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8화. 그레이트브리튼
마드리드 공략부대가 에스파냐 왕족들을 모두 추포했다는 소식이 조선으로 전해진 직후, 페르난도 왕자가 광해에게 알현을 청해왔다.
제 누이의 청혼서를 들고 조선을 방문한 이래,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왕자는 여전히 조선에 머물며 공부 중이었다.
그것은 조선과 에스파냐 간 전쟁이 벌어진 이후에도 변하지 않아서 그는 여전히 조선 황실 교육기관인 종학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광해와 조선의 조정은 에스파냐의 이 어린 왕자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었던 까닭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본국으로부터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대사를 비롯한 에스파냐 대사관의 관리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전처럼 자유롭게 대사관 밖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이들의 파괴공작이나 첩자행위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분노한 조선 백성들에게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에스파냐 대사관에는 신의주 좌포청에서 경비 인력을 증원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주조선 프랑스 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여하간 광해는 페르난도 왕자의 알현 요청을 수락했다.
조선식으로 올해 8살이 된 페르난도 왕자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침전으로 들었다. 그 나이 또래의 활기로 가득했던 지난날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름 가족같이 지내며 아들처럼 여기던 광해로써는 그 모습에 마음이 그리 좋지 못했다.
“왕자.”
“예. 폐하.”
“누가 뭐라 하더냐?”
“아니옵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 풀이 죽어 있더냐?”
“그냥 마음속이 답답하옵니다.”
어린 페르난도 왕자의 답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렇지 않은 것도 문제겠지. 해서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더냐?”
광해의 물음에 한참 망설이던 페르난도 왕자가 답했다.
“저기······. 부왕을 봐주시면 아니 되옵니까?”
왕자로 궁중 언어만을 쓰던 페르난도의 뜻밖의 단어 선택에 어이없이 웃으며 광해가 물었다.
“봐달라는 말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더냐?”
“호 형님, 아니 황태자 전하께 배웠습니다.”
광해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호칭을 바꾸는 페르난도의 모습에 광해의 입가로 다시 미소가 깃들었다. 형과 동생처럼 격의 없이 지내며 배운 말일 터였다.
온통 고운 말, 좋은 말만 쓰도록 혹독하게 교육받는 궁인들에 둘러싸인 황태자가 사용하는 세속적인 단어는 모두 광해가 가르친 것이다.
부자간의 격이 없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황태자가 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페르난도 왕자가 봐달라는 말을 쓴 것은 광해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것에 쓰게 웃으며 광해가 물었다.
“왕자는 짐이 그리 하길 바라더냐?”
“염치없사오나 부디 선처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폐하.”
제 아비와 형제들을 구명하고자 여덟 살 어린 왕자가 지금 시점에 가장 두려울 상대에게 읍소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쌓인 정이 있어서였던지 그런 페르난도 왕자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사실 대신들은 프랑스는 물론이고, 에스파냐를 이 참에 점령하여 조선의 강토로 삼으라 말한다. 남포르투갈도를 운용해본 뒤라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수만리 떨어진 지역에 건설된 조선의 영토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자신감.
하지만 광해는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수긍하고 고개를 숙이지만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반드시 독립의 열망은 터져 나올 것이다. 광해가 현대시대에서 배운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니까 그것은 필연적이다.
광해는 그때 입게 될 조선의 상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하겠다고 나선 지역을 그냥 놓아줄 조선이 아닐 테니까.
아마도 참혹한 피가 흐르고 지루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현대시대에 영국과 아일랜드 간에 벌였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같은 일을 조선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명분도 없고, 죄 없는 이들의 죽음이 동반되는 전투가 조선을 헤집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도 그냥 두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레지스탕스 저항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의 영토는 너무 방대한 지역에 너무 많이 흩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 많은 영토들을 관리하고 발전시키는데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명제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프랑스와 에스파냐를 영토로 삼아야할 필요성도 사실 없었다.
