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3번 올무전술
부하의 보고에 3단장의 입가로 서늘한 미소가 깃들었다.
“아새끼들이 본격적으로 미끼를 던지는구나야. 2대에 전해서 딸려가지 말라고 확실히 해두라.”
“예.”
복명한 부하가 2대에서 달려온 전령에게 단장의 명령을 전할 때 3단장은 김준용을 돌아봤다.
“뭐하니 1개 분대만 잘라서 2대를 지원하라.”
“예? 아! 예”
황급히 답한 김준용이 본부 막사 뒤에 대기하고 있던 자신의 대에서 1개 분대를 지목했다. 김준용은 분대장에게 3단장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강조했다.
“적의 유인 작전이다. 반격 가한다고 따라 들어가지 말고 2대와 함께 진지 방어에 최선을 다해라.”
“예. 대장님.”
답과 함께 군례를 올린 분대장이 분대원들을 이끌고 2대가 방어를 펼치고 있는 지역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것을 확인한 김준용이 지휘막사로 돌아왔을 때는 적의 파상공세가 2대를 넘어 단 방어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것을 알리는 전령들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본부대가 맡고 있던 중앙지대 까지도 적군과의 교전이 가열되고 있었다.
적군의 공세는 포병들의 지원 포격 하에 소총수들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특히 현식총의 화력이 적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돌격해오던 적병들 중 절반 이상이 현식총의 연발 사격에 걸려 무너졌을 정도였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3단장이 단 참모에게 물었다.
“수색대 애들은 아직이니?”
“예, 아직 귀대 전입니다.”
참모의 답에 잠시 갈등하던 3단장의 시선이 김준용에게 돌아갔다.
“니 수색 해봤니?”
“군관학교에서 해보긴 했습니다만······.”
자신 없어 하는 김준용의 모습에 잠시 갈등하던 3단장이 결심을 굳혔는지 눈빛을 바로 세웠다.
“수색분대 결성해서 나갔다 오라.”
“수색지역이 어딥니까?”
“어디 갔니. 저 아새끼들 득실글거리는 곳이지.”
말과 함께 손가락을 펼쳐 보인 곳은 적군이 쏟아져 나오는 방향이었다.
“저, 적정 정찰 말입니까?”
“그래. 아새끼들 챙겨서 한번 파고들어가 보라. 다른 건 필요 없다. 규모만 알면 되. 대가리수 세어오라는 게 아니야. 대충 규모만 확인하라. 알았니?”
“아,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뭐히니 아새끼들 챙겨서 들어가야지.”
“예! 충!”
군례를 올리고 튀어나가는 김준용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런 김준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단 참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군관학교 출신이라는데 믿어도 되겠습니까?”
“야야, 그런 나도 군관학교 출신이야.”
“아! 죄송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참모에게 혀를 차보였지만 걱정의 이유는 이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군관이 되는 방법은 모두 4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몇 년 전부터 시행된 것으로 바로 어전 무예대회다. 조선의 전통 무예를 수련하는 무인들의 조선군 진출을 위해 마련된 이것에서 선발된 이들은 왕립군관학교 속성과정을 수료해서 군관으로 배출된다.
2년에 한번 열리는 이 무예대회의 장원의 경우엔 무려 6품인 사령, 그러니까 단장급으로 임관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최근 들어 그중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5년 전에 설립된 왕립군관학당을 통하는 것이다. 이곳에선 태왕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내금위의 군관들을 전문적으로 키운다.
태왕을 지키는 군관이라는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 모든 군인들의 꿈이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경쟁률도 정말 무시무시하다.
당장 작년 10월에 열렸던 후보생 선발 경쟁률이 2천대 1이었다. 25명을 뽑는데 5만 명이 몰렸었다는 뜻이다.
현재 교장이 산악전단장이었던 지세창인 것만 보아도 이곳이 무엇을 중점으로 가르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선발된 훈련생들은 정규 야전군 교육도 당연히 받지만 검술, 창술, 기마전술, 격투전 등 다양한 살수군 훈련을 중점으로 받는다.
아울러 궁중예법, 근위전술 등 대궐 근무에 소용되는 특수 상황에 대한 교육도 함께 배운다.
그렇게 배우는 것이 많다보니 교육기간도 4가지 방법 중 가장 길어서 5년이 걸린다. 대신 이곳을 수료하면 8품 준령(准領)으로 임관한다.
세 번째 방법은 광해가 조선의 국왕으로 등극하면서 설립된 정규 군사교육기관인 육군학당을 나오는 것이다.
물론 해병대 군관의 경우는 해병학당, 해군의 경우엔 해군학당을 나온다.
이곳도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육군학당의 경우 매년 3백 명을 선발하는데 평균적으로 1만 명 내외가 지원을 한다.
육군학당에 비해 적은 수를 뽑는 해군학당과 해병학당도 비슷한 경쟁률을 보인다. 3년제인 이곳들을 수료하면 정식 무관품계 중 가장 말단인 9품 위관(尉官)으로 임관한다.
마지막 방법이 바로 군사학교다. 단기 군관 교육기관인 이 기관은 이번 대한제국 해병대 창설처럼 대규모의 병력을 충원할 경우 필요한 군관들을 단기간에 길러내는 기관이다.
대부분은 준사, 또는 군역병 중에서 자원자를 받아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데 교육기간은 특수한 사항이 아닌 이상 6개월이다.
이곳을 수료해도 9품 위관으로 임관한다.
학당과 군사학교 양쪽 모두 정식 무관으로써 대우와 자격, 임무, 권리에 대한 차이는 없다. 단지 승급에서 약간의 격차가 벌어진다.
