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현장 지휘관의 판단
평소 병사들과 원주민들 간의 교류에 개방적이었던 강재휘 장령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
자칫 이 일이 원주민들과 조선군 사이의 화기를 헤치는 단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당장 아가씨들의 오빠나 그녀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원주민 전사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미친놈들!”
강재휘 장령의 욕지거리에 두 명의 해병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뒷간에 가서 오선녀나 불러낼 것이지 현지 아가씨들은 왜 건드려! 그렇게 죽고 싶어!”
“바로잡겠습니다!”
“이미 터진 일을 어떻게 바로잡아. 자식들아!”
“죄송합니다!”
목청 터지게 대답하는 두 해병을 노려보는 강재휘 장령에게 마에다 준령이 다가왔다.
“저 녀석들 주장대로 서로 눈이 맞은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상대가 동의한 것도 확인 되었습니다.”
“부족들의 반응은?”
“확실치 않습니다. 젊은 전사들 사이에선 분위기가 확실히 좋지 않습니다만 나이 많은 전사들 사이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느낌도 감지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쩌자고 하던가?”
“그게······. 이번 일을 어찌 처리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특별한 답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번 일을 어찌 처리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뜻이로군.”
“아무래도 부족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니 섣불리 나서기보다 말씀대로 우리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마에다 준령의 답에 강재휘 장령의 표정이 구겨졌다.
일종의 피해자(?) 측인 원주민 부락에서 그와 같은 자세를 취하면 이쪽에서는 법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자칫 문제가 불거져도 책임소재가 적기 때문이다.
“결국 법대로 가야하는 건가.”
강재휘 장령의 중얼거림에 마에다 준령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총살형에 처하시려고요?”
마에다 준령의 입에서 총살 이야기가 나오자 두 해병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런 두 해병을 일별한 강재휘 장령이 욕설을 뱉어냈다.
“빌어먹을 새끼들.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을 못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마에다 준령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가운데 강재휘 장령의 시선이 또 다른 군관에게로 향했다.
강재휘 장령의 시선을 받은 이는 해병개척단의 기찰군교(헌병장교)의 임무를 맡고 있는 아라부카(阿羅不花, 아라부화) 위관이었다.
만주 4도 중 북간도 출신인 이 우람한 체격의 위관은 꽤나 고지식해서 해병개척단 병사들에게 원성이 높았다.
규칙과 규범의 준수를 정확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라부카의 성품을 알고 있기에 강재휘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군기 기찰은 강재휘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그의 고유임무였기 때문이다.
“아라 위관의 생각은 어때?”
“군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장님.”
무심하게 뚝뚝 끊어지는 아라부카 위관의 조선말은 그 내용만큼이나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저 자식들 대가리에 기필코 구멍을 내자고?”
“그게 싫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아라부카 위관의 말에 사색이 되어버린 두 해병을 돌아본 강재휘가 한참 고심한 끝에 말했다.
“너희 두 놈에게 선택권을 준다.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던가, 아니면 아라부카 위관의 말대로 정식군법회의에 회부 한다.”
군법회의에 회부되면 가차 없이 총살이다. 혼인관계가 아닌 점령지 여성과 사통(私通)했을 경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총살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와중에 여인들이 무장한 병사들에게 느끼는 공포와 억압심을 감안해 아예 사고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 군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르투갈 전쟁의 와중에 현지 여인들과 사통을 한 병사들이 있었다. 욕정을 참지 못하고 여인을 범했던 병사도 있었지만 상호 합의하에 벌어진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처결은 차별 없이 모두 총살이었다. 그렇게 총살당한 대한제국군 병사들의 수가 수십 명에 달했을 정도로 조선군과 대한제국군은 이 부분에 지독할 정도로 엄격했다.
기찰군교들에게 다른 건 어떻게 협상의 여지를 두지만 이런 점령지 관리에 관한 군법을 어긴 경우는 선처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강력하게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당장 해병개척단의 기찰군교인 아라부카 위관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단장님. 그것은 위법한 처결입니다.”
“위법 아니야. 군법엔 분명히 명시되어 있어. 혼인관계가 아닌 점령지 여성이라고. 그러니 혼인하면 되는 거야.”
전후가 뒤바뀐 해석이었다. 군법에 적시된 혼인관계란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적하려 나서는 아라부카 위관에게 강재휘 장령이 손을 들어보였다.
“알아.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하지만 가능하면 살려보자. 강제로 범했다면 나도 그냥 쏴 죽여 버리고 말겠지만 그게 아니잖나.”
강재휘 장령의 말이 먹혔던지 몇 번 입을 달싹이던 아라부카 위관이 물러섰다.
기찰군교가 동의하자 강재휘 장령이 문제의 두 해병을 바라봤다.
“선택해.”
갈등이고 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성혼하지 않으면 총살이었으니까. 더구나 군법이 지엄한 것을 알면서 정을 통했을 정도로 상대 원주민 아가씨들도 예뻤다.
“하겠습니다!”
동시에 터져 나온 두 해병의 답에 강재휘 장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일단 그 사항을 가지고 총사부와 먼저 상의해본다. 아라부카 위관은 저들의 신병을 인계해서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충!”
