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한계치
그레이트브리튼군의 남하에 프랑스는 위기를 느꼈다. 누굴 신왕으로 세우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존속이 어려울 정도의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었다.
지방 귀족들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전통과 명망을 두루 갖춘 상파뉴 백작이 리스본에 위치한 조선의 포르투갈 총독부로 사절을 급파했다.
자신을 발리에르 남작이라 소개한 사절은 상파뉴 백작의 서신을 총독 대리 겸 대서양군 사령관인 이억기에게 전달했다.
당시 이억기는 북미 원정군 사령부가 차려진 퀘벡 전방지휘소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서신은 무선전신을 통해 전달되었다.
그 서신에 의하면 상파뉴 백작은 프랑스의 남부 4개 지방을 조선에 할애할 터이니 잉글랜드의 남진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그의 요청서에는 8명의 주요 프랑스 귀족들이 연명으로 인장을 찍어 보냈다. 상파뉴 백작 홀로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억기는 해당 서신을 곧바로 조선군 최고 사령부로 보고했다.
조선에서는 포르투갈 총독부를 통해 전달된 프랑스의 제의를 두고 회의가 열렸다. 사안이 군사적 사안만 연관된 것이 아니었기에 해당 요청은 대전 조회에서 거론되었다.
대신들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서둘러 받자는 분위기였다. 준다는 땅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저들이 할애하겠다는 아키텐, 미디피레네, 랑그도크루시옹, 프로방스알프로트다쥐르 지방을 확보하면 우리 조선은 에스파냐의 북부를 누르고, 이탈리아와 연결되는 길목을 쥐게 되옵니다. 이는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폐하.”
외교부 대신의 말에 광해가 물었다.
“에스파냐의 북부를 누르고,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을 쥐어 무엇을 할 생각인가?”
“당연히 세력을 확장하여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장악······.”
장악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눈매를 찌푸리는 광해를 발견한 외교부 대신의 뒷말이 흐려졌다. 그런 외교부 대신에게 광해가 물었다.
“하면 또 다시 정복 전쟁을 벌이자는 겐가?”
“하오나 폐하. 이탈리아는 유럽의 보고라 불리옵니다. 실제로 그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유럽의 상업을 장악하고 있었나이다. 그곳을 조선이 확보하게 되면 유럽의 경제권을 틀어쥐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 유럽의 경제권을 틀어쥐어 무얼 할 생각인가?”
“당연히 조선의 물품 교역의 확대를 시행하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옵니다.”
외교부 대신의 답에 광해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산업부 대신을 바라봤다.
“요새 유럽과의 교역은 어떠한가?”
“연일 규모가 축소되어가고 있나이다.”
“왜?”
“제후국들과의 교역량이 폭증하고 있어 생산량이 쫓아가지 못한 까닭이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 광해의 표정 상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들이 들으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 광해의 물음에 산업부 대신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최근 제후국들의······.”
이후 길게 이어진 산업부 대신의 설명을 축약하면 대략 이러했다.
산업 기반이 성숙된 제후국들의 발전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각 제후국의 발전 속도가 눈부실 정도로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제후국들의 교역규모가 일 년에 1할5푼(15%)씩 성장하고 있었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소비가 다양한 형태로 증가했고, 그로인해 제후국들의 소비물량이 대부분의 완성품을 생산하는 조선의 출하량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향으로 제후국 시장만이 아니라 조선의 시장에서도 물품 부족 현상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해야 할 조선의 생산량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특히 의류, 신발, 가죽 제품의 부족현상이 심했는데 해당 물품들의 생산 시설은 조선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서부 3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 인구가 많은 서부 3도에 집중 배치되었던 것인데 이들 공장에서는 야근과 특근까지 벌여가며 물량 확대에 최선을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물량 부족상태였다.
그렇다고 설비를 늘일 수도 없었던 것이 이미 3천만을 훌쩍 넘는 서부 3도의 인구를 가지고서도 일할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선을 제외한 대한제국의 전체 인구가 4억을 훌쩍 넘는다. 남포르투갈도 등 해외 영토까지 합해 조선의 인구도 7천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죽어나갔어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살아남았고, 명나라의 경우엔 인두세까지 폐지된 데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출산율이 증가했고, 그것은 곧바로 인구의 폭증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소빙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온도가 떨어져 기존의 대규모 농토에서 농업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나마 광해의 특명 하에 조선은 물론이고 대한제국 전역에서 식량을 대량 비축하고, 조선에서 사전에 따듯한 남부지역에 대량의 새로운 농지를 건설하여 식량생산량을 크게 늘여놓지 않았다면 대한제국 전역에서 기근 사태가 벌어졌을 정도의 급격한 인구 증가였다.
그렇게 인구가 폭증했음에도 조선에서 노동력이 부족했던 것은 조선의 백성들이 자신들이 사용할 물품만이 아니라 4억 제후국 백성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품들을 생산해 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원재료는 각 제후국이 도맡아 생산하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최근엔 제후국들이 맡고 있던 원재료의 생산조차 부족해지는 실정이었다. 제후국들도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제후국들은 아직은 노동력의 여유가 있어 지속적으로 산업시설들을 증가시키며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었다.
물론 시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생산량 확대를 위해서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제후국들에서 생산된 원재료를 가지고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조선의 유통구조 상, 제1 우선거래처는 조선과 대한제국이었다. 우선적으로 조선과 대한제국 내 각 제후국에 물품을 푼다는 뜻이었다.
그다음 제2 우선거래처가 동맹국이었고, 그 다음이 외교 관계를 수립한 외국, 그리고 제4 우선거래처가 유럽이었다.
