격이 가해졌다.
타당탕탕탕탕탕.
장갑마차의 기01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총격 화염이나 연기가 보인 건물에 대해 무차별 제압사격을 가한 것이다.
퉁두두두둥.
묵직한 기01 사격음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총탄 줄기와 함께 도시를 울렸다.
타다다다당.
조금 더 가볍고 빠른 현식총 사격음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기동마차에 거치되어 있던 현식총들이 기01과 마찬가지로 총격 화염이나 연기를 찾아 제압사격을 가한 것이다.
대로를 따라 이루어진 적군의 일제 사격에 피해를 입은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측면 방어에 취약한 기동마차의 현식총 사수들 중에서도 적군의 사격에 당한 병사는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말들이었다.
마갑을 씌웠다고는 해도 조준 총격을 완전히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달리는 와중에 빗맞을 경우 미끄러트릴 정도의 경도만을 지녔던 마갑은 노리고 쏜 총탄에 여지없이 뚫렸던 것이다.
그나마 허벅지등 근육이 많은 곳에 총탄을 맞은 말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다만 살아있다뿐이지 기동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은 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선군이 사용하는 기동마차나 장갑마차는 공히 8필의 말이 끈다. 그 말들을 마차에 고정하는 장치에 있어 조선군은 조금 특이한 것을 사용했다.
바로 전투 와중에 지금처럼 죽어나가는 말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대로 마차에 묶여 있을 경우 그 무게 증가로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둘째 치고, 죽은 말의 시신이 땅에 끌리는 탓에 그쪽으로 방향이 자꾸 틀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조선군의 마구는 몇 가지 장치를 부착해 죽은 말을 떼어내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죽은 말의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때나 가능한 일이라서 당장은 질질 끌리는 말을 나머지 말들이 힘으로 끌고 달려야 했다.
직선으로 달리거나 죽은 말이 있는 방향 쪽으로 선회하는 와중에 떼어내면 그 말의 사체가 마차바퀴를 튕겨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군의 마구 장치는 말이 죽어서 늘어지더라도 땅에 완전히 끌리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그 장치의 힘을 빌어 11장갑병단의 마차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마차들과 기동마차들이 죽어 늘어진 말들을 단채 그렇게 움직였다. 한 마차 당 많게는 네 필이 당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말이 살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마차들의 속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떨어져서 마차들이 상당히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부병단장이 마차의 하중을 줄여 말들의 부담을 줄이고, 주변 건물의 점령을 통해 숨어있는 적병의 소거를 마치고 진격하자며 병사들의 하차전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