훗날의 독립투쟁과 반란을 뻔히 예상하면서 굳이 필요도 없는 땅을 정복하고 지키느라 병사들의 피를 뿌리고, 막대한 조선의 재화를 소모시킬 생각이 광해에겐 없었다.
더구나 에스파냐는 80여년 후인 1701년이면 어차피 왕가의 핏줄이 끊긴다. 정이 조선이 에스파냐를 갖고 싶다면 그때 왕위 계승권을 주장해도 무방했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실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이 에스파냐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전쟁까지 벌였던 그 일에 조선이 개입하면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것이다.
스페인의 공주인 태자비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음 보위를 이으면 그 핏줄에 스페인 왕가의 피가 흐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전통에 의하면 그 정도의 혈연이면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에스파냐를 장악하여 합병하면 지금 힘으로 눌러 점령하는 것 보아 훨씬 부작용이 적을 것이다.
그러니 에스파냐의 일은 그때 후대의 태왕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그러니 지금은 은혜를 베푼다. 에스파냐가 예뻐서가 아니라 며느리를 위해서였고, 아들을 위해서였다.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여 사돈 집안을 피 박살 내놓은 선왕으로 인해 부부가 아픔과 반목 속에 지낸 조선의 왕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광해는 황태자 호에게 그런 아비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그런 불행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리 없었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가 올바르게 조선을 이끌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알았으니 돌아가거라. 짐이 깊이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릴 것이다.”
“부디 꼭 한번만 봐주시옵소서. 폐하.”
다시금 등장한 봐달라는 말에 광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의 뜻은 알았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페르난도 왕자가 돌아가자 광해가 태자비를 불렀다.
부르긴 태자비를 불렀는데 오기는 태자와 함께 왔다. 혹여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싶어 따라온 모양이었다.
“이 녀석아. 내가 며늘아기를 어찌하기라도 할 까봐 따라 온 거냐.”
부자간에 둘만 있을 때 쓰는 말투로 툴툴 거리는 광해를 슬쩍 올려다본 황태자, 호가 미안한 얼굴로 답했다.
“그건 아닌데······. 아빠. 그냥······. 걱정이 되어서.”
“이런! 왔으니 게 앉아.”
광해의 말에 태자비와 함께 황태자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 태자비에게 광해가 물었다.
“괜찮더냐?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울음기 가득한 태자비의 음성에 안쓰럽게 바라보던 광해가 말을 이었다.
“일국의 왕이 아니라 네 아비로써 부른 것이다. 조선은 며느리도 자식이라 한다. 나또한 너를 내 자식으로 여기지 않은 적이 없다. 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비가 자식의 마음을 상처로 후벼 파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니.”
“폐, 폐하······. 흐흐흑.”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태자비를 광해가 안쓰러운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광해가 대전 조회에서 에스파냐 왕실의 복권을 시사했다.
당장 대신들의 반대가 터져 나왔다.
“아니 되옵니다. 그들은 맹약을 깨고 조선의 등에 칼을 꽂은 이들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이미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들이오니 그들을 믿지 마옵소서. 폐하.”
외교부 대신의 말을 마치 사전에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모든 대소신료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믿지 마옵소서. 폐하.”
그런 대신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말했다.
“하여 에스파냐의 왕실을 피로 씻으면, 그 후과는 누가 받을 거라 보는가? 태자비와 태자가 원만하겠는가? 또 그사이에서 태어난 원손은 어찌하고? 그대들은 황실에 분란을 심고자 하는가?”
“······.”
광해의 물음에 당황한 대소신료들은 입을 다물고 답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서 총리대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찌 황실의 분란을 바라겠나이까. 하나 죄를 진자를 그냥 두면 자칫 조선의 법을 업신여기고 다시 그와 같은 짓을 할까 두렵사옵니다.”
“당연히 죄는 물어야겠지. 왕은 갈아 치울 생각이오.”