이렇다보니 제후국의 소비가 폭증하면서 조선의 생산품들 중 거의 대부분이 제1 우선거래처인 조선과 대한제국 내 제후국들에서 소비하게 되었고, 결국 그 외 국가로의 교역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유럽에 공급되는 물량은 교역을 완전히 끊을 수 없어 가뜩이나 부족한 물품에서 빼내 마련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선 물품의 공급이 줄어들자 최근 유럽에서는 조선의 상품에 웃돈을 얹어 거래하는 풍조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그것에 대한 산업부 대신의 설명이 끝나자 광해가 다시 외교부 대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우리가 유럽의 경제를 쥐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말해보라.”
“······.”
광해의 물음에 외교부 대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외교부 대신을 일별한 광해가 말을 이었다.
“외교부 대신의 말뜻은 안다. 경제권을 쥐어 교역의 확대를 이루고 싶었던 것이겠지. 하나 이미 조선의 교역량은 한계에 도달해 있다. 최근 제후국의 산업구조 개편안에 대해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랬다. 조선은 최근 제후국의 산업구조 개편을 검토하고 있었다.
현재 제후국들의 산업구조는 원재료를 생산하는 1차 산업과 그 원재료를 가공하여 공장에 납품하는 2차 가공 산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1차 산업인 양잠업을 통해 실을 얻으면 그 실을 활용해 옷감을 만드는 2차 산업까지가 제후국에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옷감을 받아 각종 피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조선에서 담당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원재료가 제후국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딱 하나, 철강의 경우엔 조선에서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제후국들에도 제철소가 운용되고 있었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조선의 철산 제철단지에서 생산된 철의 순도와 강도 등 품질이 여타 제철소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제후국들은 자국에서 소요되는 철의 5할 이상을 매년 조선에서 구매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철산 제철단지는 각 제후국의 철광에서 대량의 철광석을 수입해 쓰고 있을 정도로 대량의 철을 생산해 제후국들에 공급하고 있었다.
조선은 그런 산업구조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련의 검토는 가장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현재 최대의 부족현상을 겪는 품목인 의류, 신발, 가죽 제품의 생산을 제후국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물론 디자인과 소재 개발은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조선이 지속적으로 도맡고 오로지 생산을 제후국으로 옮기는 방안이었다.
일종의 위탁생산 방식이랄까.
그것에 대해 광해가 언급하고 대신들 사이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논의 속에서 더 이상 프랑스의 요청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땅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땅이고, 영토인데 굳이 왜 거부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땅을 거부하는 이유는 소요되는 자금의 한계 때문이었다.
조선이 구가하는 경제 발전에 부합되도록 해당 지역을 발전시키자면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 제후국들도 마찬가지다. 연일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이루고 있는 제후국들조차 아직도 조선에서 대량의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부분의 조선 상점들이 왕실 상단 소유다. 그 대규모 상단들이 교역에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금원이 다시 모조리 쏟아져 나가고 있었다.
최근 남포르투갈도에 들어간 개발 자금이 제후국들에 쏟아 붓고 있던 자금의 양을 뛰어넘었을 정도였다.
남포르투갈도가 제후국이 아니라 조선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 조선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제후국들보다 훨씬 뛰어난 조선의 기준에 맞게 도로와 철도를 확충하고, 주택개량, 산업시설 건설 등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이 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프랑스 남부의 4개 지방을 조선이 영토로 확보하면 그곳에도 남포르투갈도에 들어가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겠지만 조선의 현재 수익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북미에서 조선의 강역으로 확보한 지역에는 아직 초기 개발 투자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제후국 몫으로 확보된 북미대륙의 영토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만의 병력을 동원해 점령해놓고 정작 개발을 하지 못해 백성들의 이주는 꿈조차 꾸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에 다시 영토를 늘일 이유도, 여유도 조선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이미 수립되어 있던 영토 확장 계획에 적시되어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대한 점령 작전도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상황들을 종합한 결과 조선은 상파뉴 백작의 제의를 거부했다.
조선의 거부를 통보받은 프랑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레이트브리튼의 기치를 내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군이 연일 남하하며 프랑스의 영토를 먹어치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프랑스 전역이 그레이트브리튼의 영토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급했던 프랑스는 다른 빈 동맹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빈 동맹에 속한 그 어떤 나라도 누굴 도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우선 오스만 제국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선은 벌써 5개월 가까이 오스만에 폭탄을 퍼붓고 있었다.
도시란 도시는 모조리 파괴되었고, 요사인 소규모 마을들조차 폭탄이 떨어지는 실정이었다.
이미 제국의 기능은 정지되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산속의 동굴로 깊이 숨어버렸다. 경제는 무너졌고, 찬란한 문화와 건축물은 무너지고 불타, 폐허가 되어버렸다.
폴란드는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오스만에 보냈다가 전멸 당했고, 최근에 오스만을 초토화시킨 조선 비행선들의 폭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사이 조선은 폴란드는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포함해 두 나라의 주요도시들을 연일 폭격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날틀03보다 항속거리가 긴 날틀043이 동원되었다.
날틀043은 날틀04를 폭격용으로 개조한 것으로 최근 조선에서 잉글랜드의 도움을 얻어 잉글랜드 남동부의 노리치에 마련한 조선군 비행장에 배치된 기체였다. 수는 80여대로 4개 폭격비행선대를 이루고 있었다.
1대의 날틀043이 장비한 폭탄의 수는 날틀03의 3배인 60발에 달했다. 이 날틀043이 보다 긴 항속거리를 이용해 폴란드와 러시아의 하늘에 연일 등장하면서 대량의 공투탄을 폴란드와 러시아의 주요도시에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직 폭탄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유일한 나라는 빈 동맹을 주도한 신성로마제국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