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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83화 (183/325)

제183화. 올무를 당기다

그날 111여단 휘하의 전 단에 지급으로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그 작전명령에 따라 각 단들이 가지고 있던 지향뢰와 현식총이 모조리 여단 본부로 보내졌다.

그로인해 현식총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선의 전투가 조금 더 치열해 졌지만 구포가 그 빈 공간을 잘 메우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111여단 본부대는 주변의 다른 여단에 지원까지 청해 대량의 지향뢰를 보충 받았다.

해가 지자 적군의 공세는 차츰 줄어들다 완전히 멈췄다. 어제와 같은 수순이었다. 아마도 내일 날이 밝으면 곧바로 공세가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야음을 틈타 여단 본부대가 자리한 지역에서 아원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정찰 나올지 모를 적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밤새도록 그 움직임은 길게 이어졌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예상대로 적군의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

에스파냐군을 지휘해온 이는 카바네야스 장군으로 에스파냐 육군에서는 뛰어난 전술과 판단력으로 정평이 난 자였다.

그는 흩어진 대한제국 해병대 중 하나를 골라 격멸해서 그렇게 벌어진 틈으로 이베리아 연합군을 밀어 넣어 전선에 투입된 대한제국군을 반으로 나누어 차례차례 격멸할 생각이었다.

이베리아 연합군에 대항해 올 대한제국군의 병력을 제한해서 일종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전투를 이어가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재물로 선택된 것이 바로 111여단이었다.

카바네야스는 에스파냐군으로 길게 포위진형을 구축하고 포르투갈군을 투입해 111여단을 두들겨 끌어내려 애를 썼다.

111여단이 패퇴하는 포르투갈군을 따라 포위진형 안으로 깊게 들어오면 그대로 총공세로 전환해서 압살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대공세로 나갔던 것도 아니다. 1

하지만 111여단은 방어 진지를 조성해 버티기 시작하더니 아예 진지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결국 포르투갈군을 통한 도발의 수위를 높였지만 그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전투 중에서 가장 큰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도주하는 적군을 추격할 때다. 군열이 흩어지고 병사들의 위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기회를 대한제국군은 계속해서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3일째에 들어서면서 지휘관들의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서 곧장 끝장을 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바네야스는 대한제국군에게 자신들의 위치와 규모를 발각당해 대규모 반격의 기회를 줄 경우 그들의 화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한제국군과의 대규모 전투는 어떻게 하든 피해야 했다.

카바네야스는 펠리페 3세가 자신에게 부여한 총지휘관의 권위를 이용해 지휘관들의 반발을 누르고 111여단에 대한 유인작전을 지속시켰다.

다만 지난 이틀보다 조금 더 강하게 두들겼다. 따라 나와 결판을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부딪친 것이다.

오전에는 이전의 이틀과 다를 것 없이 오로지 진지를 의지해 방어에만 임했다. 하지만 정오를 기해 상황이 바뀌었다.

대한제국군이 강하게 반격하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기회다 싶었던 카바네야스는 포르투갈군을 패퇴하는 척 뒤로 물렸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제국군이 그런 포르투갈군을 따라 진지를 벗어나 진출했다.

쾌재를 부른 카바네야스가 대한제국군을 포위망 안으로 깊게 끌어들이도록 지시했다. 그 명령을 받은 포르투갈군이 지속적인 피해를 입으면서도 패퇴의 속도를 늦췄다.

깊게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한데 어느 정도 선에서 대한제국군이 발을 멈췄다. 아차 싶은 순간 한개 부대가 더 깊이 딸려왔다. 바로 3단이었다.

그간 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3단이 오히려 가장 깊게 끌려 들어오자 카바네야스는 곧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더 깊게 끌어들였으면 좋았겠지만 3단을 제외한 나머지 대한제국군이 다시 진지로 처박히기라도 하면 오히려 실기할 수 있다는 판단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간 숲속에 숨어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에스파냐군 3만이 일거에 포위망 안으로 들어온 3단과 나머지 대한제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습격에 처음엔 강하게 반격하던 3단이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3단 만이 아니었다. 진지를 벗어나 있던 대한제국군들이 일제히 퇴각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다시 진지에 처박히면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카바네야스가 고속 추격을 명령했다.

차근차근 압박전술을 펼치며 포위를 좁혀오던 에스파냐군이 조밀성을 버리고 속도에 치중했다. 아울러 퇴각하던 포르투갈군도 반전하여 공격에 가세했다.

본래는 에스파냐군이 양쪽 길목을 강하게 조이고 반전한 포르투갈군이 밀어서 압살시키기로 했던 작전이 어그러졌다.

속도에 치중하기 시작한 에스파냐군이 포르투갈군의 작전구역을 침범하면서 양국군이 뒤엉켜버린 것이다.

총지휘관만이 아니라 현장 지휘관들도 패주하는 대한제국군이 진지로 틀어박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다소 위험했던 그 시도는 제대로 먹혔다. 대한제국군이 진지로 들어가기 전에 일부에서 따라잡은 것이다.

바로 깊숙이 들어왔던 3단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3단이 진지를 버리고 안쪽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한제국군 111여단이 조성한 방어진지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보고를 받은 카바네야스는 곧바로 그 지역으로 병력을 대량 투입해서 틈을 확대하려 시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측방의 위험이 증대되자 3단 좌우의 부대들도 방어진지를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내 패주가 111여단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카바네야스는 이참에 111여단을 끝장내기 위해 이베리아 연합군에게 전격적인 돌격을 명령했다.