군례를 올린 아라부카 위관의 눈짓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기찰군병들이 두 해병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강재휘 장령은 먼저 조선 해병대 총사부로 전신을 보냈다. 자신의 생각과 처리 방향 등을 설명하고 그 조치에 대한 총사부의 승인 여부를 물은 것이다.
해병 총사부는 곧바로 해당 사항을 총사가 참여하는 고위 지휘관회의에 붙였다.
그 결과를 해병개척단으로 보내왔다.
도착한 전문을 받아본 강재휘 장령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뭐랍니까?”
마에다 준령의 물음에 강재휘 장령이 답했다.
“묵인.”
“묵인이라는 건······?”
“알아서 하라는 것이지. 지휘부가 고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만큼 첨예한 문제였다. 자칫 승인이 내려졌을 경우 유사한 사례는 무조건 혼례를 올리고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묵인이라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만으로도 향후 이 일에 대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해병 총사부의 고위지휘관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허가 아닌 묵인 처분을 내린 것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해병의 전통을 지키려는 고위 지휘부 나름대로의 고심이 바탕이 된 결정이었다.
강재휘 장령은 곧바로 원주민들과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던 부단장, 마에다 준령을 보내 피해자(?)가 있는 부족에 자신의 뜻을 전하고 받아들일지 여부를 알아오도록 했다
명령을 받은 마에다 준령이 곧바로 해당 부족으로 향했다.
코만치족의 한 부락이었던 이들은 강재휘 장령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들로써도 강대한 조선군과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직도 단 1백 명의 병력으로 일대의 십여 개 부락을 몰살시켰던 조선군 해병대의 전율스러운 전투력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강제가 아니었던 일이기도 했고. 솔직히 젊은 전사들의 반감만 아니었다면 그냥 덮고 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락의 동의가 있자 마에다 준령은 당사자들인 두 아가씨를 직접 면담하여 본인들의 의견도 확인했다.
그녀들도 병사들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니면 부락의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혼례에 동의했다. 그 경우 병사들이 귀환할 때 고향을 떠나 조선으로 가야할 수도 있다는 말에도 두 여인은 잠시의 갈등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마에다 준령이 부대로 복귀해서 해당 사항을 보고했다.
마에다 준령의 보고를 받은 강재휘 장령은 곧바로 대서양군 사령부로 해당 사항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전문으로 적어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에는 사건의 진행 상황, 해병 총사부의 결정, 그리고 병사들과 원주민 부락의 결정도 들어있었다.
대서양군 총사령관인 이억기는 해당 사안을 보고 받고 표정이 굳었다.
자신이 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아니지만 이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대서양군이 내려왔던 처결은 예외 없는 총살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해병개척단에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조선군과 제후국 출신 병사들의 차별대우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억기는 그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원수부로 보냈다.
조선군 원수부가 대한제국 군사부도 통할하고 있었으므로 결정권은 원수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서양군 총사령관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고심했다.
해병개척단장의 재치 있는 처리가 인상적이긴 했지만 이억기의 우려도 충분히 타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수부의 고위 참모들도 총살과 현지 처분을 승인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총살을 주장한 이들은 대부분 조선 본토 출신들이었던 반면 현지 처분을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본토 외 지역 출신들이었다.
본토인들은 차별에 그만큼 민감했던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차별의 위험성을 강변하는 태왕의 지시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본토 외 출신들은 오히려 조선인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조선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우선했다.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순신이 해당 사항을 가지고 결국 태왕의 알현을 청했다.
자칫 잘못 내딛은 걸음걸이 하나가 그간 태왕이 부단히 노력해 쌓아온 대한제국의 결속을 헤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둘만 마주한 이순신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받은 광해는 씨익 웃으며 현지 지휘관의 이름을 물었다.
“강재휘 장령이라고 수군 수졸에서 시작해서 군사학교를 수료하고 해병군관으로 임관한 자입니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의 고단함을 잘 이해합니다.”
수군 수졸로 시작했다는 것은 해군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이전인 1604년 전에 군역으로 입대했음을 뜻했다.
적어도 10년 이상 군 경험을 가진 자란 의미였다.
병사들의 사정도 알고, 군 경험도 적지 않은 자의 판단이었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합시다. 차별이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또 향후 이번 일이 강간 범죄에서 빠져나갈 구실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허락해야 하지 않겠소. 현장 지휘관이 그리 판단했다면 그럴 만한 연유가 있는 것일 테니.”
“제후국들의 반발이 없겠나이까?”
“문제를 일으켰다는 두 해병의 출신을 알고 있소?”
“아! 그것은······?”
출신에 대해 꼼꼼한 이순신이 선뜻 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보고내용 중에 해당 사항이 언급되지 않았음을 뜻했다.
그렇게 출신을 알지 못했다는 것에 오히려 광해는 미소를 그렸다.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만큼 군부에서 출신지역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확인부터 합시다. 어쩌면 그것에서 제후국들을 설득시킬 방안을 찾을 수도 있을 터이니.”
“예. 폐하.”
답을 한 이순신이 황급히 침전에서 물러나왔다. 사람을 보내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물어본 당사자가 태왕이었다. 직접 움직이는 것이 예법에 맞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이순신을 광해가 미소로 지켜보았다.
저만한 위치에 권한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한결같은 이순신의 몸가짐에 찬탄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