아무래도 정규교육을 받은 학당 출신들이 우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실전에서 공을 세우면 얼마든지 뒤집힌다. 제아무리 뛰어난 성적으로 수료한 학당 출신 군관도 전공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교육기간의 차이 때문에 교육의 질에서도 차이는 존재한다. 같은 내용을 1달 동안 배운 놈과 6개월 배운 놈이 다를 테니까.
수색교육도 마찬가지다. 군사학교의 경우엔 수많은 전술 훈련들 중 하나로 수박겉핥기식으로 1주일가량 배우지만 해병학당의 경우엔 6주간 심화교육까지 거치기 때문이다.
참모는 그것을 걱정한 것이다.
3단장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 이었다가 큐슈 정벌전 중에 수색대로 전환 배치되었던 경험을 가진 3단장으로써는 수색전의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리 선택할 수단이 없었다.
적군의 군세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무엇도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달리 움직일 여분의 전력도 없었으니까.
그것이 참모만큼이나 걱정하면서도 김준용에게 수색대 구성을 명령했던 연유였다.
그렇기에 수색분대를 구성해서 단본부 주둔지를 떠나는 김준용을 바라보는 3단장이 눈빛엔 불안함이 깊게 배어있었다.
다행히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던 김준용은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그는 군사학교 훈련 중 배웠던 수색교리를 애써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분대를 이끌고 적지로 스며들고 있었다.
처음 접근은 적이 돌출하는 숲을 크게 우회해서 했다. 적이 득실거리는 곳을 파고 들 정도로 무모하지도, 능력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김준용의 수색분대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 외곽으로 벗어난 지역에서 적의 중간 집결지(?) 정도 되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적은 영악하게도 대한제국군의 정찰에 대비해 병력 집결지를 중앙부가 아니라 외곽으로 돌려서 숨겨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발견된 집결지에 모여 있는 병력의 규모는 대략······.
“여단규모는 넘겠는데?”
김준용의 중얼거림에 곁에서 적정을 살피던 분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문제는 저들이 다가 아니라는 거겠죠. 보십시오. 우측 2시 방향에서 다른 군기와 군복을 입은 이들이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어째 사용하는 말도 조금 다른 거 같은데?”
김준용의 말에 분대장이 분대원 중 한명을 손짓으로 불렀다. 점령 작전에 대비해 사역원에서 나온 교관들에게 간단한 포르투갈어와 에스파냐어를 교육받은 대원이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분대장이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어디 말이냐?”
분대장의 질문을 받은 병사가 멀리서 바람에 실려 오는 적군 병사들의 말소리를 잠시 듣다가 답했다.
“이쪽에 잔뜩 모여 있는 애들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저쪽에 이동 중인 이들은 에스파냐어를 씁니다.”
“에스파냐······. 흠······.”
분대장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포르투갈로 파병되었다는 에스파냐군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포로를 통해 파악되었던 그 소문에서 에스파냐가 파병했다는 병력은 3만이었다.
절망적으로 물드는 분대장의 눈빛으로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김준용이 말했다.
“아직은 확인되지 않았다. 단정은 금물이다.”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우리 눈으로 확인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에스파냐군이라는 한 가지 정보만으로 오판하지 말자. 소문속의 그들 중 일부일 수도 있으니까.”
“예. 대장님.”
분대장의 수긍에 김준용이 조용히 분대를 뒤로 물려 이동했다. 지금은 저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숲과 산을 두 시간정도 조용히 이동한 김준용과 분대원들 시야에 대규모 병력이 관측되었다. 최소 3개 병단규모의 병력이었다.
주둔지에서는 대량의 화포와 화승총병들의 모습도 확인되었다.
그런 적 주둔지 중앙 막사에 휘날리는 깃발엔 포르투갈의 것과 함께 두개의 기둥 사이에 왕관을 얹은 복잡한 문양의 방패가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로 에스파냐 왕실을 뜻하는 깃발이었다.
분대장의 암울한 추측이 사실로 판별되는 순간이었다. 적은 3개 병단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가진 반격 전력이었다.
“돌아······가자.”
김준용의 말에 잔뜩 굳은 표정의 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귀환한 김준용의 보고를 받은 3단장은 이내 여단본부로 전령을 보냈다.
그 전령을 받은 여단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함정을 파자고?”
“예. 단장님께서 3번 올무전술을 쓰자고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3번 올무전술이라······.”
산악병단에 있을 때 훈련받은 전술 중 하나로 일종의 역유인 전술, 그러니까 아군을 유인하려 드는 적군을 역으로 유인해 섬멸하는 전술이었다.
“올무 설치 지역은?”
“여단 본부 주둔지역에 올무를 까는 게 최고 아니겠냐고 하시던데요? 진행 하실 거면 여단장깃발도 좀 휘날려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여단지휘부가 있노라 광고를 하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111여단장인 아원에게 지금 3단장이 미끼가 되라고 말을 했다는 뜻이다.
전령의 말에 피식 웃은 여단장이 말했다.
“가서 전하라. 올무 단단히 놓을 테니까 내일 정오에 시작하라고.”
“예. 여단장님.”
군례를 올린 전령이 달려가자 아원이 여단 참모를 돌아봤다.
“3번 올무 전술 아나?”
“죄송합니다. 잘 모릅니다.”
곤혹스러워하는 참모에게 아원이 미소를 그려보였다. 해병출신인 참모가 육군, 그것도 산악전 전문 부대의 전술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말이지.”
그 말로 시작되는 긴 아원의 설명에 여단 참모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