전선에 투입된 5만의 이베리아 연합군이 명령에 따라 일제히 돌진했다. 그들을 달고 111여단 각 단들이 본부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중앙부로 일제히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이베리아 연합군도 중앙부로 집중되었다. 결국 중과부적을 느꼈던지 중앙부의 여단 본부대도 무질서하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따라 이베리아 연합군이 돌격 속도를 올렸다. 다른 여단 지역으로 들어가 합류하기 전에 111여단을 격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패주하는 111여단을 쫓는 것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버려진 본부여단의 주둔지역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긴 개활지에 세워져 있던 본부대의 주둔지역은 살피고 자시고할 것도 그리 많지 않긴 했다.

그 탓에 추격에 중점을 두었던 이베리아 연합군은 여단 본부대로 집결한 111여단이 무질서하게 패주한 끝에 숲으로 도주하는 것을 따라 달렸다.

그렇게 돌격속도로 이베리아 연합군이 막 111여단이 뛰어든 숲가에 도달했을 때쯤 땅위로 무언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숲 가장자리에 길게 참호를 파고 숨어있던 현식총 사수들이 일제히 참호 밖에 기관총을 거치하며 일어섰던 것이다.

1개 여단에 배속된 현식총의 수는 2백 정이다. 그 모든 현식총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분당 5백발의 속도로 발사되는 현식총 2백 정의 일제사로 구성된 화망이 개활지에 가득 들어선 이베리아 연합군을 완벽하게 가두었다.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총알세례를 따라 이베리아 연합군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져갔다. 놀란 이베리아 연합군 지휘관들이 지체 없이 퇴각 명령을 내렸지만 끌려 들여온 거리가 너무 깊었다.

수 Km에 달하는 개활지인 까닭에 대한제국군의 총알세례에서 이베리아 연합군 병사들을 지켜줄 엄폐물을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추격에 몰입한 나머지 이베리아 연합군은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병력을 밀어 넣었다. 그 탓에 숲 가장자리에 길게 배치된 현식총 사거리를 간신히 벗어났을 때는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래도 악마 같은 총알세례를 벗어났다는 것에 살아남은 병력들이 그 지역에 도달해 거친 숨을 몰아쉬던 순간이었다.

콰과과광!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이베리아 연합군을 폭발이 휘어감았다. 땅을 깊이 파고 숨어있던 점화병들이 잠망경처럼 만들어진 참호용 망원경으로 본대의 신호를 받고 일거에 심지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개활지를 삥 둘러싸고 있던 지향뢰는 물론이고, 돌무더기나 무성한 풀로 위장해두었던 비격진천뢰까지 폭발하며 온 들판을 쇳조각과 화염으로 가득 채웠다.

그 한복판에 갇힌 이베리아 연합군의 모습이 허공으로 비산한 수십만 개의 쇳조각과 화염, 그리고 폭발에 따른 연기에 일순간 뒤덮이며 가려졌다.

숲에서 개활지로 불어온 바람이 연기를 날렸을 때 드러난 참경은 목불인견 그 자체였다. 온 들판이 넝마처럼 변한 시체와 부상자들이 흘리는 피와 신음으로 가득했다.

지난 밤, 111여단 본부대는 자신들의 주둔지역 전체를 휘감는 형태로 6천발의 지향뢰를 심고, 3백발의 비격진천뢰를 숨겨두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다. 패주하는 111여단을 따라 깊게 들어왔던 이베리아 연합군 중 2만에 달하는 병력이 일거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선두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후방지역의 병력이 계속해서 몰아닥친 데다 현식총 세례에 놀라 퇴각하던 병력이 엉기면서 얼마 전까지 111여단 본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몰린 병력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몰린 병력을 둘러싸고 지향뢰와 비격진천뢰가 폭발하면서 벌어진 참상이었다.

당황한 이베리아 연합군을 퇴각하는 척 숲속에서 전열을 정비한 111여단이 총공세로 나오면서 공격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경에 전의를 상실한 이베리아 연합군이 정신없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따라 달리며 111여단이 엄청난 파상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과정에서 총탄이 부족해서 사격을 못할 정도로 111여단은 막대한 출혈을 이베리아 연합군에게 강요했다.

그 결과 카스트루베르드로 무사히 퇴각한 이베리아 연합군의 수는 겨우 1만5천에 불과했다. 111여단과의 전투에서 자그마치 3만5천의 병력을 잃은 것이다.

대한제국 해병대 제111여단은 자그마치 자신들의 열배에 달하는 적을 맞아 7배의 적을 사살하고, 3배의 적을 패주시키는 놀라운 전공을 세운 것이었다.

111여단의 전과를 보고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증원부대를 보내 카스트루베르드를 격멸하도록 지시했다.

111여단장 아원은 이순신이 보내준 2개 여단이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통합해 카스트루베르드 공략에 나섰다.

3개 여단이 보유한 6백문의 이포가 포격을 가한 후, 투입된 1만5천의 해병대가 구포, 현식총, 수탄, 나총으로 이어진 체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시가전을 펼치며 악착같이 버티던 카바네야스의 이베리아 연합군을 격파했다.

카스트루베르드 시가전에서 이베리아 연합군은 1만의 전사자를 내고 4천이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의 와중에 총지휘관이었던 카바네야스가 대한제국 해병대원이 던진 수탄의 폭발에 휘말려 전사했다.

카스트루베르드를 무사히 빠져나간 이베리아 연합군 병사들의 수는 겨우 1천 남짓에 불과했다.

포르투갈 내에서 대한제국 해병대에 저항 할 수 있을 만한 병력이 사실상 완전히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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