광해의 말에 대소신료들의 눈이 반짝였다. 적어도 그냥 지나가지는 않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신들의 시선을 받으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현 에스파냐 국왕은 조선으로 압송한다. 에스파냐의 왕실은 왕세자가 잇게 할 것이다. 물론 왕세자 또한 조선으로 압송하여 그 죄를 엄히 꾸짖은 후, 돌려보낸다.”
광해의 말에 서로 눈빛을 교환한 대신들이 허리를 굽혔다.
“폐하의 처결이 지당한 줄 아옵니다.”
“하면 그리 처결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대전 조회가 끝난 직후, 조선군 최고 사령부는 마드리드 공략군에게 추포된 에스파냐 왕실 가족 전체를 조선으로 압송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들의 압송을 위해 무장병력이 탑승한 날틀051 2대가 신의주에서 에스파냐로 출발하기로 했다. 배보다 빠른 이송을 위한 결정이었다.
에스파냐는 마드리드가 격파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방의 귀족들은 저항을 부르짖고 있었지만 그 어떤 귀족도 감히 병력을 모아 조선에 대항하겠노라 나서지 못했다.
에스파냐의 정규군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다수의 지방 경비 병력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들로는 중무장한 마드리드 공략군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대서양군 소속 마드리드 공략군은 완파된 마드리드에 머물러 있었다. 태왕의 철수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에스파냐는 머리를 잃은 채 손발만 남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착한 날틀051에 추포된 에스파냐 왕실 가족을 모두 태워 조선으로 보냈다.
에스파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프랑스는 잉글랜드군의 침공에 몸살을 앓았다. 칼레로 상륙한 잉글랜드군은 칼레가 속한 노르파드칼레 지방은 물론이고, 오트노르망디 지방과 바스노르망디 지방을 넘어 브르타뉴 지방까지 장악했다.
이들을 요격하기 위해 에스파냐에서 회군한 5만의 프랑스군이 3갈래 길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누굴 프랑스의 신왕으로 추대하는 가를 놓고 반목하고 있긴 했지만 강력한 외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트브리튼의 왕을 자처하는 제임스 1세는 이 프랑스군을 상대하기 위해 스코틀랜드군과 아일랜드군을 투입했다. 잉글랜드군과 앙숙관계였던 스코틀랜드군이 협동작전을 벌이는 희대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협동작전이라고는 해도 부대를 하나로 합쳐 작전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3만의 잉글랜드군이 브르타뉴의 중심도시인 낭트에 집결하여 페르디낭 포슈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군 2만을 기다렸다.
그에 반해 스코틀랜드군 3만은 오트노르망디 지방의 중심지인 루앙에 집결하여 사보이 공작을 지지하는 2만의 프랑스군에 맞섰다.
이도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들끼리 뭉친 1만의 프랑스군은 바스노르망디 지방에 속한 캉에서 마찬가지로 1만의 병력을 보유한 아일랜드군과 충돌했다.
세 개의 전투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벌어졌다.
현대식 무장을 갖췄다고 갖춘 프랑스군이었지만 이들의 주력 소총은 여전히 전장식인 스냅펀스 록 건이었다.
격발방식에서 화승총인 아쿼버스보다는 발전한 형태라고는 해도 기능상은 큰 변화가 없는 소총이었다.
그에 반해 잉글랜드를 비롯한 그레이트브리튼의 군대는 런던 무기창에서 생산한 런던1616 소총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여러 면에서 조선이 제후국에 보급한 일총을 흉내 낸 초보적인 이 볼트액션식 소총은 확실히 스냅펀스 록 건에 비해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대한제국의 제후국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종이탄피를 사용하는 그레이트브리튼의 병사들은 프랑스군에 비해 월등히 빠른 장전속도를 보여주었다.
프랑스군이 한번 사격할 때 그레이트브리튼의 병사들은 거의 두 번의 사격이 가능할 정도였다.
양쪽 공히 초선포를 기반으로 한 철포에 폭발탄을 사용하는 포병들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병전력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따라서 양측의 승패는 이 소총의 성능 차이가 갈랐다.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군들이 도주하는 가운데 그레이트브리튼군이 남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